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564번째 이야기
매일 발전하는 삶 사진 예술에 남다른 꿈과 열정을 가진 소녀가 있었습니다. 이 소녀는 무려 72년 동안 카메라 뒤에서 살아왔습니다. 평생을 사진 예술에 바친 이 거장의 이름은 여성 최초의 사진작가로 꼽히는 이모젠 커닝햄. 대학생 때 장학금을 받기 위해 찍은 식물 사진을 시작으로 사진 예술에 매료된 그녀는 사진의 프레임을 그림의 캔버스처럼 상상하며 본격적으로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76년 9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카메라를 놓지 않았는데 그런 그녀에게 한 기자는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평생 찍은 사진 중에서 가장 아끼는 최고의 명작은 어떤 것입니까?" 그러자 그녀는 창문 너머로 시선을 돌리며 기자에게 활기차게 말했습니다. "아마 내일 찍게 될 작품일 것입니다." 과거의 영광에 머물러 있는 삶보다는 다가올 미래에 기대를 둔다면, 내일로 향하는 발걸음도 훨씬 가벼워질 것입니다. 오늘보다 내일을 희망차게 맞이하는 삶은 매일 발전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 |
좋은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60 평생을 제법 남부끄럽지 않게 살았습니다. 1급 장애인이지만, 결혼도 했고 자녀들도 셋이나 낳아 길렀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누군가에게 신세 지지 않고, 작가와 지식인으로서, 또는 강사로서 오늘도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과연 누구 덕분일까요? 일단,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귀하게 여기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난이 큰 사람일수록 큰 소명을 갖고 이 땅에 왔음을,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저에게는, 장애가 오히려 자산이 되고 있으며, 축복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장애로 인한 고통을 매일 스스로 감내하고 있긴 합니다. 저에게는 좋은 부모가 있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주셨고, 저의 장애를 보완할 수 있도록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해서 박사가 될 수 있도록 교육하셨고, 늘 제 편에서 응원했습니다. 또한, 저에게는 소중한 가족도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제가 장애인이라서 마음의 상처를 많이 입고 자란 동생들, 그리고 저의 아내와 자녀들, 모두 저를 사랑하면서 열심히 응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오늘의 제가 있도록 만들어준 가장 큰 공로자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저의 친구들입니다. 장애를 가진 제가 학교에 다니고 사회생활을 무난히 할 수 있었던 것은, 저에게 좋은 친구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많은 친구들은 지금도 저의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겪은 수많은 일은 추억을 넘어 저의 글 소재가 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가방을 들어주는 일입니다. 학교에서 집까지 목발을 짚고 다닌 저에게는 늘 가방을 들어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중학교 때 가방을 들어준 종순이와 기영이, 고1 때 문석우와 조탁곤, 우리 집에 자주 와서 대화를 나눴던 김철용, 대학교 때 업어주던 노영진. 이런 친구들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제가 있습니다. 그들 모두,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친구들입니다. 제가 이 나이까지 아직 건강하고 밝게 사는 것은 이런 좋은 친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고정욱) 그렇습니다. 글쓴이는 오늘의 자신이 있게 된 것은 친구들 덕분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이기 글쓴이는 건강하고 밝게 살아감으로써 그 친구들에게 보답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내 친구다"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를 친구로 삼아주신 예수님께 보답하는 길은 어려운 이웃의 친구가 되어 도와주면서 사는 것이고, 나아가서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밝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오늘도 예수님과 함께 행복하게 사시길 축복합니다! ![]() |
나 자신도 하나님의 피조물③ 언뜻 보면 선과 악을 구분할 줄 알고 선한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바람직하고 올바른 일처럼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깊은 관계를 통해 흘러나오는 계시와 선택일 때만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사악한 동기를 위해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선을 위하여 선택을 하고, 심지어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나 증거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선택을 한다고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와의 깊은 관계없이 순수 학문적인 동기로 하게 된다면 그 모든 것은 우상 숭배적인 행동인 것입니다. 자신의 타고난 지식을 의지하고, 복음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구원을 얻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상 숭배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가르침과 역사를 통해서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진 진정한 신자를 이끌 수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과 15장에서 두 가지 예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예수께로 모여들지만, 아버지 하나님의 가르침 없이 찾아온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우리가 삶 가운데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떠나서 이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예를 보여 줍니다. 우상 숭배의 영은 성령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뭐든지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도록 우리를 유혹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거듭날 수 없듯이,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피조물이 의지적인 힘에서 나올 수는 없습니다. 