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394번째 이야기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실패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큰 계획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갖게 됩니다. 모든 일 가운데 하나님의 선이 이루어질 것을 신뢰할 때, 우리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 진리에 대한 믿음이 우리 삶을 평강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이 가지신 비전이 무엇인지를 묻고 그 비전에 자신을 의탁하는 것입니다. 내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것을 붙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기 때문입니다! ![]() |
사사기 16장 21-22절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 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삼손이 가진 힘의 원천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의 머리카락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드러내는 상징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삼손은 눈이 빠진 채, 놋 줄에 매여 옥에서 맷돌을 돌리는 신세로 전락합니다. 하지만 삼손과 하나님의 관계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밀렸던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고, 파기되었던 나실인 서약이 다시 시작됩니다. 사라졌던 하나님의 은혜가 다시 임한 것입니다. 사라졌던 소망이 작은 변화 속에서 새롭게 피어납니다. ![]() |
그렇게 제 눈앞에서 죽어갔습니다 1990년대 중반, 저는 북한에서 극심한 고난의 행군 속에서 이루 셀 수조차 없는 죽음을 봤습니다. 지금도 제 기억 속에 잊히지 않는 한 장면이 있습니다. 제 고향 청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저는 그날, 청진 역에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기차 시간은 언제나 불규칙하기 때문에 무작정 역사를 기웃거리며 언제쯤 열차가 오나 수시로 확인해야 했습니다. 어느덧 저녁때가 되어 대합실에 들어섰는데, 바닥에는 빼곡히 꽃제비 아이들이 누워있었습니다. 배고픔에 지쳐 쓰러져 자는 아이들 사이사이 비좁은 바닥을 헤치며 힘겹게 대합실 의자에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앞에 누워 자던 한 4~5세쯤 되어 보이는 아이의 입에서 거친 숨결이 느껴지며 거품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옆에 있던 노인이 “저 아이, 마지막 숨을 쉬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아이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그렇게 제 눈앞에서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아무 느낌이 없었습니다. 마치 돌덩이를 보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솔직히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는 없었습니다. 바로 그 죽음이 저였으니까요! 그 모습이 제 고향 청진을 떠나오며 마지막으로 본 조국의 모습이었습니다. 마치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그렇게 고향 청진을 떠나 중국으로 넘어갔습니다. 북녘 동포들이 이처럼 비참한 삶을 살게 된 것이 과연 누구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결코 북녘 동포들의 잘못은 아니지 않습니까? 만일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것도 그들의 잘못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 비극이 언제까지 계속될는지, 저는 하나님이 원망스러울 때가 없잖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어떤 놀라운 계획과 섭리가 분명히 있으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 일이 속히 이루어지도록 간절히 기도합시다.(김북한 목사) ![]() |
기독교의 참모습-사람에 대하여② 사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만족을 추구합니다. 학교를 졸업하면 취업, 취업 후에는 결혼, 결혼 후에는 자녀 출산과 양육, 집 장만 등 삶의 해결 과제들이 계속 주어집니다. 이외에도 고부, 부부, 직장 동료 간의 갈등 등 인간관계에서 벌어지는 끊임없는 문제들이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미로처럼 펼쳐지고,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 마음은 늘 불안과 갈등으로 뒤엉켜 있습니다. 너무 어두운 시각으로만 바라본 것은 아닌지 모르지만, 하지만 이것이 인생의 실체입니다. 수고하고 고생하면서 무엇인가 만족할 만한 목표를 좇아가지만 늘 채워지지 않는 빈 구멍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친구가 갑자기 죽었을 때 인생의 허무함과 공허함을 경험해 보았나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을 얻어 성실히 살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이렇듯 인간은 다 죽습니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명백한 진리입니다. 죽음이란 장벽에 부딪쳐 보면 인간은 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도 점을 치러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앞날을 모르는 인간에게 신적 존재를 의지하려는 본능이 있다는 단적인 증거입니다. 이를 일컬어 종교성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구원받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부리가 뽑힌 나무처럼 말입니다. 뿌리가 뽑힌 나무는 서서히 썩어갑니다. 그런 나무에게 잎을 초록색으로 칠하고 영양주사를 맞히면 일시적으로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마르고 썩을 수밖에 없습니다. 나무가 땅에서 뽑혔다는 말은 이미 그 나무는 죽었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인생의 실존에 대해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벗어났다." 인간은 썩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썩어가는 인간의 증상은 무엇일까요? 바로 교만과 열등감, 기만, 음탕함, 거짓, 시기, 미움, 다툼과 같은 것입니다. 부모가 거짓말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거짓말을 쉽게 합니다. 인간들이 모이면 갈등과 싸움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자기 고집이 있고 자기 것 챙기기 바쁩니다. 이는 인간이 땅에서 뽑힌 나무와 같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일 뿐입니다. 나무가 땅에서 뽑혀 나온 상태, 즉 하나님을 떠나 가출한 인간의 상태인 것입니다. 자기를 지으시고 사랑하는 그분을 박차고 나온 결과로 닥친 운명입니다. 이를 한마디로 "인간은 죄에 빠져 있다"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이 된 것이 아니라 근본이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어느 날 바닷가 해변에 엄마 꽃게가 새끼 꽃게를 나무라면서 말했습니다. "얘야, 잘 좀 걸어 봐라. 넌 왜 옆으로 걷니? 똑바로 걸어야지!" "근데 엄만 왜 옆으로 걸어요?" "얘도 참, 엄만 꽃게잖니..!" 마찬가지로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화장실을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며, 자기가 아쉬울 때와 넉넉할 때가 다릅니다. 음란한 마음을 억제하기 어렵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고칠 방도가 없습니다. 