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468번째 이야기
하나님께 속한 삶..! 이루어놓은 것이 많고 채울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내려놓음"이 어려워집니다. 하지만 내려놓으며 돌진하는 속력을 줄이고, 비우고 또 비워내는 것이 하나님께 속한 삶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몰라 갈팡질팡하는 이들,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이들,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내 형편에 맞춰 들으려는 이들이라면, 먼저 내려놓아야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내 의지대로 무언가를 결정하고 행동하고 싶은 욕구들이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때가 자신을 내려놓아야 할 때입니다. ![]() |
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조선 관리 중에 "이문원"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릴 적에 유명한 정승 "이천보"의 양아들이 되었습니다. 하루는 이천보가 퇴청하고 보니, 창문의 유리가 깨지고 그 자리는 종이로 가려져 있었습니다. 이문원의 짓이라 여기고 꾸짖자, 그가 말했습니다. “아버지, 이제 유리를 붙이지 마십시오. 아까 밖을 내다보니, 어느 하인이 광에서 쌀가마니를 몰래 지고 나가는 것을 봤습니다. 아버지가 이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실 듯싶어서 유리창을 깨뜨리고 가려버렸습니다.” 아버지가 분노해서 범인이 누군지 묻자, 아들은 고개를 저으며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아실 필요 없습니다. 만일 알게 되면, 그를 볼 때마다 ‘저 도둑놈!’하고 생각하실 텐데, 마음만 불편하지 않겠습니까?” 그 뒤로, 아버지 이천보는 아들 이문원이 공부하지 않더라도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주변에서 아들에 대한 걱정을 하면, 아버지는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글이란 행실을 닦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다. 우리 아들이 글을 잘 쓰지 못할망정 행실만은 바른길로 갈 테니, 걱정 말게!” 이천보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히자, 임금에게 "세자를 용서하라!"라고 탄원하면서 스스로 세상을 떴습니다. 왕이 된 "정조"는 이천보의 은덕을 잊지 않고 아들 이문원을 궁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좋은 자리를 마련하여 그가 마음껏 자신의 뜻을 펼치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어느 해, 이문원과 절친한 "송환억"이 역모 죄를 뒤집어썼습니다. 그에게 일곱 살 난 딸이 있었는데, 역모 죄인의 자식이므로 노비가 될 처지였습니다. 이문원 또한 몸을 사려야 할 판이었습니다. 이문원은 친구가 갇힌 의금부로 향했습니다. 의금부 관리들이 가로막았으나, 그는 인사차 왔다고 들러댄 후 옥 앞에서 외쳤습니다. “환억이 듣게. 자네 딸은 오늘부터 내 며느리일세. 자네에게 약속하니, 마음 놓게나!” 조선왕조 5백 년 동안, 역적으로 몰린 사람과 정혼한 사람은 이문원뿐이었습니다. 정조 임금도 이 사연을 듣고 그 딸을 노비로 삼지 않았습니다.(김보나 기자) 그렇습니다. 조선왕조가 5백 년 동안 계속될 수 있었던 것은 이천보와 이문원과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야말로, 이분들은 ‘정신(精神)’이 살아 있었던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정신’의 ‘정(精)’자는 ‘쌀 미(米)’변에 ‘푸를 청(靑)’을 합친 글자입니다. 방앗간에서 "푸른빛이 날 때까지 깨끗이 빻은 쌀"을 의미합니다. 거기에다, 하나님을 뜻하는 신(神) 자와 합친 것이 ‘정신(精神)’입니다. 요컨대, "정신이 살아있다."라는 말은 "그 생각이 맑고 올바르며 깨끗한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도 말씀으로 올바른 마음을 가집시다! ![]() |
기독교의 핵심 진리 57-예정 예정론만큼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살마들을 당황하게 만든 교리는 없습니다. 때문에 예정론은 대단히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어려운 교리입니다. 사실상 모든 기독교회가 예정론의 교리를 다소 견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에 대해서는 각 교회들이 심하게 불일치를 나타냅니다. 감리교의 관점은 루터교와 다르고, 루터교의 관점은 장로교와 다릅니다. 하지만 각각의 관점은 달라도 모두가 이 어려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아마도 저는 제가 배우고 믿은 바 대로 설명하지 않을 수 없음을 감안해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예정론이 의미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은, "천국이든 지옥이든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지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에 의해 결정되었다"라는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우리가 존재하기도 전인 영원 전부터 하나님은 인류 가운데 어떤 자들은 구원하시기로 결정하셨고, 나머지는 멸망하도록 내버려 두셨다는 말입니다. 