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553번째 이야기
부당한 이득을 얻지 말라 어느 마을에서 높은 지위를 가졌지만 누구보다 청빈한 생활을 하던 한 대감이 있었습니다. 그는 평소에 생선을 무척 좋아했는데 한 사람이 이를 알고는 아부를 떨며 대감에게 생선을 갖다 바쳤습니다. 그러나 대감은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하인이 물었습니다. "생선을 그렇게 좋아하시는 분이 왜 사양하십니까?" "내가 생선을 좋아하기 때문에 안 받는 것이다. 내가 뇌물을 받으면 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텐데 그러면 무슨 돈을 가지고 좋아하는 생선을 사 먹을 수 있겠나." 청렴의 길과 부패의 길. 어느 길을 걷느냐에 따라 흥망은 갈릴 수 있습니다. 이때 대가를 바라지 않는 "청렴 의식"은 부정부패를 막을 가장 단단한 자물쇠입니다. 어느 길을 선택해 걷느냐에 따라 흥망이 갈릴 수 있습니다. 우리 도한 청렴한 삶으로 순수한 믿음을 지켜 나가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갑시다! |
아,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구나!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어느 여름날, 어머니께서 밑반찬 한 보따리를 들고 제가 사는 곳으로 찾아오셨습니다. "먼 곳까지 뭘 이렇게 많이 가져왔냐?"라는 저의 핀잔에, 어머니는 "배달음식을 자주 먹지 말라"고만 하셨습니다. 제일 큰 통에는 네모반듯하게 썬 수박이 담겨 있었습니다. 안 그래도 수박 값이 올라 사 먹지 못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반색하자, 어머니께서 말씀했습니다. “너 수박 좋아하잖니? 아직 못 먹었을 것 같아서 가져왔다.” 제가 수박을 먹는 동안, 어머니는 “외할머니가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기억하지도 못하신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맛있는 거 사드리라"라고 용돈이라도 건네고 싶은데, 다음 달 카드 값과 월세만으로도 버거운 처지라,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언제 일할 거냐? 여자 친구랑 잘 지내냐? 결혼은 언제 하냐?"와 같은 말씀을 꺼낼 법도 한데, 어머니는 저의 끼니만 걱정하시다가 "해지기 전에 가야겠다."면서 일어나셨습니다. “어머니, 저 서른 넘었어요. 알아서 잘 먹고 사니까, 걱정 마시고 어머니 몸부터 챙기셔요!” “아들, 이번 달 카드 값은 있어? 없으면 말해. 포기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거 끝까지 해.” “네. 백억 벌어서 매년 일억 씩 용돈 드릴게요.” 언제나 하는 농담인데도, 어머니는 매번 웃으셨습니다. 돌아가시는 길, 아쉬운지 연신 뒤돌아보시던 어머니께서 버스에 올라타셔서 손을 흔드셨습니다. 저도 버스가 떠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께서 문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조금 남아있는 수박을 보고 ‘더 갖다 줄 걸!’하고 생각했다. 예전에 네 외할머니가 김치며 감자며 한가득 가져오시면, 나도 ‘왜 갖고 왔냐?’ ‘안 먹는다.’고 했어. ‘무거워서 힘들까 봐’ 그랬는데, 매 번 내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한 짐 가득 챙겨 오곤 하셨지. 엄마 생각이 났다. '아,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구나”(이호영) 그렇습니다. 어쨌든, 사랑은 내리사랑입니다. 웃어른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는 것,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 자신이 부모가 되어 자식을 키워보면, 그제서야 자신을 낳아준 부모의 마음을 조금은 알 듯 모를 듯합니다. 그래서 아마 유교에서는 "효(孝)"를 그토록 열심히 가르쳤던 것 같습니다. 기독교도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 그러면 나 여호와가 너희에게 줄 땅에서 너희가 오래 살 것이다"(출애굽기 20:12)라고 교훈했습니다. 바울도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에베소서 6:1)’라고 했습니다. 조건 없이 사랑합시다! |
성령님의 도움 없이 일하는 결단주의③ 여러분이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들 중에 소위 말하는 믿음의 결신을 한 후,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것에 대해 환멸감을 느끼고 낙담에 빠진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하나님을 찾아보려 애썼지만, 하나님은 역사하지 않으셨다고 말할 때 어떻게 대답해 주어야 할까요? 어떻게 그들을 도와주어야 할까요? 우리는 우상 숭배의 영이 긍정적인 조각의 도구를 사용하여, 자신이 원하는 바를 행하도록 사람들을 조종한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님께서 우상 숭배의 영을 드러내고 억제하셔서 잠잠하도록 하시지 않는다면, 우상 숭배의 영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어서 무언가 얻어 내기 위해 하나님을 조각하도록 속삭일 것입니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인간의 마음은 천성적으로 자신을 위해 뭐든 손에 넣고 싶어 합니다. 