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이집 2392번째 이야기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은.. 우리 관점에서 선택한 길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이 흘러갑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은 우리가 미래를 내려놓는 순종의 결단을 하기 전까지는 우리에게 철저히 가려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한 일을 시작하실 때 먼저 우리 안에 기쁨의 소원을 일으키십니다. 피할 곳,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것 같은 상황 가운데로 떠밀려갔을 때, 우리는 우리가 얼마만큼 하나님을 신뢰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위해 계획하고 준비하고 계십니다. ![]() |
사사기 15장 18-19절 "삼손이 심히 목이 말라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 하니 하나님이 레히에서 한 우묵한 곳을 터뜨리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 불렀으며 그 샘이 오늘까지 레히에 있더라" 하나님을 찾고 그분의 은혜를 구하는 자가 구원을 얻습니다. 타는 목마름 가운데 삼손은 하나님을 향해 구원을 부르짖습니다. 40년 만에 이스라엘 땅에 하나님 은혜를 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우물을 터뜨려 삼손을 구원하십니다. 그 물을 마실 때 삼손은 정신을 회복합니다(히, 슈브).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마실 때 살아 있는 존재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분께 구하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 |
동정심이 좀 더 강했더라면.. 한 심리학자에 의하면, 현재의 기억 70%는 이틀 뒤엔 잊어버리게 된답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즐겁게 배운 30%는 언제까지나 기억한답니다. 이것이 바로, 좋아서 하는 일을 잘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만약 죽은 사람도 슬픔을 느낄 수 있다면, 죽음이 가장 슬픈 것은 역시 그 당사자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죽은 사람의 슬픔을 중심점(中心點)으로 삼고, 그 사람과의 원근 관계를 따라서 슬픔의 파문이 번져갈 것입니다. 던져진 돌이 고인 물 위에 일으키는 파문이 그렇듯이, 슬픔의 파문도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약해져서 마침내는 아주 없어집니다. 장례식(기독교는 천국 환송식)이 거행될 경우, 죽음의 당사자가 있고, 그의 유가족이 있습니다. 그리고 장례식에 참석한 조문객들이 있으며, 그들을 멀리서 바라보는 구경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는 결코 고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한 번은 당사자가 되고, 또 몇 번은 유가족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죽음은 그 어떤 사람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지만, 그러나 때로는 마치 남의 일처럼 바라보는 경우도 허다하게 있습니다. 하기야 그 숱한 죽음을 모두 나의 일처럼 느껴야 한다면 얼굴에 눈물 마를 날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남의 슬픔을 함께 슬퍼하고 남의 기쁨을 내 기쁨처럼 여기는 동정심이 좀 더 강했더라면, 세계 역사는 이토록 어두운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욕심은 남보다 좀 더 오래 살고 싶어 하게 되어 있습니다. "너무 오래 살면 도리어 욕이 된다."라고 입으로는 말하지만, 속마음은 오래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가족과 친지가 모두 떠난 뒤에 혼자서만 오래오래 살아남는 것은 상상만 해도 아찔합니다. 아내를 죽인 끔찍한 죄를 저지른 <판도라>의 주인공에게 신(神)이 내린 형벌은 영원히 죽지 못하는 것입니다.(김태길) 그렇습니다. 얼마 전, 어느 분과 전화 통화를 하는데, "친정어머니께서 9월 초에 돌아가셨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치 남 이야기하듯이 하기에 의문을 표했더니, 그분의 대답이 "살 만큼 살다가 가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살 만큼 산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만 아실 뿐이죠. 기독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천국에 간다."라고 믿기 때문에 울지 않는 것이 상례이지만, 죽음이 아니라 헤어짐이 슬픈 것입니다. 오랫동안 함께할 수 없음이 안타까운 것이지요. 더욱이 사랑하는 이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으면 더욱 슬플 것입니다! ![]() |
기독교의 참모습-하나님에 대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기독교는 언제나 공개된 비밀이었습니다. 벽을 보지 말고, 문으로 들어가십시오. 기독교의 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부활 사건입니다. 이제 기독교에 대해 본격적으로 소개하겠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라는 사실에서 시작합니다. 그분은 온 우주를 지으신 창조주입니다. 태양과 지구, 인간과 동식물 등 모든 것을 지으시고 인간을 만물의 으뜸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가장 큰 목적은 바로 사랑의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로 만드시고 자유의지를 부여하셨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어떤 일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를 갖고 있습니다. 동시에 인간은 자신이 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악과를 일종의 기준으로 삼으셨습니다. 책임 있는 존재인 인간은 선악과를 먹을 수도, 먹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는 것은 "하지 말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겠다는 결정이고, 따 먹지 않는 것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다는 순종의 표시였습니다. 만약 선악과 대신 "태양을 만지지 말라"라는 명령을 주셨다면, 이것은 오직 복종할 수밖에 없는 명령이 될 것입니다. 겉으로는 자유를 준 듯하지만 실제로는 복종만을 요구한 것이 됩니다. 반면에 "너는 아무것도 먹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씀하셨다면, 이는 지킬 수 없는 명령입니다. 결과가 그렇다면 그것은 오직 불순종하도록 만드는 명령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 인간에게 명령하지 않으셨습니다.