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512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2. 3. 18. 12:14

예림의집 2512번째 이야기

따뜻한 하루

등산하는 네 사람

산에 오르기 위해 모인 네 사람이 있었습니다. 네 사람 모두 정상에 도착했지만 그 과정은 달랐습니다. 먼저 첫 번째 사람은 산에 오르기 위해 값비싼 등산화를 마련해서 산에 올랐는데 등산화가 발에 잘 맞지 않아 계속 투덜거리며 산에 올랐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산 중턱에서 경치를 바라보다 숲으로 둘러싸인 농장과 언덕 위의 집을 보더니 그것은 가격이 얼마나 될지 쓸데없는 생각에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작은 구름만 봐도 비가 쏟아져 혹시라도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올라갔습니다.
마지막 사람은 산에 오르며 나무와 풀, 바위와 계곡을 보며 감탄했고 자연에 감사함을 느끼면서 정상에 올랐습니다. 인생은 등산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정상에 올라가야 아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인생의 등산을 하고 있을까요?

 

예림가족 이야기

저는 아버지가 없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없습니다. 제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아버지는 이미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버지의 공장에서 일하는 경리였고, 본처인 우리 엄마를 언니라고 불렀습니다. 친할머니와 큰고모는 엄마를 찾아와 "아들도 아닌데 낳지 마라. 아기는 다시 가지면 된다."라고 헛소리하다가 찬물을 뒤집어쓴 채 쫓겨났다고 합니다. 입맛이 없어진 엄마는 족발과 찐빵이 먹고 싶어 집 앞에 있는 시장을 누볐답니다. 진통이 오자, 미리 싸놓은 짐을 들고 택시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렇게 엄마는 홀로 저를 낳았습니다. 제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산부인과 옆 여관에 그 여자를 데려다 놓고 저를 보러 왔습니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열 개씩 다 있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선 아버지는, 다시 우리를 찾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오길 기다리던 엄마는 결국 이혼했습니다. 제가 4살 무렵, 아버지와 재혼한 그 여자가 엄마를 찾아왔습니다. 딸 하나를 낳고 아들을 임신 중이던 여자는 기저귀 살 돈도 없다면서 하소연했습니다. 그 말에, 엄마는 분유와 기저귀를 사다 주었습니다. 매일 돈을 버느라 바쁜 엄마는 저를 외할머니께 맡겼습니다. 외할머니는 아침마다 유치원 가는 제게 당부했습니다. 
“어디 가서 아비 없단 소리 듣지 않게 해야 한다.” 제 나이 27세 때, 한 번도 뵌 적 없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도 딸인데 장례식에는 와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큰고모의 전화를 받고, 엄마와 함께 장례식장에 갔습니다. 친할머니는 저를 끌어안고 통곡했습니다. 나머지 식구들은 모두 저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아이고, 내 새끼야!”할 때는 웃음이 새어 나왔습니다. 10년 전에 이혼했다는 그 여자는 오지 않고, 그의 자식인 남매만 한구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둘째 고모부가 남매에게 저를 소개할 말을 
찾지 못해서 헤매자, 저는 직접 입을 열었습니다. "여기 있는 내 엄마는 본처, 그리고 나는 본처의 자식"이라고.. 이 한마디로, 저는 아버지 없이 자란 평생의 한을 풀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아버지의 무덤에 성묘를 갔습니다.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습니다. "내게 무슨 아버지가 있냐?"라는 말에, 엄마는 "떠난 사람에게 너무 야박하게 굴지 마라"라고 했습니다. "덕분에 네가 존재하지 않냐?"며, 엄마에게 너를 주고 간 고마운 사람이라고도 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놓는 엄마의 뒤에 서서 마음속으로 조용히 "아빠!"하고 불러봤습니다.(오륜영)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는 정말 기막히고 슬픈 사연을 가진 인생들이 참 많습니다. 대부분은 남자들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요즘에 와서는, 남녀 할 것 없이 가엾은 인생을 만들어내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낳아 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낳기만 하고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이 적잖다고 하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버지에게는 무엇을 낳았소 하고 묻고 어머니에게는 무엇을 낳으려고 해산의 수고를 하였소 하고 묻는 자는 화 있을진저" 이사야서 45장 10절의 폐역 한 자식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단장 칼럼

