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615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2. 10. 24. 12:47

예림의집 2615번째 이야기

 

따뜻한 하루

시계 거꾸로 돌리기

1981년 여성 최초로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종신 교수직에 임용된 엘렌 랭어(Ellen J. Langer)는 1979년에 70~80대 노인 8명을 대상으로 재미있는 '시계 거꾸로 돌리기' 실험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모인 곳의 집은 평범한 가정집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가정집의 모든 것은 20년 전의 스타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20년 전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추억여행에 초대된 것이었는데 이 여행에는 2가지 규칙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1958년으로 돌아가 그 시대를 사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었습니다. 노인들은 매우 즐거워했습니다.
'벤허',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등의 영화를 지금 처음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보고, 20년쯤 전 로즈메리 클루니의 노래와 냇 킹 콜의 노래를 전혀 모르는 신곡처럼 들었습니다. 두 번째 규칙은 집안일을 직접 하는 것. 운신도 힘든 노인들은 내켜하지 않았지만 노력해서 청소, 빨래, 요리 등을 직접 해냈습니다. 그런데 노인들에게 뜻밖의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보호자의 도움 없이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하던 노인들이 시간이 지나자 혼자 옷을 입고, 계단을 내려가고, 식욕도 크게 늘었습니다. 마치 몸과 마음이 진짜 2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젊음과 건강을 단순한 지난날의 추억으로만 치부하지 않고 내 마음속의 한계를 깨트릴 수 있다면, 정신은 육체의 힘듦과 부족함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잠깐이지만 과거의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한번 가져보세요.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인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가?" 자신을 점검하는 한 시간의 방송이 되겠습니다.

 

예림가족 이야기

나만 까맣게 모르는 일이..!

20대 청춘은 늙어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상상하기 어려울 겁니다. 30이 다가오고, 주변에서 기력이 쇠약해진다는 소리가 들릴지언정, 그 말들을 정말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는 젊은이는 없을 것입니다. 카테터(의학 기구의 일종) 치료의 일인자인 제 주치의는 동맥경화와 협착이 노화(老化)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나이 듦은 신체적인 쇠약만을 일컫는 게 아니라, 건망증이 심해지거나 외국어 단어를 외우지 못하는 등, 부지불식간에 생활하는데 지장을 초래합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잊어버린 것을 나중에라도
알아차리면 또 모를까, 어쩌면 나만 까맣게 모르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구나, 그것이 두렵단다!" 이윽고 우려하던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을 받은 것입니다. 오랫동안 혼자 사시다가 일상생활에 문제가 일어나고부터 치매인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왜? 도통 모르겠다."라고 하시며 병원에서 저항하는 아버지를, 집으로 모시고 와서 재택 간병을 하게 되었습니다. 치매환자는 기억으로 인한 고통이 전혀 없게 되니, 좋은 면도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간병하면서 알게 되었지만, 아버지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홀연히 깨달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에 아버지의 당혹감은 엄청났습니다. 늙음을 둘러싼 문제는 당연히 신체나 지력 쇠퇴만의 일이 아닙니다. 직책이 인간의 가치처럼 여겨지는 사회에서는, 정년을 맞아 직장을 떠나면서 실의의 나날을 보내게 될 사람이 많습니다. 선생님으로 불리던 사람이 교사직을 떠나면서 선생님 소리를 듣기 어렵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공동체에 속함으로써 안정감을 찾게 되는데, 소속될 장소나 단체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로 인한 불안은 대부분 공통적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관건입니다.(임순형)

그렇습니다. 저는 요즘 "왜, 70이 넘으면 일손을 놔야 하는지?" 그 이유를 점점 더 깊이 깨닫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김형석 교수님께서는 100세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술활동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아무튼, 저도 저의 수고나 노력이 타인에게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심리적인 부담이나 피해를 주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는데, 그 사실조차 깨닫지 못할까 봐 염려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존재 자체가 가족이나 주변의 다른 사람에게 부담이 되는 일이 없었으면 하고, 이것저것 챙겨 먹으면서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많은 기도와 응원을 바랍니다.

 

예림단장 칼럼

피하기와 척하기..!

