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585번째 이야기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 타조는 적이 가까이 다가오면 모래 속에 머리를 처박는데 이 모습을 본 많은 사람들은 잠시 생각합니다. '자기 눈을 가려서 천적이 안 보이게 되면 천적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건가?' 하지만 타조의 이런 행동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은 자신의 큰 몸을 웅크려서 몸을 감추는 것입니다. 타조의 평균 신장은 2m가 넘습니다. 적이 나타나면 그 커다란 몸을 최대한 숙여 적의 눈을 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땅속에 머리를 숙이는 더 큰 이유는 땅으로 전해지는 소리를 듣고 주위 상황을 살피기 위해서입니다. 타조는 판단력이 우수하고 청력이 매우 좋은데 땅속으로 머리를 넣어 접근하는 육식동물의 발소리를 통해서 상대의 크기와 위치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런 탐색을 통해 달아나야 할 방향을 재빨리 파악하고 시속 80km의 빠른 속도로 달아날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얕잡아 보고 낮게 판단하며 비웃을 때, 어쩌면 그 비웃음이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오는 상황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성급한 판단만 하지 않고 천천히 내면의 모습을 살펴보는 식견을 갖는다면 사람을 잘못 보는 우는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
5만 원은 모두 사라지고.. 집에서 조금 떨어진 한 동네를 지날 때면,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이 눈에 띕니다. 특히 토요일 오후에는 그 줄이 더 길어집니다. ‘무슨 줄일까?’ 궁금해서 따라가 보면 로또를 파는 곳이 보였습니다. 로또 명당이라는 간판과 함께 이곳에서 1등 당첨이 40여 차례 나왔다는 문구도 있습니다. ‘과연 저기에서 로또를 사면 당첨될 수 있을까?’ 생각만 하다가 어느 날 그곳에서 로또를 만 원어치 샀습니다. 평일 오후라 다행히 줄이 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5등에 두 개나 당첨되었습니다. 당첨금은 각각 5천 원이었습니다. “와, 여기에 뭐가 있긴 있구나!” 기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그 뒤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퇴근길에 다른 판매점에서 로또 5천 원어치를 구입했습니다. 그곳은 명당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행운인지 4등에 당첨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당첨금 5만 원으로 무엇을 할까?’하고 고민하다가 아내에게 물으니, 아이들과 함께 치킨과 피자를 시켜먹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속에서는 욕심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습니다. ‘지난번 그 명당에서 로또를 5만 원어치 사면 1등에 당첨될지도 몰라.’ 결국 아내의 말을 애써 모른 체하고 로또 명당으로 향했습니다. 토요일이라 30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로또 5만 원어치를 손에 쥐었습니다. 내심 당첨을 기대했으나, 어떤 번호도 당첨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5만 원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아내 말을 들을 걸..!’ 후회가 밀려들었습니다. ‘돈 욕심이 우리 가족의 작은 행복을 밀어내 버렸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확실히 돈에 기울어진 삶의 모습이었습니다.(조병익) 제가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나도 돈을 참 좋아한다. 그러나 사랑까지는 하지 않는다."라고 말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돈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많을수록 좋습니다. 하지만, 그 돈을 취하는 방법에 무리가 있을 경우, 인생을 망칠 염려가 많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땀을 흘리지 않고서 먹고 살려는 사람을 "불한당(不汗黨)"이라고 합니다. 땀을 흘리지 않는 무리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자랄 때에는 ‘불한당’이라는 말이 가장 무서운 욕으로 알았습니다. 로또가 하나님의 방편으로 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적당히 해야 할 것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회개① 다니엘 디포우의 고전 소설을 보면, 로빈슨 크루소는 배가 좌초된 두 홀로 해변에 밀려오게 되었습니다. 수중에 가진 것이라고는 성경책밖에 없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자신이 죄인임을 깊이 깨닫게 되자, 그는 모래사장에 얼굴을 묻고 엎드려 이렇게 외쳤습니다. "오, 하나님! 제게 회개의 선물을 허락하소서!" 앞에서 살펴보았던 내용을 통해서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 있는 당신의 우상 숭배의 죄를 깨닫게 되었다면, 이미 하나님께서 은혜롭게 응답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큰 은혜는 없습니다. 로빈슨 크로소가 갈망했던 회개는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을 깨닫는 자의 거룩한 슬픔이었습니다. 