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552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2. 6. 10. 12:47

예림의집 2552번째 이야기

 

따듯한 하루

욕심이 부른 재앙

깊은 산속에 있는 작은 연못에 물고기 여러 마리가 오순도순 살고 있었습니다. 함께 헤엄도 치고 장난도 치면서 서로 사이좋게 지냈지만 어느 날 한 물고기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연못에 나 혼자 살면 먹이도 풍족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을 텐데..." 물고기의 욕심이 점점 커졌고 친구 물고기들만 없으면 된다는 생각에 한 마리씩 물어 죽였습니다. 그렇게 연못의 주인이 된 물고기는 환호성을 지르며 신나 했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하루 이틀이 지나자 연못은 썩는 냄새로 악취가 진동했고 물이 더러워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썩은 연못물에서 혼자 남은 욕심 많은 물고기도 오래 살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혼자 독식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 생각하게 만드는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하나를 가지려고 필요 이상의 것을 너무 탐하다가 모든 걸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작은 것에 항상 감사하며 타인과 공존하며 상생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우리의 하루는 어제보다 훨씬 행복할 것입니다.

 

예림가족 이야기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냐?

세 가지 부끄러움을 배웠습니다. 하늘이 나를 봤을 때의 부끄러움, 땅의 사람(법, 제도 등)이 나를 보았을 때의 부끄러움, 그리고 꽃과 같은 자연이 나를 보았을 때의 부끄러움이 있습니다. 남이 보는 앞에서는 부끄러워서 옷을 못 벗는데, 집에서 키우는 반려동물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옷을 벗습니다. 개한테 “저리 가, 고개 돌려”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사형수들은 형장에서 죽기 전에 예외 없이 하늘 한 번 쳐다보고, 땅 한 번 쳐다보고 죽는다고 합니다. 마지막까지도 하늘과 땅을 보고 죽습니다. 그러니까, 하늘과 땅 사이에 인간의 눈이 그렇게 아름다운 겁니다.
사형수의 눈이라도 아름답습니다. 하늘을 보고 땅을 보니까 말이죠. 짐승들은 땅밖에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짐승들은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하지만, 인간은 비록 불완전하고 땅에서 죄를 짓고 살지만 하늘을 볼 수 있기에 부끄러움을 압니다. 죄를 짓고 경찰서에 끌려온 사람들, 부끄러움을 알기 때문에 하나같이 모자를 눌러쓰거나 옷을 뒤집어쓰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립니다. 그 모습을 보면, 마음이 놓입니다. "죄를 짓고 끌려왔지만, 너도 인간이구나!" 하는 안도감이 있습니다. 함께 죄를 지은 무리가 저희끼리는 막 부끄럽게 다녀도 끄떡없었습니다.
그런데, 잡혀온 순간 하늘을 보는 겁니다. 하늘을 보니, 스스로 부끄러운 겁니다. 사형수들이 죽기 전에 하늘을 한 번 쳐다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땅의 마음만이 아니라 하늘의 마음이 있고 인간의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 말을 합니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냐? 너도 사람이냐?”라고 할 때는, 그 말을 듣는 너라는 상대가 짐승보다 못하다는 비난입니다. 그런데 “나도 사람이야!” 할 때는, 실수할 뿐만 아니라 결코 완벽할 수 없는, 신이 아닌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신처럼 완벽할 수는 없지만, 짐승은 아니라는 겁니다.(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유교에서 말하는 "사단칠정(四端七情)"중, 사단엔 측은지심과 수오지심, 사양지심과 시비지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수오지심(羞惡之心)이 바로 죄악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입니다. 국어사전에는 수오지심을 "자기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이라 풀이하고 있습니다. 부끄러움을 알아야 의(義)를 행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의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라 말합니다. 즉, 진리가 되시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바로 의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 부끄러움을 아는 의의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단장 칼럼