기독교의 핵심 진리 98-그리스도의 재림


교회는 모든 시대를 거치며 장차 오시리라고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쁜 마음으로 고대해왔습니다. 예수님의 초림으로 우리의 구속이 보장되었듯이 에수님의 재림은 하나님 나라의 온전한 완성을 향한 교회의 복된 소망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나타내는 나타내는 용어로 신약에서 가장 자주 사용되는 것은 "파루시아(Parousia)"입니다. 파루시아는 마지막 때 영광 중에 있을 예수님의 나타나심, 현현, 도래를 말합니다. 또한 이것은 그리스도의 약속된 재림, 즉 예수 그리스도의 도래에 대한 그의 몸인 교회 공동체의 기대를 나타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재림이 인격적이며 가시적일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주님은 능력으로 재림하실 것이며, 이 땅을 떠나실 때와 마찬가지로 영광의 구름 속에서 재림하실 것입니다. 또한 천사의 음성과 함께 귀에 들리는 하늘의 나팔 소리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교회는 그분을 만나기 위해 공중으로 들려지는 휴거를 경험하게 될 것이며, 공개적으로 분명하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휴거의 목적은 그가 돌아오실 때 성도들이 공중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하며 그가 하늘로부터 승리하며 임하실 때 거기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재림은 성도의 부활과 마지막 심판과 세상의 종말을 수반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날과 시간은 아무도 모릅니다. 많은 이들이 그때를 계산하려고 했지만 예측이 모두 빗나감으로써 곤란한 지경에 빠졌을 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밤에 도둑이 드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놀라지 않도록 깨어서 기다리라고 부르심 받았습니다. 아울러 성경은 우리에게 경계하라고 명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들을 살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이들의 소망을
사그라뜨리시면서 수백 년간 지체하셨다 할지라도, 그것은 한 명이라도 더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상의 인내로 알고 우리가 현재 지내고 있는 하루하루가 우리를 재림의 날로 조금씩 데리고 가고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바른 자세는, 예수님의 재림을 확신하고(욥기 19:25-26), 그날이 가까워짐을 생각하며(로마서 13:11-12), 늘 깨어 예비하며 기다려야 하고(빌립보서 3:20), 그날을 간절히 사모해야 하며(디모데후서 4:8), 끝까지 참고 견디며 인내해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반드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새찬송가 부르기

 

오늘의 Q.T.

주님의 만찬과 배신자 유다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이에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 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누가복음 22장 14-23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예수님께서 베푸신 만찬 장면과 내용, 그리고 안타깝게도 배신자 유다에 대한 내용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 중 한 명이 되어 그 가지에 함께하는 마음으로 은혜를 나누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이 고난 받으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드십니다. 떡을 떼어 주시며, 그들을 위해서 주는 자신의 몸이니 이를 행해 기념하라 하십니다. 또 잔을 주시며, 자신의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 하십니다. 주님은 작정된 길을 가지만 예수님을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서로 누굴까 묻습니다.


마지막 만찬(14-20절).
우리는 성찬을 통해 주님의 희생을 기억하며 그 은덕을 경험합니다. 14절, "때가 이르매"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임무를 완수하실 때가 이르렀음을 암시합니다. 예수님은 그날 밤에 잡히시고 다음 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십니다. 그래서 16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곧, 유월절로 상징되는 예수님의 구속 사역이 재림으로 완성되기까지 제자들과 다시 식사하지 못할 것이라 하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나누신 17-20절의 유월절 식사는 교회의 표지 중 하나인 성만찬의 기원이 됩니다.
떡은 우리를 위해 찢기신 예수님의 몸을, 잔은 예수님이 흘리신 피를 상징합니다. 바울은 주님으로부터 성찬에 관한 지식을 받았다고 고린도전서 11장 23-26절에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19절, 성탄의 떡은 예수님을 기억하게 합니다. 그 안에는 에수님을 통해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 있고, 본받고 따라야 할 예수님의 삶이 들어 있으며,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찢기신 예수님의 몸이 들어 있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자들이 장차 참여하게 될 천국 잔치의 약속이 들어 있습니다.