즉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은 구원하셔서 하늘의 영원한 복락 가운데 있게 하시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과에 따라 지옥의 영원한 형벌 가운데 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고수하는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그러한 선택이 하나님의 예지(豫知)에 기초한다고 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택할 자들이 누구인지 아시고 그들을 선택하여 영생을 주십니다. 이것을 예정의 선견적(prescient) 관점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결정과 행동을 미리 아신다는 점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좀 더 다른 관점을 제시합니다. 궁극적으로 구원을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는 하나님의 선택이 주권적입니다. 그것은 미리 아신 바 된 인간의 결정이나 반응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결정들이 진실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에서 나온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와 같은 개혁주의 관점은 타락한 인간을 그냥 두면 결코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고수합니다. 인간은 타락한 후에도 여전히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기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을 향한 소원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거듭나지 않는 한,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믿음은 성령님께서 주시는 거룩한 선물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만이 믿음 안에서 복음을 따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합니다. 야곱과 에서의 경우도 자신들이 해 놓은 일이나 앞으로 할 일에 근거하여 선택 여부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정해진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 10-12절과 16절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예정론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선택하여 구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에게는 원하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푸실 권한이 있으십니다. 타락한 인류 중 어떤 이들은 선택이라는 은혜와 자비를 받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간과하시며 그들이 자신의 죄 가운데 있게 하십니다. 선택받지 못한 자들은 처벌을 받을 것입니다. 선택받은 자들은 자비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불의를 당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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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피조물 위에 계신 전능한 창조주 "네가 낚시로 리워야단을 끌어낼 수 있겠느냐 노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있겠느냐 너는 밧줄로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 갈고리로 그 아가미를 꿸 수 있겠느냐 그것이 어찌 네게 계속하여 간청하겠느냐 부드럽게 네게 말하겠느냐 어찌 그것이 너와 계약을 맺고 너는 그를 영원히 종으로 삼겠느냐 네가 어찌 그것을 새를 가지고 놀 듯 하겠으며 네 여종들을 위하여 그것을 매어두겠느냐 어찌 장사꾼들이 그것을 놓고 거래하겠으며 상인들이 그것을 나누어 가지겠느냐 네가 능히 많은 창으로 그 가죽을 찌르거나 작살을 그 머리에 꽂을 수 있겠느냐 네 손을 그것에게 얹어 보라 다시는 싸울 생각을 못하리라 참으로 잡으려는 그의 희망은 헛된 것이니라 그것의 모습을 보기만 해도 그는 기가 꺾이리라 아무도 그것을 격동시킬 만큼 담대하지 못하거든 누가 내게 감히 대항할 수 있겠느냐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하여금 갚게 하겠느냐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 내가 그것의 지체와 그것의 큰 용맹과 늠름한 체구에 대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리라 누가 그것의 겉가죽을 벗기겠으며 그것에게 겹재갈을 물릴 수 있겠느냐 누가 그것의 턱을 벌릴 수 있겠느냐 그의 둥근 이틀은 심히 두렵구나 그의 즐비한 비늘은 그의 자랑이로다 튼튼하게 봉인하듯이 닫혀 있구나 그것들이 서로 달라붙어 있어 바람이 그 사이로 지나가지 못하는구나 서로 이어져 붙었으니 능히 나눌 수도 없구나 그것이 재채기를 한즉 빛을 발하고 그것의 눈은 새벽의 눈꺼풀 빛 같으며 그것의 입에서는 횃불이 나오고 불꽃이 튀어 나오며 그것의 콧구멍에서는 연기가 나오니 마치 갈대를 태울 때에 솥이 끓는 것과 같구나 그의 입김은 숯불을 지피며 그의 입은 불길을 뿜는구나 그것의 힘은 그의 목덜미에 있으니 그 앞에서는 절망만 감돌 뿐이구나 그것의 살껍질은 서로 밀착되어 탄탄하며 움직이지 않는구나 그것의 가슴은 돌처럼 튼튼하며 맷돌 아래짝 같이 튼튼하구나 그것이 일어나면 용사라도 두려워하며 달아나리라 칼이 그에게 꽂혀도 소용이 없고 창이나 투창이나 화살촉도 꽂히지 못하는구나 그것이 쇠를 지푸라기 같이, 놋을 썩은 나무 같이 여기니 화살이라도 그것을 물리치지 못하겠고 물맷돌도 그것에게는 겨 같이 되는구나 그것은 몽둥이도 지푸라기 같이 여기고 창이 날아오는 소리를 우습게 여기며 그것의 아래쪽에는 날카로운 토기 조각 같은 것이 달려 있고 그것이 지나갈 때는 진흙 바닥에 도리깨로 친 자국을 남기는구나 깊은 물을 솥의 물이 끓음 같게 하며 바다를 기름병 같이 다루는도다 그것의 뒤에서 빛나는 물줄기가 나오니 그는 깊은 바다를 백발로 만드는구나 세상에는 그것과 비할 것이 없으니 그것은 두려움이 없는 것으로 지음 받았구나 그것은 모든 높은 자를 내려다보며 모든 교만한 자들에게 군림하는 왕이니라"(욥기 41장 1-34절). 