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548번째 이야기
성실함으로 자신을 평가하라 한 부자가 하인과 함께 여행할 때였습니다. 어느 날 흙이 묻은 신발이 다음날에도 여전히 더러워져 있자 하인을 불러 앞으로는 신발을 닦아 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인은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어차피 신발을 닦아 봤자 또 나들이하게 되면 다시 더러워질 게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부자는 하인의 말에 아무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부자는 식당 주인에게 1인분의 식사만 주문했습니다. 하인은 당황해하며 주인님을 모시고 다니려면 자기도 식사를 해야 한다며 배가 무척 고픈 시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인은 그런 하인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차분하게 말했습니다. "저녁은 먹어 뭣하나? 내일이면 다시 배가 고파질 텐데..." 흔히 등산하러 다니는 사람에게 "어차피 내려올 산 뭐하러 올라가냐"라고 묻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도 비슷합니다. 어차피 다시 배고플 것이지만 식사를 맛있게 먹고, 어차피 더러워질 옷이지만 깨끗하게 세탁하며, 어차피 죽을 걸 알지만 죽지 않을 것처럼 열심히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
언제쯤 끝나는 것일까요? 우크라이나에서 사역하고 있는 한재성 선교사입니다.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 현재까지, 멈추지 않는 전쟁 상황이 너무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롬 반도를 강제 병합한 이후, 8년 만에 다시 전면전 전쟁을 일으킨 푸틴의 제국주의 야욕은 멈출 줄 모르고 더욱 거세어져만 가고 있습니다. 전쟁은 우리 모두의 일상을 앗아갔습니다. 함께 예배하던 교회 공동체도, 아이들이 웃고 떠들며 행복해하던 집과 학교도, 선교센터에서 꿈을 키우던 태권도반과 각종 모임까지도 모두 앗아갔습니다. 현재까지 전쟁으로 인하여 주변국으로 빠져나간 우크라이나 피난민은 무려 52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내에 있는 난민들도 800만 명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자녀를 잃은 가족들은 셀 수가 없습니다. 전쟁의 상처와 트라우마는 모든 우크라이나 국민과 주변국에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내 거주하는 한국인 선교사는 총 56 유닛(단체단위)이었습니다. 미국 시민권자 및 기타 타국 시민권자를 모두 포함한 숫자입니다. 한국 정부의 여행경보 4단계가 발령되면서 모든 한국인에게 출국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출국하지 않을 땐, 외교부 여권법 시행령에 따라 여권이 말소될 수 있으며, 1년 이하의 징역, 혹은 1천만 원의 벌금이 부과된다고 합니다. 이에 대부분의 한국 국적자들은 전쟁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이라 믿고, 옷가지 정도만 챙겨 주변국 및 한국으로 잠시 떠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시작된 전쟁은 우리의 예상을 완전히 비껴갔습니다. 전쟁이 이렇게 길어질 줄도 몰랐거니와, 너무 많은 파괴, 그로 인한 희생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비롯해서 수많은 지역에서 벌어진 겁니다. 이제는 ‘언제 다시 우크라이나로 돌아갈 수 있을지?’ 예상조차 할 수 없는 지경입니다. 저희 가족(8명)은 불가리아에 있는 선교사의 도움으로 무사히 피란길에 올랐습니다. 현재까지 불가리아에서 안전하게 머물며 떠돌이 인생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아, 이 끔찍한 전쟁은 언제쯤 끝나는 것일까요? 누가 푸틴의 허황된 야욕과 욕망을 잠재울 수 있을까요?(한재성 선교사)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우크라이나 전쟁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닙니다. 지난 25일 자 인터넷 뉴스에 의하면, 러시아군의 해상봉쇄로 인하여 4억 명을 먹일 곡물의 수출 길이 막혀버렸다고 합니다. 그러니, 당장 우리나라 물가에도 큰 영향을 주게 마련입니다. 라면과 빵은 물론, 다른 물가에도 영향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네 호주머니 사정도 악화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생사기로에 놓여있는데, 물가 타령만 하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하여 진심으로 온 힘을 다해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모두 기도합시다! |
우상 숭배에 수반되는 통제 우상 숭배의 문제에는 통제가 포함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은, 자기 자신의 행복과 안락을 얻기 위해 환경과 관계를 스스로 통제하려고 애쓰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할수록 그가 체계적으로 통제하기 원하는 바로 그것을 고스란히 잃어버리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누가복음 9:24). 우리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통해 필요를 얻고자 하는 순간, 우리가 바라는 사람과 사물, 또는 환경에 우리의 권세를 넘겨줌으로써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우리의 필요를 만족시킬 힘과 근원이 없기 대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것을 반드시 얻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면, 그것이 오히려 우리를 통제하게 됩니다. 