에수님을 파는 사람(21-23절).
올바른 기억과 기념은 신앙을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 사랑의 증표 앞에서 우리 믿음은 더욱 굳건히 자랍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식사에서 나누신 떡과 잔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다시 한번 되새기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성찬 예식을 통해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은 무엇일지 깊이 묵상합시다.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라도 주님의 자녀가 아닐 수 있습니다. 21절,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라는 에수님의 말씀은 주님의 식사(성찬)에 참여했다고 해서
모두가 구원받는 것이 아님을 시사합니다. 가룟 유다는 스승을 배신하는 악한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배신의 죄조차 그분의 작정(구원 역사)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가룟 유다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예수님을 팔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죄가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배반해 넘겨준 가룟 유다에게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쓰임 받는 과정에서 악역이 아닌 선한 일에 쓰임 받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날 하나님께 쓰임 받는 과정에서 선한 역할을 하도록 우리가 멀리할 죄는 무엇인지 묵상합시다.


"주님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주님! 제자들과 한 가족을 이루기 원하시는 주님 마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자신을 팔아넘길 자를 위해서도 새 언약을 선포하시며 회개의 기회를 주신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지요. 주님의 살과 피를 나눈 지체들이 주님의 몸 된 교회 공동체를 떠나지 않게 하시옵소서. 우리가 사순절 기간을 지내는 동안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을 묵상하게 하시며, 우리를 향한 끝없는 주님의 사랑을 뜨겁게 경험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쪼개고 나누는 삶


살면서 단 한 번도 해외 선교를 삶의 방향으로 품어 본 적 없었던 저희 부부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다 보니 어느새 케냐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열심히 배우고 익힌 박사 학위를 취득하자마자 말입니다. 처음 선교지에서 받은 것은 뜻밖에도 환대가 아니라 홀대였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저희 능력으로는 삶을 감사와 연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조금씩 삶을 쪼개어 가며 저희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많지 않아도 저희가 가진 것을 현지인들과 나누며 예수님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몸을 상징하는 떡을 "가지고, 감사하고, 쪼개고, 나누는 것"을 몸소 보여주신 후 그분이 맞이하신 것은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감사한 후에 자기 몸을 쪼개 버리셨습니다. 엄청난 고난과 아픔, 그리고 온몸이 찢기는 현실을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어둡고 힘든 삶의 현실을 받아들이거나 인정하길 꺼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보며 우리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삶의 아픔과 비극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예수님의 온전한 구원과 회복이 낭만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온전한 자신의 몸을 찢으심으로써 우리 마음을 만지십니다. 우리도 그와 같이 행하여 그리스도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야 합니다.(일상 성찬/ 주종훈, 이상예 선교사)

 

생각 다스리기

생각을 다스릴 수만 있다면..


