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393번째 이야기
우리의 실수까지도..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까지도 그분의 계획 가운데서 완벽하게 이용하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무지마저도 하나님은 그분의 뜻을 이루어가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먼저 일하신다는 사실은 위태하게 보이는 우리의 인생길에 크나큰 위안이 됩니다. 우리가 실패와 좌절의 상황에 처했을 때,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그 실패를 사용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면 평안함과 자유함 가운데 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빠 아버지의 심장으로 우리를 끝가지 사랑하십니다. ![]() |
사사기 16장 4-5절 "이 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 여인에게로 올라가서 그에게 이르되 삼손을 꾀어서 무엇으로 말미암아 그 큰 힘이 생기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능히 그를 결박하여 굴복하게 할 수 있을는지 알아보라 그리하면 우리가 각각 은 천백 개씩을 네게 주리라 하니" 세상을 향한 사랑은 허무한 짝사랑에 불과합니다. 삼손은 늘 사랑할 대상을 찾아 헤맸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언제나 문제만 일으켰습니다. 사랑받기를 기대하며 다가가지만, 돌아오는 것은 거짓과 배신, 상처뿐이었습니다. 사랑의 대상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의 "대상"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세상과 하나님이라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현명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이 결정이 우리의 영생을 좌우합니다. ![]() |
각본 없는 드라마 미국 미시간대 브라운 박사는 423쌍의 노인 부부를 5년간 조사한 결과, 자기만 아끼고 남을 돕지 않는 사람이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보다 일찍 죽을 가능성이 2배나 높다고 발표했습니다. 브라운 박사의 결론은 “장수 비결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저는 정기검진을 받기 위하여 서울과 대전을 주기적으로 오갔습니다. 검사를 마치고 대전역에 내려서 지하철을 탔을 때였습니다. 한 중년 여자가 여학생에게 다급히 외쳤습니다. “아이고, 학생! 국물 다 흐르네!” 학생이 든 비닐봉지에서 갈색국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습니다. 통로를 냅다 흐른 국물은 제 앞에까지 도달했습니다. 당황한 학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가방에서 몇 장 안 되는 휴지를 꺼내어 바닥을 닦았습니다. 중년 여자도 학생에게 휴지를 건넸으나 턱없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그 순간, 또 다른 여자가 다가와 두툼한 두루마리 휴지를 건네곤 국물을 닦기 시작했습니다. 여학생과 그 일행, 두루마리 휴지를 건넨 여자가 동시에 바닥을 닦자, 국물이 한순간에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때, 한 승객이 말없이 비닐봉지 하나를 건네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휴지뭉치를 담아서 버리라는 뜻 같았습니다. 다시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죽 둘러봤습니다. 무심한 듯 있다가도 무슨 일이 생기면 한순간에 달려들어 문제를 해결하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저 태연함. "아, 이런 배려가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만드는구나!" 아침부터 바삐 움직이느라 고단했던 하루가, 각본 없이 펼쳐진 한 장면으로 위로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빛은 그 존재로 세상을 비추고 소금은 자신을 희생하여 맛을 냅니다. 우리가 그렇게만 산다면 이 세상은 조금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갈 것입니다.(김정원)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성을 일률적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대체적으로 조급하고 다혈질이라고들 말합니다. 그런가 하면, 한국의 국민성 하면 "정(情)"이 많은 민족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튼, 급속도로 발전하는 과학과 경제에 비해서 도덕과 윤리는 아직은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도 문 앞에 있는 택배 물품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 국민의 도덕성이 여전히 높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위의 김정원님의 글에도 언급되었듯이 우리가 빛과 소금의 사명을 잘 감당하여 생명을 구원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 |
기독교의 참모습-사람에 대하여 인간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인간은 불안전합니다. 그리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실수를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바로 이것입니다. "왜 인간은 불안전할까?" 바로 완전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품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이 땅에서 대략 8-90년을 살다가 죽게 됩니다. 과학과 의학이 발달해서 오래 산다고 해도 120년 정도입니다. 인간은 원래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였으나 타락한 후에 죽어야 할 운명으로 바뀐 것입니다. 에덴동산 선악과 옆에 무슨 나무가 있었나요? 마음껏 따먹을 수 있는 "생명나무"가 있었습니다! 이 땅에는 전쟁과 홍수, 지진과 기근이 있으며 고통이 그치질 않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왜 그럴까요? 