우리 자신의 의지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배우고 그분과 교제하며, 그에게서 먹고, 그와 함께 거하며, 그분을 의지할 때 하나님은 성령으로 우리 마음을 움직이시고, 우리는 비로소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떠나서는 하나님을 믿을 수도 없고 그를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사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20). 사도 요한의 글을 통해서는 "사랑은 하나님께로서 온다"(요한일서 4:7)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우상 숭배의 죄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좇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분명히 우리가 하나님의 대사요, 편지요, 향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을 통하여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립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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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린도후서 5장 1-10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중 1절의 "장막 집"은 한시적이고 연약한 인간의 육체를 비유합니다. 사도 바울은 영원한 집인 천국을 사모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라고 권면합니다. 당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이 지으신 영원한 집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를 덧입고자 함은 눅을 것이 생명에게 삼켜지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힘써 주님을 기쁘시게 함은 장차 심판대 앞에서 선악 간에 행한 대로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천국을 향해 여행하는 나그네의 삶을 살아갑니다. 영원한 집을 사모하라(1-5절). 이 땅에서 사람의 생명은 유한합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이 죽음을 "삶의 끝"으로 여기고 매우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다른 시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육신의 장막을 벗고 영원한 나라에 입성하기 위해 부활의 새 몸을 입는 과정입니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축제적 성격을 갖는 "영생의 시작"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원의 삶을 기대해야 합니다. 또한 성도는 유한한 세상이 아닌 영원한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주어신 생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집과 옷의 이미지로 육신의 죽음과 부활의 영광을 대조합니다. 바울은 이 땅에서 우리가 입고 있는 육신을 "장막 집" 곧 임시 천막에 비유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죽음이란 일시적인 이동 천막을 걷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으로 옮기는 것과도 됩니다. 우리는 세상의 몸을 벗을지라도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입을 것입니다. 죽음의 세력이 강해 보여도 결국 죽음은 영원한 생명에 삼켜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우리에게 이루어 주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습니다. 현재 고단한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에서 위로를 받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라(6-10절). 영생이라는 위대한 선물이 보장된 사람은 죽음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여유와 용기를 보입니다. 성도는 현재 겪는 고통이나 고단한 삶이 잠시뿐임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해 놓으신 영원한 삶을 소망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주님의 임재를 완전히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는 것으로 살아가지 말고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의 임재와 동행을 누릴 수 있습니다. 때로는 사랑하는 주님과 함께 살기를 간절히 소망해 담대히 죽음을 감당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데려가시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이 세상에 살든지, 이 세상을 떠나 주님과 함께 거하든지 우리의 목표는 9절, "항상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날에 각 사람은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몸으로 행한 모든 일에 하나님의 보응을 받을 것입니다. 각각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지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책망이 아닌 칭찬을 받으려면 어떠한 삶을 선택해야 할지 깊이 묵상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영원한 집을 사모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험악한 이 세상에서 끝까지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주님과 함께할 그 나라를 바라보고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로 덧입어, 살든지 죽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옵소서. 마지막 날 심판대 앞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복음을 따라 행하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인생길이 나그네의 길이어서 많은 환난과 고난이 따르지만 오직 우리 구주 예수님만 바라보고 기쁨으로 살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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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것만 믿는 어리석음 유튜브에서 어느 유명한 스님의 영상 하나를 본 적이 있습니다. 모임이 한창일 때, 한 불자가 스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엄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는데, 그때 극락왕생을 빌며 절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가끔 엄마를 생각할 때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정말 극락이 있는지, 엄마가 거기 계셔서 기도리고 있는지, 오늘 스님께 희망적인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그러자 그 스님은 "어머니가 천국에 갔다고 믿고 싶어? 아니면 지옥에 갔다고 믿고 싶어?"라고 물었습니다. 불자가 "천국이요!"라고 답하자, 스님은 "그래, 그렇게 믿으면 편하잖아."라고 했습니다. 