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572번째 이야기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 주부를 대상으로 한 어느 강의 시간, 교수가 한 여성에게 칠판에 아주 절친한 사람 20명의 이름을 적으라고 했고 그녀는 가족, 이웃, 친구, 친척 등 20명의 이름을 적었습니다. 그리곤 교수는 이 중 덜 친한 사람의 이름을 지우라고 했습니다. 가장 먼저 그녀는 이웃의 이름을 지웠고 교수는 다시 한 사람의 이름을 지우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회사 동료, 친구, 이웃 등 많은 사람의 이름이 지워졌고 드디어 칠판에는 단 네 사람만 남았습니다. 부모와 남편 그리고 아이. 교수는 다시 한 명을 지우라고 했고 그녀는 망설이다가 부모의 이름을 지웠습니다. 또다시 한 명을 지워야 할 때, 그녀는 한참을 고민하다 각오한 듯이 아이의 이름을 지웠습니다. 그리곤 펑펑 울기 시작했고 진정이 된 후 교수는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남편을 지우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모두가 숨죽이고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고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부모님은 세상을 떠날 것이고 아이들은 자신들의 가정을 만들어 나를 떠날 것입니다. 일생을 함께 지낼 사람은 남편뿐입니다." 부부는 때로는 등대가 되어주고, 돛도 되어주며 그렇게 의지하며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 함께 달려가는 것입니다! |
아, 내가 살았구나! 지난 연말, 저는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목에 생긴 물혹을 제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전신마취는 여든을 앞둔 고령 환자에게 깊은 근심거리였습니다. 전신마취로 인한 부작용, 기저질환의 악화,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경우 등을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물가물 흐려지는 꽃길을 건너 저세상으로 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아직은 폭죽처럼 피어나는 봄날을 걷고 싶었습니다. 삶이라는 꽃을 활짝 피우기도 어려운데, 속절없이 등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2020년 가을부터 2021년 봄까지, 저는 건강악화로 최악의 시절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척추에 이상이 생겨서 왼쪽 하반신을 전혀 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개월을 꼼짝없이 집안에만 갇혀 살았습니다. 제가 아직 모르는 또 다른 병이 재발할 것이라는 두려움과 답답함에 숨통이 막혔습니다. 그런데, 겨우 몸을 추슬러 지내던 와중에 또다시 질병과 맞닥뜨리게 된 겁니다. 다시 떠오르는 악몽 같던 기억을 애써 외면하면서, 저는 수술대에서 의료진에게 ‘최선을 다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의료진은 제 다리와 팔을 끈으로 동여맨 다음, 코와 입에 풍선 같은 것을 끼워 여러 번 심호흡을 시켰습니다. 갑자기 몸의 한 부분이 아프게 찔린 느낌이 들더니, 이내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뭇별들의 제자리걸음처럼, 저의 밤하늘을 지켜내기 위하여 기도하면서 잠든 지 몇 시간이 지났을까요. 흐릿한 의식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아득히 울렸습니다. “환자분, 수술 끝났어요. 눈떠 보세요!” 그 순간, "아, 내가 살았구나! 정신이 또렷하다"라는 안도감이 온몸을 에워쌌습니다. 아직도 뛰는 가슴이 남아 있는지, 시국이 안정되고 건강이 허락된다면,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다녀보고 싶은 염원이 있습니다. 나를 치료하신 의료진과 하나님께 감사합니다.(이인환) 그렇습니다. 예전 방송에서 소개한 나태주 시인의 시에도 나왔듯이 "사람의 가장 큰 소망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앞날은 그 누구도 모르는 일입니다. 오래 사는 것은 차치하고서더라도 잠자듯이 조용히 갔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신 분들도 많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더욱 간절한 소망은 영원한 나라에서 안식하는 것이 아닐까요? 아직은 그나마 기운이 남아 있어서 "살다가 죽으면 그뿐!"이라고 큰소리치지만, 글쓴이는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아, 내가 살았구나!" 하며 안도하며 감사했다고 했습니다! |
섬김과 경배를 받는 우상④ 예수님께서 자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 8:28-29). 사도 바울 역시, 사람들보다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는 것에 대해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지녔던 담대함은 우상 숭배의 이유로 조종한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을 잘 증거해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우상을 동시에 함께 섬길 수는 없습니다(갈라디아서 1:10). 자신의 삶이 그토록 비참한 관계들로 이루어져 있는 근본적인 이유를 깨달았을 때의 자유함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도 한번 시도해 보십시오! 그 결과 놀라운 영적인 성장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받으셔야 할 경배와 섬김을 그분께 다시 돌려드리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시편 130편의 저자는 하나님을 아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그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 하시리로다"(시편 130:7-8). 하나님은 사람들보다 그를 더욱 경외하는 예배자를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만을 거룩하신 분으로 섬기고 오직 그분만을 의뢰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따라 그들의 우상 숭배에서 돌이킬 것을 명백히 촉구하고 있습니다(데살로니가전서 1:8-10). 지나간 시절 동안 계속해서 세워 놓았던 우상의 행렬에 대해 책임을 져 본 적이 있습니까? 