사람들과 잘 가까워지지 못해 늘 힘들었던 저는, 결국 부족한 인간 간계 기술을 보완하기 위해 두 갈래 전략을 개발했습니다. 바로 "피하기와 척하기" 사람들과 가까워지려고 노혁 하다가 어색해지느니 아예 그럴 가능성이 있는 자리에 가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자랑할 거리는 아니지만, 나는 얼굴을 붉히기 쉽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을 피하는 재주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자리를 지나가야 할 때는 휴대폰을 꺼내 통화하는 척했습니다. 전화 연결은 되지도 않았는데 유심히 듣는 척 고개를 끄덕이고 주변에 있는 진짜 사람들과는
최대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사람들을 피할 수 없을 때는 사람들과 정말 잘 어울리는 성격인 것처럼 가면을 썼습니다. 내가 곧 연기에 돌입해야 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습니다. 뛰어난 인간관계 기술을 지닌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그들을 따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방법은 위선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실제로 위선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인 척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절대 이렇게 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인 척하기는 무척 피곤했습니다.
매력적인 사람인 척하기는 오래 지속할 수 없었습니다. 감정적으로 금방 고갈되어, 다가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오히려 짜증을 내기 이수였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일이 벌어졌습니다. 때는 2003년, 나는 한 교회의 부교역자로 부임했습니다. 그 교회에서 사역하면서 교인들과 잘 알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이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얼굴에 둘러싸이게 되니 여간 곤혹스럽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한꺼번에 적응하려니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군중이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군중"은 목사가 교회에 오는 사람들을 지칭하기에 적절한 표현은 아닙니다.
이는 적신호입니다. 하지만 당시 내게는 교인들이 군중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냥 모르는 사람들의 집단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보기 싫어졌습니다. 저에겐 정말 큰 문제였습니다. 제 마음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딸들을 사랑하고 돌봐 주는 것이 그분의 듯이라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부담스러워 부재중 전화에 답신을 해 주지 않았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을 뿐 아니라 점점 그것에 대해 죄책감과 수치심까지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계속..!)

 

새찬송가 부르기

 

예림의집 Q.T.

유다의 부끄러운 행위

"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은지라 유다가 위로를 받은 후에 그의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딤나로 올라가서 자기의 양털 깎는 자에게 이르렀더니 어떤 사람이 다말에게 말하되 네 시아버지가 자기의 양털을 깎으려고 딤나에 올라왔다 한지라 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음이라 그가 얼굴을 가리었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길 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이르되 청하건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의 며느리인 줄을 알지 못하였음이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 유다가 이르되 내가 내 떼에서 염소 새끼를 주리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담보물을 주겠느냐 유다가 이르되 무슨 담보물을 네게 주랴 그가 이르되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더라 그가 일어나 떠나가서 그 너울을 벗고 과부의 의복을 도로 입으니라 유다가 그 친구 아둘람 사람의 손에 부탁하여 염소 새끼를 보내고 그 여인의 손에서 담보물을 찾으려 하였으나 그가 그 여인을 찾지 못한지라 그가 그 곳 사람에게 물어 이르되 길 곁 에나임에 있던 창녀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이르되 여기는 창녀가 없느니라 그가 유다에게로 돌아와 이르되 내가 그를 찾지 못하였고 그 곳 사람도 이르기를 거기에는 창녀가 없다 하더이다 하더라 유다가 이르되 그로 그것을 가지게 두라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할까 하노라 내가 이 염소 새끼를 보냈으나 그대가 그를 찾지 못하였느니라"(창세기 38장 12-23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비록 며느리 다말의 간계에 의해서 저질러진 일이지만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창녀로 알고 취하는 어이없는 음행의 사건입니다. 얼마 후 유다의 아내가 죽고, 유다는 양털 깎는 자가 있는 딤나로 갑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말은 과부의 의복을 벗고 얼굴을 가리고 딤나 길 결 에나임 문에 앉아 있습니다. 유다는 그녀를 창녀로 여겨, 요구대로 자신의 도장가 끈과 지팡이를 담보물로 주고 동침합니다. 유다로 인해 다말이 임신하게 디고, 유다가 약속한 대로 염소 새끼를 보냈으나 창녀였던 그녀를 어디에서도 찾아내지 못합니다.

