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433번째 이야기
우리에게 없는 것에.. 우리는 우리 속에 어린아이가 있는지 모른 채 그의 감정에 이끌려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어린아이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통해서만 안정을 얻고 쉼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가 우리에게 없는 것에 집착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없는 것에 집착하는 한, 우리가 받은 것을 기쁨으로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인정을 추구하는 만큼 우리는 세상에 붙들리게 됩니다. 그만큼 우리는 하늘로부터 오는 자유를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자유의 은혜는 죄로부터의 자유, 세상 모든 얽매임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합니다! ![]() |
고객이 다시 찾아오기를 원한다면? 인간관계를 잘 맺고 살아가는 방법 세 가지를 말했습니다. 격려하기, 경청하기(상대방의 말을 잘 받아들이는 것), 견성하기(자신을 돌아보며 깨우치고 반성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회사에는 "매일 실천해야 하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 첫째가 "엑스트라 마일"입니다. 이것은 "한 걸음 더 나아간"라는 뜻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문밖까지 배웅하는 것"입니다. 한국인들은 이것을 매우 잘하는데, 미국인들은 손님이 문을 나서면 바로 문을 닫아버립니다. 엑스트라 마일은 “누구든지 너로 하여금 억지로 5리를 가자고 하거든, 그 사람과 10리를 동행하라" 라는 마태복음 5장 41절의 말씀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하는 현장"에서는 엑스트라 마일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예컨대 계약을 할 때, 우리는 현장에 10회 이상 나가기로 했으면 10회 다 성실하게 해 줍니다. 그러다가, 고객이 "한두 번 더 현장에 나가 달라"라고 요구하면, 추가 비용을 요구하지 않고 두말없이 그대로 합니다. 많은 회사들이 10회 나가겠다고 했으면서 이를 잘 지키지 않습니다. 또 추가로 나가 달라고 하면, 추가 비용을 요구합니다. 물론 추가 비용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요구입니다. 문제가 될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고객은 계약에 따라 하는 수없이 따르지만, 이미 마음이 상한 뒤입니다. 그러면, 다음 계약은 보장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회사와 일을 해 본 고객은 반드시 다음에도 다시 우리를 찾습니다. 일이 끝난 뒤에도, 고객이 원하면 언제든지 엑스트라 마일을 실천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객에게 엑스트라 마일을 주기 위해서 늘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습니다. 엑스트라 마일은 고객이 기대하지 않던 일까지 해주는 것입니다. 이 엑스트라 마일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가르쳐주신 마태복음 5장의 8복의 마음과 일치합니다.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하형록) 그렇습니다. 사실, 조금만 더 수고하면 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습니다. 저도 이 글을 읽으면서 깊이 반성했습니다. 특히 요즘, 기도를 부탁하는 메일이나 전화가 많이 오는데 그냥 기도해 주겠다고만 하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공감해 주고, 자세한 기도 제목을 기록하여 열심히 기도로 중보해야 하겠습니다. 아무튼, 보통보다 조금 더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돼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린도전서 15:58). ![]() |
기독교의 핵심 진리 24-행위 언약 본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은 행위 언약입니다. 이 언약 안에서 하나님은 그의 규례를 온전하게 순종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들에게 영생을 약속하셨지만 불순종하면 죽으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아담으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류는 이 언약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이 언약에 순종하지 않을 수 있고 심지어 이러한 언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언약을 어기든 지키든, 모든 인류는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언약 관계를 회피할 수 없습니다. 