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다 먹을 수 있다는 전제를 두시고, 한 나무 열매만 먹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의 기중을 정해 놓고 만일 불순종하여 어길 때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상황을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은 부모가 아이에게 이렇게 "엄마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 손을 꼭 붙잡아라. 놓치면 큰일 나!"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로서, 우리와 사랑의 관계를 맺기 원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벗어나면 궁핍하고 곤고하게 살 것이며 수고하고 애쓰다가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 "너희가 나를 떠나면 반드시 죽는다. 영원히 살 수 없다!" 이 말은 선악과를 따 먹으면 하나님께서 화가 나서 우리를 죽이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파멸을 초래한다는 뜻입니다. "내 마음대로 살 거야!"라고 물고기가 어항에서 탈출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바위가 계란에게 말했습니다. "야, 덤비지 마 나에게 부딪히면 너는 죽어!" "웃기셔.." 그런데 계란이 마음을 먹고 바위에게 덤벼들었습니다. "내가 왜 죽어!" 계란은 순식간에 박살이 나고 말았습니다. 이런 경우는 바위가 화가 나서 계란을 부순 게 아닙니다. 계란이 바위에게 덤빌 때 이미 그 자체가 파멸의 원인이 된 것처럼, 생명과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대항하면 인간 스스로 파멸을 자초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 내용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3장에는 인간이 사탄의 꾐에 빠져 결국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인간은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효도하듯 인간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존경하며 그분께 순종했지만, 자발적으로 이 관계를 깨고 만 것입니다. 그 후 지금까지 이런 상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벗어나서 독자적으로 다른 영역을 만들어 살고 있는데 성경은 이러한 상태를 죄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연적으로 이런 상태에 놓인 인간에 대해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계속..) ![]() |
빛과 어둠의 위험한 동거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가사 사람들에게 삼손이 왔다고 알려지매 그들이 곧 그를 에워싸고 밤새도록 성문에 매복하고 밤새도록 조용히 하며 이르기를 새벽이 되거든 그를 죽이리라 하였더라 삼손이 밤중까지 누워 있다가 그 밤중에 일어나 성 문짝들과 두 문설주와 문빗장을 빼어 가지고 그것을 모두 어깨에 메고 헤브론 앞산 꼭대기로 가니라 이 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 여인에게로 올라가서 그에게 이르되 삼손을 꾀어서 무엇으로 말미암아 그 큰 힘이 생기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능히 그를 결박하여 굴복하게 할 수 있을는지 알아보라 그리하면 우리가 각각 은 천백 개씩을 네게 주리라 하니 들릴라가 삼손에게 말하되 청하건대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며 어떻게 하면 능히 당신을 결박하여 굴복하게 할 수 있을는지 내게 말하라 하니 삼손이 그에게 이르되 만일 마르지 아니한 새 활줄 일곱으로 나를 결박하면 내가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마르지 아니한 새 활줄 일곱을 여인에게로 가져오매 그가 그것으로 삼손을 결박하고 이미 사람을 방 안에 매복시켰으므로 삼손에게 말하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그 줄들을 끊기를 불탄 삼실을 끊음 같이 하였고 그의 힘의 근원은 알아내지 못하니라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보라 당신이 나를 희롱하여 내게 거짓말을 하였도다 청하건대 무엇으로 당신을 결박할 수 있을는지 이제는 내게 말하라 하니 삼손이 그에게 이르되 만일 쓰지 아니한 새 밧줄들로 나를 결박하면 내가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들릴라가 새 밧줄들을 가져다가 그것들로 그를 결박하고 그에게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팔 위의 줄 끊기를 실을 끊음 같이 하였고 그 때에도 사람이 방 안에 매복하였더라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이 이 때까지 나를 희롱하여 내게 거짓말을 하였도다 내가 무엇으로 당신을 결박할 수 있을는지 내게 말하라 하니 삼손이 그에게 이르되 그대가 만일 나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베틀의 날실에 섞어 짜면 되리라 하는지라 들릴라가 바디로 그 머리털을 단단히 짜고 그에게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어 베틀의 바디와 날실을 다 빼내니라"(사사기 16장 1-14절). 삼손의 두 번째 여인은 가사에 사는 한 기생이었습니다. 가사 사람들이 기생에게 들어간 삼손을 잡기 위해 매복하자. 삼손은 밤중에 일어나 성 문짝들을 빼서 들고 헤브론까지 갑니다. 삼손의 세 번째 여인은 블레셋 사람 들릴라였습니다. 블레셋 방백들이 들릴라에게 엄청난 돈을 약속하며 삼손의 힘의 근원을 알아내리라고 합니다. 들릴라는 삼손에게 힘의 비밀을 알려달라고 집요하게 조르고, 삼손은 세 번이나 거짓으로 둘러댑니다. 하나님의 나실인인 삼손이 이방인 여인들과 사랑에 빠져 본분을 잊은 체 살아가고 있는 문란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삼손과 가사의 기생(1-3절). 앞선 사사기 15장 19절, "엔학고레"라는 은혜의 체험 후 삼손은 다시 어둠의 행실로 돌아갑니다. 그는 또다시 블레셋 여인에게 끌립니다. 가사에 내려가서 한 기생과 잠자리를 같이하는데, 가사는 블레셋의 최남단에 위치한 성읍으로, 이스라엘 지역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사사인 삼손이 이스라엘을 보호하지 않고 이방 기생 여인을 만나러 가장 먼 성읍인 가사까지 내려간 것입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입니다. 이러한 삼손의 행동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을 것임이 분명합니다. 이는 바닥까지 내려간 삼손의 영적 상태를 보여줍니다. 삼손은 밤중에 가사 사람들에게 포위되고 맙니다. 