성령님의 도움 없이 일하는 결단주의②


아이인 머레이는 그의 책 <잊혀진 사람, 스펄전>이란 책에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결신 상담하는 법에 대해 설명하면서, 사람이 하나님을 조각하도록 인도받을 수 있는 예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학생 전도용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책자를 살펴보면,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간편한 3가지 단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첫째, 개인의 죄를 인정하기, 둘째, 예수님께서 대속하신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 이 두 가지는 예비 단계일 뿐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이 사실을 받아들이면 그리스도인이 된다... 나는 그리스도께로 나아가야 하고, 
모든 사람을 위해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나누어야 한다." 모든 것을 결정 내리는 세 번째 단계는 순전히 나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내가 문을 열기까지 인내하며 기다리신다. 내가 문을 열면 그분은 나에게 들어오시고.." 일단 이 행동을 취하게 되면, 곧장 나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자상한 충고도 따라옵니다. "오늘 하신 일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세요." 제임스 아담스가 한 말에 저도 동감합니다. 결단을 통해 출생이 실행되고 있는 결신의 방법과 그 신학적 여부를 자세히 고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악의를 가지고 고찰하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교리와 행동에서 하나 됨을 이루고자 하능 열망으로 살피자는 것입니다. 전 시대에 거쳐 가장 위대한 복음주의 설교가인 찰스 스펄전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동등하게 사랑할 것을 역설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몸 가운데 있는 다른 이들의 교리와 방법에 대해서 잘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 됨을 이룰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리를 장려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이 서로 잘못을 덮어 주며, 모두가 하나로 연합되도록 도와준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하지만 서로의 잘못을 직시하지 못한다면, 특히 우리 자신의 잘못을 보지 못한다면 함께 연합할 수 없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집인 우리의 마음을 깨끗이 청소합시다. 그러면 멋지고 복된 시간이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들 중에 소위 말하는 믿음의 결신을 한 후,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진 것에 대해 환멸감을 느끼고 낙담에 빠진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하나님을 찾아보려 애썼지만, 하나님은 역사하지 않으셨다고 말합니다.(계속..!)

 

새찬송가 부르기

 

오늘의 Q.T.

믿음에 굳게 서서 사랑으로 행하라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 주라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또는 우리 주께서 임하셨도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고린도전서 16장 13-24절).


함께 읽은 본문 중 15절, "스데바나"는 아가야에서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 중 한 명으로, 바울이 세례를 주었습니다. "아가야"는 로마 행정 구역으로, 고린도와 아덴을 포함한 헬라 남부 지역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강건하고, 사랑으로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성도는 함께 섬기며 수고하는 모든 이에게 순종하고, 부족한 것을 채우는 동역자를 알아주어야 합니다. 바울은 아시아의 교회들과 형제들의 문안을 전하며, 주를 사랑하라고 반어법적으로 강조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함께 하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 권면(13-18절).
사도 바울의 마지막 권면은 믿음과 사랑입니다. 그는 13절,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군사적 의미를 담은 은유적 표현으로 15장 58절에 나오는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와 연결됩니다. 고린도 교회는 여러 가지 문제로 분쟁했기에 개어 믿음에 굳게 서야 했습니다. 또한 바울은 14절,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성도 간에 서로 잘못을 감싸 주고 품으라는 말로 13장의 사랑장 권면을 생각나게 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의 이유이며 목적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복음 사역에 본이 되는 가정을 소개합니다. 스데바나 가정은 개인의 재산을 사용해 성도들을 섬겼습니다.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는 바울의 필요를 채우며 모든 이의 마음을 시원하게 한 것으로 칭찬받습니다. 죽은 자보다 잊힌 자가 더 불행한 법입니다. 바울은 이들을 기억하고 언급함으로써 우리도 그들의 본을 받아야 함을 일깨워줍니다. 겸손함으로 누군가의 부족함을 채우는 섬김은 여름날에 얼음냉수와도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매 순간 나는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자인가를 질문하며 살아야 합니다.


