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470번째 이야기
거룩한 배짱..! 제가 내려놓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바로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의도하지 않는 나의 삶은 하나님의 의도를 따라서 나아갈 것이라고 하는 신뢰요, 내가 비우면 하나님이 채우실 것이라고 하는 거룩한 배짱입니다! 내려놓음을 통한 깨달음은, 사람들의 시선이나 평가가 두려워 거기에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만 인정을 받으면 나머지는 그분이 움직이신다는 사실입니다. 2021년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내려놓았을까요? 새해는 더욱더 내려놓음으로 시작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
인생은 ‘한 방’이 아니라, ‘단 한 번’입니다! 승강기에서 원하는 층수를 누르면 자동으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긍정적 버튼(P 버튼)을 누르면 "긍정"의 층으로 가지만, 부정적 버튼(N 버튼)을 누르면 "부정"의 층으로 갑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긍정 버튼보다 부정 버튼을 더 자주 누르고 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더니.” “내 이럴 줄 알았어. 잘 풀리는 게 이상하지.” “열심히 하면 뭐해.” 부정 버튼을 자주 누를수록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야박해짐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은 사람이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전 마른 몸매가 아니잖아요!” 남자들이 원래 표준체중보다 3~4㎏ 더 무거운 몸매를 선호한다고 말해봐야 소용없습니다. “저는 불행하려고 태어난 사람 같아요!” 정말 그런가요? 특별히 "나는 불행하다"라고 생각할 만한 경험이 있었는가요? 노숙자로 태어난 "카디자"도 자신의 삶에 불행이라는 낙인을 찍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도 딱히 불행한 이유는 없는 것 아닐까요? "자기 암시"는 그 영향력이 엄청납니다. 계속 자신을 비난하다 보면 부정적인 생각이 반복 재생되고, 비난 메시지가 "자동화 사고(思考, 생각)"로 이어집니다. 이 같은 자동화 사고는 우울증의 뿌리가 됩니다. 왜 자신을 혐오하고 비난하나요? 당신은 이미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삶은 생각하는 대로 굴러가게 마련입니다. 제발, 자기 자신에 대한 비난 메시지를 떨쳐내시기 바랍니다. 스스로 자기 인생에 낙인을 찍을 필요는 없습니다. 인생은 "한 방"이 아니라, "단 한 번"입니다. 노숙자로 태어난 카디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나쁜 환경을 극복하고, 주변 사람들의 나쁜 주문에도 전혀 길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런 당당함으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최고의 걸작품입니다!(유은정 박사) 그렇습니다. 새해에는 매일 언제나 "긍정 버튼"만을 누르시기 바랍니다. 혹시 곤란한 상황에 처할지라도 좋으신 우리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긍정 버튼을 계속 누르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어려운 문제와 시련과 곤경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그땐, 다시 긍정 버튼을 누르시고 고쳐서 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성령님이 내주하십니다. 자신을 내려놓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겨놓는 새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아무쪼록 행복하고 아름다운 2022년 새해가 되길 두 손 모아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
기독교의 핵심 진리 58-선택과 유기② 오늘은 "선택과 유기"에 대한 성경적 고찰입니다. 이 문제는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굳게 하셨다는 것과 같은 성경의 언급과 연결됩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굳게 하셨다는 성경의 기록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바로의 마음을 굳게 하셨냐는 것입니다. 루터는 적극적으로 마음을 굳게 하셨다기보다는 소극적으로 그렇게 하셨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하나님은 바로의 마음속에 새로운 악을 창조해 넣으신 것이 아닙니다. 바로의 마음속에는 이미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을 반대할 만한 충분한 악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누군가의 마음을 굳게 하시기 위해 하실 일은 오직 그들로부터 죄악을 누그러뜨리는 은혜를 거두시고 그들이 자기 자신의 악한 충동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시는 것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지옥의 저주받은 자들에게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그들 자신의 사악함 가운데 버려두십니다. 또 하나님이 어떤 의미에서 에서를 미워하셨는지에 대한 문제를 푸는 두 가지 설명이 있습니다. 첫 번째 설명은 하나님의 미움이 에서를 향한 부정적인 감정이 아닌, 단순히 구속의 사랑이 없는 상태라고 정의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이 야곱을 "사랑하셨다."