행위 언약으로 인해, 우리가 그 언약을 어겼으므로 우리는 구원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또한 예수님께서 그 언약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셨으므로, 구원을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죄를 지어도 행위 언약을 범하는 것이며, 우리는 하나님께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짓고 난 후에도 구원의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훗날 우리가 하나님께 상을 받게 되는 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행위 언약에 순종했다면 하나님의 언약을 완성시키는 공을 세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이 죄에 빠졌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자비하심을 좇아 새로운 은혜 언약을 더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 언약은 우리의 구원을 가능하고 실제적이게 했습니다. 오로지 한 분만이 행위 언약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둘째 아담, 즉 새로운 아담으로서 이루신 그의 일은 우리가 하나님과 맺었던 언약의 모든 조항을 만족시켰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둘째 아담이라고 하는 것은, 최초의 사람 아담과 대칭되는 표현으로 예수님을 "둘째 아담'이라고도 표현하는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세상에 죄를 들어오게 한 실패자였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는 죄에서 인류를 구원한 승리자이십니다. 예수님이 이루신 그 일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이에게도 동일하게 유효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할 때 예수님의 선행은 우리 것이 됩니다. 은혜롭게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공로를 우리에게 돌리시기 때문에 은혜 언약이 행위 언약을 만족시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은혜로 말미암아 행위 언약을 만족시키십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행위 언약을 어겨 죽음에 이를 우리 인간을 위하여 은혜 언약을 세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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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이 평안히 사는 세상 "악인의 등불이 꺼짐과 재앙이 그들에게 닥침과 하나님이 진노하사 그들을 곤고하게 하심이 몇 번인가 그들이 바람 앞에 검불 같이, 폭풍에 날려가는 겨 같이 되었도다 하나님은 그의 죄악을 그의 자손들을 위하여 쌓아 두시며 그에게 갚으실 것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자기의 멸망을 자기의 눈으로 보게 하며 전능자의 진노를 마시게 할 것이니라 그의 달 수가 다하면 자기 집에 대하여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높은 자들을 심판하시나니 누가 능히 하나님께 지식을 가르치겠느냐 어떤 사람은 죽도록 기운이 충실하여 안전하며 평안하고 그의 그릇에는 젖이 가득하며 그의 골수는 윤택하고 어떤 사람은 마음에 고통을 품고 죽으므로 행복을 맛보지 못하는도다 이 둘이 매 한 가지로 흙 속에 눕고 그들 위에 구더기가 덮이는구나 내가 너희의 생각을 알고 너희가 나를 해하려는 속셈도 아노라 너희의 말이 귀인의 집이 어디 있으며 악인이 살던 장막이 어디 있느냐 하는구나 너희가 길 가는 사람들에게 묻지 아니하였느냐 그들의 증거를 알지 못하느냐 악인은 재난의 날을 위하여 남겨둔 바 되었고 진노의 날을 향하여 끌려가느니라 누가 능히 그의 면전에서 그의 길을 알려 주며 누가 그의 소행을 보응하랴 그를 무덤으로 메어 가고 사람이 그 무덤을 지키리라 그는 골짜기의 흙덩이를 달게 여기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보다 앞서 갔으며 모든 사람이 그의 뒤에 줄지었느니라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헛되이 위로하려느냐 너희 대답은 거짓일 뿐이니라"(욥기 21장 17-34절). 욥은 직전 21장 1-16절에서는 악인의 흥함을 한탄했다면, 본문을 통해서는 악인의 형벌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18절의 "검불"은 가느다란 마른 나뭇가지, 마른 풀, 낙엽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욥은 하나님이 악인의 죄악을 그에게 갚으신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평안히 살다가 죽고 어떤 사람은 마음에 고통을 품고 죽습니다. 그러니 죽으면 매한가지라고 합니다. 욥은 악인의 소행에 대한 보응이 없다고 하면서, 친구들의 대답을 헛된 위로요 거짓이라고 말합니다. 욥에게 필요한 것은 친구들의 대답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악인의 불이 얼마나 자주 꺼지던가(17-26절). 성도는 불의하게 고통당하는 이의 탄식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욥은 얼마나 자주 악인의 불빛이 거지며, 그가 바람에 날려가는 검불이나 겨와 같았는지 질문합니다. 문맥상 18절, "그들이 바람 앞에 검불같이, 폭풍에 날려가는 겨같이 되었도다"도 의문문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검불이나 겨는 심판과 관련됩니다. 욥은 악인이 당대에 전능자의 진노의 잔을 받아 마셔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어서 욥은 선악의 기준으로 분류되지 않은 다양한 삶을 열거합니다. 참으로 인간의 삶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됩니다. 23-25절, 어떤 사람은 왕성하고 안락한 가운데 죽지만, 어떤 사람은 고통 가운데 죽습니다. 