가사의 기생과 함께 누워 있던 삼손이 한밤중에 일어나 성 문짝들과 문빗장을 메고 헤브론 앞산까지 50km가 넘는 거리를 이동합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엄청난 힘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은사를 받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받은 은사를 잘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삼손의 잘못된 행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에게 힘을 주십니다.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는 무엇이며, 그 은사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나요? 삼손과 밤의 여인 들릴라(4-14절). 세상을 향한 사랑은 허무한 짝사랑에 불과합니다. 삼손은 늘 사랑할 대상을 찾아 헤맸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언제나 문제만 일으켰습니다. 사랑받기를 기대하며 다가가지만, 돌아오는 것은 거짓과 배신, 상처뿐이었습니다. 사랑의 대상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유다 지역 헤브론에 갔던 삼손이 다시 블레셋 지역으로 돌아옵니다. 삼손은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는 여인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삼손이 이방 여인 그것도 원수인 블레셋 여인을 사랑합니다. "들릴라"라는 히브리어로 "밤"을 뜻합니다. 한편 삼손이 이름은 "작은 태양"을 의미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생포하기 위해 이전처럼 미인계를 사용합니다. 그들은 삼손을 결박할 수 있는 비결을 알아내고자 들릴라에게 엄청난 금액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들릴라는 집요하게 삼손을 유혹합니다. 삼손은 과거의 실수를 반복합니다(사사기 14:16-17). 삼손과 이스라엘이 문제는 실수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반복되는 죄의 유혹을 끊어버리지 못하면 죄의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과거의 실수 중 현재 삶에 교훈을 삼을 일은 무엇이 있는지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형편을 잘 아시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사랑을 붙잡으려다 하나님의 사람다움을 잃어 가는 모습이 얼마나 비참한지 깨닫습니다. 세상을 선망하며 정욕을 좇아 살아가는 어리석음을 이제는 반복하지 않게 하시옵소서. 오직 주님의 말씀에 깊이 사로잡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그 사랑으로 참 만족을 누리게 하시옵소서. 사탄의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세상의 어떠한 좋은 것에도 마음 쓰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소유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넓은 마음으로 살게 하시옵소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태복음 5:29-44). 우리를 오래 참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수용하는 삶을 살기 위하여 넓은 마음을 갖게 하시옵소서. 날마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불협화음이 마음을 무겁게 하는 하루가 된다 할지라도, 먼저 화해의 악수를 청하는 용기로 하루를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오늘도 우리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끌려가는 하루가 된다 할지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이심을 믿고 즐거움으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의견과 우리의 뜻이 하나도 반영되지 않는 서글픈 하루가 되게 할지라도, 상대방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게 하시옵소서. 또한 그 의견이 빛을 볼 수 있도록 기쁨으로 돕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한계상황에 부딪치는 일들이 있다 할지라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는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원하는 만족과 행복이 주어지지 않는 하루가 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모든 이에게 평강을 비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오늘도 영혼까지도 지친 하루를 마감한다 할지라도 영혼을 새롭게 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믿으며, 감사의 기도와 찬양으로 주님께 감사하며 마감하는 하루를 살기로 결단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 29)”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선교 후원 단체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요 14:23)”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내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요! 그것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를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2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다음 커뮤니티 공식 파워 블로거로 활동 중이며, 현재 78만여 건이 넘는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개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3만 9천여 편의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2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많이 친추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많이 오셔서 좋아요/구독/홍보를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5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0명의 선교사님과 17개의 개척교회를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예림의집 메일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림의집 2394번째 이야기 (0) | 2021.09.10 |
---|---|
예림의집 2393번째 이야기 (0) | 2021.09.09 |
예림의집 2391번째 이야기 (0) | 2021.09.07 |
예림의집 2390번째 이야기 (0) | 2021.09.06 |
예림의집 2389번째 이야기 (0) | 2021.09.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