우리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그것을 손에 넣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힘의 요소가 되어 버립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관계에 미치는 또 다른 요소가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자신의 생각대로 조각하기 시작할 때, 오히려 관계가 멀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사랑해야 할 가까운 가족들까지 소원해지는 관계가 되고 맙니다. 다른 이들이 우리를 조종하려는 동기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알고 있습니까? 남편이나 아내가 우리에게서 뭔가를 얻어 내려고 애쓴다든가, 자녀들이 갑자기 착하고 공손한 태도로 돌변하는 때가 언제인지 쉽게 알아챕니다. 마치 특수 레이더 감지기라도 부착하고 있는 듯, 우리를 조각하고자 하는 사실을 금방 알아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 왜 많은 사람들이 관계 안에서 불화로 고통을 겪고 있는지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이렇듯 끌로 새겨진 살마들이 과연 우상 숭배의 영으로 인한 영적 파괴를 분별해 내고, 자기 방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우리는 자신이 이러한 끝에 의해 조종을 받을 때, 어떤 행동을 취합니까?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의 손에 들려진 끌은 금세 우리 눈에 보이지만, 자기 자신이 들고 잇는 끌에 대해서는 무지하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있는 우상 숭배의 영이 무엇인지 깨닫고 이를 회개하지 않는 한 절대로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 시간부터 여러분을 위한 저의 기도는, 여러분이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잇지 않는 것입니다. 일단 우리 안에 있는 우상 숭배의 영을 깨닫게 되면, 성령님께서 얼마나 급박하게 우리의 관심을 돌려 숨어 있는 동기를 직시하게 하시는지 놀랄 것입니다. 우리가 긍정적인 끌을 쥐고서 손을 뻗어 아내나 자녀들을 조각하려는 순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하실 것입니다. "네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 우리는 그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님이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었더라면 우리 가족들은 어찌 되었을지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우상숭배의 영은 이렇듯 교활하기 그지없습니다! |
모든 은사의 근원이신 하나님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린도전서 12장 1-11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을 통해 사도 바울은 다양한 은상의 근원은 한 분 성령 하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5절의 "직분"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코니아"는 봉사를 뜻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은사에 대해 교훈하며, 누구든 성령으로만 예수를 "주"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습니다. 한 성령이 각 사람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심은 교회의 유익을 위함입니다. 우리 또한 주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은사가 무엇인지 찾고, 개발해야 합니다. 은사의 근원(1-6절). 모든 은사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고린도 교회는 성령의 은사가 풍성했지만, 성도들은 하나 되지 못했습니다. 이에 바울은 하나님이 은사를 주신 이유와 목적에 대해 교훈합니다. 기독교 공동체는 차이를 따지지 않습니다. 개인적 호불호는 그리스도의 몸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우상을 섬기던 자들이었지만,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시인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하심을 보여주는 가장 분명하고 강력한 증거입니다. 교회 안에는 주님께서 다양하게 허락하신 은사와 직분과 사역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 모든 것이 같은 성령, 간은 주, 같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에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은사는 하나님께 값없이 받은 선물입니다. 성숙한 성도는 특정한 은사를 강조하거나 내세우지 않고 모든 은사를 존중합니다. 성도가 성령을 받은 가장 분명한 증거는 그가 마음과 입술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시인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교회 공동체를 위해 주신 다양한 은사들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깊이 묵상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은사의 예(7-11절).