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434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1. 11. 11. 14:06

예림의집 2434번째 이야기

사색의 바다

깨어지지 않는 향유 옥합..!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모습에서 향유 옥합을 본다. 그런데 그 옥합이 내 발 앞에까지는 드려졌지만, 여전히 깨어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으려 하는구나!" 깨어지지 않는 자아, 예수님의 발 앞까지는 갔지만 정작 깨어져야 할 때 깨어지지 않으려는 자존심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흐느낌이 흘러나옵니다. 스스로를 애통해하며 하나님 앞에 다짐하십시오. "하나님, 제 안에서 여전히 깨어지지 않은 부분들을 봅니다. 저의 옥합을 깨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어렵다면, 성령님께서 나를 깨뜨려 달라고 간절히 기도합시다!

 

예림가족 이야기

넌 멋진 엄마야!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 보니, 싱그러운 꽃이 핀 화분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옆집 사는 친구가 두고 간 깜짝 선물이었습니다. 카드를 읽고는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넌 멋진 엄마야, 넌 정말 중요한 일을 하고 있어!” 남편 따라 캐나다에 온 지 6년, 저는 두 아이를 낳고 전업주부가 되었습니다. 집안일은 해도 해도 티가 나지 않고 보상도 없었습니다.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출근하던 예전 모습과 비교하면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자꾸 한숨만 늘고, 한국 고향이 그립고, 내가 지금 뭐 하고 사는지 심적으로 힘들어하고 있었던 때입니다.
선물을 건넨 친구는 캐나다인이지만, 저와 공통점이 많습니다. 일이 바빠서 자주 집을 비우는 남편과 어린 두 아이가 있고, 전업주부입니다. 우리는 자주 미래에 대한 걱정을 나눕니다. “아이가 커서 엄마의 도움이 필요 없을 때,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그때,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집안일을 끝낸 어느 고단한 밤, 고무장갑을 벗어 탈탈 털어 걸어놓은 후, 쓰레기봉투를 질끈 묶어 밖에 쓰레기를 내놓고 서둘러 들어가려다 둘러보니, 깜깜한 골목에서 우리 집과 옆집 부엌만이 나란히 불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남자들을 잘 알까요? 전업주부도 고되다는 것을요.
창문 넘어 부엌에서 일하고 있을 친구에게 말을 겁니다. "난 이제 다 끝났는데, 넌 아직 부엌에서 뭐 하니, 친구야..!" 잠시 그 자리에서 불빛을 봤습니다. 난 혼자가 아니라고, 서로의 빛을 보며 "힘내자!"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와 같은 길을 걸어가는 친구가 곁에 있어서 고맙습니다. 제가 받은 위로와 응원을, 저도 그녀에게 전해봅니다. “그래, 우리는 세상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을 하고 있어!” 그녀에겐 들릴 일이 없지만, 나의 마음을 전하듯 한동안 그녀의 집 창문을 바라도다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따뜻한 집에서는 가족들이 환하게 반겨주었습니다.(문일애) 

그렇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그 나름 다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한 국민을 키워내는 엄마의 역할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으리라고 봅니다. 엄마의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이 있어야, 하나의 국민으로서 온전하게 성장할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물론, 아버지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더더욱 하나님 아버지의 위상(位相)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 49장 15절입니다!

 

단장 칼럼

기독교의 핵심 진리 25-예수님의 신성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는 믿음은 그리스도인에게 필수적인 것일 뿐 아니라 신약의 그리스도 복음에서 극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고 왜곡시키면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직면해왔습니다. 주후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에서 교회는 이단 아리우스파에 맞서 예수님이 "독생하셨으며 피조되지 않으셨고 그 신적 속성은 본질적으로 아버지와 동일하다(homo ousios)"라고 선언했습니다. 이 공의회의 선언은 교회적으로, 교리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니케아 공의회>는 325년,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교리를 정리하기 위해 비티니아(오늘날의 터키) 니케아에서 동서 교회들이 모인 회의입니다. 이 회의로 4명의 아리우스파가 파문당했고 부활제의 시기, 이단자에 대한 세례, 속죄 및 사제 제도 등도 제정했습니다. 이러한 확언은 삼위의 제2위이신 분이 하나님 아버지와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선언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존재"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고백은 신약성경에 나타난 다양한 증거로부터 유추된 것입니다.
성육신한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피조물보다 선재하실 뿐 아니라 영원하십니다. 그리스도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가 곧 하나님이십니다(요한복음 1:1-3). 신약성경의 또 다른 곳에서도, 예수님을 일컬을 때 하나님에 대한 용어와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주"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빌립보서 2:9-11). 인자이신 ㅇ수님은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선언하셨으며(마가복음 2:28), 죄를 사할 권세를 갖고 계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가복음 2:1-12). 또 "영광의 주"로 불리셨습니다(야고보서 2:1).
도마는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한복음 20:28)라고 고백한 것처럼 기꺼이 경배를 받으십니다. 또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한다"라고 말하였으며(골로새 2:9), 예수님이 천사보다 높으신 분이라는 것은 히브리서에서 계속 반복되는 주제입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나는...이다!"라는 말씀도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증거합니다. 주후 5세기, <칼케돈 공의회>에서는 예수님이 "참사람이시며 참하나님"이시라고 선언했습니다. 인간이시며 신이신 예수님의 두 가지 속성에는 혼합, 합동, 분리, 불일치가 없습니다!

