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614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2. 10. 21. 13:07

예림의집 2614번째 이야기

 

따뜻한 하루

평화의 두 가지 단어

평화를 뜻하는 단어로 라틴어로 팍스(Pax), 히브리어로 샬롬(shalom)이 있습니다. 라틴어 '팍스'는 영어 Peace의 어근이 된 단어로 보통 한 세력이 힘으로 이룩한 장기간의 평화라는 의미입니다. 쉽게 말해 물질적인 만족감이나 법, 힘으로 세상을 평정하는 것을 뜻합니다. 로마는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하루도 피 흘리지 않는 날이 없을 만큼 많은 땅을 정복했고 지배했습니다. 그로 인해 다른 국가는 폐허가 되고 로마의 속국이 되어 수치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전쟁을 통해 강성 해지며 평화가 찾아왔지만 결국은 그 힘과 물질에 의해 로마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반해 히브리어 '샬롬'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평화, 화평'이라고 흔히 번역하지만 본래의 뜻은 '온전하다, 완전하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힘으로 이룩한 평화 '팍스'와는 달리 '샬롬'은 친선과 협력으로 화평을 이루면서 오는 평화에 집중합니다. '팍스'를 추구하다 보면 개인의 행복과 시간, 타인의 희생 등 지불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집니다. 결국 다른 이의 평화를 빼앗기도 하고 심적인 평화가 깨지기도 합니다. 탐욕을 성취해 얻는 평화보다 도리어 내 것을 나눌 때 진정한 샬롬이 찾아옵니다. 샬롬의 평화가 함께하는 방송이 되겠습니다!

 

예림가족 이야기

착한 사람에게도 나쁜 일이..

우리는 "나쁜 사람은 벌을 받고, 착한 사람에게는 좋은 일만 생기는" 동화책을 보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흔히, 나쁜 일을 겪으면 "내가 무슨 잘못을 해서 이런 벌을 받는 거냐?"라고, 울분에 찬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나쁜 일이 일어나면, 꼭 인과관계(因果關係)를 찾아내고 싶어 합니다. "러시안 롤렛 게임"처럼 무작위로 걸려들었을 수도 있고, 원인을 딱히 밝히지 못하는 일도 참 많은데 말입니다. 그런데, 직접적인 원인을 찾아내고 가해자를 잡아내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는 좀 더 영적이고 근본적인 원인을 찾으려는 열망으로 자신을 괴롭힙니다.
이 열망은 결국 어린 시절부터 학습된 생각의 길을 따라서 "나는 착하게 살았으니, 이런 일은 결코 나한테 일어나서는 안 됐어!" 혹은 "나에게 이런 나쁜 일이 일어나다니, 내가 벌을 받았구나!" 하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첫 번째 결론을 내린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외면하고 회복을 향한 노력을 회피하면서, 결국 보이지 않는 존재를 원망하게 됩니다. 두 번째 결론을 내린 사람은, 이미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 괴로운 자신을, 죄인으로까지 낙인찍어 정죄합니다. 그래서 세상과 자신의 인생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다가 저주를 퍼붓거나 무기력해집니다.
물론, 그 어느 쪽도 이렇게 아픈 상황에서 벗어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닌 현실에서는 착한 사람에게도 나쁜 일이 일어납니다. 누군가의 잘못된 선택과 실수로 인하여, 우리는 크고 작은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좋은 영향일 때도, 아주 반갑지 않은 나쁜 영향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피해를 입히려는 의도가 없었지만, 그러나 그 누군가의 실수나 잘못에 의하여 무수히 많은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겨나곤 합니다. 우리는 나쁜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으며,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이지연)

그렇습니다. 착한 사람에게도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대하느냐이니다. 그 나쁜 일을 통해 내가 더욱 발전하고 다듬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나의 힘만으로는 벅찰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를 대비해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그렇게 할 때, 비로소 회복을 향한 발걸음을 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쁜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반드시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어긋난 길로 가면 징계하시지만 반드시 싸매어 주십니다!