나는 여러분들이 자신의 지나온 과거를 회상하며 방처 받고 내팽개쳐진 우상들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그런 작업은 매우 끔찍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가 기만적이고 절망적인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밝은 빛을 비추시도록 하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우상 숭배에 대한 죄책감과 사랑할 수 없는 무기력함으로 인해 늘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다는 느낌에 짓눌려 살아가는 수밖에 다른 선택이 없습니다. 우상 숭배의 영은 여러 다양한 우상들을 섬깁니다. 하지만 사랑의 영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잠시 시간을 내어 기도하면서, 지난 수년간 보아왔던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 보기를 바랍니다. 그런 후, 한 사람 한 사람씩을 떠올리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당신이 상처 입힌 사람들을 치유해 주시길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그들이 당신에게 하나님의 역할을 해야 하는 모든 부담감으로부터 자유하게 해 주십시오. 당신이 우상에서 눈을 돌려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을 섬기게 될 때, 모든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시고 치유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길 바랍니다. 이것으로 섬김과 경배를 받는 우상에 대해서 모두 나누었고 내일부터는 스스로 번식하는 우상숭배의 영에 대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거짓 교사를 분별하라!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로 생각하노라 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비용을 받은 것은 탈취한 것이라 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비용이 부족하였으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였음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고 또 조심하리라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 어떠한 까닭이냐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나는 내가 해 온 그대로 앞으로도 하리니 기회를 찾는 자들이 그 자랑하는 일로 우리와 같이 인정 받으려는 그 기회를 끊으려 함이라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린도후서 11장 1-15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중 3절의 "간계"는 교활하고 간사한 속임수를 뜻합니다. 4절, "다른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충분하지 않고, 할례나 음식법 등 율법의 행위를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는 주장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더나 부패할까 두려워합니다. 그들이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용납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고린도 교회의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값없이 복음을 전했는데,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다고 합니다. 사탄의 일꾼들, 거짓 교사들의 마지막은 그들이 행한 대로 될 것입니다. 다른 복음을 주의하라(1-6절).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거나 가감하면서 그분을 따르는 길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열심으로 복음 전도에 열정을 쏟았습니다. 그는 신부인 성도를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중매자와 같은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그는 순결해야 하는 신부인 성도들이 거짓 교사들의 유혹을 받아 그리스도를 향한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했습니다. 연약한 성도는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쉽게 용납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거짓된 사탄의 유혹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잘못된 가르침을 전했고, 자신들을 높이면서 바울을 깎아내렸습니다. 이에 바울은 자신이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지식으로 바른 가르침을 전했다고 말합니다. 바울의 지식과 가르침은 이미 고린도 교회와 여러 교회에서 입증되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로부터 물질적 지원(생활비)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거짓 교사들은 바울이 사도가 아니기에 생활비를 요구하지 않았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자신들이 물질에 욕심을 내는 것을 가리려 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우리의 삶은 어떠해야 할지 깊이 묵상합시다. 거짓 교사들을 멀리하라(7-15절). 우월감도 문제지만 열등감은 더 문제입니다. 열등감은 타인의 권위와 능력에 대해 맹목적인 비판을 하게 하는 독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삯을 받지 않고 값없이 복음을 증언하는 바울이 참사도가 아니라며 그를 비난했습니다. 자기 자랑을 일삼으며 바울을 비방하는 거짓 교사들의 심리에는 바울에 대한 열등감이 깔려 있습니다. 열등감과 겸손은 다릅니다. 겸손한 사역자에게는 하나님의 인정과 상급이 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자비량으로 일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값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어려운 중에도 바울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준 마게도냐 교회들 덕분이었습니다. 바울을 비난하는 거짓 교사들이야말로 속이는 일꾼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입니다. 