 

새찬송가 부르기

 

오늘의 Q.T.

확증 편향성에 항상 주의하라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찌 하나님께 유익하게 하겠느냐 지혜로운 자도 자기에게 유익할 따름이니라 네가 의로운들 전능자에게 무슨 기쁨이 있겠으며 네 행위가 온전한들 그에게 무슨 이익이 되겠느냐 하나님이 너를 책망하시며 너를 심문하심이 너의 경건함 때문이냐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 까닭 없이 형제를 볼모로 잡으며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 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지 아니하였구나 권세 있는 자는 토지를 얻고 존귀한 자는 거기에서 사는구나 너는 과부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며 고아의 팔을 꺾는구나 그러므로 올무들이 너를 둘러 있고 두려움이 갑자기 너를 엄습하며 어둠이 너로 하여금 보지 못하게 하고 홍수가 너를 덮느니라 하나님은 높은 하늘에 계시지 아니하냐 보라 우두머리 별이 얼마나 높은가 그러나 네 말은 하나님이 무엇을 아시며 흑암 중에서 어찌 심판하실 수 있으랴 빽빽한 구름이 그를 가린즉 그가 보지 못하시고 둥근 하늘을 거니실 뿐이라 하는구나 네가 악인이 밟던 옛적 길을 지키려느냐 그들은 때가 이르기 전에 끊겨 버렸고 그들의 터는 강물로 말미암아 함몰되었느니라 그들이 하나님께 말하기를 우리를 떠나소서 하며 또 말하기를 전능자가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실 수 있으랴 하였으나) 하나님이 좋은 것으로 그들의 집에 채우셨느니라 악인의 계획은 나에게서 머니라 의인은 보고 기뻐하고 죄 없는 자는 그들을 비웃기를 우리의 원수가 망하였고 그들의 남은 것을 불이 삼켰느니라 하리라"(욥기 22절 1-20절)


함께 읽은 본문은 앞선 21절의 욥의 대답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다시 반론을 제기한 것입니다. 6절의 "볼모"는 약속 이행을 담보로 상대편에 잡혀 두는 사람을 뜻합니다. 엘리바스는 스스로 의롭다 하는 욥의 죄악을 나열하며 비난합니다. 그는 욥이 권세를 남용하고 과부와 고아를 학대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려움과 홍수가 욥을 덮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악인이 전능자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또 형통할지라도, 결국 하나님이 악인을 심판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엘리바스의 이러한 주장은 욥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추측일 뿐으로 억지스럽습니다.


네 악이 크지 않는냐(1-11절).
맹신은 입증되지 않은 일을 마치 자신이 본 것처럼 말하게 합니다. 엘리바스는 그의 첫 번째 발언에서는 욥의 경건과 신앙을 인정했었습니다. 하지만 본문의 세 번째 발언에서는 욥의 죄악이 그를 현재 고난에 처하게 만들었다고 단정합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당하는 고난이 그 뿌린 죄와 악행의 결과라고 말합니다. 욥이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주지 않고 과부를 빈손으로 돌려보내고 고아의 팔을 꺾었기 때문에 재앙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겪는 고난은 도덕성이나 죄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5절,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라고 단정하면서 욥이 저지를 악행을 6-9절에 걸쳐 확신 있게 열거합니다. 그가 주장하는 이러한 행위는 율법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입니다(출애굽기 22:26-27). 그러나 엘리바스의 진술은 욥의 실제 삶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저 욥의 현재 상황을 토대로 과거 삶을 멋대로 재구성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는 입증되지 않은 추론이자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는 것만 보고자 하는 "확증 편향"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는 것만 보는 경향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일지 묵상합시다.