마지막 인사(19-24절).
이어서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마지막 인사가 이어집니다. 성도들은 서로 친근한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과 함께 있는 네 그룹의 문안 인사를 고린도 교회에 전달합니다. 네 그룹은 바로 19-20절, "바울이 세운 소아시아 지역의 교회들", "아굴라와 브리스가", "아굴라와 브리스가 집에 있는 가정교회", 그리고 "에베소 성도들"입니다. 지금까지 바울의 말을 동역자가 대필했으나, 마지막 바울은 친필로 마무리합니다. 이는 고린도 성도들을 향한 친근함과 편지의 진정성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고 하면서 "주님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성도는 주님만을 사랑하며, 만왕의 왕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고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들 각자는 주님의 일꾼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또한 동역자들의 마음에 힘을 주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상고합시다. 바울의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22절에 단호하게 말한 이유를 다시 한번 되새깁시다. 오늘날 우리는 주님 사랑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살아가는지 깊이 묵상하시길 축복합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사랑으로 행하라고 사도 바울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 마음과 삶이 얼마나 주님 오시기를 기다리며 기대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시옵소서. 잠들어 있는 우리의 믿음을 깨워 날마다 말씀 위에 견고히 서게 하시옵소서.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고 아낌없이 다른 사람을 섬김으로, 주님의 얼굴을 뵙는 그날에 사랑의 사람으로 인정받게 하시옵소서. 형제들을 돌아보고 안부를 전하며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에 게으르지 않게 하시며, 사랑의 용사가 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열정이 있습니까?


열정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열정적으로 산다는 것은 기대와 희망과 열의를 품고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열정의 반대는 죽은 삶입니다. 열정이 없는 사람은 생물학적으로는 살아 있지만 영적으로는 죽어 있는 것입니다. "20년 전에 믿었고, 20년 전에 교사와 찬양대로 섬겼고, 10년 전부터 그냥 주일에 ㄱ회만 나가고 있다." 이것은 열정 없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있습니까? 열적인 열불이 나야 합니다.
어리고, 어리석고, 능력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가슴속에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물론 세상에는 잘못된 열심도 있습니다. 그러나 열정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거칠고 투박한 열정도 방향을 다듬어 사용하십니다. 우리의 분노, 비난, 죄, 불순종까지 다루어 가시며, 우리의 좋지 못한 에너지조차 그분의 섭리로 고치고 사용하십니다. 동쪽으로 잘 달리던 말은 서쪽으로도 잘 달립니다.
바울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그는 율법에 열심이었으나 결국 복음을 위한 열정으로 목숨을 바쳤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 깊은 곳에 열정을 심어 놓으셨습니다. 그 열정이 사그라들지 않게 계속 불을 지피십시오. 열정으로 하나니을 사랑하고, 열정으로 이웃을 사랑하십시오. 열정이라는 거룩한 습관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 사랑과 믿음의 원동력이 되어 줄 것입니다.(습관, 신앙을 말하다/ 한기채 목사)

 

생각 다스리기

자신을 너그럽게 대하십시오


조금 자란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하여 관대하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합니다. 이것은 조금 성장한 모습이기는 하나 항상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성자들은 자신을 많이 학대하였습니다. 아시시의 성자 프란시스코는 자신의 육체와 그 필요에 대하여 매우 엄격하게 대했고, 늙은 후에는 비로소 자신의 육체를 당나귀 형제라고 부르며 측은하게 대하기도 했습니다. 타인에 대한 공격 에너지는 보통 미움과 적대감으로 발전하며, 자신에 대한 공격 에너지는 죄책감으로 발전하게 되고, 이는 결국 치명적인 상처의 뿌리가 됩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이기적이므로 자기를 깨뜨리기 위하여 영적 성장의 초기에는 이런 죄책과 고통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영적으로 성장한 후에 우리는 타인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도 관대해지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모든 성장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이는 돌이 자나야 걸을 수 있고, 태어난 지 100일이 되어야 밤낮을 구분하고 목을 가누며, 4개월이 되어야 뒤집고, 6개월이 되어야 이빨이 한 개씩 생깁니다. 아무리 윽박질러도 3개월 된 아기가 뛰어다니지는 못합니다. 기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분노는 영적 어린아이가 그것을 끊으려고 마음먹고 결단하고 금식한다고 해서 쉽게 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적 유혹이나 교만이나 욕심, 우유부단, 악한 습관 등이 모두 그렇게 쉽게 해결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100번쯤 넘어졌다고 해서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나쁜 사람이라고 욕하지 마십시오. 스스로를 벌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버린 몸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실수하면서 자라 가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어설프게 걷다가 넘어져도 마무도 그를 비난하지 않는 것이 정상입니다.
영적 성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성장은 평생에 걸쳐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우리가 좀 더 자라면 자랄수록, 우리는 죄를 다루고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다루는 것이 좀 더 쉬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마음을 너그럽게 하십시오. 생각의 긴장을 풀어 주십시오. 우리가 차츰 자신에게 너그러워질 때,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도 너그러워질 수 있게 됩니다. 큰 실수를 하고 낙담해 있는 영적 후배들에게 "괜찮아, 별 것 아니야!"라며 손을 잡아 줄 수 있게 됩니다. 옛날 같으면 닭살이 돋을 행동이지만, 우리는 차츰 자연스럽게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의 횃불

기도는 쉽다..!


