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생각 다스리기

비판을 즐겁게 받으십시오①

예림의집 2022. 6. 13. 11:51

비판을 즐겁게 받으십시오①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저도 비판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남을 쉽게 비판하면서도 남들에게 비판을 받으면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러다가 남을 비판하면 언젠가는 그것이 내게로 되돌아오는 법칙을 알게 된 이후에는 비판하는 것을 아주 조심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전에 비판했던 분량이 아직 쌓여 있는 듯, 여전히 비판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설교를 통해서 감동을 받은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표현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러나 설교를 통해서 마음이 편치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표현하는 경우는 매우 많은 것 같습니다.

설교를 끝내고 탈진해서 쉬고 있을 때, 아내가 이것저것 잘못된 부분들을 지적하면 몹시 마음이 아픕니다. 그녀의 말은 모두 옳았지만, 내게는 바늘같이 느껴졌고 나의 무능함, 부족함, 그리고 그런 것에 상처받는 나의 좁은 마음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주님께 배워 가면서 저는 고통 없이는 결코 성장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아프고 찔리는 것이 싫어서 나의 몸을 웅크리고 있다면 나는 더 이상 자라날 수 없으며 사람들을 치유해 줄 수도, 도와줄 수도 없게 될 것입니다. 결국에는 주님께 쓰여질 수도 없을 것입니다.

계란이 깨어지지 않으면 결코 그 속에 있는 병아리가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것처럼 살마도 깨어지지 않으면 내적 생명이 밖으로 나올 수 없으며, 오직 죽음과 자기 부인을 경험한 수준만큼 사람의 영혼은 자유롭고 충만한 생명을 갖게 되는 법입니다 저는 조금씩 나를 극복해 나가는 훈련을 했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객관적으로 나를 보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날카로운 말에도 차츰 익숙해졌고, 어떤 면에서는 그것을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상처를 입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빠르게 상처를 치료하며 극복하는 법을 익혀갔습니다.

언젠가 여름 수련회 집회에서 저는 3일간 금식을 하면서 집회를 했습니다. 주님께서 역사하셔서 많은 눈물과 헌신의 고백과 사랑의 고백, 감동이 있었습니다. 집회 후에 한 남자 집사님이 인사로 위로를 건넸습니다. "목사님, 참 힘드시겠습니다. 그렇게 금식을 하시면서도 강단에 서시기만 하면 온 힘을 쏟아부으시니.." 그러자 옆에 게시던 여집사님이 말을 받았습니다. "목사님이야 성령님께 사로잡혀 있는데 뭐가 힘드시겠어요. 앉아 있는 우리가 힘들지.." 이런 식의 말은 많이 들었지만, 그때는 진정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으로 들렸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낮추시기 위하여 그분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나를 돌아보시도록 이런 말을 허용하시는 것입니다. 나도 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주님께서 허락하시지 않는 우연이라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어떤 아픔을 겪는 것은 우리가 과거에 상대방에게 비슷한 종류의 아픔을 주었기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직접 겪어 보지 않고는 그것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고통이 되었는지를 잘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제 그러한 말들을 성장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