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391번째 이야기
초원의 강이 가는 길..! 어떤 사람이 시간을 쓰는 방식을 보면 그 사람이 자신을 위한 인생을 사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초원의 강이 가는 길과 비슷합니다. 목적을 이루는 것보다 과정이 중요한 것입니다. 돌아가면 돌아갈수록 우리의 주변은 풍성해집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길은 겉으로 볼 때 초라하고 보잘것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해지기 전에는 붙잡기 어려운 길입니다. 우리 눈에 편하고 넓어 보이는 길을 내려놓아야 택할 수 있습니다. 좁은 길을 함께 따라갑시다. 그 길이 진리의 길입니다. ![]() |
사사기 15장 6절 "블레셋 사람들이 이르되 누가 이 일을 행하였느냐 하니 사람들이 대답하되 딤나 사람의 사위 삼손이니 장인이 삼손의 아내를 빼앗아 그의 친구에게 준 까닭이라 하였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 여인과 그의 아버지를 불사르니라"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의 재산에 큰 손실을 끼친 사람이 삼손임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그 책임을 삼손의 아내와 장인에게 전가합니다. 삼손은 상대하기 버거운 적이지만, 그의 아내와 장인은 만만한 약자이기 때문입니다. 약자를 짓밟는 모습은 한 사회의 불의함을 보여 주는 단면입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후대하라는 하나님 명령에 대한 순종은 영적 성숙함의 척도입니다. ![]() |
모두 바꿀 수는 없겠지만.. 굳게 마음먹은 덕분일까요? 일자리는 곧 구해졌지만, 돈벌이의 고충은 이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디자이너 팀장으로 들어간 회사는 의류 도소매 업체였는데, 입사 첫날부터 온갖 회사 생활과 관련된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좋은 경력으로 왜 이런 작은 회사에 왔어요?”라는 비아냥거림부터 회사에 대한 불만까지 계속 들어야 했습니다. 필터를 거치지 않은 거친 언어들은 낮 12시 점심시간에 기세가 더 등등해졌습니다. 점심밥을 앞에 두고 다른 팀 직원들 사이에서 오가는 회사에 대한 불만’은 아무래도 듣기가 거북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과도한 업무량과 우리 팀의 팀워크까지 구축해가야 하는 상황이라서, 저의 답답함은 극에 달했습니다. 매사 긍정적인 저의 성격대로라면 스스로를 격려하며 힘을 냈겠지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부정적인 언어들이 저를 좀먹고 있는 것인지, 자꾸 나쁜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직장 생활은 무리였나? 그만둬야 하는 건가?" 우울한 마음으로 한 달을 보내는 동안, 기존 직원 중에서 무려 여섯 명이 퇴사했습니다. 고단한 직장 생활에 백기를 들고나가는 이들을 보면서, 저는 다시금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들처럼 "비관적인 말과 분위기에 질 수는 없다"라는 의지가 불끈 솟아올랐습니다. "내 상황을 모두 바꿀 수는 없겠지. 하지만, 초심과 열정을 앗아가는 사람들로부터 나를 지켜낼 수는 있을 거야!" 그렇게 저 자신을 믿어보기로 결심한 후, 저는 제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이들과의 대화를,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줄여나갔습니다. 특히 부정적인 이야기가 난무하던 점심시간을 긍정적인 분위기로 바꾸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제 귀에 유익한 소리가 들려오게 하고, 진취적인 일들을 하면서, 저에게 밝은 기운을 불어넣으리라 마음먹었습니다.(김윤아) 그렇습니다. 어느 사회나 집단을 막론하고, 불평과 원망이 있게 마련이고, 때로는 비리와 부조리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대처하는 방법은 세 가지 정도가 있을 겁니다. 첫째, 잘못된 것을 피해서 달아나거나, 둘째, 아니면 적당히 타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 잘못된 것을 적극적으로 고쳐나가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잖은 고통과 피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이럴 때 생각나는 속담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는 노무 작게 보는 버릇에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명을 받고 파송되었습니다! ![]() |
기독교를 멀리하는 16가지 이유⑤ 기독교에 대한 오해 열세 번째는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오기 전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가?"입니다. 복음을 듣지 못한 이순신 장군이나 감강찬 장군은 구원을 받았을까요? 그 대답은 "잘 모른다"입니다. 여기에 대한 성경 로마서 2장은 양심에 따른 심판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양심대로 살면 구원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반대로 인간은 양심대로 살지 못한다는 고발적인 의미가 강한 말씀입니다.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구원 문제는 하나님이 해결하실 일입니다. 우리는 이미 죽은 사람들에 문제에 너무 착념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어떻게 되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이 선하시고 공평하신 분이므로 알아서 적절하고 공평하게 처리할 것을 믿을 따름입니다. 그들이 구원을 받았느냐의 유무는 우리가 천국에 가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현재 우리 모두에게 복음을 통한 구원의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방법이 분명하게 알려진 이상, 옛 선조들의 구원 문제에 대한 관심보다 자신의 구원 문제에 더 깊고 진지하게 신경을 써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에 대한 열네 번째 오해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선순위가 틀렸습니다. 