예를 들어, 죄에 대한 몇 가지 사항을 인정해 주고, 기도를 그대로 따라 하게 해 주는 것을 통해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고, 인정을 받을 수만 있다면, 결신 순서대로 따라 주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는 것은 어린아이라도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사랑 많고 존경받는 목사님을 통해 어린아이들 전체가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정" 했다는 이야기는 충분히 이해할 만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결정들에 의해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런 결정들 때문에 도리어 아이들이 실망과 낙담에 빠지게 될까요? 아이들이 진실로 거듭나기 전에 자신들이 "불신자"라는 사실에 대해서 인식할 필요가 없는 것일까요? 제임스 아담스는 자신이 겪었던 통탄할 만한 사건 하나를 이야기했습니다. 앞에서 말한식의 결단을 통해 40명의 회심자들과 연락을 해 보았지만,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 사람은 겨우 한 명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한 영혼이 구원받은 사실에 기뻐해야 하지만, 나머지 39명은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제임스 아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이들은 마음 가운데 회개와 믿음이 일어난 적은 없어도 운명적인 확신의 기도를 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이 보장되어 있다고 믿기도 한다. 또한 어떤 이들은 기독교가 제공해야 하는 모든 것들을 이미 맛보았노라고 결론짓기도 한다. 그들은 기독교가 말하는 복음은 다 가짜고, 자기기만적 광신자이거나 불쌍한 위선자일 뿐이라고 확신한다."(계속..!) |
은혜로 도우시는 하나님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의 노가 그치매 와스디와 그가 행한 일과 그에 대하여 내린 조서를 생각하거늘 왕의 측근 신하들이 아뢰되 왕은 왕을 위하여 아리따운 처녀들을 구하게 하시되 전국 각 지방에 관리를 명령하여 아리따운 처녀를 다 도성 수산으로 모아 후궁으로 들여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 헤개의 손에 맡겨 그 몸을 정결하게 하는 물품을 주게 하시고 왕의 눈에 아름다운 처녀를 와스디 대신 왕후로 삼으소서 하니 왕이 그 말을 좋게 여겨 그대로 행하니라 도성 수산에 한 유다인이 있으니 이름은 모르드개라 그는 베냐민 자손이니 기스의 증손이요 시므이의 손자요 야일의 아들이라 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백성을 사로잡아 갈 때에 모르드개도 함께 사로잡혔더라 그의 삼촌의 딸 하닷사 곧 에스더는 부모가 없었으나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라 그의 부모가 죽은 후에 모르드개가 자기 딸 같이 양육하더라 왕의 조서와 명령이 반포되매 처녀들이 도성 수산에 많이 모여 헤개의 수하에 나아갈 때에 에스더도 왕궁으로 이끌려 가서 궁녀를 주관하는 헤개의 수하에 속하니 헤개가 이 처녀를 좋게 보고 은혜를 베풀어 몸을 정결하게 할 물품과 일용품을 곧 주며 또 왕궁에서 으레 주는 일곱 궁녀를 주고 에스더와 그 궁녀들을 후궁 아름다운 처소로 옮기더라 에스더가 자기의 민족과 종족을 말하지 아니하니 이는 모르드개가 명령하여 말하지 말라 하였음이라 모르드개가 날마다 후궁 뜰 앞으로 왕래하며 에스더의 안부와 어떻게 될지를 알고자 하였더라"(에스더 2장 1-11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중 7절 "하닷사"는 에스더의 히브리식 이름으로 "화석류 나무"를 뜻하고, "에스더"는 바사식 이름으로 "별"을 뜻합니다. 아하수에로 왕의 신하들이 전국에서 아리따운 처녀들을 수산으로 불러들여 내시 헤개의 손에 맡기고 왕의 눈에 드는 처녀를 새 왕후로 삼으라고 간언 합니다. 이때에 유다인 모르드개의 사촌 에스더도 후궁에 가게 되었는데, 헤게가 에스더를 좋게 봅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명으로 자기 민족이 유다임을 밝히지 않습니다. 이 전체의 과정들은 에스더를 은혜로 도우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새 왕후를 뽑으라는 신하들(1-4절). 모든 시대는 진실되고 온전한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의 등장을 요구합니다. 와스디의 폐위는 아하수에로 왕의 능동적인 결정이라기보다 측근 신하의 과장된 권유의 영향이 컸습니다. 1절, 시간이 지나자 왕은 와스디에 대해 내린 조서를 생각합니다. 여기서 "생각하다"라는 말은 자신이 홧김에 한 행동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는 뜻입니다. 왕이 와스디의 폐위를 후회하는 듯하자 신하들은 와스디를 대신할 왕후를 뽑자고 간언 합니다. 이는 왕이 후회하며 자신들에게 그 책임을 물으면 안위가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말에 "아리따운 처녀"라는 단어가 2-4절에 걸쳐 여러 번 나오는데, 이는 아름다운 여자로 왕의 마음을 돌리려는 책략입니다. 왕은 이번에도 신하들의 말대로 합니다. 측근의 말에 좌지우지되는 왕의 무능함은 유다인 말살 같은 하만의 악한 책략이 왜 쉽게 먹혀들어 갔는지를 이해하게 합니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에스더가 등장합니다. 와스디와 폐위에서부터 왕후를 뽑는 일까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 모든 여건을 하나님께서 조성해 놓으신 것입니다. 신하들의 제안은 하나님이 사람을 보시는 기준과 어떻게 다른지 깊이 묵상합시다. 왕후 후보로 입궁한 에스더(5-11절). 에스더서의 인간 주인공은 유다인 모르드개와 에스더입니다. 모르드개는 베냐민 지파 후손으로 사울 왕 가문 사람입니다. 