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와 메추라기, 응답과 시험
"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이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 모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시기를 이것을 오멜에 채워서 너희의 대대 후손을 위하여 간수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광야에서 너희에게 먹인 양식을 그들에게 보이기 위함이니라 하셨다 하고 또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속에 만나 한 오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 너희 대대로 간수하라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것을 증거판 앞에 두어 간수하게 하였고 사람이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사십 년 동안 만나를 먹었으니 곧 가나안 땅 접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 오멜은 십분의 일 에바이더라"(출애굽기 16장 31-36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잠시 마라에 머물렀는데 그곳의 물이 너무나 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 물을 달게 바꿔주시고 그다음 행선지인 엘림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엘림은 백성들에게 풍족한 땅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열두 개의 샘이 있는 종려나무 아래 장막을 쳤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필요를 완전히 채워주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며 다음 여정을 위해 그들이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사실이었습니다.
이제 본문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엘림에서 나와 신 광야로 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백성들에게는 엘림의 종려나무 아래 머무는 것이 한결 편안했겠지만, 그것은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항상 쉬운 길로 가는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편안할 때 하나님을 찬양하지만, 저는 제 삶의 광야에서 힘겹게 보낸 시간을 통해 가장 많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광야는 메마를 곳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곳입니다. 광야는 편안한 곳이 아닙니다. 2, 3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는 소리를 들어봅시다. 함께 읽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먹을 것이 풍족했던 그 땅에서 죽는 것이 차라리 좋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모세와 아론이 그들을 광야로 데라고 와서 이제는 굶어 죽게 생겼다며 그들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몇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빨리 애굽에서의 고통을 잊어버렸는지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들은 매 맞고, 학대당하면서 노예의 삶을 살았습니다. 심지어는 애굽 왕 바로의 시기심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남자아이들이 살해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들이 이제 배가 고프다는 이유로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그들은 지금까지의 여정에서 하나님이 그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또 필요를 채워주셨는지를 너무나 빨리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홍해 바닷물을 갈라 그들이 마른땅으로 건너갈 수 있게 해 주셨고, 마라의 쓴 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광야로 들어선 그들의 믿음은 어디로 갓습니까? 하나님은 바뀌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광야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에 보인 것은 그들이 처해 있는 현재의 상황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위한 하나님의 전체적인 계획을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을 어떻게 인도해 주셨는지, 그들이 곤고할 때 어떻게 채워주셨는지, 조상들에게 약속하셨던 땅으로 그들을 어떻게 이끌어 주셨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믿음과 신뢰의 부족이 하나님을 비통하게 만들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도 고난을 만날 때 그들과 똑같은 생각을 갖게 된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비통해하실까요? 그럼에도 그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합시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데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처한 상황을 통해 그들을 훈련시켜 강하게 만들기 원하셨지만, 백성들은 그런 훈련 같은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끌어 주셨던 하나님에 대해 불신을 드러내면서 원망하고 또 원망했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 주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까?
이제부터는 불평하고 믿음 없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응하고 계신지를 살펴봅시다. 4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양식을 비같이 내려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한 번에 하루 치의 양식만을 제공해 주셨다는 사실에 주목합시다. 그러나 안식일에는 양식을 거둘 수 없었기 때문에 여섯째 날에는 이틀분의 양식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데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고 4절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지를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시험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하늘에서 양식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은 거둘 수 있는 최대한의 양을 거두어 미래를 위해 쌓아 두려는 유혹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번에 하루 치의 양식만을 제공해 주셔서 그들이 날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매일 그들은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필요한 양식을 위해 그분을 의지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능력으로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하려 합니다. 그렇지만 광야에서 사록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호사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것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사실 하루하루를 위해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바라본다는 것은 틀림없이 가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광야로 이끄신 이유도 이것을 훈련시키기 위하심이요, 하나님은 백성들의 필요를 결코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항상 채워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한 불신으로 원망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양식을 제공해 주시는 것으로 응답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잘못을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가 믿음이 부족해서 불순종에 빠져있을 때조차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면서 우리에게 신실하심으로 대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우리는 모세와 아론도 똑같이 단련받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백성들에게 했던 말을 살펴봅시다. 7, 8절을 함께 읽습니다.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이기에 너희가 우리에게 대하여 원망하느냐 모세가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가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모세와 아론은 자신들의 능력으로 백성들의 필요를 채워줄 수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백성들의 배고픔을 해결해 줄 만한 자원이 없었으므로 그들 역시도 주님을 의지해야만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원망과 불만을 드러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덫에 얼마나 쉽게 빠집니까? 하나님이 일자리를 주셨지만 우리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까다롭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하나님이 배우자를 허락하셨지만, 그들이 하는 행동이 마음이 들지 않는다며 하나님께 불평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불만을 늘어놓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의 방법과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경험하는 어려움은 결국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 됩니다.