우리는 고린도후서 7장 9-11절의 내용에서 그런 종류의 회개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 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고린도후서 7:11). 하나님께서 회개(하나님의 뜻에 따른 슬픔)를 허락하실 때, 구원도 그다지 멀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회개가 구원을 이끈다고 썼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를 향한 앨레인의 경고>라는 책을 쓴 죠셉 앨레인은 회개가 필요한 사람들과 상담을 하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거룩한 슬픔을 받아들이는지 설명했습니다. 그는 회개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죄에 대해 철저히 판단하고, 명확히 분별하며 인식함으로써 회개에 이를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라고 제안했습니다. 사람이 죄에 대하여 지치고 무척 힘겨워하며, 마음에 찔림을 느끼고, 죄를 혐오하게 되기 전까지는, 나음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께 나아오지 않으며,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며 심각하게 질문하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은 생명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 앞으로 나오기 전에, 먼저 자신을 죽은 자와 같이 여겨야 합니다. 디모데에게 쓴 글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종이 마귀의 올무에 빠진 사람들을 어떻게 징계해야 하는가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바울이 회개를 하나님의 역사이며 선물로 보고 있고, 회개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과 온유함으로 징계받은 이후에 오는 것이라는 것을 말씀에서 명확히 볼 수 있습니다. 주의 종 된 자로서, 나는 이 구절을 개인 기도 제목으로 삼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널리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격려를 받았습니다.(계속..!) |
언약에 순종하는 믿음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이스마엘에 대하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 그가 열두 두령을 낳으리니 내가 그를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 날에 그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태어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포피를 베었으니 아브라함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구십구 세였고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십삼 세였더라 그 날에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았고 그 집의 모든 남자 곧 집에서 태어난 자와 돈으로 이방 사람에게서 사온 자가 다 그와 함께 할례를 받았더라"(창세기 17장 15-27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의 당면한 현실과 간극이 있어 보일 때 어떻게 믿음으로 순종할지를 아브라함의 선택과 반응을 통해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은 사래를 "사라"라고 부르시며 그가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과 일치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웃으며 늙은 자신과 사라가 어떻게 출산하겠느냐고 생각하며 이스마엘을 축복해 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라가 낳은 아들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고 명하십니다. 아브라함과 그 집의 모든 남자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할례를 받습니다. 사래에서 사라로(15-17절). 성도는 현실과 하나님의 약속에 차이가 있을 때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꿔 주셨듯이, 그의 아내 사래를 "사라"로 바꿔 주십니다. 그리고 16절, 아브라함의 후손이 사라를 통해 태어나리라 약속하십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의심하며 웃습니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십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웃었습니다. 창세기 18장 12-15절을 미리 읽어 보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처한 현실로 인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삭을 낳게 하심으로 그들에게 진짜 웃음을 선물하십니다(창세기 21:6). 우리의 믿음은 유한하고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변함없고 완전합니다. 우리에게 진짜 웃음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신실하신 하나님뿐입니다. 하나님이 사라에게서 태어날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하신 것은 일종의 언어유희입니다. 하나님은 이삭이 아브라함의 유업을 이을 것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우리는 어떤 생각을 내려놓아야 할까요? 할례를 행하는 아브라함(18-27절). 