세상에는 여러 종교가 있는데, 이렇게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통한 해탈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종교들과 기독교가 다른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자기의 신념을 믿지 않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허황된 바람에 있지 않고, 예수님께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표적(sign)은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인도해 가시는 것이 이적과 표적입니다. 내게 돈이 생기고 직장이 생기는 것이 표적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표적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졌다고 아무리 자랑해도 우리는 흔들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의 뜻대로 다 되는 것 같아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결국은 하나님의 진리가 이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만을 좇아야 합니다.(네가 널 쓰고 싶다/ 김남국 목사) ![]() |
생각 에너지의 확산을 조심하십시오 정치인들은 대체로 반대편에 대한 비난을 많이 하고 자신에 대한 변명도 많이 합니다. 인사치레라도 자신의 부족함이나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는 모습은 보기 힘듭니다. 그들은 참된 지도자라고 볼 수 없습니다. 이 땅은 영악하고 강하고 뺏는 자가 득세하는 곳이므로 이 땅에서는 그들이 지도자의 위치에 있을지 모르지만, 영원한 곳에서 그들의 운명은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상대방을 비난하고 공격할 때 그들에게서는 악하고 사나운 영적 에너지가 흘러나옵니다. 그것은 국민들을 상처받게 하고 분노하게 하며, 낙담하게 만듭니다. TV나 토털 뉴스는 각종 범죄와 사고, 나쁜 일들을 보고합니다. 또한 다가오는 세상에 대한 긴박감, 불안감을 조성해서 사람들의 영혼을 바쁘고 쫓기게 만듭니다. 각종 광고는 사람들의 탐욕을 부추깁니다. 그들은 별로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자극적으로 보이게 해서 그것들이 행복한 삶을 위하여 꼭 필요한 것이라는 이미지를 심어 줍니다. 드라마는 탐욕과 욕정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TV와 신문은 결코 진리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신문은 판매 부수에, TV는 시청률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들이 판매 부수나 시청률에 매이는 것은 결국 돈 때문이고, 결국은 탐욕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선정주의나 자극적인 것에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올바르고 진리적인 것이라도 인기가 없는 것은 계속 방영하거나 보도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매를 맞아도 그것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진실을 추구할 경우 생존 자체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의 영성 수준은 매우 낮기 때문에 그들은 탐욕과 이기심, 욕정 어린 삶을 삽니다. 교통, 통신, 언론이 발달될수록 사람들의 영적 수준은 하양 편준화가 되어서, 영혼이 발전된 영성인 은 점점 천연기념물이 되어 가고 본능적인 수준의 삶이 보편화되게 됩니다. 현대 문명이 점점 발달될수록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풍요해지고 영적으로는 빈곤해집니다. 사람들은 점점 냉정해지고 기계적이 되며 따뜻한 마음을 상실하며 영혼의 방황을 거듭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회에 가득한 나쁜 에너지들, 분노의 에너지, 탐욕의 에너지, 욕정의 에너지, 파괴의 에너지들은 전파 매체를 타고 급속하게 전 사회에 퍼져 나갑니다. 이러한 악한 기운으로부터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좇아가는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지 않고 내적 생명, 영혼의 발전을 위하여 애쓰는 사람들이 아직도 여전히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온 세상의 악한 에너지, 악한 생각의 흐름 속에서 괴로워하면서도 영혼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영상 매체를 통하여 이 시대에 확산되고 있는 악한 생각들, 악한 에너지의 흐름을 조심하십시오. 그것을 함부로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고요하고 잔잔하게 하십시오. 주님으로 가득 채우고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을 가득 채우시기 바랍니다! ![]() |
왜 기도하십니까? 왜 기도하십니까? 응답받기 위해서 합니다. 응답이 없다면 기도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응답이 없는 기도는 그저 자기 독백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물론 우리가 드린 기도가 모두 우리가 원하는 때에 우리가 원하는 방법으로 응답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기도한 대로 다 응답된다면 세상이 엉망이 되지 않겠습니까? 기도하는 우리가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욕심대로 또는 무지 한대로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을 그것을 뛰어넘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가장 선하신 방법으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주십니다. 어쩌면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없고 응답이 없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감싸고 있다고 믿으십시오. 시간이 흐른 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셨는지 분명히 보게 될 것입니다. 제가 바로 그 증인입니다. 당장에 응답이 없어 보였지만, 반드시 응답됨을 경험한 증인입니다. 기도는 반드시 응답됩니다. 가장 적당한 때에, 제일 좋은 것으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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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불감증② 현대인들은 많은 질병 가운데서도 그 종류도 많고 사망도가 높은 "암"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암보다 더 무서운 질병을 앓고 있는데, 바로 "감사 불감증"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감사하지 않고, 학생이 교사에게 감사하지 않고, 직원이 고용주에게 감사하지 않습니다. 도움을 받고 은혜를 입어도 감사를 느끼지 못합니다. 감사를 느끼지 못해서 불만족하고, 불행하다고 느끼게 되면, 마음이 병들게 되고, 결국 육신까지 병들기 쉽습니다. 잃어버린 감사를 되찾을 때, 우리는 감사로 인해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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