라는 것도 다만 공로 없이 은혜받은 자가 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즉 야곱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 증거는 야곱의 행적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교활하고, 교만했던 자인지를 말입니다. 그리고 에서는 야곱과 같은 은혜를 받지 못했습니다. 성경에서 에서의 행적을 살펴보면, 오히려 의젓하고, 아량이 있는 모습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에서가 하나님의 미움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두 번째 설명은 하나님이 실제로 에서를 미워하셨다는 것입니다. "에서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스러운 자였다. 에서에게는 하나님 보시기에 사랑하실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에서는 멸망을 담기에 적합한 그릇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와 거룩한 미워하심을 받을 만했다." 이 두 가지 설명 중 어느 것을 선택하지는 우리 각자의 몫입니다. 저는 이 두 가지 주장 중에 전자에 찬성합니다. 하나님의 그 깊은 뜻을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에서가 아니라 야곱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에서를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그도 하나님의 복을 받았으니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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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최종 판결, 아름다운 회복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이전에 알던 이들이 다 와서 그의 집에서 그와 함께 음식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케쉬타 하나씩과 금 고리 하나씩을 주었더라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니 모든 땅에서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그들의 오라비들처럼 기업을 주었더라 그 후에 욥이 백사십 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 대를 보았고 욥이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더라"(욥기 42장 7-17절). 함께 읽은 11절, "케쉬타"는 고대에 사용되었던 화폐 또는 종량의 단위로, 그 가치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12절, "겨리"는 소 두 마리가 짝이 되어 끄는 쟁기를 말합니다. 여기서는 "둘"을 나타내는 수사로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친구들을 책망하시고, 욥에게는 그들을 위해 번제를 드리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이전보다 더 큰 복을 주십니다. 욥의 형제자매와 지인들이 와서 함께 음식을 먹고 위로하며 재물을 나눕니다. 욥을 7남 3녀를 다시 두고, 140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4대를 봅니다. 하나님의 판결(7-9절). 욥과 친구들의 최종 판결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7절, 욥의 친구들에게 노하시고 그들의 말이 욥의 말처럼 "옳지 못하다"라고 평가하십니다. 친구들이 행위 화복 관계의 일치성을 기계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욥의 고난은 욥의 죄악의 결과입니다(4:7-9, 22:4-5). 친구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느라 욥의 현실을 도외시했고, 하나님의 높으신 경륜을 인간의 "신앙과 교리"로 제한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욥을 자신의 종이라고 7-8에서 네 번이나 부르십니다. 욥기 서막에서는 1장 8절과 2장 3절, 두 번 욥을 내 종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욥이 하나님께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현실 속에서도 문제 해결의 "유일한 가능성"인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그분을 향해 항변하며 탄식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인생의 문제를 하나님에게서 찾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인내하는 자는 복됩니다. 욥의 고난과 인내, 그리고 주님께서 주신 그 결말이 이를 증언합니다. 오늘날 우리도 남을 판단하며 살기 쉽습니다. 우리의 신념으로 누군가를 판단한다면 훗날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평가하실지 묵상합시다. 욥의 회복(10-17절). 욥의 회복에는 행복한 결말 이상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첫째, 중보 기도자의 삶을 보여 줍니다. 욥이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자 10절, 하나님은 욥을 곤경에서 돌이키시고 갑절의 복을 주십니다. 둘째, 관계 회복이 물질 회복에 우선합니다. 형제자매와 지인들이 그를 찾아와 위로한 일은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명예 회복과 더불어 이웃과의 관계 회복을 의미합니다. 이때 아내도 돌아왔을 것입니다. 셋째, 15절, 아들뿐 아니라 딸에게도 동등하게 기업을 나누어 주었는데, 이는 양성평등을 실천하는 모습입니다. 온전한 회복과 은혜가 임하면 과거의 모든 상처는 눈 녹듯 사라집니다. 