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핵심 진리 86-성령의 열매
성령의 열매는 성화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가운데 안타깝게도 가장 무시되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외적인 것에 몰두함입니다. 학생들은 시험을 앞두고 교실 안에서 웅성거리고 투덜거리면서도 정말로 시험을 치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시험은 기술과 성취도와 지식을 측정하는 공정한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몇 등급이 되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역시 외적 기준으로 성취한 것들을 가늠해 봄으로써 자신의 진보를 측정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악담을 하고 술을 마시고 영화를 보는 등의 기준이 종종 영성을 측정하는 기준으로 상용됩니다. 진정한 기준(성령의 열매)은 때로 무시되고 최소화됩니다. 이것이 바로 바리새인들이 걸려든 덫입니다. 성령의 열매가 다소 모호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진정한 기준으로부터 뒷걸음질합니다. 이것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들보다 인간의 성품에 요구하는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즉 경건한 인내를 갖는 것보다 악담하는 입을 다무는 것이 훨씬 더 쉽습니다. 둘째는, 은사에 몰두함입니다. 우리를 거룩함으로 이끄시고 우리 안에 열매를 맺게 하시는 성령님은
성도들에게 영적 은사를 주십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했을 때도 은사를 받을 수 있다는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령의 열매보다 은사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고린도에 보낸 바울의 서신에서 이점을 충분히,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의로운 불신자들입니다. 성령의 열매에 있는 덕목들이 비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더욱 많이 나타날 때, 우리는 성령의 열매로 성화의 진보를 측정하는데 좌절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보다도 더 훌륭한 온화함과 인내를 보여주는 비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성령님과 관계없이 "성령의 열매"를 가질 수 있다면 어떻게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의 영적 성장을 측정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생기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등의 덕목들과 비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주는 덕목들 사이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비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행복을 찾는(이기적인) 동기에서 이러한 것들을 행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열매를 나타낼 때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향한 성품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다는 것의 의미는 그의 삶이
성령에 의하여 통제된다는 말입니다. 비 그리스도인들은 단지 이러한 영적 덕목을 인간 능력의 한계만큼만 보여줄 따름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성령의 열매를 이야기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라디아서 5:22-23). 이러한 덕목은 그리스도의 삶을 특징짓습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다면 성령의 열매를 드러낼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성향을 다시 만드는 일이 포함됩니다. 성령에 의한, 평생의 성화의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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