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567번째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BC 5세기경, 그리스 고대문화와 역사를 기록한 헤로도토스의 <역사> 중에 적혀있는 일화입니다.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가 아테네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였던 솔론에게 자신의 부유한 왕국을 자랑하면서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 믿고는 그에게 질문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지만 솔론은 뜻밖의 대답을 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자녀를 잘 길렀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으며 나라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텔로스입니다." 그러자 당황한 크로이소스 왕은 자신이 두 번째 행복한 사람은 되겠다고 생각하며 두 번째 행복한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솔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를 소달구지에 태우고 신전으로 달려간 뒤 죽음을 맞이한 클레오비스와 비톤 형제입니다." 이 대답을 들은 크로이소스 왕은 결국 자신을 평범한 사람들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거라며 화를 내자 솔론은 다시 대답했습니다. "왕이시여 인생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누구든지 죽은 후에야 행복한 삶을 살았는지 불행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죽은 자가 남기고 간 무수한 것들을 보며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의 인생을 조심스럽게 평가합니다. |
괜찮은 사람 만난 것을 축하해요! 부부가 살면서 꼭 기억해야 하는 날이 있다면, 그것은 결혼기념일입니다. 결혼기념일은 19세기 영국에서 매년 결혼한 날짜에 축하 기도회를 가졌던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이날은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하고 부부로서의 삶을 시작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결혼 관계란, 때때로 어렵고 아픈 과정을 지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하고 위대하며 친밀한 관계입니다. 기념일을 챙기는 것에다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서로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겁니다. 부부 사이에서, 남자가 원하는 것은 감사와 인정이고, 여자가 원하는 것은 관심과 이해라고 합니다. 결혼기념일을 기념함으로써 서로에 대한 관심과 이해, 따스한 말 한마디로 감사와 인정하는 마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으면 좋을 듯싶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결혼기념일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어느 유명 연예인들은 매년 결혼식 때 입었던 옷을 입고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연예인은, 결혼식 축의금 중 일부로 미얀마의 빈민촌에 학교를 세웠는데, 결혼기념일에는 미얀마에 있는 그 학교를 방문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잘 알려진 이야기인데, 션, 정혜영 부부는 매일 1만 원씩 모아 결혼기념일에 365만 원을 한 봉사단체에 기부한다고 합니다. 물론, 결혼기념일 하루를 잘 보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머지 364일을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결혼기념일에 서로가 "나처럼 괜찮은 사람 만난 것을 축하한다."라고 축하 메시지라도 날려 보내면 어떨까요? 아니면,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을 만나 이해하고 맞추며 사느라 고생이 많다."라고 격려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괜찮을 듯싶습니다. 아무튼, 고마운 마음을 서로 표현합시다.(윤청실) 그렇습니다. 사실, 결혼 전에는 남녀가 서로 한껏 예의를 갖춰 상대하다가도, 결혼 후에는 그 예의를 차츰 잊어버리고 사는 경우가 많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결혼기념일을 기억하고 선물 아니면 사랑의 메시지라도 날린다면, 그동안 배우자에게 실수했거나 부족했던 점을 벌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 또한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앞으로 남아있는 세월 동안 매끄럽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애써 이런 노력을 해야 하리라고 봅니다. 정확히 한 달 후 아내의 생일인데, 무엇으로 기쁨을 줄 것인가가 저의 요즘 행복한 고민입니다! |
