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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은 사랑이어라..!​

예림의집 2021. 9. 16. 21:33

고향은 사랑이어라..!

강창원 명예교수

성공만을 위해 달려가는 현대인들의 삶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 같지만 어쩌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실의 삶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깨달을 때 다가오는 깊은 상처들.. 그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고향이라는 어머니의 품 같은 정겨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매년 5월이면 태어나 자랐던 고향마을을 찾아갑니다. 지리산 줄기에 자리한 조그마한 산골입니다. 긴 여행을 마치고 천국으로 떠나신 어머님의 육신이 먼저 가신 친척들과 함께 쉬어 계신 곳이기도 합니다.

60여 년 전에 떠나온 산골 마을이기에 겉으로는 정지용 시인이 노래한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이지만 내 가슴속에는 그때의 따스한 인정과 순박한 웃음이 변함없이 되살아나는 회기본능(回歸本能)의 목적지입니다. 내 것 네 것 가리지 않고 나누던 이웃들, 땟국물 젖은 옷을 걸치고도 마냥 행복에 젖어 깔깔대던 옛 친구들이 뛰놀던 곳입니다. 오래전에 글레이저 교수가 이야기한 "성공의 도시"를 향하여 떠난 후 소식조차 모르는 이웃들, 이미 이 세상 여행을 마치고 영혼은 저세상으로 떠나서 육신만이 땅에 남아 있는 친구들과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속삭입니다. "고향은 사랑의 흔적이지"라고..

고향을 떠나온 후 떠돌아 온 삶의 여정 즉, 집 한 채 없어 셋방살이에 이골이 난 대도시 유목생활, 그 후 태평양 건너 저 편 미국 땅에서의 이민자의 삶, 귀국 후 집값 따라 옮겨 다니던 아파트, 이 모두가 역마살이 낀 숙명이려니 체념하고 살아왔습니다. 독일의 실존철학자 하이데거는 이같이 기술문명 속에서 고향을 잃어버리고 존재의 의미를 상실해버린 현대를 "고향 상실의 시대"라고 설명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고향을 상실한 유목민들을 그린 영화 노매드랜드가 금년도 2021년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3관왕을 차지했고 다른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상 몰이를 하며 극찬을 받았습니다.

미국 네바다주 사막지대의 광활한 풍경 속에 이동식 주택으로 개조한 낡은 밴 하나를 홀로 운전하며 유목민의 긴 여정에 나선 60대 여성의 주름진 얼굴이 무표정하게 클로즈업되었습니다. 미국의 금융위기와 석고 산업의 몰락으로 네바다주 엠파이어라는 도시가 붕괴되는 절망적 상황에서 남편마저 죽고 말자 여주인공 펀은 온갖 추억이 깃들었던 그 도시를 떠나 유일한 재산인 밴 차량을 집 삼아 옮겨 다니는 삶을 택한 것입니다. 떠돌이 유목민들은 일시적인 만남을 통해서 식사를 같이 하고 쓰지 않고 있는 물건을 서로 교환하는 유목민 공동체를 이루면서 인간으로서 우정과 사랑의 연결점들을 찾곤 했습니다.

이 공동체에서 만난 친구 스윙키는 생존이 7-8개월 정도인 암 환자이지만 병원 치료를 마다하고 고향인 알래스카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고자 떠납니다. 주인공 펀 아주머니도 긴 여정 끝에 폐허가 된 도시 엠파이어로 돌아와 자신의 삶의 흔적에서 새 힘을 얻고 또 유목민의 삶을 시작합니다. 모두가 돌고 도는 삶으로 지쳐가는 육신에서 회귀본능이 살아나는 것일까요? 마치 연어가 태어난 고향을 떠나 머나먼 바다에서 살다가 마지막 목적지인 고향으로 회귀하는 것처럼, 하늘과 땅 사이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간이 있습니다. 근대화, 공업화, 세계화가 불러온 대도시의 성공이 있고, 그 뒤를 따르는 "상처뿐인 영광"을 회복시켜 줄 공간으로 고향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에서 존재 회복을 추구합니다.

성공만을 붙잡으려는 세속의 현장인 도시를 떠도는 부평초와 같은 현대인의 삶 속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따스한 정과 거짓 없는 웃음이 깃든 사랑입니다.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저세상에서 내 영혼의 안식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도시에서 쟁취하려는 현대인의 사랑은 모든 것을 내어주는 고향의 사랑과는 다릅니다. 태어난 어머님의 품과 가슴이 주는 사랑, 산과 들 그리고 시냇물의 풍성한 자연이 주는 사랑은 "주는 사랑"입니다. 내가 어머님과 분리하여 존재할 수 없듯이 나와 자연도 분리되어 살 수 없기에 고향과 나는 둘이면서 하나로 남는 사랑의 본질을 깨닫게 합니다. 미국의 철학자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기술"에서 말해주는 "주는 것"과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 사랑임을 고향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향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