두 부류의 사람 모두 죽음 앞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이러한 욥의 진술은 성도가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상을 더 잘 이해하고 대응하게 합니다. 이렇듯 육신의 죽음은 의인과 악인 모두에게 매한가지로 찾아옵니다. 욥은 이것이 공평하지 않다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모든 죽음이 같지 않습니다. 죽음 너머 악인은 지옥으로 가고, 의인은 죽은 후 영원한 생명과 영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고통스러운 죽음을 허락하신 주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너희가 헛되이 위로하느냐(27-34절). 잘못된 판단의 말은 상대방에게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욥은 친구들이 자신을 해하려는 속셈이 있다고 말합니다. 친구들에 대한 원망이 심합니다. 그는 세상일을 사람에게 질문해 누구의 말이 옳은지를 밝히고자 합니다. 욥은 30절, "악인이 재앙의 날을 보존되며, 그들의 진노의 날을 향해 끌려가고 있는가를 묻습니다. 욥의 답변은 "아니다!"입니다. 욥은 다시 31절, "누가 악인의 면전에서 그의 길을 알려 주며, 그의 소행을 보응하는가?"를 질문합니다. 욥은 악인의 삶에 마땅한 보응이 없었음을 강조합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이 악인의 길을 간다는 것입니다. 친구들은 교리적 차원에서 악인의 운명을 말했지만, 욥이 경험한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그러니 친구들의 위로는 욥에게 "헛된 것"이고, 그들의 대답은 "거짓"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욥의 대답 역시 잘못된 것입니다. 지금 그는 그의 육체와 정신의 고통이 너무 심하여 제대로 된 성찰을 하고 있는지는 못합니다. 악인의 종말과 의인의 구원은 궁극적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친구들은 욥을 악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하는 말도 헛된 위로나 거짓이 되지 않게 조심합시다! "어제나 오늘이나 공의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도 계속되는 고통과 바뀌지 않는 현실에 낙심했던 우리의 연약함을 회개합니다. 세상의 잣대와 사람의 평가로 삶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하며 살게 하시옵소서. 다 이해할 수 없어도 하나님의 완전한 섭리를 신뢰하며 평안을 누리게 하시옵소서. 우리가 세상에 집착하지 않게 하시고,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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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를 품기 위한 경청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아이들이 힘들고 상처받아서 교회에 오면 올수록 더 그렇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교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은 도대체 언제일까요? 마음을 연구하는 사람이 말하길,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여덟 번 정도 들어주며 "그렇구나!"라고 맞장구를 쳐 주면, "나도 저 사람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 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그렇구나!"라는 말에는 판단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상대의 모습이 어떻든 간에 그 존재를 그대로 인정하는 말입니다. 모든 사람은 인정받을 때 마음을 엽니다. 교사는 한 번의 권면을 위해 존재를 품는 사람입니다. 교사는 아이들의 인생을 믿음을 품고, 기도로 품고, 언어로 품습니다. "그렇구나!"라는 말로 품습니다. 주일 아침에 교회에 나와 졸린 눈을 비비며 그나마 몇 마디 하는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선생님들의 언어는 "그렇구나!"로 채워집니다. "쌤, 나 자신이 한심해요." "그렇구나!" "쌤, 저 엄마랑 싸웠어요." "그렇구나!" "쌤, 나 하나님이 안 믿어져요." "그렇구나, 사실 나도 그럴 때가 있어." 아이들이 생각 없이 말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아이들의 이야기들을 잘 조합해 보면 재미있습니다. 아이들은 어쩌면 자기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사람을 찾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정말 힘들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그렇구나!"라고 말해 주는 그 한 사람이 되어 줍시다. 경청함으로 존재를 품는 그 한 사람이 됩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의 경청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병들어 고통을 당하는 사람, 외로움에 주저앉은 사람, 사업에 실패한 사람,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해 살 기운이 없는 사람 등. 우리가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우리의 경청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마음과 귀를 빌려주십시오!(김용재 목사) ![]() |