 

예림단장 칼럼

1위는 예수님..!

최근 인터넷에서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 봤더니 마침 TIME지에서 순위를 매긴 기록이 있었습니다. 1위는 누구일까요? 바로 예수님입니다.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도 그분이 인류 역사 전체에 영향을 미치며 세상을 크게 바꿔 놓았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하지 않습니다. 인류 역사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이전(B. C.)고 이후(A. D.)라 나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오늘 날짜를 적을 수도 없습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세상에 예수님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미친 사람이 없다고 인정하는 TIME지에 실린 목록을 보면서 혼잣말을 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하셨지?" 나는 하루 날을 잡아 이 질문을 염두에 두고서 사복음서를 다시 정독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습니다 "한 번에 한 사람!"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비결입니다. 예수님은 사진기의 줌렌즈를 갖고 인생을 사셨습니다. 누군가가 그분 앞에 서면 그분의 시간은 멈추었습니다. 그분의 삶에서 그 사람 외에 다른 모든 것, 그러니까 그분의 관심사와 계획, 목표는 흐릿해지다 이내 사라졌습니다. 그 순간 중요한 것은
눈앞에 서 있는 그 사람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한 번에 한 사람씩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신 것입니다. 50여 년을 살아왔고 그중 15년 동안 목회를 하면서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시려는 예수님의 방식이 나하고는 그리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오랫동안 나는 내 성격이 원래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과 나는 성향이 다른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관계에 관한 책을 쓰는 사람들은 대개 인간관계 기술의 달인이니다. 그렇지만 나는 별로 그렇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내 인간관계가 형편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방에 혼자 앉아
무엇인가에 몰두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혼자 컴퓨터로 작업을 하면서, 가끔 혼자 창밖을 내다보고, 혼자 커피 마시기를 좋아합니다. 혼자 Tving을 시청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내가 너무 심하게 내성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격 유형 검사를 하면 나는 주로 외향적인 편에 속한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나는 사람들을 정말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과 가까워지기를 정말로 원합니다. 단지 내 인간관계 능력이 특별히 뛰어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열심히 노력하지만 겉보기만큼 사람들과 잘 가까워지지 못했습니다.

 

새찬송가 부르기

 

예림의집 Q.T.

하나님과 멀어진 유다 가정의 시련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니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유다가 그의 이름을 엘이라 하니라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오난이라 하고 그가 또 다시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셀라라 하니라 그가 셀라를 낳을 때에 유다는 거십에 있었더라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데려오니 그의 이름은 다말이더라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 된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그의 형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그 일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에 있어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의 아버지 집에 있으니라"(창세기 38장 1-11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하나님과 멀어진 유다와 그 가정에 닥친 시련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8절, "아우 된 본문)은 죽은 형의 아내오 결혼해 형의 후사를 잇는 계대 결혼제도를 가리킵니다. 야곱의 아들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하라와 가까이 지내고,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과 동침해 세 아들을 낳습니다. 유다는 장자 엘을 위해 다말을 아내로 데려오나, 하나님은 그분이 보시기에 악한 엘을 죽이십니다 유다가 다말을 둘째 오난에게 주지만, 오난도 악하여 죽고 맙니다. 유다는 셋째 셀라도 죽을까 염려해 다말을 친정으로 보냅니다.

유다의 결혼과 아들들(1-5절).
요셉을 종으로 판 후 형제들의 가정은 평온하지 못합니다 38장은 중심인물이 요셉에서 "유다"로 바뀌면서 유다의 허물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마땅히 머물러야 할 자리에서 떠나는 것은 불행의 시작입니다. 유다는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납니다. "떠나 내려갔다"라는 말은 곧 타락을 의미합니다. 유다는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과의 혼인을 금지하셨음에도 굳이 내려가서 가나안 사람의 딸고 결혼하는 불순종의 죄를 범합니다 성도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를 떠나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결국 타락해 버립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말씀과 기도가 있는 믿음의 공동체 안에 머물며 생명과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유다는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을 아내로 맞아 엘, 오난, 셀라를 낳습니다. 가나안 사람과의 결혼은 아브라함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일입니다(창세기 24:3-4). 2절, 유다는 여인을 보고 그녀를 데리고 동침하는데, "보다와 취하다" 두 단어의 연결은 하와가 선악과를 보고 따 먹은 일,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아내로 삼는 일 등에서 부정적 뉘앙스로 쓰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과 멀어지고 있다면, 그 증거는 무엇일지 깊이 묵상합시다.