먼저 성경이 하나님이 말씀인지 아닌지를 살펴보기 전에, 우선 예수님께서 역사적 인물임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역사적 인물임을 알고 그의 주장과 삶, 죽음, 부활을 연구해 보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일단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경 여러 곳에서 인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에 대한 오해 열다섯 번째는 "기독교의 하나님이 참 신이라고 해도 왜 내가 꼭 기독교를 믿어야 하나?"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어릴 때 부모와 헤어졌다고 합시다.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부모님이 TV에서 자기 이름을 부르며 찾는 모습을 보았다면 어떻게 할까요? 당장 부모님을 만나러 방송국으로 달려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당신을 만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면,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은 존귀하신 분이 지금 당신을 부르고 계신다면 당신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요? 여전히 하나님을 외면하며 살아야 할까요? 기독교에 대한 오해 열여섯 번째는 "죽기 바로 전에 믿겠다!"입니다. 이 말의 책임은 먼저 교회에 다니는 사람에게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인들 중에 기쁨이 없이 무의미하게 습관처럼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교인을 바라보는 외부 사람들은 당연히 기독교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지금부터 기독교를 믿겠어요? 실컷 놀다가 죽기 바로 전에 믿으면 되지 않겠어요? 그러나 기독교는 결코 우리의 즐거움을 빼앗아가는 금욕적 종교가 아닙니다. 오히려 곤고하던 인생에 기쁨과 소망을 가져다줍니다. 만약 결혼이 괴로운 거라면 70-80대에 하겠지만, 결혼은 축복이며 큰 기쁨이기에 젊은 나이에 하는 것처럼, 정상적인 신앙생활은 행복한 것이기에 믿을 마음이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믿는 것이 좋습니다. 앞의 16가지 이유, 아니 그 아상의 여러 가지 아유로 지금까지 몇십 년 동안 기독교와 거리를 둔 채 굳건하게 버텨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 장애 요소들이 앞을 꽉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한 번도 기독교를 제대로 알 기회를 갖지 못한 것입니다. 문이 아닌 벽으로 들어가려 하니 기독교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입니다.(내일 이어서..) ![]() |
주님이 터지게 하신 은혜의 샘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들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 지를 때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그의 팔 위의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그의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집어들고 그것으로 천 명을 죽이고 이르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천 명을 죽였도다 하니라 그가 말을 마치고 턱뼈를 자기 손에서 내던지고 그 곳을 라맛 레히라 이름하였더라 삼손이 심히 목이 말라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 하니 하나님이 레히에서 한 우묵한 곳을 터뜨리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 불렀으며 그 샘이 오늘까지 레히에 있더라 블레셋 사람의 때에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사사기 15:14-20). 함께 읽은 본문 중에 17절 "라맛 레히"는 턱뼈의 언덕이란 뜻이고, 19절의 "엔학고레"는 부르짖는 자의 샘이란 뜻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 지를 때, 하나님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매 그를 묶은 밧줄이 다 풀리고 그는 나귀의 새 턱뼈로 블레셋 사람 1,000명을 죽입니다. 이후 삼손이 심히 목이 말라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은 한 우묵한 곳을 터뜨려 물이 솟아 나오게 하십니다. 삼손이 그 물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합니다. 그리고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고 부릅니다. 그 후 삼손이 20년 동안 사사로 지냅니다. 라맛 레히(14-17절). 삼손은 사사기 13장 5절,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명을 가지고 세워진 사사입니다. 그러나 그는 동족 유다 사람들에 의해 밧줄에 결박된 체 레히에 이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보자 그를 잡은 줄 알고 큰소리로 승리의 함성을 지릅니다. 이때 삼손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하고 결박된 밧줄이 불탄 실처럼 끊어져 버립니다. 삼손은 근처에 있던 나귀 턱뼈를 집어 들고 블레셋 사람들과 사투를 벌입니다. 나귀 턱뼈라는 보잘것없는 무기로 1,000명을 쳐 죽인 삼손은 이를 기념해 노래를 지어 부릅니다. 16절, "이르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천 명을 죽였도다 하니라" 그리고 그곳을 "라맛 레히" 곧 "턱뼈의 언덕"이라고 부릅니다. 삼손의 노래는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송은 빠져 있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천 명을 죽였다고 울부짖는 짐승과 같이 외친 것입니다. 삼손은 여전히 하나님보다 자신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삼손의 삶은 비록 그가 나실인이었지만 엄밀히 따지면 방탕한 삶을 살아감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 돌릴 일은 무엇이 있는지 묵상합시다. 