어느 목사님이 예전에 처음 예수 믿고 기도를 하는데 몇 마디 기도하고 나니 할 말이 없더랍니다. 하나님께서 심심해하실까 봐 좋아하는 가요를 몇 곡 불러드렸는데도 시간이 너무 안 가서 참 어색한 첫 만남이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기도하고 유창하게 기도하는 것 같은데,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하는 기도는 뭔가 기도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말은 해야겠는데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참 답답합니다. 기도 시간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기도하나 엿듣다가 기도 시간을 다 보내버립니다. 여러분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까? 
기도가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도 알겠는데 기도가 참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기도는 절대 어렵지 않습니다. 기도는 쉽고 재밌습니다. 기도는 우리에게도 하나님께 기쁘고 즐거운 일입니다. 일곱 살의 한 남자아이가 있습니다. 그는 유소년 축구클럽에 다닙니다. 이 축구 클럽 코치 선생님은 대학 리그의 득점왕 출신으로, 그분이 공을 차는 것을 보면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그런데 그분이 일곱 살 이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치면서 규칙을 딱 한 가지만 알려줍니다. "축구는 발로 차는 거야!" 바로 이것이 그분이 유일하게 제시한 규칙입니다.
그분이 축구의 규칙과 기술과 전술을 얼마나 많이 알겠습니까? 그런데 다른 말은 하지 않고 발로 차야 한다는 한 가지만 이야기해줍니다. 그러고 나서 공을 아이들에게 던져주면 모든 아이가 공을 향해 우르르 몰려갑니다. "뭉쳐야 찬다"가 아니라 "뭉쳐서 찬다"입니다. 자기 편의 공을 빼앗기도 하고, 골대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찹니다. 심지어 자기 골대에 골을 넣고 좋아하기도 합니다. 축구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아이들의 잘못을 고쳐주지 않고 같이 뛰어다니면서 응원해줍니다. 지켜보는 어머니들도 누구 하나 지적하거나 고치려 하지
않습니다. 손뼉을 치며 응원해주고 깔깔대고 웃으며 좋아합니다. 게다가 사진 찍고 동영상까지 촬영합니다. 왜 축구 같지도 않은 축구를 보면서 그렇게 좋아할까요? 일곱 살이니까요. 이제 축구를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들이 하는 축구가 옳아서가 아니라 이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작하는 아이들에게는 복잡하고 어려운 규칙과 기술과 전술을 알려줄 것이 아니라, 축구가 쉽고 재미있다고 느끼게 해주어야 합니다. 축구를 시작하는 아이에게 지나치게 많은 규칙과 기술을 이야기해주면 이 아이는 축구를 어렵다고 느끼게 되고 결국
축구를 싫어하고 포기하게 됩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가 어렵게 느껴진 이유는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기도에 대해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시작하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더 다양한 기도의 방법을 배우거나 더 많은 기도 규칙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기도가 쉽고 재미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고, 기도의 첫걸음을 뗄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오늘부터 우리가 함께 기도를 공부하는 이유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기도는 쉽습니다. 오늘부터 저와 함께 기도를 쉽게 배워가도록 하겠습니다.

사랑의 노래

날마다 감사~㉾

살아있음에 감사하라..!


새문안교회를 담임하셨던 김동익 목사님은 암에 걸려 큰 수술을 받고 3년여간 투병하시다가 소천하셨습니다. 그분이 투병생활을 하시면서 쓰신 설교문에 이런 글귀가 나옵니다. "수술 후 아슬아슬한 순간을 느끼면서 아침에 일어나 먼저 하나님, 오늘 아침에도 눈을 뜰 수 있게 해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고 기도했다. 이 기도박에 나오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사랑하는 남편, 아내와 자녀들이 오늘도 병들거나 죽지 않고 살아 있음에 하나님께 온 맘으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