초기 교회는 어떻게 하나의 교회가 되었나?③ 네 번째로, "도시 단위 모임"입니다. 기록에 보면 개인과 가정교회는 모두 범도시 교회의 일부로 여겨졌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이러한 여러 가정교회의 도시 단위 모임은 다른 신자들과의 연합을 경험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주후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기 전까지는 가정 모임을 보충하여 성전에서 자주 함께 모였습니다. 따라서 일정한 과도기 동안 최소한 예루살렘 교회는 신자들의 소모임과 대규모 집회를 겸하여 진행되었습니다. 또한 토론이 필요한 논쟁거리가 생길 때마다 도시 전체로 모였습니다. 예를 들면 예루살렘의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인이 된 이방인들을 어떻게 대할지를 놓고 토론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뿌리가 유대인에게 있었기 때문에 유대식 종교 관습을 따라야 하는가 아니면 그런 의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이것이 사도들과 장로들 그리고 일정 부분에서는 교회 전체가 그 결정 과정에 참여하여 토론한 문제였습니다. 유대 지역 밖에 있는 이방인 교회는 가정교회 모임을 보충하기 위해 무엇을 했을까요? 마을과 마을 사이에는 신자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바울은 도시나 지역의 신자들을 한 몸으로 표현했습니다. 이를 볼 때, 그들은 특정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때때로 광장이나 마을 언덕 또는 넓은 장소를 빌려 큰 규모로 모였을 것입니다. 바울 같은 사도가 방문할 때는 개별적으로 각 가정교회를 찾기도 했지만, 복음을 전하거나 훈련을 위해 도시의 모든 장로들을 불러 모으기도 했습니다. 도시 단위의 대규모 모임은 일상적인 가정 모임과는 달리 가끔씩 열리는 특별한 모임이었습니다. 모임의 주된 형태였던 가정교회와는 그 성격이 달랐습니다. 오늘날도 이러한 모임이 있어야 합니다. 가정교회는 앞으로 함께 넘어야 할 많은 도전과 시련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 |
풍요와 결실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소서! 언제 어디서나 저희들과 함께 계시는 주님! 슬플 대나 기쁠 때나 쉴 때에도 함께하시고, 주님의 선하신 뜻대로 이끌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또한 시대와 환경이 변하여 황금만능과 과학 만능의 세상에서도 변치 않는 주님의 진리 안에서 승리하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주님의 사랑을 입은 자로 방송을 통하여 함께 주님께 예배를 드리오니 저희의 드리는 예배를 받아주시옵소서. 은혜의 주님! 우리 주님은 저희의 모든 것을 아시오니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였는지도 잘 아실 줄 믿습니다. 우리들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한 잘못, 신앙인답게 못 했던 말과 행동이 있었다면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진리를 안다고 하는 시식의 교만, 오래 믿었다고 하는 연조의 자랑, 감당하지 못한 직분의 태만이 있었다면 긍휼의 풍성하심을 따라 용서여 주시옵소서. 사랑의 주님! 흐르는 물과 같은 게 시간입니다. 멀찌감치 도망간 푸른 하늘을 보며 주님의 한량없는 섭리를 찬양합니다. 한순간도 쉬지 않으시고 삼라만상을 주관하시며 인류의 숨결을 보듬으시는 주님의 사랑과 일하심을 보며 열정 없이 살아온 지난 시간이 부끄럽게 그지없습니다. 이제라도 열심을 낼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셔서 풍요와 결실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게 하시옵소서.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셨사오니, 주님의 직분을 멋으로 감당하지 않게 하시고 마음을 쏟아 열심히 뛸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시옵소서. 매년 돌아오는 가을이라고 하여 열매 맺을 수 있는 가을이 또 주어질 것으로 생각하지 말게 하시고, 얼마 남지 않은 이번 가을이 마지막인 것처럼 주님께 충성할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시옵소서. 우리가 풍성한 결실을 맺을 때까지 끝까지 인내하며 최선을 다하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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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적인 구원..! 구원은 힘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나와 내 집"을 전인적으로 구원합니다. 개인뿐 아니라 그의 가족과의 관계까지 모두 다 구원시키십니다. 지금 직장 생활이 슬럼프에 빠져 있다면, "주여! 내가 직장에서 겪는 문제에서 어떻게 해야 구원함을 받겠습니까?"라고 기도하십시오. 캄캄한 흑암의 골짜기 앞에서도 찬양할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능력입니다. 흑암 중에 빛이 없을 때에라도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드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어둠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십니다! ![]()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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