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교회는 어떻게 하나의 교회가 되었나?③
네 번째로, "도시 단위 모임"입니다. 기록에 보면 개인과 가정교회는 모두 범도시 교회의 일부로 여겨졌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이러한 여러 가정교회의 도시 단위 모임은 다른 신자들과의 연합을 경험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주후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기 전까지는 가정 모임을 보충하여 성전에서 자주 함께 모였습니다. 따라서 일정한 과도기 동안 최소한 예루살렘 교회는 신자들의 소모임과 대규모 집회를 겸하여 진행되었습니다. 또한 토론이 필요한 논쟁거리가 생길 때마다 도시 전체로 모였습니다.
예를 들면 예루살렘의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인이 된 이방인들을 어떻게 대할지를 놓고 토론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뿌리가 유대인에게 있었기 때문에 유대식 종교 관습을 따라야 하는가 아니면 그런 의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이것이 사도들과 장로들 그리고 일정 부분에서는 교회 전체가 그 결정 과정에 참여하여 토론한 문제였습니다. 유대 지역 밖에 있는 이방인 교회는 가정교회 모임을 보충하기 위해 무엇을 했을까요? 마을과 마을 사이에는 신자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바울은 도시나 지역의 신자들을 한 몸으로 표현했습니다.
이를 볼 때, 그들은 특정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때때로 광장이나 마을 언덕 또는 넓은 장소를 빌려 큰 규모로 모였을 것입니다. 바울 같은 사도가 방문할 때는 개별적으로 각 가정교회를 찾기도 했지만, 복음을 전하거나 훈련을 위해 도시의 모든 장로들을 불러 모으기도 했습니다. 도시 단위의 대규모 모임은 일상적인 가정 모임과는 달리 가끔씩 열리는 특별한 모임이었습니다. 모임의 주된 형태였던 가정교회와는 그 성격이 달랐습니다. 오늘날도 이러한 모임이 있어야 합니다. 가정교회는 앞으로 함께 넘어야 할 많은 도전과 시련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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