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가정교회를 말하다

가정교회의 변천과 종말③

예림의집 2022. 2. 24. 10:41

가정교회의 변천과 종말③

 

여기서 주목할 것은 교회가 개조된 가정집이나 또는 다른 독립된 건물을 소유하고서부터 "교회"라는 용어가 건물에도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앞에서 언급된 어제 언급한 위경 클레멘티네스의 Recognitiones과 유세비우스의 교회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심지어 유세비우스는 312년 두로에 세워진 교회당 봉헌 설교에서 그 교회당을 이스라엘의 성전에 비유했습니다. 바울 서신에서는 그 용어가 하나도 예외 없이 교인들의 모임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실 신약성경 시대에는 독립적인 교회 건물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의 밀라노 칙령에 의한 기독교의 공인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교회당 건축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공인 당시 로마 제국 안의 그리스도인의 인구는 약 10% 정도로 추산되나, 그 수는 곧 크게 증가했습니다. 4세가 초 콘스탄티누스의 전임자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시대 동안의 교회당들이 파괴와 기독교 공인 이후의 그리스도인들의 수적 증가로 인하여, 교회는 새로운 교회당을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이 교회당은 소위 "바실리카"라고 불리는 직사각형의 건물로, 한 지역의 교회 또는 대도시의 한 구역의 교회 전체를

포함하기에 충분한 큰 건물이었습니다. 바실리카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는데, 그것들은 사각형 형태의 입구인 아트리움, 회중석, 그리고 성직자의 좌석이 있는 성소입니다. 이런 교회당의 출현과 함께 교회는 그때까지 존재했던 가족적인 가정 공동체의 교회 구조를 완전히 포기하게 됩니다. 예배 의식도 일부 궁중 의식을 받아들여 더 장엄하고 더 고정화되고 더 제사장적인 특징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이제 교회의 삶은 많은 점에서 대규모였으나 추상적이기도 했습니다. 친밀하고 가족적이고 실제적인 교회의 삶은 상실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