엔학고래(18-20절). 하나님을 찾고 그분의 은혜를 구하는 자가 구원을 얻습니다. 블레셋 사람 1,000명을 죽인 후, 삼손은 극심한 갈증을 느끼고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이는 삼손이 처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그는 이제서야 18절, 블레셋 사람들을 죽인 일은 하나님이 이루신 것이며 삼손 자신은 도구였음을 인식합니다. 그는 목마름이라는 위기를 경험하고서야 비로소 하나님을 인정하고 자신의 본분을 자각합니다. 드디어 40년 만에 이스라엘 땅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목소리가 삼손을 통해서 터져 나온 것입니다. 이렇듯 더딘 깨달음에도 하나님은 삼손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레히"의 한 장소를 터뜨려 물을 공급해 주심으로 삼손을 구원합니다. 그 물을 마실 때 삼손은 정신을 회복합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마실 때 살아 있는 존재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께 구하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삼손은 이를 기념해 그곳을 "엔학고레(부르짖는 자의 샘)라고 부릅니다. 삼손은 20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활동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시대는 20절, "블레셋 사람의 때"로 불립니다. 주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할 우리의 내적 갈증은 무엇인지 묵상합시다. "우리의 부르짖음을 외면치 않으시고 생수를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쌓아 올릴 수 있었음을 깨닫지 못한 체 저 자신을 앞세웠던 교만을 용서하시옵소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부르짖어 구하지 않으면 목말라 한시도 견딜 수 없는 존재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사명을 따라 걷는 하나님의 선한 도구가 되게 하시옵소서. 삼손처럼 나귀 턱뼈로 1,000명을 죽이는 위대함보다 주님께서 공급하시는 말씀의 샘물을 날마다 마시는 영적인 삶을 추구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겸손하고, 친근한 삶을 살게 하시옵소서!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태복음 23:11-12). 우리에게 한없는 은혜와 사랑으로 함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도 주님을 닮아 겸손하고, 친근한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다른 사람의 지극히 하찮은 것에도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으며, 불필요한 대화에도 정감 있는 대화로 응할 수 있는 모습으로 하루를 살게 하시옵소서. 다른 사람의 큰 실수에는 넉넉한 관용을 보여주며, 큰 허물도 감싸주고 덮어줄 수 있는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또한 다른 사람이 안고 있는 아픔에는 따뜻한 위로를 아끼지 않으며, 용기와 자신감으로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삶을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사랑의 주님, 다른 사람의 사소한 말에도 진지함으로 귀를 기울이며, 강경한 행동에도 대립하지 않고 존중해 줄 수 있는 인격자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또한 다른 사람의 거친 행도에는 온유함으로 설득하며, 무시하는 태도에는 넉넉함과 푸근함으로 받아줄 수 있는 모습으로 하루를 살게 하시옵소서. 이런 모습으로 삶에 희망을 더하는 더하기의 인생을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날마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을 통해 공급받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신 생명으로 우리의 일상을 살아내고 다른 이들에게 공급할 수 있는 건강한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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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 29)”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선교 후원 단체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요 14:23)”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내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요! 그것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를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2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다음 커뮤니티 공식 파워 블로거로 활동 중이며, 현재 78만여 건이 넘는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개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3만 9천여 편의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2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많이 친추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많이 오셔서 좋아요/구독/홍보를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5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0명의 선교사님과 17개의 개척교회를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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