아브라함은 18절,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원하나이다"라며 현실에 갇힌 생각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이스마엘에게도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만, 그분의 계획은 따로 있습니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 뜻을 알아 가는 것이 신앙의 길이니다. 혁신, 전통, 성실, 희생, 좋은 의도. 이 가운데 어떤 것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순종을 대신할 순 없습니다. 의심에서 믿음으로, 들음에서 행함으로 나아가는 것이 참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말씀을 마치고 떠나가신 후에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은 23절,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행했다고 서술합니다. 이전에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이라는 현실과 이삭이라는 약속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에 의구심을 갖고 웃음으로 반응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순종합니다. 의심을 끝내고 믿음으로 반응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 이스라엘 사람, 이방인 노예까지 모든 남자에게 할례를 행합니다. 순종에 예외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하신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고 선택적으로 순종한 일은 무엇인가요? "현신과 약속의 간극에서도 순종하는 믿음을 보인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주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현실의 벽보다 훨씬 높은 하나님의 계획에 압도되어 우리의 영혼이 떨림을 느낍니다. 이삭이 잉태되기도 전에 그의 존재에 대한 약속과 이름을 먼저 주신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하나님 약속의 실체를 보게 될 그날을 기대합니다. 오늘 본문처럼 의심의 웃음이 감격의 웃음으로 변화되게 하시옵소서. 절대 순종의 삶을 살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 회심 이전의 저의 어머니가 어느 날 절에 다녀오시고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부터 너는 '상현'이다. 그렇게 해야 우리 집안이 잘된다고 했다!" 졸지에 이름이 "상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진리에 기반을 두지 않은 이름은 힘이 없습니다. 이름을 바꿔 불러 보아도 가정 형편이 나아지지 않자, 제 이름은 다시 "기채"로 돌아왔습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사람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이름에 걸맞게 살거나 이름의 부정적 측면을 극복하며 살아가길 바라는 염원을 담곤 했습니다. 성경에서도 지명이든 인명이든 특별한 사정이나 사건이 생길 때 이름을 새롭게 붙이거나 변경합니다. 또 하나님이 한 인간에게 특별한 섭리를 펼치실 때 기존의 이름 대신에 새로운 이름을 주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사래가 사라로, 시몬이 베드로로 바뀝니다. 우리 인생 여정, 신앙 여정을 "이름"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우리는 어떤 한 이름에서 다른 이름을 찾아가는 탐구의 과정을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남이 불러 주던 "나"에서, 내가 되고 싶은 "나"로, 그리고 하나님이 불러 주시는 "나"로 옮겨 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불러 주시는 "나"는, 내 안에 있는 나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불러주시는 "나", 그 이름이 바로 진정한 "나"이니다.(하나님의 위대한 질문/ 한기채 목사) |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신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출애굽기 15:2). 제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자주 되새기는 말씀입니다. 제가 군대 있을 때 일기 식으로 글을 많이 섰는데 그때 썼던 글을 나누기로 합니다. 고요한 겨울밤, 구름 사이로 비취는 달빛에, 춤추듯 떨어지는 눈송이가 보였습니다. 눈 내린 대지는 한하게 빛을 발하였고, 대자연은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편 46:10)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 무렵, 저는 막 막내를 벗어난 일병으로 초소에서 보초를 서다가 본 관경을 내무반으로 돌아와 쓴 글입니다. 저는 군 생활을 하면서 한 겨울 새하얗게 대지를 덮은 흰 눈, 깊은 밤 온 세상을 가득 매운 반딧불, 행군하면서 바라보았던 강원도의 자연들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찬양하며 주님을 깊이 만난 기억이 있습니다. 더욱이 제가 이등병 때,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주일날 교회에 간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을 때면, 화장실에서 숨어서 몰래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했던 기역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때 제가 하나님께 간구했던 기도는 "하나님! 제가 맘껏 기도하고 찬양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세요!"였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가 응답되었습니다. 