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문제와 인간의 숙제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인간의 죄 문제에 대해 다른 종교에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느냐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가령, 불교를 포함한 일반 종교에선 이렇게 설명합니다. "너희는 도대체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콧물을 흘리느냐?" "기침도 많이 하는데 가만히 있으면 낫겠느냐?" "우선 콧물이 나면 휴지를 사서 하루에 세 번씩 닦아라." "그리고 기침이 나면 배에 힘을 주고 참아라. 평소에 복식 호흡을 해야 한다." 1년쯤 지나면 기침 횟수가 40번으로 줄고 5년쯤 지나면 30번으로 줄다가 어느 날 기침이 그칠 것이다!" 즉, 수행에 정진하라는 것입니다.
반면 기독교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콧물을 닦아보세요. 또 나오지 않던가요?" "감기에 걸렸기 때문에 아무리 닦아도 소용이 없어요." "그러지 말고 병원에 가서 감기를 치료하세요!"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인간의 모순성을 지적하고 그것을 고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그런 여러 가지 노력으로는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창조주께 돌아오라는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돌아온다는 것은 마치 뿌리 뽑힌 나무가 생명을 얻기 위해 땅에 심기는 것과 같습니다.
그분께 돌아오면 인간은 원래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회복됩니다. 죄로 오염된 인간,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인간은 생명의 근원 되신 그분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면서 근본적으로 새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단절되어 살아가는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세 가지 큰 어려움을 안고 있습니다. 첫째, 인간은 신을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은 이미 더럽혀진 죄인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스스로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이미 최 안에 갇혀 있어서 하나님과 철저히 분리된 상태입니다. 예를 들면, 방 안의 불을 끄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을 켜는 순간 어두움이 단번에 없어지는 것처럼 하나님과의 인간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빛과 어둠처럼 도저히 함께 거할 수가 없습니다. 둘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을 모릅니다. 둘째, 신을 안다 하더라도 신 앞에 나아갈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죄인인 인간은 그 앞에 설 수 없습니다. 마치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늘 경찰서나 경찰관을 피해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죄를 지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아 도망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은 우리는 시기하고 미워하며 속이고 진실치 못하며 음란합니다. 물론 이런 죄는 법에 저촉되지 않지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남을 미워하는 것, 더군다나 속으로 미워하면서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을 가증스럽게 여기십니다. 신을 안다 하더라도 나아갈 길이 없다면 차라리 신이 있는지 모를 때가 더 나을 거예요. 신이 있음을 알았으나 그 신에게 나아갈 길이 없을 땐 얼마나 힘들까요?
앞의 두 가지 사실, 즉 신의 존재와 구원의 길을 안다고 해도 또 한 가지 문제가 생기는데 그게 바로 의심입니다. 현실적인 삶에 익숙한 우리 인간은 초자연적인 신에 대해 들을 때 본능적으로 의심이 생깁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 인간은 구원받을 기회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이 구원의 문제가 풀리지 않은 채 늘 미루어져 온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이 바로 구원받기 전 인간의 근본적인 실존이라고 지적합니다.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인간은 아무런 대책 없이 멸망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해답은 인간에겐 없고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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