우리가 지금 낙원을 떠나 고통이 땅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온 이곳에는 외적으로 자연재해와 각종 질병과 전염병이 많습니다. 코로나19가 그 좋은 예입니다. 또 내적으로 여러 가지 부패한 인간의 모습이 있습니다. 자신의 내면을 솔직히 돌아보면 욕심이 있고 시기심이 있습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함께 기뻐해야 할 텐데 왠지 배가 아프죠. 함께 고시 공부하던 친구는 시험에 붙었는데 난 떨어졌다면 이상하게 기쁘지가 않죠. 인간의 마음속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가령 친구 간의 배신이나 부부간의 불화도 있으며, 고부간의 갈등도 있고, 삶의 회의나 자기 연민, 자포자기, 자기혐오나 삶의 무목적성, 그리고 고독과 폭력이나 성적인 문제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거짓말"입니다. 참되신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습은 심히 거짓됩니다. 남에게 거짓말하는 것도 문제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자신에게 거짓말하는 자기 기만입니다. 언젠가 큰 홍수로 많은 이재민이 발생해 신문에 수재 의연금을 낸 사람들의 사진과 액수가 게재되었어요. 그걸 본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색내기는..! 뭐 좀 도와줬다고 자기 사진 싣고 왕짜증이다. 난 말이야, 나중에 부자가 되어 수재 의연금을 내면 이렇게 과시하면서 돈 내진 않을 거야. 아무도 모르게 모르게 내야지.. 그런데 그 모습을 몰래 찍어서 신문에 실어 주면 좋겠어..!" 우리 행동의 동기엔 이런 면들이 많이 숨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인간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셨어요. "나쁜 생각은 살마의 마음에서 나오는데, 곧 음행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의와 사기와 방탕과 악한 시선과 모독과 교만과 어리석음이다" "이러한 악한 것이 모두 속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마가복음 7:21-23). 인간은 도덕적 불감증에 걸려 있어요. 그래서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는지 모르고 그것을 즐깁니다. 깡패들이 사람을 괴롭히면서 즐거워하는 것 또한 도덕적 무감각에서 나온 행위입니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지적했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각하게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예레미야 17:9). 물론 인간에게 선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인간은 완전히 선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완전히 모순 덩어리인 것입니다. 성경은 인생을 "수고와 애씀"으로 묘사했습니다. 인생의 황금기인 청년 시절에도 많은 갈등과 문제가 있는데, 점점 노쇠하고 병들어갈 때는 인생이 얼마나 허무할까요? 결국 이 땅에서는 갈등과 고통이 교차되며, 인간은 수고하고 애쓰다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사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만족을 추구합니다. 첫 번째 만족을 추구하다 얻으면, 두 번째 만족을 얻기 위해 달리고, 또 얻으면 세 번째 만족을 추구하기 시작합니다. 계속 끊임없이 다음 만족을 향해 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마치 마약 중독자가 마약의 강도를 점점 높여가는 것처럼 말입니다.(계속..) ![]() |
깨어진 하나님과의 약속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냐 당신이 이로써 세 번이나 나를 희롱하고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는지를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며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들릴라가 삼손이 진심을 다 알려 주므로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을 불러 이르되 삼손이 내게 진심을 알려 주었으니 이제 한 번만 올라오라 하니 블레셋 방백들이 손에 은을 가지고 그 여인에게로 올라오니라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 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사사기 16장 15-22절). 함께 읽은 본문은 마침내 어둠이 빛을 삼키는 있을 수 없는 일을 보여줍니다. 들릴라가 날마다 집요하게 조르자 결국 삼손은 머리가 밀리면 힘이 없어진다고 진심으로 대답합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나실인임을 밝히면서도 그 나실인 다운 삶을 포기한 인물입니다. 들릴라가 사람을 불러 잠자는 삼손의 머리칼을 밀자 여호와께서 그를 떠나셨으므로 그는 힘이 없어집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삼손의 두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그를 놋 줄로 맨 후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합니다. 삼손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합니다. 힘의 비밀을 밝힌 삼손(15-19절). 삼손을 넘어뜨리기 위한 들릴라의 유혹이 집요합니다. 들릴라는 사사기 14장 17절, 딤나 여인이 그랬던 것처럼, 조르고 협박하는 전략을 사용합니다. 결국 삼손은 들릴라의 강요에 못 이겨 비밀을 밝히고 맙니다. 그것은 나실인의 표시인 긴 머리카락이었습니다. 나실인이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은 서약을 어겼거나 서원의 기간이 끝났음을 의미합니다(민수기 6:9, 13-21). 따라서 삼손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은 더는 나실인이 아님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삼손은 자신이 나실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혀 나실인답게 살지 못했습니다. 삼손은 힘의 비밀을 밝힘으로 하나님과의 약속을 깨뜨린 것입니다. 들릴라는 삼손을 자신의 무릎에 누워 자게 하고, 삼손은 그녀의 무릎에 누어 깊은 잠에 빠집니다. 