변장한 다말(12-19절).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진리가 있다는 증거는 우리의 거룩한 삶과 성품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그러나 죽음가 슬픔이 유다 가정을 떠나지 않습니다. 아마도 유다와 그 가정이 요셉을 판 형제들을 대표해 소개되었을 뿐 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다말을 친정으로 보낸 후 유다의 아내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곡하는 기간이 끝난 후 유다는 자기 양들의 털을 깎으러 딤나로 갑니다. 한 사람이 다말에게 이 소식을 전하자 다말을 과부의 옷을 벗고 변장을 한 다음, 얼굴을 가리고 유다를 유혹하기를 꾀합니다.
그녀는 유다가 지나가는 길에 창녀처럼 앉아 있습니다. 14절, 유다가 그의 셋째 아들 셀라를 자신에게 주지 않은 것을 알기에, 다말이 도발적인 행동을 한 것입니다. 유다는 변장한 다말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다말은 그와 관계하는 대가로 "도장, 끈, 지팡이"를 다보로 요구하는데, 이것들은 부유하고 존경받던 유다의 권위를 나타냅니다 하나님과 멀어져 경건함을 잃은 유다는 며느리 다말과의 사이에서 부끄러운 일을 저지르고 맙니다. 물론 유다는 모르고 저질렀지만 악을 행한 것입니다. 우리가 치명적인 잘못을 저질렀을 때 하나님과의 간계는 어떠한가요?

부끄러움을 당할까 염려하는 유다(20-23절).
유다는 사람의 눈은 의식하면서 하나님의 눈은 의식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창녀와 간계한 사실이 알려지면 사회적 명예가 실추될 것을 염려합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부탁해서 자신이 창녀에게 맡긴 담보물을 찾으려 합니다. 사람의 시선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시선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죄가 가득한 세상에서도 거룩함을 선택해야 합니다. 거룩하게 사는 길은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신다"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는 것입니다. 유다는 친구인 아둘람 사람 편으로 창녀로 여긴 여인에게 염소를 보냅니다.
그 여인에게 약조를 지키는 동시에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는 징표를 되찾기 위함입니다. 다말에게 장성한 셀라는 주지 않으면서, 매춘 대가로 염소는 넘겨주려 애쓰는 모습이 아이러니합니다. 잠시 창녀로 변장했던 다말이 다시 과부의 복장으로 바꾸어 입었기에 사람들은 다말의 행동을 알지 못합니다. 친구는 유다가 찾으려던 여인을 찾지 못하고 돌아옵니다. 매춘은 명예롭지 못한 행위기에 유다도 더는 그녀를 찾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곧 다말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부끄럽기에 남들 앞에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일은 무엇이 있는지 깊이 묵상합시다.

"유다와 다말의 부끄러운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과 멀어진 사람의 말로를 보여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그러함에도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수렁으로 빠져 가는 유다를 보며 하나님과 멀어진 인생의 혼돈이 우리에게도 있을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스스로 얕은꾀를 사용해 부끄러움을 가리려 했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모든 수치를 십자가의 보혈로 가려 주신 주님의 십자가 아래에서 참된 평안함과 질서를 회복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이중적 가치관을 버리라

"우리나라에 기독교인이 천만 명 가까이 있는데 그 많은 사람이 사회에서는 맥을 못 추고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라는 말을 가끔 듣습니다. 그럴 때 저는 "그나마 기독교인들이 있어서 우리 사회가 이 정도라도 유지되는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창세기의 유다 같은 면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동생인 요셉의 생명을 구할 때 유다는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형제들이 싫어하지 않을 타협안을 실리와 함께 제시하는 정치 감각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나중에 애굽 총리가 요셉인 줄 모르는 상태에서도 침착하게 상대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버지 야곱을 독려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치욕스러운 행적도 있습니다. 며느리의 간음한 유명한 사건 외에도 그 자신이 결혼할 때 육적인 쾌락을 추구해 가나안 여인을 택한 바 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이중적인 가치관을 갖고 살지는 않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정의롭고 옳은 말도 잘 하지만, 일단 교회 밖을 나서면 안 믿는 사람과 전혀 구분되지 않는 행실을 일삼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주일에만 지키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적 가치관, 올바른 신앙적 가치관을 가지고 생활할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 자녀로서의 품격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꿈은 이루어진다/감상복 목사)

 