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신 것은 7절, 성도와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성도에게 "유익"이라는 단어는 자신에게만 적용되지 않습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실 때 다른 사람의 유익까지도 나의 유익으로 여기는 내적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축복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곧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그러한 성도를 향한 선물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공동의 유익을 위해 사용할 능력을 이미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성령의 은사로 제2의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은사는 개인의 자랑이나 욕망 충족이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은사에는 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침, 능력 행함, 예언, 영 분별, 방언, 방언 통역"등 대표적인 은사 아홉 가지를 소개합니다. 이 모든 은사는 같은 한 성령이 그분의 뜻대로 나누어 주십니다. 은사에는 차등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받은 은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성도는 자신의 은사를 하나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받은 은사는 무엇이며, 우리는 그 은사를 어떻게 사용할지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각양각색의 필요에 따라 은사를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성령의 은사로 예수님을 주님이라 고백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교회 공동체의 모든 지체들이 서로의 은사를 비교하며 우월감을 느끼거나 좌절하거나 시기하지 않게 하시옵소서. 주님께서 뜻하신 대로 나눠 주신 다양한 은사를 귀하게 여기며 겸손히 사용하여 모든 지체와 교회 공동체가 유익을 누리게 하시옵소서. 어떠한 은사든 자기를 위하여 사용하지 않게 하시며, 오직 주님 뜻대로 사용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은사와 사명을 따르는 비전 어떤 교회에서 청년부를 담당하는 목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청년 집회를 할 때마다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한국 교회 청년들이 비전 콤플렉스에 걸려 있다는 것이에요. 비전을 하나씩 갖고 있지 않으면 젊은 놈이 비전도 없냐면서 바보 취급을 당하는 시대인데, 비전은 사람이 강요하는 게 아닙니다. 비전이라고 하면 많은 성도가 바울 사도의 마게도냐 환상(사도행전 16:10)을 떠올립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인정했다는 것은 헬라어로 격렬한 논쟁 끝에 설득당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마게도냐 환상은, 바울이 말을 듣지 않으니 하나님이 그를 설득하셨고 그래서 그가 설득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비전은 바로 그런 것이에요. 하나님께 설득당하는 것.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결코 아니라는 이야기지요!" 내 꿈 때문에 하나님이 그려 가시는 인생 그림을 나도 모르게 구기고 짓밟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꿈 중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나의 소유, 나의 성공, 나의 형통만을 내세우는 내 꿈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만 제대로 된 내 인생 그림을 보게 됩니다. 내가 가진 야망은 진정한 내 인생 그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은 가장 나답게 은사와 사명에 따라 사는 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 감독이자 주인공이신 하나님께 주목해야 합니다. 나에게서, 어떤 롤 모델에서 시선을 거두고 하나님께로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그럼에도 은혜면 충분하다/ 김병태 목사) |
종교적 아집만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광신은 참으로 두려운 현상입니다. 사람이 일단 맹목적인 신앙에 빠지면 가족도, 사회도, 친구도, 직업도 소용이 없습니다. 참 신앙의 정신인 사랑, 용서, 섬김, 관용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저는 이러한 잘못된 신앙 때문에 극심한 피해를 입은 가족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것은 정말 비극적이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일단 어떤 사람이 자기는 진리 쪽에 있으며, 자기가 속한 곳만이 바른 진리이며, 자기는 이를 위해서 죽음도 불사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다면, 그것을 말릴 재간이 없습니다. 그를 사랑하고 용납하며, 극단에 빠지게 된 그 마음을 치유하고 제정신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신앙은 참된 진리를 추구하며 사랑과 덕을 발전시키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길이요 진리 되시는 주님을 알아 감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역사는 기독교를 포함해서 종교의 관용을 별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종교 전쟁으로 인하여 죽은 사람들의 숫자는 제2차 세계 대전을 통하여 죽은 사람들의 숫자보다도 많습니다. 이슬람은 칼과 정복 전쟁을 통하여 그들의 종교를 확장시켰습니다. 