함께 읽은 본문 1절의 "리워야단"은 거대한 바다 괴수로, 종말론적 관점에서는 혼돈의 세력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거대하고 강력한 생물체로 하나님 외에는 다를 수 없는 존재로 설명되어집니다. 하나님은 리워야단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리워야단을 밧줄이나 갈고리로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입에서는 불길이 나오고, 몸은 돌처럼 튼튼해 창이나 칼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리워야단이 모든 높은 자를 내려다보며 모든 교만한 자에게 군림하는 왕이라고 하십니다. 이 리워야단은 말세를 설명하면서도 나옵니다. 리워야단의 강력한 힘(1-12절). 리워야단도 베헤못과 같이 상징적이고 신화적인 동물입니다. 이사야 27장 1절에서는 "날랜 뱀, 꼬불꼬불한 뱀"으로 묘사됩니다. 리워야단은 욥이 언급한 3장 8절의 "리워야단"이나 7장 12절의 "바다 괴물"에 대한 언급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칠십인역 성경에는 "혼돈의 용"을 가리킨다고 보고 "드라콘(dragon)"으로 번역합니다. 하나님은 수사학적 질문으로 욥이 리워야단에게 할 수 없는 일들을 1-8절에 걸쳐 열거하십니다. 리워야단은 욥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을 능가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입니다. 리워야단은 보기만 해도 기가 꺾이기에 9-12절에서 말한 것처럼 그 누구도 포획할 수 없습니다. 창조 세계 안에 혼돈의 세력을 상징하는 리워야단이 있다는 사실은 인간이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한 섭리입니다. 하나님은 본문을 통해 하나님과 맞서려는 시도의 무모함을 말씀하십니다. 리워야단에게조차 담대히 맞서지 못하는 욥이 감히 하나님을 법정에 세우려는 만용을 부렸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서 인간의 힘을 능가하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피조물을 볼 때 우리는 어떠한 생각을 가져야 할지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리워야단의 특징(13-34절).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 자애로우시다 하여 그분의 위엄과 크심과 영화로우심을 가벼이 여기면 안 됩니다. 왕이신 하나님의 권위에 반역한 것이 아담의 죄였다면, 왕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義)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지만, 지혜로운 자는 만왕의 왕의 위엄을 찬양합니다. 거대한 힘을 가진 리워야단의 외적 모습 또한 놀랍습니다. 무시무시한 이빨이 있고, 눈, 코, 입에서 불꽃이 튀고 연기가 납니다. 리워야단이 일어나면 아무리 강한 용사라도 정신을 일게 됩니다. 칼과 창과 활로도 무용지물입니다. 리워야단이 지나가면 도랑이 파이고 큰 소용돌이가 일어납니다. 그것은 땅 위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고, 두려움을 모르며, 모든 높은 자의 왕처럼 군림합니다. 하나님은 베헤못과 리워야단 같은,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강한 피조물을 언급하시며 그것들을 제어하는 권능이 하나님께만 있다고 하십니다. 이 세상이 혼돈 상황으로 변해 버렸다고 항변하는 욥에게 창조주의 권능은 위로와 깨달음을 주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의지하며 내가 담대히 맞설 일 또는 대상이 무엇이 있는지 깊이 묵상합시다!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는 리워야단도 하나님 손바닥 안에 있는 피조물에 불과함을 깨닫습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세력을 두려워하던 마음이 사라지게 하시옵소서. 그것까지도 능히 제어하시는 통치자 하나님 앞에 경외함으로 순복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연약함을 지적하시고, 오직 하나님만 모든 피조물의 생살여탈권이 있음을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을 높이어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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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답을 갖고 계시기에 코리 텐 붐은 어린 시절 아버지와 나눈 대화를 <주는 나의 피난처>라는 책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어느 글에서 '성범죄'라는 단어를 발견하고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 물었습니다. '아빠, 성범죄가 뭐예요?'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선반 위에 있는 여행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으셨습니다. '코리, 이 가방을 들어 보겠니?' 