하나님이 높은데 계시지 않느냐(12-20절).
편견에 사로잡힌 말과 생각은 나와 상대방을 멍들게 합니다. 엘리바스는 하나님이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이 높이 계신 분임을 강조합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증면하고자 욥의 말을 인용합니다. 13-14절, "그러나 네 말은 하나님이 무엇을 아시며 흑암 중에서 어찌 심판하실 수 있으랴 빽빽한 구름이 그를 가린즉 그가 보지 못하시고 둥근 하늘을 거니실 뿐이라 하는구나" 욥에 따르면, 하나님은 너무나 높은 곳에 계셔서 구름 아래에 있는 일을 알지 못하신다는 것입니다. 엘리바스는 욥의 이 말을 왜곡했습니다.
그래서 악인들의 주장처럼 욥이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를 부정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악인은 시편 73편 11절,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는도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에는 욥이 악인의 길을 걷고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상대의 말을 왜곡해 인용하는 잘못을 범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사탄 앞에서도 인정하실 만큼 욥이 악에서 떠난 자임을 알지 못합니다. 오늘날 우리도 내 편리대로 상대방의 말을 왜곡해서 인용하면, 그 결과는 어떠할지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만물의 창조주시며 주인이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고난에 처한 다른 사람을 보면서 쉽게 추측하고 정죄하며 수군거렸던 모습이 얼마나 악하고 잔인한지 깨닫습니다. 제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했던 좁은 시선을 거두고, 잠잠히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리게 하시옵소서. 높이 계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우리와 공동체로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사람의 현재의 처지를 오해하여 위로하고 감싸주지는 못할망정 상처를 주고 아픔을 주는 죄를 범하지 않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지켜보는 사랑


제가 머물렀던 미국 휴스턴 민박 집의 부인은 유전적 영향으로 점진적 실명에 이른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꾸준한 재활 훈련으로 일상생활을 잘해 내고 있었습니다. 제가 떠나는 날에는 부인이 아침 식사까지 차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뉴욕에 돌아온 다음 날 저는 혼자 아침 식사를 하다가 많이 울었습니다. 부인이 식사를 준비할 때, 남편이 도와주지 않던 일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점진적 실명에도 불구하고 부인이 현재와 같은 일상을 소화하는 데는 남편의 인내가 매우 컸음을 가슴으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할 일을 대신해 주지 않았습니다.
부인이 재활 훈련을 할 때마다 남편은 나서서 도와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은 실명의 세계로 들어가는 부인을 위해 "그녀가 할 수 있을 때까지 지켜봐 주는 것"을 실행한 셈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134cm밖에 되지 않는 키, 굽은 등과 짝이 맞지 않은 다리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저를 오랫동안 인내로 지켜봐 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미숙아로 태어났기 때문에 여러 가지 불편한 몸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가장 힘들고 외롭고 죽고 싶을 때, 주님께서 저를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사랑과 용기를 부어 주셨습니다.
사랑의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저는 상처투성이가 되어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다 해줄게."라고 나서지 않으시고, "너는 할 수 없어."라고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제 마음의 키가 자라도록, 그리고 제 마음의 힘이 굳건해지도록 가만히 두고 지켜봐 주셨습니다. 제가 잘해 내리라는 것을 믿어 주신 주님이 계셔서, 저는 정말로 감사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 주님께서 다 해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스스로 헤쳐나갈 힘을 주십니다.(김해영 선교사)

 

