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가정교회를 말하다

가정교회의 사회적 상황③​

예림의집 2022. 2. 8. 08:07

가정교회의 사회적 상황③

어제에 이어서, 가정교회가 수적으로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더 작은 그룹들로 나누어졌습니다. 그런데 모든 교회들이 함께 예배하기를 원하면, 다른 집의 더 큰 방이나 안뜰에서 전체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러한 "온 교회"의 수는 고대 로마의 집의 크기와 그리고 고린도전서와 로마서와 사도행전에 나타난 고린도 교회의 인물 정보를 고려할 때 약 50-100명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온 교회"의 회합은 아마도 자발적으로 한 달에 한 번 정도 있었을 것입니다. 작은 가정교회들은 서로 구분된 공동체를 형성했지만, "온 교회"의 일부로 생각했습니다.

작은 가정교회들과 "온 교회" 사이의 이러한 교류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이미 이것을 안디옥에서 경험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11절 이하에 나타나는 안디옥 사건 당시, 안디옥에는 적어도 두 개의 가정교회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는 이방인 그리스도인 중심의 교회였고, 다른 하나는 유대인 그리스도인 중심의 교회였습니다. 야고보에게서 어떤 자들이 오기 전에, 베드로는 이방인 형제들과 함께 식탁 교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야고보의 사람들이 도착하면서, 베드로에게 모세의 음식법을 준수하라고 압력을 가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그 자리를 떠나 유대인 그룹으로 이동했습니다. 이것은 이방인 그룹과의 관계 단절을 의미했습니다. 이 문제는 전체 모임(온 교회)에서 논의되었습니다. 바울은 베드로를 "모든 자 앞에서" 책망했던 것입니다(갈라디아서 2:14). 가정교회의 내적 구조는 당시 가족 구조와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고대 헬라 세계의 가족에는 직계 가족만이 아니라, 노예, 해방된 노예, 고용된 노동자 동업자, 소작인, 가신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교회의 집주인은 가정교회 안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여자들은 남성 우월적인 외부 사회에서보다는

가정에서 더 많은 독립을 누렸기 때문에, 가정교회 안에서 자신들의 재능을 발전시킬 수 있는 자유를 더 많이 향유했습니다. 노예들은 일반적으로 주인의 재산으로 여겨졌지만, 그리스도인 노예들은 주인으로부터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다른 가정교회를 방문했을 때, 자신의 계급과 상관없이 누구든지, 심지어 노예 일지라도 환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교회 안에는 어떤 사회 계층이 있었을까요? 이 점에 대하여 우리에게 가장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는 교회는 역시 고린도 교회입니다. 당시의 계급에 대해선 내일 나누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