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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조망: 종교개혁 이후의 운동③

예림의집 2021. 11. 24. 14:10

역사적 조망: 종교개혁 이후의 운동③

우리가 살펴볼 다음 인물은 "잔 드 라바디(1610-1674)"입니다. 1635년 임명된 예수회 사제인 라바디는 1650년까지 가톨릭교회를 개혁하고자 노력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는 가톨릭교회에 대한 헌신을 버리고 개신교 신학자요 신학 교수가 되었고, 그 후 20년간 개신교회를 초기 교회의 사도적 형태로 되돌리고자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완전히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모두가 초기 교회의 단순함으로 돌아가 의식과 예식에서 자유로운 날을 꿈꿨습니다.

암스테르담에서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이러한 급진적인 비전에 기초한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그의 주위로 몰려들었습니다. 홀랜드의 개혁교회들은 특히 라바디가 지지한 즉흥 기도에 대해 반대했습니다. 라바디는 또한 프랑스와 스위스에 "비밀 집회" 또는 "형제애"라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가정 모임에 대한 최초의 "방법론" 책을 썼으며 이를 통해 기도와 찬송, 성경공부, 토론 그리고 자유로운 예언에 대한 매우 실제적인 조언을 주고 있습니다. 라바디는 홀랜드 개혁교회의 권위에 굴복하지 않았고, 벨직 신앙고백에 서명하지 않아 결국 추방당했습니다.

다음 인물은 "조지 폭스(1624-1691년)"입니다. 서로를 친구라고 부르는 "퀘이커 교도"의 설립자인 폭스는 매우 종교적인 가정에서 자랐으며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 영국 전역을 여행하며 기존 교회들의 관행에 대해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었지만 많은 성과는 얻지 못했습니다. 펜들 언덕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환상과 관련된 깊은 영적 체험을 한 후 그는 설교를 통해 빠르게 청중들을 확보해 나갔습니다. 그는 자서전에서 자신의 사명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주 하나님은 영원한 복음과 생명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또한 초기

사도 시대부터 제정된 모든 성전(개념)과 십일조, 성직자들과 세상의 초보로부터 사람들을 벗어나게 해 주기 위해 나를 보내셨다고 그들에게 선포했다. 이런 것들은 초기 사도들이 의지했던 성령과 능력으로부터 벗어난 것들로 세워졌다." 초기의 퀘이커 교도들은 둘씩 짝지어 전 영국과 세계를 순회했으며 사역을 시작한 지 5년 만에 2만 명의 회심자를 얻었고 국가와 종교 권력으로부터 심한 박해도 받았습니다. 퀘이커 교도들은 신자의 삶 가운데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와 각 개인 안의 내적인 빛과 씨앗, 개인적 경건, 성령이 인도하는 열린 교회 모임,

완전한 비폭력주의, 가난한 자와 평범한 노동자의 단결, 양성평등을 강조했고 가톨릭과 개신교의 "뾰족탑 건물"과 성직자 제도에 반대했습니다. 그들은 예배의 신성한 장소와 세속적인 장소 사이의 잘못된 구별을 없애기 위해 실외에서 설교했으며 가정집에서 모였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종파들의 가정교회 운동을 살펴봄으로써 가정교회 운동의 목표점과 위험성, 그리고 우리가 발전시켜할 점과 배격해야 할 점들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들의 이러한 노력들은 옳고 그름을 떠나 오늘날 가정교회 운동의 초석이 될 것임에 의심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