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가방을 들어 보았습니다. 가방에는 아버지가 아침에 산 시계와 부품들로 가득했습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내가 들 수 없는 무게였습니다. '너무 무거워요!' 내가 말했습니다. '그렇지? 어린 달에게 이런 짐을 들라고 시키는 아버지는 아주 이상한 아버지일 거다. 지식도 마찬가지란다. 어떤 지식은 아이들에게는 너무 무겁단다. 네가 나이가 들고 더 튼튼해지면 그때는 감당할 수 있을 거야. 지금 그저 아빠가 너를 위해 짐을 들 거라고 믿어야 한단다.' 나는 만족했습니다. 내가 하는 모든 어려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아버지가 갖고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습니다."라는 그녀의 글을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어떠해야 할지를 보여주는 매우 의미 있는 대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욥과 같은 상황에 있을 때 고난의 이유를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행하시는 분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행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십시오. 그분의 능력을 믿으십시오.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우리를 능히 건져 내실 것을 믿으십시오. 때때로 우리는 캄캄한 터널을 통과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운전에만 몰두할 수 있는 것은 언젠가 출구가 반드시 나온다는 것입니다.(강준민 목사) ![]() |
실제적 고려 사항: 가정교회의 운영⑫ 오늘은 가정교회의 성장에 대한 두 가지 측면에서 나누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정교회의 성장을 도모하는 주된 방식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기존 그리스도인의 동참에 의한 방식과 비그리스도인들을 전도하는 방식입니다. 두 가지 모두 나름대로의 도전 및 기회와 마주합니다. 먼저 "그리스도인들에게 다가가기"입니다. 가정교회는 전통적인 교회의 주변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이들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교회에서 소외된 사람이거나 새로운 교회를 찾고 있거나 특별히 가정교회를 찾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현재 저의 예림교회는 교회가 설립되고 1년 동안은 저의 현재 집에서 부지런히 본격적인 사역을 위해 준비해 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분들과의 소통이 있었는데요. 예림의집 카페나 블로그, 다양한 SNS나 페이스북, 그리고 예림의집TV 방송을 통해 이 소식을 접하고 관심을 보이는 다양한 방문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가정교회는 단순히 호기심의 대상이거나 새로운 유행에 지나지 않은 반면, 어떤 사람은 진지하게 관심을 보이기도 합니다. 기존 그리스도인들이 가정교회에 동참하는 데 있어 도전이 되는 것이 분명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에 대한 고정관념입니다. 즉 주일예배, 교회 건물, 전임 목회자 등에 대한 생각이 변하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언제쯤 가정교회에 담임 목사를 둘 것이며, 언제 청년부가 시작되고, 언제 건축 프로그램이 시작될지 질문하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시작부터 가정교회의 비전에 대해 분명하게 이해시켜야 합니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기존 그리스도인들이 새로 참여할 경우 일정 수준의 영적 성축도를 갖추고 있으며 또한, 가정교회 성장에 도움이 되는 관계 및 교제권 형성과 역할 분담에 용이하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힙니다. 다음으로, "비그리스도인들에게 다가가기"입니다. 가정교회 성장을 도모하는 또 하나의 방식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을 찾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이 가정교회의 존재 목적이기도 합니다. 이를 위해 전도의 열매가 있을 띠까지 개별적이고 공동체적인 노력을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기울여야 합니다. 첫째 "개인전도"입니다. 가정교회의 기존 구성원들은 각자의 친구와 가족, 이웃과 직장 동료에게 자연스럽고 효과적으로 신앙을 나눌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릉 위한 몇 가지 조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자신이 보다 큰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 곳에 집중하라. ②전도 대상자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라. ③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접근하라. ④질문을 하는 시술을 배우라. ⑤종교적이지 않은 일상 언어로 믿음에 대해 대화를 나누라. ⑥성경의 신뢰성 및 기독교에 관한 여러 예상 질문들에 대해 미리 준비하라. 등입니다. 