하나님이 욥에게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다시 주시고 이전보다 더 큰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아픈 상처를 깨끗이 덮고도 남습니다. 은혜밖에 있는 사람은 과거에 매여 상처를 묵상하지만, 은혜 안에 있는 사람은 매 순간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합니다. 우리는 이미 은혜 안에 있습니다. 욥은 단순한 회복에 그치지 않고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회복된 욥의 삶에 나타나는 특징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회복 차원에 머물지 않고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소망합니까?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셔서 지켜주시고, 회복시키시고, 변화시키시는 하나님 아버지, 욥의 회개와 중보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명예와 관계와 일상을 회복시켜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내 인생의 밤은 왜 이리도 길까!'라고 탄식하던 자리에서 일어서겠습니다. 새 일을 행하시고 사랑의 마음으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소망함으로 새날을 맞이하게 하시옵소서. 새로 맞는 2022년에도 우리와 함께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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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의 문제 2017년 타계한 미국의 세계적으로 저명한 여성 지도자 바버라 존슨은 원래 평범한 가정주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갑자기 뇌종양이 생기고, 남편은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고, 첫째 아들은 음주운전을 한 트럭에 치여 그만 사망하고 맙니다. 줄째 아들은 동성애에 빠져 집을 나가고, 베트남 전쟁 파병군으로 자원입대한 18세의 막내아들은 전장에서 전사하고 맙니다. 연속되는 절망 속에서 그녀는 하나님을 붙들었고, <자신이 가장 고통 중에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라는 책을 씁니다. 이후에 이 책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책 속에서 그녀는 고통과 절망의 문제는 상황도 환경도 아닌, 자기 관점의 문제라고 강조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문제가 있지만, 그 문제의 뿌리는 결국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문제, 다른 하나는 나 자신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곳에서 해답을 찾으려 하지만, 문제의 크기와 모양은 다 달라도 모든 문제의 핵심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자기 자신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갖게 되면 우리의 삶에 형통은 아니더라도 힘이 생깁니다. 그리고 자신을 말씀과 기도로 영적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가 칼뱅은 <기독교강요> 첫 장에서 "참된 지식이란 하나님을 아는 것과 나를 아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말씀을 통해 나의 문제가 드러날 때, 우리는 하나님 방법으로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되는 우리 개인 속의 깊은 영역으로 주님을 초청할 때, 주님은 우리의 주관자가 되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병에 물이나 모래가 가득 들어 있다면 다른 것을 넣을 수 없지만, 비울 때에 비로소 우리 안에 내주 하시는 성령님께서 역사하십니다.(장창수 목사). ![]() |
실제적 고려 사항: 가정교회의 운영⑭ 오늘은 지속적인 가정교회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가정교회 네트워크"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몸 안의 각각의 세포(셀)는 혼자서는 오래 유지될 수 없고 다른 셀과의 연계가 없다면 결국은 죽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정교회가 함께 기도하고 계획하며 사역하는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가정교회가 고립과 독립 그리고 내부로 몰입하는 것만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단지 하나의 색다른 유행을 남을 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도시와 지역 그리고 나라에 영향을 기치는 진정한 운동이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교회는 생존을 위해서도 필연적으로 서로 연합해야만 합니다. 연합은 가정교회의 숙명입니다. 가정교회가 고립되거나 독립적으로 활동하기보다 서로 연계되어야만 하는 다섯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성경적 모범"입니다. 초기 교회는 그들의 지역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응집하고 단결된 모임으로 활동했는데 이유는 그들이 간직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라는 "연합의 신학" 때문이었습니다. 둘째, "인간 사회학" 측면입니다. 우리에게는 특정 지역의 가정교회뿐 아니라 나아가 더 큰 어딘가에 속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역적인 연합체와 세계적인 연합체에 속해 있고 우리의 이웃뿐 아니라 전 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음을 깨닫는 것은 참으로 흥분되는 일입니다. 