9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모든 백성들을 함께 모이게 하라고 말씀하시고 아론을 통해 하나님이 그들의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셨고 이에 응답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날 아론이 말을 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 그들을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그 영광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날 하나님이 임재하셨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광이 광야에 나타나셨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날 하나님은 매우 중요한 사실을 보여 주셨는데 그것은 백성들이 필요한 양식을 공급받았던 그 광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이제 그들은 광야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를 공급해 주실 것이고 그들이 발을 내디딜 때마다 돌보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웬만하면 광야에서의 삶을 피하고자 애를 씁니다. 차라리 엘림의 종려나무 아래서 편안한 삶을 살고 싶어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단련하시고 견고하게 만들려고 하셨습니다. 그 어린 광야의 아이들이 신앙 안에서 자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강한 전사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광야는 그들의 인생 훈련소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난 가운데 하나님이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신 것만으로도 광야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어났던 일은 오늘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광야를 두려워하지 말고 고난의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교훈을 배우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더욱 강해질 것이고, 거 큰 복을 얻기 이해 더욱 멋지게 준비되어 있을 것입니다.
13절, 저녁이 되자 메추라기 떼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 있는 장막들을 덮였고, 아침이 되자 이슬이 진 주위를 덮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슬이 마른 후에는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보며 놀라 "이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모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장막 안에 있는 식구 수대로 한 사람당 한 오멜(액 1.7L)씩만 거두러 가라고 지시했습니다. 또한, 아침까지 그 음식을 조금도 남겨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그들에게 명하신 규칙에 따라 필요한 양만큼만 거두어 갔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침까지 먹을 것을 남겨두기도 했는데, 아침이 되자 그 음식에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방법으로 날마다 그 백성들이 주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게 하셨습니다. 매일 새벽마다 사람들은 광야에서 먹을 것을 거두어 왔는데, 해가 드면 만나는 녹아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여섯째 날에는 땅에 두 배로 많은 양의 만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안식일에는 일을 하지 말아야 했으므로 그날 그들은 이틀 치의 음식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섯째 날만은 안식일을 위해 남겨둔 음식을 상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24절은 백성들이 모세가 명한 대로 그것을 다음 날 아침까지 남겨두었지만 썩은 냄새가 나는 것도 없고 벌레 먹은 것도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6절에도 나와 았듯이 일곱째 날에는 땅에 만나가 없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이 일을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상기시키고자 하심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27절,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안식일에도 밖으로 나가 음식을 거두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날 그들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안식일은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특별히 구별해 놓은 날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셨습니다. 그날 그들은 음식을 찾으러 나가서는 안 됐습니다. 하나님이 안식일 전날에 그들에게 필요한 음식을 제공해 주실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안식일에 전혀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31절, 사람들은 그 음식을 "만나"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깟씨같이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만나 한 오멜을 남겨두어 하나님이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신 다음, 광야에서 그들을 어떻게 먹이고 공급하셨는지 자손들이 볼 수 있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론은 항아리에 만나를 넣어 증거판에 놓아두었는데 히브리서 9장 4절은 만나가 담겨 있는 금 항아리가 언약궤 안에 들어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증거판은 중요한 때에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해 주시고 인도해 주신데 대한 소중한 자료들이 담겨있던 언약궤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정착할 때까지 40년 동안 이 만나를 먹으면서 매일 그분의 공급하심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끊임없이 의지하게 만드셨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그분을 의지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향한 초점을 계속 유지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시실이 또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다음 날 아침까지 만나를 남겨 두었던 사람들은 만나에 벌레가 생기는 것을 발견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안식일에는 만나가 상하지 않게 하나님께서 지켜 주셨습니다. 이기적인 의도로 음식을 남겨두었던 경우에는 빠르게 부패하였지만,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남겨진 만나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만나를 쌓아두고 싶은 유혹을 받았을 것입니다. 내일을 위해 쌓아 두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광야는 훈련받는 장소였으므로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그날 하루에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의지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려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에 반하는 것에 대해서는 복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에 반하여 남겨놓은 만나에 벌레가 끓어 내다 버려야 했던 것이 그 예였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도 너무나 쉽게 하나님이 복을 주실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면서 그 복을 자신이 받을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받은 것을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복을 받는 것뿐만이 아니라 이미 받은 복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하나님께 간구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엘림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된 곳이었지만 하나님은 그곳을 떠나 그들을 사막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 삶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막에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다며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우리도 얼마나 자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환경과 여건에 불평하고 원망하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오래 참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만을 허락하신다면 그것을 통해 날마다 주님만을 의지하는 것을 훈련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주님만을 의지할 때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여건과 재물과 재능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갑시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인도와 계획에 대해 불평하고 원망했던 우리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평안할 때뿐만 아니라 어려울 때에도 주님의 영광을 목도하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더 담대히 받아들이게 하시옵소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여건과 재물과 재능을 주님의 뜻대로 잘 사용하게 지혜를 주시옵소서. 현재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배울 수 있도록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ε♡з교회 사역...♡з > 말씀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드로의 현명한 조언 (0) | 2022.06.04 |
---|---|
물 부족과 적의 공격 (0) | 2022.05.28 |
구원의 노래① (0) | 2022.05.14 |
믿음으로 얻는 참된 승리② (0) | 2022.04.30 |
믿음으로 얻는 참된 승리① (0) | 2022.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