제가 이등병이 되었을 때, 군종병이 되어 주일마다 당시 영내 밖에 있던 교회에 맘껏 갈 수 있었고, 찬양팀도 조직하여 마음껏 주님을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저희 소대원 모두를 교회에 인도하는 놀라운 기적의 역사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등병 때 화장실에서 기도했던 그대로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저는 병장이 되고 하사관 훈련을 받게 될 때까지 군종병으로써 교회에 봉사하고, 맘껏 예배하며, 많은 전도도 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막막한 상황에 처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고난의 웅덩이를 건넌 다음 되돌아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작은 조약돌들을 심으셔서 발판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세세하게 우리가 불가능해 보이는 여정을 가능케 해 주십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에 물난리가 난 것처럼 보이고, 또 안전한 곳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을 때, 하나님께서는 길을 열어주셔서 우리가 산도 넘고 물도 건널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시련의 시기가 닥쳤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어떤 길을 열어주실지, 기대하고 기다리며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기도③ "아들아, 딸아, 내가 너의 아픔을 안다. 네가 얼마나 부끄러웠고, 네가 얼마나 고통스러웠고, 네가 얼마나 두려웠는지 내가 안다" 말씀해주시는 주님의 음성이 이 시간 생생하게 들려오게 하시고, 우리의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고, 더 이상 아픈 과거에 얽매이지 않도록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모든 슬픈 기억을 떠나보낼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주시옵소서. 이 시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때 우리를 막아선 원수들이 쫓겨 나갈 줄 믿습니다. 모든 어둠의 영이 떠나감을 믿습니다. 모든 상처가 깨끗하게 치유되었음을 믿습니다. 하나님,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상처를 붙들고 원망하며 살지 않겠습니다. 제가 어떤 아픔과 상처를 지녔을지라도 변함없이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시고 변함없이 저를 통해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을 믿습니다. 저를 힘들고 아프게 했던 모든 사람을 그 주님을 신뢰함으로 용서하겠습니다.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주님, 이제 상처받은 나는 죽었습니다. 연약한 나는 죽었습니다. 두려워하는 나는 죽었습니다. 열등감 많은 나는 죽었습니다 이제 강하신 주님이 제 안에 사십니다. 담대한 주님이 제 안에 사십니다. 죽음을 이기신 주님이 제 안에 사십니다. 이제 나는 죽고 예수로 살겠습니다. 제 마음을 예수님으로 가득 채워주시니 주님 감사합니다. 모든 염려와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하늘의 위로와 소망이 넘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늘의 문을 열어주시고, 풍성하신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은혜로 제 영혼을 가득 채워주시니 감사합니다. 찬양의 입술이 열리게 하시고, 기도의 영을 부어주시니 감사합니다. 다시 감사를 회복시켜 주시고, 기쁨을 되찾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다시 사랑하며 살아갈 용기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나를 사랑하신 주님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의 치료자가 되신 주님을 사랑합니다!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33센티미터의 감사..! 단란하게 사는 한 가족이 있었습니다. 그 가족은 3평 조금 넘는 좁은 방에서 살았습니다. 어느 날 밤 가재도구들이 널려 있는 좁은 방에 네 가족이 겨우 몸을 포개어 나란히 누웠습니다. 그런데 가로로 누워 자면, 키가 큰 아빠는 편하게 누울 수 있지만 네 식구가 누워 자기에는 너무 좁았고, 세로로 누우면 다른 식구들은 편히 누울 수 있지만 아빠는 새우잠을 자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가족은 둘러앉아 편히 잘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싱크대와 오디오 사이에 있는 33센티미터의 공간을 발견했습니다. 그곳을 향해 다리를 뻗고 누우면 새우잠을 자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아빠는 두 다리를 쭉 뻗고 잘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습니다. 이제는 넓은 집으로 이사해서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게 됐지만, 아빠는 작은 일에고 쉽게 불평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작은 일에 감사하며 행복했던 그 시절이 그리워지곤 합니다. 진정한 감사는 환경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가난해질 때 드릴 수 있나 봅니다.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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