사탄은 광명의 천사로, 사탄의 일꾼은 의의 일꾼으로 가장합니다. 그들의 마지막은 멸망입니다. 빌립보서 3장 19절,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거짓 교사에게 속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묵상합시다.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과 거짓 교사를 분별하길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영원한 신랑 되신 예수님만을 진실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사모하며 섬기게 하시옵소서. 맡겨 주신 영혼들을 정결한 신부로 준비시키는 일을 잘 감당하도록 우리에게 진실한 열정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교회 공동체를 흔드는 거짓에 속지 않고, 진리의 다림줄을 곧게 세우는 교회가 되게 하시옵소서.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영적 민감성을 키워가게 하시옵소서. 진리의 길로 우리들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열매가 말해 주는 진리 우리 집 창고 안에는 각종 씨앗이 있습니다. 금년 봄에 창고를 정리하면서 보니 어떤 씨앗은 오래되어서 변질된 것 같았습니다. 나는 창고 안에서 씨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참을 살펴보았습니다. 처음부터 제대로 분류해 놓지 않은 탓에, 어떤 씨앗이 멀쩡한 것인지 잘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통째로 버릴 수도 없었습니다. 분명 어떤 씨는 생육하고 자랄 잠재성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있는 씨를 알아볼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씨를 심고 물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어떤 씨는 자라서 결실을 보았고, 어떤 씨는 자라지 않았습니다. 씨가 아닌 열매를 보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씨를 분별하기 위한 내 수고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역자가 바른 복음을 전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사탄은 참된 것 안에 거짓의 세력을 섞어 놓는 전략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로 인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 택하신 일꾼인지 잘 알 수 없을 때는, 그들의 열매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 거짓 교사들은 타락한 행동으로 이어지는 거짓 교리를 가르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주신 참된 생명이 있다면, 그들이 메시지와 삶에 복음이 나타날 것입니다. 복음을 들은 우리의 목표 역시 단지 옳은 것을 믿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믿음으로 경건한 삶의 열매를 맺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영원한 생명의 열매를 맺는 진리의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당신을 위한 디도서/팀 체스터 목사) |
생각과 행동은 부메랑입니다② 어떤 사람이 억울한 일을 겪을 때, 그것이 자신에게 전혀 책임이 없다고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을 때, 상대방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 그 에너지는 언젠가는 그에게로 다시 되돌아오게 됩니다. 자기가 베푼 그 살마에게 직접 받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누구를 통해서든,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그 사람은 심은 것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우리가 준 사람에게 직접 받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통해서 받게 될까요? 왜 이 사람에게 선을 베풀고 다른 사람에게 받으며, 저 사람에게 나쁜 일을 했는데 엉뚱한 사람에게 갚음을 당해야 할까요? 만일 본인에게 직접 받게 되면 오해나 억울함이나 괘씸함을 느끼지 않아도 될 텐데요. 그 이유는 각 사람의 영적 수준, 영적 발전 상태에 따라 역할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즉, 주로 남에게 상처를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고, 남을 치료해 주는 사명도 있습니다. 남에게 주지 못해 안달을 하는 사람도 있고, 주는 것을 몹시 아까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받기만 하고, 어떤 사람은 주기만 합니다. 어떤 사람은 주로 남을 아프게 하기만 하고, 반면에 어떤 사람은 주로 사랑과 친절을 베풀기만 합니다. 나쁜 역할의 사람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남을 괴롭게 함으로써 남들을 성장시킵니다. 물론 그들 자신은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사명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영혼이 발전되지 않았기 때문에 악을 좋아하고 그러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편, 어떤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었다고 그 사람에게서 그것을 기대하는 것은 반드시 온당한 일은 아닙니다. 그 사람의 역할은 친절함이나 남을 세워 주는 쪽이 아닐 수도 있으며, 친절함과 사랑의 행위는 그 자체로써 기쁨을 느껴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에게 나쁜 행동을 했다고 해서 그에게 똑같은 일을 꼭 당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의 성품과 영의 수준은 복수 쪽과는 별로 상관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나쁜 에너지는 비슷한 수준의 상태에 있는 사람을 자극시켜서 언젠가는 나에게 되돌아오며,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당하는 일들 중 우리의 책임이 전혀 없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억울한 일을 겪었을 때, 우리는 원망하거나 불평하기에 앞서 자신이 당한 비슷한 일을 남에게 행한 적은 없는지 돌이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이 경험에 의하면 많은 경우에 있어서 내가 잘못 심은 것들이 생각났으며,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비슷한 고백을 많이 들었습니다. 만약 마음에 거리낌이 없다면 주님께서 포용을 위한, 주님의 마음을 주시기 위한 인내 훈련을 시키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또한 사랑과 친절의 대우를 받으면 거기에서 머무르지 말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후에, 자신이 받은 친절과 격려가 다른 사람에게 계속 흘러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무엇인가를 심고 또 심습니다. 그렇게 우리 자신을 계속 만들어 갑니다. 우리의 심은 것들은 계속 자라고 흘러 우리에게로 돌아옵니다! |