줄지어 선 우상들..② 우상숭배는 나 자신 스스로 인생의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우리 자신을 섬겨 줄 자신만의 우상들을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부모님들이 그것을 만족시켜 주지 못하면, 곧장 친구들을 향해 눈을 돌립니다. 초등학생 때와 십 대 시절 동안에는 아마 반 전체 친구들을 끌로 새겨가며 자신이 응당 받아야 할 관심과 행복을 얻어 내려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많은 사람들을 조종할 수는 없으므로, 몇 명의 친한 친구들로 한정시켜 행동을 개시합니다. 우정의 관계는 그 사람이 나의 조각 행위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가 하지 않는가에 따라 결정됩니다. 누구든 우리에게 유용한 면이 있고, 또 우리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다면 친구를 받아들이지만 불충실하고 약해 보이거나 우리의 욕망과 야망을 만족시켜 주지도 못하는 녀석들은 우상의 명단에서 제외시킵니다. 우리는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특별히 선택한 소수 정예의 친구들로 관계를 한정시켰고, 또 더욱 상상력이 풍부하고 환상적인, 영감 있는 우상들을 만들어 내는 데 무척 탁월했습니다. 여자 이이들의 경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생의 비전과 똑같은 비전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이는 남자애들을 보면 마음 가득 그들의 우상을 세워 놓습니다. 아마도 이전에 보았던 영화나, 노래들, 텔레비전, 하이틴 소설의 내용에 자극받은 낭만의 우상을 가지고 남자애들을 평가했을 것입니다. 남자애들의 경우, 자신을 특출 나 보이게 하거나 편안하게 해 줄 것 같은 여자애들에게 구애의 눈 짖을 보냅니다. 십 대 시절에는 자신의 단 위에 세워 놓은 포르노의 우상을 기준으로 여자애들을 평가하곤 합니다. 이렇듯 물망에 오른 후보자들을 하나둘씩 단 위에 올렸다가 내동댕이쳤고, 결국에는 숭배할 만한 가치가 있어 보이는 최종적인 승리자와 결혼에 성공하게 됩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이 증명해 준 것은 단지 자신이 사랑하여 선택한 그 사람은 숭배의 대상도 아니며, 포르노와 로맨스의 우상과는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깨달음도 우상 숭배의 영을 제지하지는 못했고, 이혼과 재혼만이 그 뒤를 따를 뿐입니다. 안타까운 점은 이렇듯 결혼이 붕괴되는 상황을 교회 공동체가 그저 방관하며 허용했다는 점입니다. 교회는 이혼을 하는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다는 사실이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는 점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이혼자들의 재혼을 주선하는 프로그램만을 열심히 진행시켜 온 것입니다.(내일 계속..!) |
회개로 이끈 근심, 신뢰 회복의 기쁨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를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를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가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로 말미암아 안심함을 얻었음이라 내가 그에게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부끄럽지 아니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 것 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가 자랑한 것도 참되게 되었도다 그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과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내가 범사에 너희를 신뢰하게 된 것을 기뻐하노라"(고린도후서 7장 8-16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을 통하여 사도 바울은 그가 편지로 고린도 교인들을 근심하게 한 것, 즉 고린도전서를 이야기하며 오히려 그 근심이 회개로 이끌었고, 마침내 신뢰를 회복하는 기쁨을 주었다고 말합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바울의 편지를 받고 잠시 근심했으나, 불의를 벌하고 회개함으로 깨끗함을 나타냈습니다.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룹니다. 바울은 디도의 보고를 듣고, 모든 일에 고린도 성도를 신뢰할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합니다. 우리에게도 회개의 근심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8-12절). 근심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마태복음 6장 31-32에 나오는 불신앙에서 비롯된 근심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영혼을 성찰하게 하시려는 성령님의 치밀한 의도에서 비롯된 근심입니다. 전자가 사망에 이르게 하는 세상 근심이라면, 후자는 영적 소생을 이루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다. 성령님은 성도의 영적 자각을 위해 시편 16편 7절,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록 이끄십니다. 성령님에 따른 근심은 선한 반전을 가져옵니다. 죄로 인한 책망에 따르는 근심은 회개로 이어져야 합니다. 바울은 8절 "편지"로 고린도 성도들을 근심하게 했다고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편지는 바울이 이전에 보낸 "눈물의 편지"(2:3-4)로 아마도 고린도전서를 말한다고 봅니다. 그 편지에는 바울의 책망이 담겼었습니다. 그는 그 편지를 보낸 후 성도들을 근심하게 한 것 같아서 후회했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이 잠시만 근심했고 결국 편지에 담긴 권면을 받아들여 회개했기에 바울은 기뻐합니다.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허물과 죄를 깨우쳐 회개와 구원에 이르게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세상 근심은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바울 더욱 위로받은 이유(13-16절).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긍정적으로 작용합니다. 즉 철저히 회개하도록 이끌어 우리를 깨끗하게 합니다. 죄 외에 그 무엇도 우리에게 상처를 낼 수 없고, 죄 외에 그 무엇도 우리에게 근심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의 변화와 성술은 사역자의 기쁨입니다. 