6절에서 그가 유다 왕 여고냐(여호야긴)와 함께 포로로 끌려온 것처럼 언급되는데 그렇다면 그의 나이가 110세가 넘어 상황과 맞지 않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모르드개"라는 단어가 없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모르드개의 가문이 여고냐 왕 때 포로로 끌려온 것으로 해석합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사촌이자 양녀입니다. 그녀는 매우 아름다운 처녀였기에 왕후 후보로 왕궁에 이끌려갑니다. 에스더는 관리자 헤개의 은혜로 풍부한 물품과 시녀들과 좋은 궁을 받습니다. 은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언약적 사랑을 의미하는 "헤세드"입니다. 하나님이 배후에서 은혜로 역사하고 계십니다. 모르드개는 포로로 잡혀 와 수치와 모욕을 겪으면서도 하나님 나라 회복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가 사촌이자 양녀인 에스더를 왕후로 추천한 것은 자기 출세와 명예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함이었습니다. 모르드개의 모습은 이 땅에서 수치와 모욕을 당하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신 예수님을 떠올리게 합니다. 주님을 묵상합시다! "우리의 삶을 헤세드의 사랑과 은혜로 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지금도 택하신 백성들을 돌보시기 위해 사람을 준비시키시고 세밀히 일하시는 은혜를 믿습니다. 자기 이익을 따라 움직이는 세상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도 하나님 백성으로 살게 하시옵소서.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듯을 이루어 가게 하시옵소서.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삶을 인도하셨던 주님께서 오늘날 우리의 삶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인도에 우리의 마음과 전부를 맡기게 하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신앙의 역설..! 우리 눈에는 세상 권세를 가진 자가 모든 일을 제멋대로 결정하고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그가 움직이고 숨 쉬는 것 하나까지도 하나님의 허락하에 있습니다. 어떤 인물이든, 감독이 캐스팅해야 하고 또 등장할 때가 되어야 무대에 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일이란 사람의 예상대로는 되지 않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인생은 언제나 역설입니다. 신앙은 언제나 역설입니다. 끝은 시작일 뿐입니다. 죽는 길이 사는 길입니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됩니다. 그래서 역지사지해야 하고 전화위복을 내다보아야 합니다. 상황에 따라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한 마음을 가지려면 끝가지 선해야 하고, 섬기는 자가 되려면 끝까지 섬기는 자기 되어야 합니다. 약한 자 위에서 군림하고 강한 자 앞에서 엎드리려 하지 마십시오. 모든 사람을 섬기면 모든 사람이 인맥입니다. 인맥은 결국 하늘에 닿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우리에게 맡기실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을 보내 우리를 연단하실지도 우리는 다 모릅니다. 분명한 건, 연단은 하나님이 우리를 성숙한 신앙과 성품을 가진 사람으로 빚어내시려는 목적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 작품을 빚느라 고난도 주시고 일도 맡기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빚어질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은 유익입니다. 그 과정에서의 모든 만남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사후 대책/ 조정민 목사) |
비판을 즐겁게 받으십시오①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저도 비판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남을 쉽게 비판하면서도 남들에게 비판을 받으면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러다가 남을 비판하면 언젠가는 그것이 내게로 되돌아오는 법칙을 알게 된 이후에는 비판하는 것을 아주 조심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전에 비판했던 분량이 아직 쌓여 있는 듯, 여전히 비판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설교를 통해서 감동을 받은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표현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러나 설교를 통해서 마음이 편치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표현하는 경우는 매우 많은 것 같습니다. 설교를 끝내고 탈진해서 쉬고 있을 때, 아내가 이것저것 잘못된 부분들을 지적하면 몹시 마음이 아픕니다. 그녀의 말은 모두 옳았지만, 내게는 바늘같이 느껴졌고 나의 무능함, 부족함, 그리고 그런 것에 상처받는 나의 좁은 마음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주님께 배워 가면서 저는 고통 없이는 결코 성장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아프고 찔리는 것이 싫어서 나의 몸을 웅크리고 있다면 나는 더 이상 자라날 수 없으며 사람들을 치유해 줄 수도, 도와줄 수도 없게 될 것입니다. 