가정교회를 말하다

초기 교회는 어떻게 성장했는가?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알리기 위해 여러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그중 네 가지를 들자면 공개 설교, 개별 대화, 능력의 나타남, 그리고 새로운 가정교회의 재생산이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적인 지혜에 기초한 고비용의 조직화된 프로그램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자연스럽고 자발적이며, 열정적이고 기도로 충만하며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방법이었습니다. 이러한 1세기의 일반적인 전도방식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든,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이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제 그 네 가지를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공개 설교"입니다. 사도들의 일반적인 사역은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공개적인 곳에서 구두로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이를 위해 강둑이나 회당, 예루살렘 성전 뜰, 솔로몬 행각, 또는 시장 같이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모일 수 있는 장소를 도시 안에서 찾아낸 후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그들은 메시지를 전달할 때 듣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추어 전달함으로 이질적으로 들리지 않도록 했습니다. 예를 들어 바울은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헬라인에게 접근할 때는 헬라인의 종교와 시구를 연결점으로 사용해 이야기를 엮어갔습니다.
비슷하게 유대인 청중을 향해 말할 때는 수많은 구약성경의 예언들을 언급하면서 예수님이 그 예언들을 어떻게 성취하시며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가 되실 수 있는지를 설득시키려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듣고 긍정적으로 답하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가정교회에 참석하도록 권하거나 그곳에 가정교회가 없다면 최초의 영적 교두보로서 자신들의 가정을 열도록 권면했습니다. 이와 같은 "평화의 사람"을 찾는 방식은 예수님이 처음으로 제시하신 것이며 베드로와 바울은 이 모델을 그대로 따랐습니다(누가복음 9:1-6).
둘째, "개별 대화"입니다. 신자들은 개별적인 필요가 있을 때마다 서로 대화하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구체적인 계획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어려운 일들에 대한 즉흥적인 반응이었고, 때로는 "삶으로 전하는 복음"으로도 불렸습니다. 예를 들어 빌립과 에티오피아 환관처럼 길을 걸어가면서, 때로는 바울과 빌립보 간수처럼 감옥에 갇힌 비참한 처지에서, 또한 베드로와 고넬료, 아나니아와 바울처럼 가정 방문 시, 또는 불신자가 가정교회 모임을 방문했을 때,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 모든 경우에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셋째, "능력의 나타남"을 통해서입니다. 이러한 공개 설교와 개별 대화의 끝에는 일반적으로 초자연적인 병 고침과 축사가 뒤따랐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능력의 나타남"이라고 부르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이 신자들을 통해 행하시는 이런 기적들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이 전하는 설교에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반응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의 손을 통해 수많은 병 고침과 기적적인 행사가 나타나자 심지어 이웃 도시에서도 큰 무리가 몰려든 것이 그 전형적인 예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병든 자들을 길거리에 눕히고 베드로가 지날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의 그림자라도 덮여 낫기를 바랐습니다. 결과적으로 교회에 모여드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어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가정교회의 재생산"입니다. 명쾌하게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가정교회를 구성하는 성도들의 수가 증가하여 한 가정이 전부를 담당하기 어려웠을 때 모임을 간단히 둘로 나누든지, 아니면 새로운 가정교회를 시작하도록 몇 명을 파송하는 것이 안전한 방법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특정 마을이나 도시에서 그리스도인 모임을 열었던 가정들이 많았다는 사실에서 추론할 수 있습니다. 결코 모임을 위해 어떤 부동산이나 건물을 소유한 적이 없습니다!

기도의 횃불

주님의 겸손을 본받게 하소서!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오늘도 저희들이 이 방송을 함께하며, 예배할 수 있게 하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저희의 입술에서 울려 퍼지는 찬양이 우리가 거한 그곳을 가득 메울 때, 계신 곳 하늘에서 영광을 받으시고 큰 은총을 내려 주시옵소서.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신 주님! 참으로 미련한 저희들이라서 죄를 지을 때가 많았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축복 속에 거하면서도 죄를 좇아가는 저희들입니다. 주님의 자녀로서 너무나 무자격한 저희를 징계치 아니하시고 오래 참으셔서 주님의 보좌 앞으로 이끄신 은총에 감격할 뿐입니다.
회개하기만 하면 저희의 죄악을 기억하지 아니하시는 주님께 회개하오니 긍휼히 여기셔서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죄인들을 위하여 낮고 천한 자리를 찾아오신 주님이신데, 저희들은 스스로를 높이고 섬김을 받는 일을 더욱 좋아했습니다. 저희로 하여금 주님의 겸손을 본받아 섬기는 자로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시옵소서. 저희를 교회의 지체로 삼아주셨사오니, 늘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시고, 믿음의 분량에 따라 지혜롭게 봉사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힘껏 충성되게 하시옵소서.
봉사자의 중요한 자세는 자기 직분에 따라 그 역할을 잘 감당해야만 될 줄로 압니다. 손은 손으로서, 발은 발로서, 머리는 머리로서의 기능을 잘 감당하는 것이 중요한 줄 압니다. 각자가 주님이 주신 은사로 맡은 바 직분을 잘 감당하여 이 좋은 추수의 계절에 교회를 섬기는 귀한 모습이 넘쳐나게 하시고, 열매 맺는 신앙이 되게 하시옵소서. 오늘도 이 귀한 방송에 저희들을 초대해 주시고, 말씀을 나누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고, 주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우리를 영적 무장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축복의 노래

복음 쪽지~㉾

로또 당첨이..


하나님이 주시는 편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습니다. 로또 당첨이 가져다주는 평안이 아닙니다.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안을 하나님께서 주시기 때문에 깊은 밤 감옥에서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찬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찬송이 터져 나오고, 기도할 수 없는 환경에서도 기도가 터져 나옵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죄 사함을 받으십시오! 그럴 때 예수님께서 당신의 주님이 되어주실 것입니다. 그동안 당신 인생을 당신 혼자 고군분투하며 살았다면, 이제 예수님께서 주님이 되어주셔서 당신을 모든 문제에서 구원해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