고린도 성도들이 편지를 받고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회개한 일로 바울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디도를 환대한 일로 더욱 많이 기뻐합니다. 바울은 디도를 고린도에 보내면서 그에게 고린도 성도들을 자랑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그것이 부끄럽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는 그들의 회개와 구원이 바울의 체면을 세워 주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디도를 "두려움과 떪"으로 영접했는데, 이는 그를 정중하고 따뜻하게 환대했음을 의미합니다. 고린도 성도들을 향한 디도의 신뢰는 곧 그들을 향한 바울의 신뢰로 이어졌습니다. 신뢰 회복은 모두에게 기쁨과 위로를 선물합니다. 우리가 마음에 근심함으로써 회개하게 된 일은 무엇이 있는지 떠올려 봅시다. 또한 오늘날 사역 현장에서 우리를 더욱 기쁘게 하는 일은 무엇이 있었는지 또는 누가 있었는지 깊이 묵상합시다. "우리를 회개로 이끄는 근심을 주시고, 신뢰해 주시며, 회복의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공동체 안의 문제에 우리가 영향을 주고받은 것은 없는지 근심하며 돌아봅니다. 회개를 통해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기 원하오니, 우리의 잘못과 죄를 깨닫게 하시옵소서. 바른길로 이끄는 권면을 달게 받게 하시고, 서로 간의 오해가 이해로 바뀌어 신뢰가 회복되게 하시옵소서. 회개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를 흘려보내지 않고 반드시 회개하게 하시고, 정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정답보다 중요한 것..! 목사는 정말 다양한 질문을 받습니다. "교제하는 사람과 갈등이 있는데 결혼해도 되는가? 부모님 다니시는 교회를 억지로 다니지만 은혜를 받지 못하는데 옮겨도 되는가?" 등 지금까지 나는 수많은 질문에 정성껏 답을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때로는 아무리 올바른 답을 주어도, 답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정답이 주어져도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수학 문제집을 풀다가 잘 안 풀린다고 얼른 답안지를 보면 백날 수학 공부를 해도 실력이 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목사에게 정답을 듣는다고 해서 본인의 영적 실력이 늘지는 않습니다. 이제 성령의 정답을 얻기 위한 씨름을 하십시오. 당장 배가 고파 물고기 얻는 것이 급해도, 먼저 물고기 잡는 법을 배우십시오. 인생의 답을 몰라 답답할 때 세상 답 찾지 말고 말씀 붙들고 씨름하며 기도로 엎드리십시오. 끊임없이 하나님의 진리를 삶에 적용하십시오. 깊이 묵상하며 분별과 반추를 해서, 언제 어떤 문제가 나와도 풀 수 있는 능력을 키우십시오. 족집게 과외 강사를 구하지 말고, 광야의 훈련 학교에 지원하십시오. 인생의 답은 하나님과 내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일방적으로 강요하기를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나와 동행하며 대화하는 인격적인 교제를 원하십니다.(그래도 너는 아름다운 청년이다/ 이상준 목사) |
대화를 조심하십시오..! 어느 집사님이 이웃집 아줌마들과 우아하게(?)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그날의 화제는 "남편들의 은밀한 외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철수 엄마, 요즘 남자들이 티를 내고 외도하는 줄 알아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낮에도 잠깐식 시간을 내서 얼마든지 재미를 보고, 또 그런 데가 얼마나 많은데요. 그러고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시치미를 뗀다니까요. 철수 엄마는 참 아무것도 몰라. 참 순진하기는.."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남자들의 바람 이야기.. 이렇게 우아한 말들의 잔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여집사님은 일이 당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용모는 그리 아름답다고 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성품이 아름답다고 하기도 어려웠습니다. 남편과는 평소에 거의 대화가 없었으며, 자신이 남편에게 그리 매력적이지 못한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녀는 문득 의심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과연 나를 사랑하는 걸까?" 그녀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남편이 지금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녀는 역시 그렇지 않다고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몹시 마음이 불안해졌습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남편은 회사에 없었습니다. 그녀는 다시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그러나 핸드폰의 전원을 꺼 두었는지 전화는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기도를 하기 위해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줄이 도무지 잡히지 않았습니다. 조금 전에 들었던 옆집 아주머니의 목소리만이 선명하게 되살아나고 있었습니다. "철수 엄마, 요즘 남편들이 티를 내고 외도하나요? 참, 아무것도 모르고 순진하기는.." 그녀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아들에게 짜증을 부렸습니다. 