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 고든/제자

굳이 안 해도 되는 일

예림의집 2022. 6. 10. 14:59

굳이 안 해도 되는 일

 

겉으로 드러난 예수님의 두 번째 성품은 "희생"인데, 이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들어온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희생이란 한 걸음 더 내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향한 공감이나 하나님에 대한 순종에 있어서 자신이 갈 수 있는 마지막 한 걸음까지 내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희생이란 고통이나 궁핍이 아닙니다. 희생이 없는 곳에도 고통과 궁핍은 있을 수 있습니다. 희생이란 굳이 안 해도 되는 상황에서도 우리의 생명을 들여서까지 누군가를 돕기 위해 행동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희생입니다. 주님의 삶의 어느 한 부분을 잘라도 거기에는 희생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비극적인 최후의 순간까지 예수님의 삶의 밑바탕에는 희생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죄로 인한 끔찍한 결과로부터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삶을 내려놓으셨습니다. 그럴 마음이 없다면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최고의 희생인 갈보리 희생은 세 가지 방향으로 드러납니다. 즉 "위"로, "내부"로, 그리고 "외부"로인데 먼저 "위로"는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희생"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실천했으며 자신의 희생을 통해 사랑의 하나님과 공의의 하나님을 보여주셨습니다.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로마서 3:26). 그다음 "내부"로는 "자신을 향한 희생"인데 그분의 죽음이 더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은 사랑으로 가득한 그분의 정결함과 온전함 때문이었습니다. 마지막 "외부"로는 "사람들을 위한 희생"입니다. 예수님은 희생의 사랑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무너뜨리고 그들의 고집스러운 의지를 꺾으셨습니다.

그분의 공감과 사랑의 고통은 십자가의 고통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공감은 누군가를 더 잘 돕기 위해 그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인데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제껏 아무도 한 적 없고 할 수도 없는 그 일을 예수님이 하신 것입니다. 마땅히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할 우리 대신에 예수님이 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이 대신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당했어야 할 일, 우리가 지은 죄 때문에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예수님이 감당하셨습니다. 죄인의 고통을 감내하기로 하신 예수님의 희생 덕분에 그분의 고귀한 보혈을 믿는 사람은 끔찍한 형벌을 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갈보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 공감하는 자리이며 공감과 희생은 갈보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합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놀라운 성품을 주시려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 우정의 자리로 우리를 가까이 나오라고 부르시는데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그렇습니다. 방법은 오직 하나, 그분을 의지하는 삶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을 닮은 모습이 나타나도록 예수님을 철저히 의지해야 합니다. 그 일이 이루어지도록 예수님께 우리를 드려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망라하는 단어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성품에 대한 모든 설명은 결국 사랑이라는 두 글자로 정리됩니다. 그러므로 각 속성은 사랑의 한 단면에 불과합니다. 사랑은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사랑하는 자를 기쁘게 하는 것이며 순종은 사랑이 외부로 표출된 활기찬 리듬입니다. 정결함은 사랑의 마음이며 온전한 성품은 사랑의 성숙입니다.

그러므로 언젠가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의 참 의미를 깨닫는 날이 올 것입니다. 어느 기독교 가정에서 아이가 엄마에게 "주 예수를 믿는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물어보았습니다. 엄마는 아이가 이해하기 쉽게 대답해주려고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생각하고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말이야." 아이는 가만히 앉아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습니다. "우리 아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니?"라고 묻자 아이는 매우 짧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나도 예수님을 믿어요!" 아이의 말을 들은 엄마의 마음에 따사로운 온기가 밀려왔습니다. 아이 엄마가 했던 말을 생각하면서 우리도 아이처럼 단순한 고백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말은 그분에 대해 생각하고 그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의미를 알면 "따른다"가 "사랑한다"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그 말에 사로잡히기 전에 사랑의 의미부터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가까이 따를수록 사랑의 의미를 더욱 깨닫게 되고 예수님께 가까이 갈수록 그 의미가 가까이 다가옵니다. 예수님을 아는 만큼 사랑을 알게 되고, 그분의 임재 안에 들어가서 얼굴과 얼굴을 마주할 때 모든 의미가 깨달아지고 놀라움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고 사랑을 알기 위해 더욱 그분을 따릅시다. 그 사랑으로 살면 예수님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사랑과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사랑과 예수님과 하나님을 동시에 알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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