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충만은 감정 충만이 아니다!
나는 예수님을 안 믿는 가정에서 부모님을 어렵게 설득해 서른 살 이란 늦은 나이에 은혜로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합격 통지서를 받았을 때 너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내 "내가 얼마나 고집이 세고 부족했기에 하나님은 나를 10년 동안 연단하시고 신학교로 인도하셨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광야에서 40년 동안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배운 것같이 나도 신학교 4년 동안 열심히 순종하며 하나님 말씀을 배워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들어간 신학교에서 예배를 드리는 모든 순간이 뜨거웠습니다.
그런데 한 형제가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유독 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 형제는 모든 예배 시간에 손을 높이 들고 열심히 찬양하고 기도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큰 목소리로 회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1학기가 끝나 갈 무렵 갑자기 그 형제가 학교에서 안 보였습니다. 궁금해서 알아봤더니, 신앙의 열심이 식어 부르심을 의심하며 신학교를 떠났다는 것입니다. 6개월이 채 안 되는 사이에 그 뜨거웠던 모습이 사라졌습니다. 그 형제의 이전 모습에서 은혜를 받았던 학우들은 당황했고, 한동안 그 형제의 뜨거움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말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뜨거움이 너무나 쉽게 식어 버리는 감정적 신앙의 한계를 종종 봅니다. 나오미가 이방인 며느리 룻과 오르바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했을 때 룻과 오르바는 감정 상태가 같았어도 행동을 달리했습니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마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룻기 1:14). 여기서 "붙좇았더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욥기 19장 20절 "내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고 남은 것은 겨우 잇몸뿐이로구나"에서의 "붙었고"와 같은 단어입니다. 이는 딱 붙어서 그 사이에 어떤 것도 들어갈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오르바는 울면서 고향으로 돌아갔고 룻은 울면서 시어머니를 붙좇았습니다. 성령 충만은 감정 충만과는 다르게 내 안에 성령님으로 꽉 차 있어서, 감정을 포함해 어떤 것도 들어갈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과 완전히 동행하는 상태이기에 어떤 시험에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정 충만은 곧 식어 하나님과의 사이에 틈을 만들기에 그만큼 시험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감정의 뜨거움을 넘어 하나님의 말씀을 붙좇는 것, 하나님께 딱 달라붙어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성령 충만의 삶인 것입니다. 모두 성령 충만합시다.(김남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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