기독교도 크게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몇 백 년 동안의 신, 구교 전쟁으로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죽었고, 1618년에서 1648년에 이르는 독일의 30년 전쟁에서도 단순한 교리의 차이 때문에 엄청난 살상이 일어나 독일 인구가 현저하게 줄어들었습니다. 11세기경에 있었던 4차에 이르는 십자군 전쟁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부녀자들, 유대인들에 대한 학살과 만행이 있었습니다. 신대륙의 발견 이후. 사실 원주민 입장에서는 힘이 없어서 자신들의 땅을 빼앗기고 쫓겨난 것에 불과했습니다. 백인들은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황금을 캐기 위해 그들을 노예로 끌고 다녔습니다. 이런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어떤 마을의 추장이 끝가지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했고, 결국 그에게 사형이 선고되었습니다. 온 마을의 주님들을 모아 놓고 그를 목매달기 전에 백인들은 마지막으로 그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거부하고 목 매달리며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죽어도 너희들이 전하는 예수를 믿지 않겠다. 너희들이 전하는 예수를 믿으면 죽어서 너희들이 간다는 천국이라는 곳에 간다는데, 나는 죽어서도 너희들이 있는 곳에서는 사록 싶지 않다!" 참으로 우리가 새겨 들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게..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지난날, 마귀에게 종이 되었던 것은 죄 때문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는데, 주님께서 화목 제물이 되어 주셔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은 구원사역을 생각합니다. 주님은 만은 사람의 구원을 위해 죽어 제물이 되셔야 하셨다고 믿습니다. 만일, 주님께서 죽지 않으셨다면 인류의 구속. 즉, 죄인의 군원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고 한 알의 밀과 같이 죽어주셨습니다. 이로써 많은 죄인들에게 구원을 받게 하셨고, 우리도 거기에 들어 있음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시면서 그를 믿고 따르는 우리가 그를 본받아 죽음을 각오해야 할 것을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심령에 새깁니다. 주님은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에서의 생명을 잃어야 영원에 이르게 됨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따른다는 것은 자기를 죽임입니다. 그 길에는 세상으로부터 고난과 핍박이 있고, 죽음의 위협이 있는데 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 길에서는 순교의 피도 흘리게 된다는 것을 각오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을 우리 자신의 생명보다 귀히 여기는 은혜를 갖게 하시옵소서. 우리가 비록 연약하지만 하나님과 예수님을 자신의 생명보다 귀히 여길 수 있고 하나님의 진리와 주님의 복음을 위해 죽을 각오를 하게 하시옵소서.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주 예수님을 부인하고 그를 믿고 따르기를 포기한다면 영생을 잃어버릴 것이라 깨닫습니다. 주를 위하여 생명 받쳐 따르게 하시옵소서. 사람이 자기 생명을 미워하면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고 약속해 주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시옵소서. 사람이 자기 생명을 미워할 수 있다는 말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 가치를 깨달았다는 뜻인 줄로 믿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인간적 조검과 환경적 조건을 초월하는 믿음에로 이름이라고 여기게 하시옵소서. 우리에게 그와 같은 믿음에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끝가지 참고 견디면 반드시 영생에 이를 것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고 예수님을 믿고 따름으로써 영생을 취하게 하시옵소서. 오늘도 성령으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내 인생의 최고봉 감사..!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진 것들에 감사합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에 감사합시다. 돈을 벌 수 있고,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고, 마음에 맞는 사람과 함께 운동할 수 있고, 여행도 할 수 있고, 산에 오를 수도 있고, 먹고 싶은 것도 먹을 수 있고, 책을 읽고 싶으면 마음대로 읽을 수 있고, 글을 쓰고 싶으면 생각나는 대로 자유롭게 슬 수 있고, 자전거를 타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지금 이 순간의 삶에 아무런 조건 없이 감사합시다. 감사로 매 순간의 삶을 즐길 수 있다면 인생의 최고봉을 붙든 것입니다!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예림의집 메일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림의집 2550번째 이야기 (0) | 2022.06.07 |
---|---|
예림의집 2549번째 이야기 (0) | 2022.06.06 |
예림의집 2547번째 이야기 (0) | 2022.05.26 |
예림의집 2546번째 이야기 (0) | 2022.05.24 |
예림의집 2545번째 이야기 (0) | 2022.0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