가정교회의 어떤 구성원들은 아마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나 낯선 사람과 접촉하는 것에 남다른 은사가 있어서 다른 방식으로 추구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역 도서관이나 대학 강의실에서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에 대해 자연스럽게 청중에게 강의를 합니다. 아니면 집집마다 방문을 하는 일도 있는데 이중 후자의 방법은 사생활을 중요시하며 직면하기를 꺼리는 사회,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하여 거리 두기를 하는 이때에는 그리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둘째 "그룹 전도"입니다. 각 가정교회는 이웃을 주요 전도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가능한 모든 관계적, 자연적, 창조적, 실제적 그리고 계획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가정교회가 한 팀으로 친구나 친지 그리고 이웃에게 나아갈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많은 자료가 있습니다. 그룹 전도 방법이 가진 유익 중 하나는 전도하는 데 특별한 은사가 있는 몇 사람이 참여하는 것 대신에 모든 사람이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몇 가지 그룹 전도 방법을 얘기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매월 한 번 저녁 식사에 이웃을 초청하기, 지역 사회가 개최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직접 호스트로 참여하여 운영하기, 복지센터에서 필요한 봉사에 교회 공동체가 참여하기, 노숙자를 위한 프로그램에서 재정을 지원하기, 성경 소개 프로그램 진행하기, 기독교 관련 영화 사영 및 문화 프로그램 운영, 새로운 신자들을 위한 대규모 복음 집회에 공동으로 참여하기, 음치 탈출 프로그램 운영하기 등의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 |
때를 놓치지 않게 하시옵소서! 지극히 자비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얻은 그 영광스러운 무리 중에 들게 하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저희들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 때문인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와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게 된 것도 전적인 주님의 보혈인 것을 믿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거룩함을 입은 무리들과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된 것도 주님의 십자가 보혈 때문인 것을 믿습니다. 깨끗함과 정결한 마음으로 주님께 예배하며 생명의 말씀을 받을 수 있도록 은총을 내려주시옵소서. 이날까지 저희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는 주님! 저희의 삶이 날마다 말씀에 대한 순종과 믿음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하시옵소서. 저희의 말에는 절제와 진실이 있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서는 충성과 근면이 있게 하시옵소서. 저희의 심령 속에는 항상 주님의 사랑이 넘쳐나게 하시고, 저희의 손과 발에는 항상 주님을 높이는 향기가 묻어날 수 있게 하시옵소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고 성장케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힘써서 찾을 수 있는 때를 놓치지 않게 하시고, 더욱 간절함을 가지고 기도에 힘쓸 수 있는 기회를 잃지 않는 신앙의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면 몸을 깨뜨려 봉사하며 충성할 수 있게 하시고,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라면 마음을 다하여 섬기며 희생할 수 있는 신앙의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점점 더 영적으로 부요해지고 믿음의 큰 열매를 맺는 축복의 사람이 되게 하시옵소서. 주님! 저희들은 지금 고난과 역경 속에 코로나19라는 긴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잘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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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삶의 마지막 날..! 당신은 죄를 범해서 이미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였으며, 하나님의 인내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지 못합니다. 올해가 당신 생애의 마지막 해가 될 수도 있으며 오늘이 당신의 삶의 마지막 날일 수도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지금 지옥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기회를 주셔서 "회개하고 살라!"라고 말씀하신다면 그들은 진심으로 기뻐하며 돌아서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기회는 없습니다. 지옥에 있는 죄인들 중에는 회개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는 이가 하나도 없지만, 천국에 있는 모든 성도 중에는 회개한 것을 후회하는 영혼은 한 명도 없습니다! ![]()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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