땅바닥에 폭이 1m인 널빤지가 길게 깔려 있습니다. 그 널빤지 위를 걸어가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일한 널빤지가 100m 높이에 걸려 있다면, 그 위를 태연하게 걸어갈 수 있는 살마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바닥에 바짝 엎드려 기어가거나, 아니면 꼼짝도 못 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마음속에 "여기서 떨어지면 끝장이다!" 하는 생각이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나는 괜찮아. 절대로 떨어지지 않아. 나는 여기를 걸어갈 수 있어!"라고 생각을 해도 그는 여전히 몸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여기서 떨어지면 죽는다"라는 생각이 "나는 걸아갈 수 있다"라는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깊게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두 가지 혹은 여러 가지의 생각들이 서로 싸울 때 가장 강한 생각이 그 사람의 행동을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약하고 힘이 없는 생각은 아무리 많아도 그 반대가 되는 하나의 상한 생각에 떠밀려 그 사람에게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이것이 수많은 사람들이 죄와 싸우기 원하고, 치열하게 싸우다가도 결국 그 유혹에 넘어지곤 하는 이유입니다.
즉, 그는 여러 가지의 의로운 생각이 있지만, 죄의 즐거움에 대한, 쾌락에 대한 강렬한 소원 때문에 그의 의로운 생각은 힘없이 밀려나고 마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으로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의로운 생각은 잠시 흐느껴 울겠지만 다시 전열을 정비해서 죄의 쾌락과 싸울 것입니다. 육의 쾌락은 순간적으로는 강렬하지만 잠시 후면 소멸되기 때문에, 의의 생각은 다시 일전을 벼르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승리의 고지를 탈환할 수도 있고, 아예 여러 번의 패배 끝에 영영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그 생각의 주인이 어느 쪽에 힘을 더
실어 주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둘째, 의식의 표면에 있는 생각보다 의식의 깊은 곳에 스며들어 있는 생각이, 평범한 생각보다 강렬한 생각이 훨씬 더 많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겉으로는 아무리 이것을 하기 원해도 깊은 속에서 그 반대의 것을 원하면, 그는 도저히 겉의 생각대로 살 수 없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겉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사랑하고 있는 것 같지만, 깊은 속의 생각으로는 자기를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죄악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승리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이라는 것이 현실입니다.
순전히 이론이기는 하지만, 100m 높이의 널빤지 길 위에서 벌벌 떨고 있는 사람. 만약 그가 자기의 생각을 다스릴 수 있다면, 그의 두려움을 다스릴 수 있다면, 그는 당당하게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우리 속의 모든 생각들을 발견하고, 치유하며, 다스리고,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우리는 점점 자유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을 토한 것과 같이 우리는 원치 않는 행동을 하며 자신을 바꿀 수가 없어서 괴로워하고 좌절합니다. 그 모든 것들은 우리가 생각을 다스릴 수 없고 오히려
생각과 욕망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다스릴 수 있다면 우리는 자유인이며, 생각을 다스릴 수 없다면 우리는 노예요, 로봇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을 다스려야 합니다. 생각을 알아야 합니다. 생각의 능력을 생각의 성향을, 생각의 싸움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묶여 있는지, 해방의 감격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우리는 알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생각의 투쟁을 시작하십시오.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십시오. 투쟁하고 기도하고 공부한 만큼 우리는 자유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부터 저와 함께 시작합시다!

기도의 횃불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심!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 찬양을 드릴 때, 우리의 입술이 기뻐 외치며, 주님께서 속량해 주셨음을 즐거워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게 하시며, 이 믿음을 순종의 행실로 나타내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주셨음을 믿습니다.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에서 건져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음을 믿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하신지 너무나 놀랍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주셨음을 믿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라고 선언해 주셨습니다. 흑암의 권세에서 빼내어 주님의 품으로 옮겨 주셨으니 세상이 우리를 유혹하지 못하고, 사탄이 우리를 끌어당기지 못함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왕이신 그 나라의 백성으로 삼아 주셨으니 왕 되신 주님께 찬양을 드리며, 주님은 우리의 왕이시고, 우리는 주님의 백성임을 고백하며 나아갑니다. 우리가 지내고 있는 매일, 매일의 삶에서 주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우리는 주님의 백성이 되어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짐을 믿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주셨으니, 이제 우리에게는 그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소유되어 지내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권세와 나라를 날마다 찬양하며, 감사함으로 지내게 하옵소서. 어느 날에 주님께서 다시 오실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심령이 깨어서 주님께서 원하시던 경건과 의와 사랑의 생활을 기쁘게 살아내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는 증거로 오늘도 의롭고 거룩한 생활, 서로 사랑함을 실천하는 생활을 이어가기를 소망합니다!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랑의 노래

복음 쪽지~㉾

행복이 주인 되는 삶..!


우리 시대에 행복이 주인 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행복하기 위해 하나님을 찾기도 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할 수 있게 해 주는 도구로 취급됩니다. 우리가 행복해지려는 열망과 행복해질 권리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지 않고서는, 우리는 진정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권리로 여기던 무엇인가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진짜 행복을 얻었다는 증거이자 우리가 성장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주지 않고 기다리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훈련되고 성장해야 하기 때문이며,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