신앙생활 가이드

성장의 영역-거룩

넷째, 우리의 거룩함이 성장해야 합니다. 거룩함이 자라난다는 것은 "성화"라 일컬어지는 과정이며, 이에 대해서는 이번 장 서두에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가장 확실하게 깨우쳐 주는 말씀을 다음과 같이 제시합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린도후서 3:18). 우리는 이 구절에서 적어도 네 가지 중대한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거룩은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며, 성화는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저는 어린이들이 즐겨 부르는 다음이 찬송을 좋아하니다. <예수님처럼, 예수님처럼, 예수님처럼 되기를 난 원해요. 그분을 정말로 사랑해요. 날마다 예수님처럼 자라 가기를 원해요!" 둘째, 성화는 점진적인 과정인데, 이것은 동사의 시제가 현재 진행형(화하여)이라는 점과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라는 표현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리스도께서 삶 속에 들어오실 때 즉시 우리의 나쁜 습관들이 사실상 떨어져 나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 깜짝할 사이에 성숙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한순간에 성질이 길들여지지 않을뿐더러 욕만도 조절되지 못하며,
이기심 역시 순식간에 정복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 ... 많이 힘쓰기"를 배우라고 권면했습니다(데살로니가전서 4:1). 셋째, 거룩은 성령님의 사역입니다. 그분은 본질적으로 거룩하시기에 우리의 거룩을 증진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성화의 비밀은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려고 몸부림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 하시기 위해 자신의 영, 즉 성령으로 임하신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은 외부로부터 노력을 다하여 덕목들을 획득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으로부터 그리스도의 삶을 구현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입니다. 넷째, 만약 성령님께서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도록" 우리를 변화시키는 활동을 하신다면, 우리가 할 몫은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바라보고 나아가 그 영광을 거울처럼 반사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영광이 다름 아닌 성경 말씀 속에 가장 확연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에, 그분을 "바라본다"라는 것은 그분을 경배하기 위하여 말씀 속에서 그분을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날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 거룩해져 가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하는 기도

마음의 평안을 위한 기도①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태복음 6:26).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스바냐서 3:17).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편 46:1).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
우리의 모든 무거운 짐을 대신 져주시는 주님. 주님 안에 참된 쉼과 안식과 평안이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저의 참된 안식처가 되십니다. 이 시간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께 저의 무거운 짐을 맡깁니다. 주님, 저의 모든 무거운 짐을 가져가 주시고, 제 마음에 쉼을 주시옵소서. 깊은 안식을 주시옵소서. 참된 평안을 주시옵소서. 느긋한 마음과 여유로운 마음을 주시옵소서. 침착한 마음과 교요한 마음을 주시옵소서. 모든 긴장이 풀어지게 해 주시옵소서. 충분한 쉼과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나는 진정한 샬롬을 저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장 23절). 하나님, 이 시간 제 마음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제 마음을 지켜주시옵소서. 지친 마음에 쉼을 주시옵소서. 불안한 제 마음에 안식을 주시옵소서. 고통스러운 마음을 평안케 하시옵소서. 괴로운 마음이 지나가게 하시옵소서. 미워하는 마음이 흘러가게 하시옵소서.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염려가 깨끗하게 씻어지게 하시옵소서. 시기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 질투하는 마음이 사라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아름다운 마음을 닮아가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CCM 배우기

 

날마다 감사

감사할 줄 모르는 투정꾼

불평하는 버릇을 갖고 있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가족과 친구들은 물론 날씨와 같은 아주 사소한 일에도 사사건건 불평을 늘어놓아 주변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책을 읽다가 다음가 같은 글을 일게 되었습니다. "내려주신 모든 은혜에 대해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면 불평하거나 슬퍼할 시간이 없다." 그는 이 글을 읽고 자신의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으로 인해 그동안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쏟아부어 주신 선물들을 못 보고 지나쳤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화가 나거나 불평하고 싶어질 때마다
그가 누리고 있는 좋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의 생각의 변화는 삶의 변화로 나타났고, 그는 불평하던 사람에서 감사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고마워하고 감사하는 태도가 모든 믿는 사람들의 성품이 되어야 합니다(에베소서 5:20). 우리가 불평을 터트리는 것보다 축복을 헤아리는 데 시간을 보내게 되면 삶의 모든 것이 다른 모습을 띠게 될 것입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