셋째, "사회적 필요"입니다. 개별적이고 고립된 가정교회는 내부적으로만 자라는 경향이 있으며, 구성원들의 모든 사회적 욕구를 채워주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결혼을 원하는 독신자, 함께 어울릴 친구를 찾는 십 대 및 어린 자녀들 등의 욕구를 채워주기 힘듭니다. 그러나 보다 많은 가정교회가 안정적으로 모이고 네트워크가 형성될 수 있다면 이러한 필요를 채워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 "팀 사역의 유익"을 줍니다. 여러 가정교회가 연합하여 힘을 모으면 가정교회 운동을 더욱 촉진시킬 수 있습니다. 홀로 고립된 가정교회는 비전과 자원의 부족으로 인해 필요한 동력을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섯째, "교리와 행동이 보전"입니다. 고립된 가정교회는 이단이나 특정 분파에 빠져들기가 쉽습니다.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거나 개인을 숭배하는 경향을 띠거나 또는 사람들을 함부로 다루는 가정교회라면 아무리 많아지더라도 긍정적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이러한 모습을 기뻐하지 않으시면, 가정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이럴 때 가정교회끼리 소통하는 네트워크는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핵심 가르침이 존중되고 건전한 방향으로 적용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무엇보다 연합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고, 또한 건전성과 안정성을 담보하려 한다면 가정교회들로 구성된 네트워크에 속하는 것이 더욱 필요합니다. 가정교회 네트워크에는 지역 단위, 그보다 넓은 지방 단위 그리고 전국 단위로 확대되는 3단계가 있습니다. 가정교회 네트워크가 어떻게 하면 보다 성경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더욱 깊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 |
빛을 비추는 새해가 되게 하소서!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새해를 맞이하며 저희의 방송을 통해서 주님을 향하게 하시기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저희들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것은 특권 중의 특권임을 믿습니다. 이 복된 예배의 자리를 언제나 사랑하고, 언제나 기다리며, 언제나 기대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게 하시옵소서. 주님! 오늘 저희들이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이 복된 자리로 이끌림을 받았지만 지난 한 해를 돌아볼 때, 깨끗하지 못한 모습이 많았음을 참으로 부끄럽게 생각됩니다. 주님 우리의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허물과 잘못을 겸손히 주님의 보좌 앞에 내려놓습니다. 생명 싸개로 싸매시고, 만만의 강수 같은 주님의 긍휼하심을 덧입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새해를 맞이하여 특별히 주님의 몸 된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교회가 갈수록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세상의 빛이 되어야만 할 교회가 은혜의 빛, 복음의 빛, 사명의 빛을 잃지 않고 새해에는 더욱 밝고 힘차게 비치게 하시옵소서. 주님! 다시금 개어 경성할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시고, 세상에 빛을 영롱히 비추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코로나19로 인하여 어렵고 힘든 이때에 이웃을 더욱 헤아려 나갈 수 있게 하시고, 그들의 영혼을 위해서도 눈물을 쏟으며 기도할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시옵소서. 또한 세계 선교를 위하여 물질을 깨뜨려 선교하는 일에 동참할 수 있게 하시고, 선교 현장의 일선에서 몸을 깨뜨려 희생하고 있는 선교사님들을 위하여 기도로 도울 수 있는 사역자가 되게 하시옵소서. 세상에 빛을 비추는 사명을 받은 모든 이들이 그 빛을 밝게 비추어 어둠을 깨고 많은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게 하시옵소서. 예림의집TV 또한 빛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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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건물을 세우는 것..! 회개는 낡은 건물을 뜯어고치는 것이 아니라 전부 허물고 새로운 건물을 세우는 것입니다. 헌 옷에 거룩함의 헝겊 조각을 덧대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을 우리의 모든 능력과 원칙과 실제 삶 속에 짜 넣는 것입니다. 회개는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회개는 새로운 세상에 살아갈 새로운 사람을 만들어내며, 사람의 마음과 몸과 삶 전체의 행동들을 변화시킵니다. 전에는 자신의 영적 상태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지 못했던 사람이 회개한 후에는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게 됩니다.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아는 것에서 시작합시다! ![]()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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