아들들의 죽음(6-11절).
교활함이나 위선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마음의 올곧음을 우리가 마음에 품길을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그런데 그 반대였던 형제들, 요셉을 종으로 판 형제들은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집니다. 유다의 장자 엘이 성장하자 유다는 다말을 며느리로 데려옵니다. 이때는 요셉이 팔려 간 후 20년 정도 지난 시점으로 봅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엘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여 하나님이 그를 죽게 하십니다. 유다는 수혼제(嫂婚制) 관습에 따라 둘째 오난을 다말에게 들어가게 합니다. 죽은 남편의 대를 있기 위해서입니다.
수혼제는 과부가 죽은 남편의 형제와 결혼하는 관습입니다. 하지만 오난은 다말이 낳을 아이가 자기 계보와 멀어질 것을 알고 성교 중 땅에 설정을 합니다. 하나님은 이를 악하게 보시고 그도 죽게 하십니다. 유다는 다말에게 셀라가 장성할 때까지 친정에서 기다리라고 합니다. 유다의 속내는 셀라도 죽을까 염려해 수혼제를 지키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율법에 따르면, 수혼제 의무를 거부하는 자는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신명기 25:5-10). 유다 가정이 비참함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평온하지 못하게 흘러갈 때 먼저 점검할 것은 무엇인가요?

"하나님과 점점 멀어져 간 유다 가정에 닥친 비참한 시련을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있어야 할 것을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자녀들의 죽음을 맞닥뜨려야 했던 유다의 고통을 헤아려 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 멀어져 자신의 소견대로 살아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인생의 비극 앞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진 영혼이 느끼는 두려움이 얼마나 큰지 알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고통의 풍랑 속에서 더욱 주님께 가까이 가는 은혜를 우리에게 더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삐뚤어진 정신 승리

분명한 범법 행위를 해 놓고선 그걸 성경에 나오는 인물이 한 일이랑 매치를 시켜서 마치 "신앙적"인 것처럼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잘못을 저질러서 감옥에 갔는데 자신이 요셉과 같다고 한다든지, 성적인 죄를 저지르고서 자신의 다윗이라 하고, 사기를 치고서 자신이 야곱이라 하고, 가해자이면서 십자가를 진다고 포장하는 식입니다. 탈세했으면 탈세범이고, 살인했으면 살인범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성적인 죄를 지었으면 성범죄자고, 사기를 쳤으면 사기꾼임을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가해자가 지는 건 십자가가 아닙니다. 죄에 따른 징벌을 마땅히 받을 뿐입니다. 성경 인물들의 사례를 가지고 와서 명백히 잘못된 행동을 신앙의 일부로 승화시키는 것은 삐뚤어진 정신 승리입니다. 진정한 승리는 오히려 잘못한 행동을 직면하고 그것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인정하는 데서 옵니다. 자기 잘못을 깨닫고 솔직하게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신앙의 힘입니다.
자신의 죄를 지적하는 날카로운 칼날을 어떤 갑옷이나 방패로 막지 말고, 치명상을 입더라도 하나님 앞에 나와 쓰러지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이것이 종교의 탈을 쓴 자기 합리화가 아닌 신앙의 승리입니다. 기적만 바라지 말고 상식을 지킵시다. 정신 승리가 아닌 정직 승리가 필요합니다. 자기 합리화를 멈추고 회개의 길을 갑시다!(안녕, 신앙생활/김정주 작가)

 

