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인 예수님의 사랑
베드로가 보여 준 자기 유익의 모습과는 대조를 이루는, 예수님의 생명적 자아의 모습을 생각해 봅시다. 생면적 자아의 모습이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자아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 안에 모두 녹아 사라졌기에, 이기심 없는 사랑은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의 생명에서만 흘러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주 안에서 누리는 생활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 보여 줍니다. 마태복음 26장 39절에 나오는 예수님은 거의 완전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나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이 말씀 가운데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이 부분에만 자신을 결부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라는 부분이야말로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 주는 백미이고, 또한 우리의 이기심과 구별되는 예수님의 모습을 알게 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 현재에도 아주 놀라우신 분입니다! 그는 아버지께 무척이나 변호하지 않으셨고, 자기 방법대로 밀고 나가지도
않으셨으며, 언제나 아버지의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심지어 생명이 다해 가는 그 순간까지 말입니다. 누구를 위해서입니까? 그분 자신을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을 위해서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는 우리를 위한 중보기도에 혼신의 힘을 쏟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세주이며,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토록 헌신적으로 자신을 드릴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자아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자아는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채워지고 완성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돌보아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이기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바대로 행하셨고, 삶 가운데 다가오는 모든 일은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라는 사실도 믿으셨습니다. 골로새서 2장 10절,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타인을 향한 사랑은 만족함이 충만한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법입니다. 우리 자신을 비우고, 우리의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함으로 행하면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아래 자신의 뜻을
모두 굴복시킬 때, 다른 사람들을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서신서를 읽는 교인들에게 옛사람의 모습을 "벗어버리라"라고 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행위 동사는 지속되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행하라는 말이 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가 우상을 만든다는 사실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도우시길 바랍니다. 또한 주님께서 우리를 충만하게 하신다는 진리를 예수 안에서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충만케 하신다는 것은 단지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느낌 정도가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사실이며, 그 안에서 행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은 우리에게 큰 유익이 됩니다. 바로 이 순간, 모든 상황 안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분명 그 상황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꼭 기억할 것은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안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과 그리스도의 충만함으로 이끄시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자기만족에 치우치는 우상 숭배의 영에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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