결국에는 주님께 쓰여질 수도 없을 것입니다. 계란이 깨어지지 않으면 결코 그 속에 있는 병아리가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것처럼 살마도 깨어지지 않으면 내적 생명이 밖으로 나올 수 없으며, 오직 죽음과 자기 부인을 경험한 수준만큼 사람의 영혼은 자유롭고 충만한 생명을 갖게 되는 법입니다 저는 조금씩 나를 극복해 나가는 훈련을 했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객관적으로 나를 보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날카로운 말에도 차츰 익숙해졌고, 어떤 면에서는 그것을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상처를 입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빠르게 상처를 치료하며 극복하는 법을 익혀갔습니다. 언젠가 여름 수련회 집회에서 저는 3일간 금식을 하면서 집회를 했습니다. 주님께서 역사하셔서 많은 눈물과 헌신의 고백과 사랑의 고백, 감동이 있었습니다. 집회 후에 한 남자 집사님이 인사로 위로를 건넸습니다. "목사님, 참 힘드시겠습니다. 그렇게 금식을 하시면서도 강단에 서시기만 하면 온 힘을 쏟아부으시니.." 그러자 옆에 게시던 여집사님이 말을 받았습니다. "목사님이야 성령님께 사로잡혀 있는데 뭐가 힘드시겠어요. 앉아 있는 우리가 힘들지.." 이런 식의 말은 많이 들었지만, 그때는 진정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으로 들렸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낮추시기 위하여 그분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나를 돌아보시도록 이런 말을 허용하시는 것입니다. 나도 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주님께서 허락하시지 않는 우연이라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어떤 아픔을 겪는 것은 우리가 과거에 상대방에게 비슷한 종류의 아픔을 주었기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직접 겪어 보지 않고는 그것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고통이 되었는지를 잘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제 그러한 말들을 성장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계속..!) |
기도에도 단계가 있다! 더하기 빼기를 하지 않고 곱하기 나누기를 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수학 공식이 있어도 더하기 빼기를 하지 못하면 그 공식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수학 공식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고 먼저 더하기 빼기부터 배워야 합니다. 유치하고 시시해 보여도 그 유치하고 시시한 더하기 빼기를 충실하게 해야 곱하기 나누기를 할 수 있고, 곱하기 나누기를 제대로 해야 수학 공식을 이용해 물제를 풀 수 있습니다. 모든 일에는 과정과 단계가 있고 모든 과정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 번에 두 계단 세 계단을 오르려 하면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과정을 충실하게 거치지 않고 자라면 성인 아이가 되듯, 기도의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으면 영적인 성인 아이가 됩니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에게 대학생 교재를 가르치는 것은 폭력입니다. 아무리 내용이 좋고 옳아도 그것은 틀린 것입니다. 알려줘도 못 하는 것이 있고, 알아도 잘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너무 수준 높은 기도를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기도는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옳은 기도, 바른 기도, 수준 높은 기도보다 지금 기도를 시작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축구는 "발로 공을 차는 것"에서 시작하듯, 기도는 그저 필요한 것을 달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단계를 거치지 않고 기도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
재물 얻을 능력..! 비록 나의 땀과 노동으로 얻은 결과라 해도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에게 땀 흘리며 일할 수 있는 건강과 일터를 주신 주님이 계시기에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얻은 재물을 내가 잘나서 얻은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성경은 재물 얻을 능력도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세상에는 온통 감사할 일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선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것부터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는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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