기도는 명령이다..! 30년간 청년 사역을 해오신 지인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청년 사역의 꽃은 제자훈련입니다. 교역자 한 명이 12명의 훈련생을 데리고 30분이면 할 강의 내용을 4시간씩 귀납법적으로 진행합니다. 늦은 밤 한 시간이 넘도록 목놓아 부르짖으며 기도하고, 함께 1박 2일간 MT를 가서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목사님, 제가 하나님을 만났어요." 목사님 품에 안겨서 펑펑 울던 청년을 끌어안고 기도했던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합니다. 한 학기가 끝나간 때쯤엔 얼마나 애틋한 관계가 되어 있는지 모른답니다. 제자 훈련을 통해 변화된 청년들이 후배들에게 제자 훈련을 추천합니다. 그래서 제자훈련을 신청하는 날이면 신청은 12시부터 받는데 아침 8시부터 줄을 섭니다. 오전 내내 교회 복도가 제자훈련을 신청하려는 학생들로 장사진을 이룬다고 합니다. 제자훈련은 훈련의 강도가 세고, 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큐티를 하지 않거나, 성경을 읽지 않거나, 정해진 기도 시간을 채우지 않으면 벌금을 내게 했다고 합니다. 한 학생이 목소리에 힘을 주고 목사님에게 질문합니다. "제가 왜 벌금까지 내면서 기도를 해야 하나요?"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안 하면 죽으니까!" "기도를 안 하면 죽게 되니까 그렇게라도 하는 거야!" 병원에서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환자에게 의료진이 "이 주사를 맞으실래요? 이 약 드실래요?"라고 의견을 묻지 않습니다. 의사는 무조건 살리고 봅니다. 그게 의사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안 하면 죽는 것이기 때문에, 해야만 살 수 있기 때문에 벌금을 걷으면서까지 하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뭐냐고 물어보면 저는 언제나 이렇게 대답합니다. "안 하면 죽는 것!"이라고.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기도를 호흡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기도가 호흡이라는 말이 이런 뜻 아닐까요? 안 하면 죽는 것. 그만큼 기도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기도해보면 어떨까?"라고 기도를 추천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면 좋겠어"라고 기도를 권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기도를 명령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라!" 명령입니다. 이렇게 명령하신 이유는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시고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 수 있도록 주신 지침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섬기라고 하셨기 때문에 더는 다른 신들의 눈치 보지 않아도 됩니다. 안식일을 기억해서 지키라고 했기 때문에 일주일에 적어도 하루는 쉼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기 때문에 늙고 힘이 없어도 걱정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하셨기 때문에 내가 비록 약해도 힘센 사람들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십계명을 지키면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에게 유익합니다. 가정에서도 부모가 자녀에게 규칙을 정해줍니다. 자고 일어나면 양치질을 해라, 텔레비전을 가까이서 보지 마라, 건널목을 건널 때는 좌우를 잘 살펴라.. 이 모든 규칙은 부모가 아니라 자녀를 위해서 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를 명령하신 이유는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
약함의 감사..!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 30절에서 "나는 나의 약함을 자랑하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건강도 감사의 조건입니다. 성공도 감사할 일입니다. 그런데 약함도 감사해야 할 이유입니다. 오늘의 실패가 내일 떤 결과로 주어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는 너무 눈에 보이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너머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섭리의 손길을 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몸에 병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그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고쳐 주시지 않으시고 "네 은혜가 족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뒤로 그는 다시 병 낫기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고 "나는 나의 약함을 자랑하노라"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감사입니다. 실패의 자리에서, 부족한 자리에서, 병상에서의 감사가 진정한 감사입니다. 우리는 넉넉함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부족해도 불평합니다. 그러다 보니 넉넉해져도 감사할 줄 모릅니다. 어린아이 수준입니다. "나의 약함을 자랑하노라!" 이것이 진정한 감사입니다!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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