신앙생활 가이드

성장의 영역-지식

셋째, 우리의 지식이 성장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지식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하고, 지식을 부정하고 마비시키는 반지성주의를 배격합니다. 또한 우리가 직면한 문제의 대부분을 우리의 무지에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감정은 풍부하지만 머리가 비어 있으면 위험한 강신적 행동들이 발생합니다. 이 점을 바울보다 더 강조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라고 당부한 바 있습니다. 그는 "형제들아 너희가 일기를 우리가 원하노니" 혹은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간은 반복구로 시작하는
수많은 문장을 제사하였으며(데사로니가전서 4:13), 때로는 "그러나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라고 훈계하는데, 이러한 훈계 속에는 수신자들이 만약 알고 있었다면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암시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개종시킨 자들을 위한 그의 기도에서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가 계속 되풀이된다는 사실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닙니다(에베소서 1:19). 이와 함께 우리는 안다는 말의 히브리 개념이 순전히 지식적인 것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말은 "이해"를 넘어서 "체험"가지 포괄했습니다.
특히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듯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이것은 곧 그분과 살아 있는, 개인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간계와 마찬가지로 이 관계 역시 역동적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점점 발전해야 합니다. 만약 그 관계가 성장하지 못하면 시들게 되고 마침내 죽은 관계가 디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역설한 본문에서 그의 최대 목표는 다름 아닌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며, 나아가
그분의 고난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의 권능에 더욱 깊이 참여하는 것이라고 서술한 점은 주목할 만하니다(빌립보서 3:8, 10). 그는 자신이 열망한 것을 다른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열망하기를 바라면서, 그들이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되기를 기도합니다(골로새서 1:10). 베드로 역시 똑같은 열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수신자들에게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 자라 가기"를 촉구합니다(베드로후서 3:18).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날마다, 충만하게, 체험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따라하는 기도

인생을 바꾸는 감사 기도②

하나님, 쉬지 않고 일하는 심장과 폐, 건강한 장기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만지고, 맛보고, 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호흡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하나님, 귀한 만남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존경하는 부모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가정의 기쁨이 되어준 사랑스러운 자녀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우정을 나눌 친구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힘든 시간 저와 함께 있어주고 저를 도와준 고마운 사람들,
저를 지지해주고 제게 친절을 베풀어준 따뜻한 사람들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심한 시간, 제가 보고 싶다고 걸려오는 전화 한 통에 감사합니다. 모닥불 피워 놓고 도란도란 옛이야기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울창한 숲과 드넓은 바다, 노을 지는 석양과 높고 푸른 하늘, 어두운 밤하늘을 밝게 비추는 달과 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개 자욱한 산등성이를 오르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빗소리를 들으며 나른한 오후를 보내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좋아하는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나뭇잎 스치는 소리 들으며 산책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감사합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머리 둘 곳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를 힘들게 했지만 오히려 하나님을 더 찾게 했던 고난에도 감사합니다. 저를 성장하게 했던 지난날의 모든 역경을 주심에도 감사합니다. 젊은 날 나의 창조자를 기억하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날마다 감사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모든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고마움을 고백하는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CCM 배우기

 

날마다 감사

휘발유가 떨어져서 감사해요!

어떤 부인이 "차에 휘발유가 떨어진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처음에 차에 휘발유가 떨어졌을 땐 투덜거려죠. 왜 이 근방엔 주유소가 없을까? 학 말이에요." 의아하게 생각한 주위 사람들이 "그런데 어떻게 감사하게 됐죠?"하고 물었습니다. 부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어젯밤에 차를 도둑맞았거든요. 그런데 휘발유가 바닥나 있었기 때문에 도둑은 30미터쯤 끌고 가다 할 수 없이 차를 버려두고 도망쳤어요. 만일 휘발유가 많았다면 영여 영영 차를 도둑맞고 찾지 못했을 거예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감사하는 자에게 주시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의 은혜 때문입니다. 우리는 웅덩이에 빠질 수도 있고,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오히려 감사합시다. 주님께서 반드시 그 감사가 마중물이 되어 전화위복의 은혜를 부어 주실 것입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