하나님이 삼손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삼손은 블레셋 사람에 의해 그 머리카락이 잘리고 맙니다. 잠에서 깨어난 삼손은 이전의 삼손이 아니었습니다. 성도는 경건의 능력을 상실해 버린 명목상의 신앙인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오늘날도 거룩하게 구별된 성도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어떤 다짐을 해야 할까요? 두 눈을 잃은 삼손(18-22절). 삼손이 힘을 쓸 수 없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더는 그와 함께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삼손이 가진 힘의 원천은 하나님이었습니다. 머리카락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드러내는 상징일 뿐입니다. 반복된 범죄와 불순종은 하나님의 임재를 떠나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하나님을 떠난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두 눈이 뽑힌 채 옥에서 맷돌 돌리는 신세가 됩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살기를 포기하자 이방 사람의 종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22절, 긍휼의 하나님이 삼손에게 다시금 기회를 주실 것임이 암시됩니다. 삼손과 하나님의 관계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밀렸던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고, 파기되었던 나실인 서약이 다시 시작됩니다. 사라졌던 하나님의 은혜가 다시 임한 것입니다. 사라졌던 소망이 작은 변화 속에서 새롭게 피어납니다. 우리의 신앙에서도 소소하게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죄를 깨닫고, 자복하고, 주님께로 돌아오십시오. 우리가 영적 침체에 빠지는 요인이 무엇인지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아버지, 거듭된 죄악으로, 하나님이 함께하심과 그 감격을 잊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돌이킬 수 없을 때가 오기 전에, 죄의 유혹을 즐기며 서성이던 자리에서 돌이키게 하시옵소서. 우리가 누구인지 분명히 깨달아 그 존재에 합당하게 행하며 살아가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게 하시옵고, 날마다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하나님을 만나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이사야 55:6). 우리와 함께 하시고 만나주시며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만나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아브라함이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만난 것처럼, 오늘 하루도 우리의 삶의 필요를 채워주시며 언제나 가까이에서 지켜주시고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또한 "여호와 살롬"의 하나님을 만나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기드온이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난 것처럼, 오늘 하루도 이 세상에서 줄 수도, 빼앗을 수도 없는 평강을 채워주시옵소서.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을 만나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영원한 깃발이 되시는 주님, 승리하게 하시는 주님, 능력의 하나님을 만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호와 라아"의 하나님! 언제나 우리의 목자 되시는 주님, 그 지팡이와 막대기로 안전하게 인도하시며, 부족함 없이 채워주시는 주님을 바랍니다.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옵소서. 치료하시는 우리 주님, 상한 영혼과 병든 육신을 강건하게 회복시키시며, 생명력을 더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 몸과 영혼이 치유받게 하시옵소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때 우리의 삶이 변화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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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 29)”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선교 후원 단체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요 14:23)”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내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요! 그것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를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2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다음 커뮤니티 공식 파워 블로거로 활동 중이며, 현재 78만여 건이 넘는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개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3만 9천여 편의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2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많이 친추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많이 오셔서 좋아요/구독/홍보를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5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0명의 선교사님과 17개의 개척교회를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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