그녀는 하루 종일 불안과 짜증 속에서 남편의 귀가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여집사님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여기까지 제 이야기를 잘 들은 분들이라면, 아마 충분히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녀는 그녀의 마음, 그녀의 영혼을 악한 말과 악한 생각으로부터 지키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녀가 비생산적인 교제에 참여하고,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인 분위기의 대화에 끼어든 것은 잘못입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는 결코 영혼의 유익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다 보면 좋든 싫든 그러한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게 싫다면 우리는 지구를 떠나든지, 아니면 산속에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부정적인 언어와 생각이 만행이 저질러지고 있는 곳에 우리가 있을 때에는 무방비하게 어쩔 수 없이 우리 영혼의 초토화를 당해야만 할까요? 아닙니다. 그러한 상황에 있을 때에도 우리의 마음을 잘 지킬 수만 있다면, 우리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내일은 그녀의 문제점을 몇 가지 지적하고, 그 해결책도 제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내일 계속..!) |
하나님은 도움을 청할 때 기뻐하신다 지인 목사님의 아들 "산이"의 이야기입니다. 산이가 돌 때쯤 되었을 때 새벽에 목사님의 머리를 들어 올리며 "어어..!"라고 합니다. 아직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라 "어어..!"로 소통을 하는 것입니다. 처음엔 다시 자라고 산이를 눕혔는데 산이가 자지 않고 계속 목사님을 깨우길래 일어났더니 목사님을 밖으로 데리고 갑니다. 냉장고를 가리키더니 "어어..!" 합니다. 냉장고 문을 열어주니 자몽청을 가리키며 또 "어어..!" 합니다. 낮에 먹었던 자몽차를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날 이후 새벽 3시가 되면 산이는 자고 있는 목사님을 깨워 자몽차를 한 잔 마시고, 다시 잠이 든다고 합니다. 사실 목사님은 한번 잠에서 깨면 다시 잠들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산이가 사모님이 아닌 목사님을 깨웠다는 사실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이 되면 새벽에 목사님을 깨운 아들의 이야기를 아내에게 자랑했습니다. 산이가 도움이 필요할 때 목사님을 찾아줬다는 것이 목사님을 행복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편 50:15). 환난 날에 하나님을 부르라고 하십니다. 힘들 때, 도움이 필요할 때 하나님을 깨우면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필요를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의 결핍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뭔가를 잘할 때도 기뻐하시지만, 하나님께 뭔가 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릴 때 훨씬 더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성공한 자리뿐만 아니라 실패한 자리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네가 도움이 필요할 때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를 찾았구나. 그래. 내가 최선을 다해서 너를 도와줄게. 나의 모든 능력을 동원해서 너를 도와줄 거야!"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흥분시키고 그분을 바삐 움직이시게 합니다. 그 어떤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람보다 더 큰 일을 하게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 중에 기도만큼 놀랍고 위대한 일이 또 있을까요? 기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도움을 요청할 때 크게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기쁨입니다! |
내겐 언제나 최선만 있을 뿐..! 어떤 목사님이 병원에 입원해서 검사를 받았는데 그 검사 결과를 알려 주려고 온 의사가 차트를 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겠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의사의 말을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최악의 경우라니요? 나는 언제나 최선의 경우를 생각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거든요.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게는 언제나 최선만 있을 뿐입니다!" 그 말을 들은 의사는 놀라면서 차트를 떨어뜨렸습니다. 이와 같이 진짜 믿음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최선의 것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감사입니다.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예림의집 메일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림의집 2569번째 이야기 (0) | 2022.07.22 |
---|---|
예림의집 2568번째 이야기 (0) | 2022.07.21 |
예림의집 2565번째 이야기 (0) | 2022.07.18 |
예림의집 2564번째 이야기 (0) | 2022.07.15 |
예림의집 2563번째 이야기 (0) | 2022.0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