옛날 많은 성현들도 이런 문제들 태문에 수양과 고행의 길을 택해서 살곤 했습니다. 신학자 마틴 루터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악을 씻어보려고 무릎으로 계단을 오르며 잠도 안 자고 고행을 했습니다. 또 스님들도 죄를 없애려고 얼마나 노력하던가요? 음욕을 없애려고 정신을 통일하며 도를 닦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에는 여전히 음욕이 있습니다. 죄성은 지울 수도, 고칠 수도 없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철저히 공의로운 분이십니다. 이 공의가 오히려 우리에겐 희망입니다.(계속..) ![]() |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이르되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다 모여 그들의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하고 백성들도 삼손을 보았으므로 이르되 우리의 땅을 망쳐 놓고 우리의 많은 사람을 죽인 원수를 우리의 신이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자기들의 신을 찬양하며 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에 이르되 삼손을 불러다가 우리를 위하여 재주를 부리게 하자 하고 옥에서 삼손을 불러내매 삼손이 그들을 위하여 재주를 부리니라 그들이 삼손을 두 기둥 사이에 세웠더니 삼손이 자기 손을 붙든 소년에게 이르되 나에게 이 집을 버틴 기둥을 찾아 그것을 의지하게 하라 하니라 그 집에는 남녀가 가득하니 블레셋 모든 방백들도 거기에 있고 지붕에 있는 남녀도 삼천 명 가량이라 다 삼손이 재주 부리는 것을 보더라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삼손이 집을 버틴 두 기둥 가운데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삼손이 이르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다 내려가서 그의 시체를 가지고 올라가서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그의 아버지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하니라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사사기 16장 23-31절). 함께 읽은 본문 23절의 "다곤"은 물고기 또는 곡식(옥수수)이라는 뜻이며, 블레셋이 풍요의 신으로 숭배했습니다. 본문은 사사 삼손의 최후에 관한 내용입니다.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삼손을 잡은 것이 다곤 신의 도움이었다고 여겨 그들의 신 다곤에게 큰제사를 드리며 즐거워하고 삼손에게 재주를 부리게 합니다. 삼손은 신전(집)을 지지하는 기둥을 찾아 붙들고 마지막으로 원수를 갚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삼손이 힘을 다해 몸을 굽히니 집이 무너져 모두 죽습니다. 삼손이 죽을 때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습니다. 블레셋의 조롱거리가 된 삼손(23-27절). 나실인의 서약을 어긴 삼손은 이방 사람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맙니다. 삼손을 굴복시킨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들의 신 다곤에게 감사의 제사를 드리며 즐거워합니다. 그들은 다곤 신의 도움으로 도무지 이길 수 없던 강한 삼손을 제압했다고 생각하고 또 자신들이 섬기는 다곤 신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이겼다고 믿었습니다. 삼손의 잘못으로 하나님이 무능한 신처럼 여겨지게 된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술에 취해 분위기가 한참 무르익자 삼손을 불러 재주를 부리게 하여 희롱 거리로 삼습니다. 삼손의 재주를 보기 위해 블레셋 사람들이 모여들고, 자리가 모자라 신전의 지붕 위까지 들어찹니다. 신전 지붕에만 삼천 명 가량의 사람들이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무능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창조주요, 전지전능하시고, 세상의 주관자십니다. 결코 다곤과 같은 우상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존재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굴욕적인 상황 가운데서도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이제 블레셋을 징계하실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기 위해 우리가 피해야 할 행동은 무엇이 있을까요? 삼손의 부르짖음과 최후(28-31절). 두 눈이 뽑힌 후, 삼손은 처음으로 자신의 실상을 봅니다. 그는 자신이 전적으로 무력한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하나님이 함께하심이 능력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이 상황에서 삼손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죽기로 각오하고 온 힘을 다해 블레셋 신전의 기둥을 밀어냅니다. 이로 인해 블레셋 신전이 무너져 내리고 신전 안과 지붕 위에 있던 블레셋 사람들이 죽임을 당합니다. 삼손의 부르짖음에 하나님이 응답하신 것입니다. 비록 늦었지만, 삼손은 자기에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끝났다고 할 때 하나님은 다시 시작하십니다. 삼손의 최후를 보면 그는 실패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삼손은 불운한 사사일지언정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사는 아니었습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을 죽음으로 완수한 사명자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분께 부르짖는 자의 소원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사명자는 눈에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갑니다. 부르짖는 자의 소원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우리가 간구할 것은 무엇인가요? "부르짖는 자의 소원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아버지,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결과로 성공과 실패를 판단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방법이 다양함을 알기 때문에 결코 두려워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나아갑니다. 우리의 남은 인생을 신앙의 흐트러짐 없이 살아가며 하나님께 영광이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의 입술과 행보로 하나님의 이름이 조롱당하지 않도록 매 순간 붙들어 주시옵소서. 마지막 호흡까지 사명을 다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를 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결단력 있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여호수아 1:6-8). 늘 우리를 격려하시며 살아갈 힘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이 언제나 결단력 있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극히 작은 유혹 앞에서도 주저하거나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하시고, 단호히 결단할 수 있는 지혜가 있게 하시옵소서. 악한 말에는 동조하지 않으며, 불의한 일과는 타협하지 않는 믿음으로 살게 하시옵소서. 아닌 것은 "아니오!" 할 줄 알게 하시고, 옳은 것은 "예!" 할 수 있는 행동을 보일 수 있게 하시옵소서. 좋지 않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에라도 양심의 등불을 밝힐 수 있게 힘과 용기를 우리에게 주시옵소서. 반대로 좋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는 기도할 수 있는 겸손함이 있게 하시옵소서. 피하여야 할 자리에는 기웃거리지 말게 하시고, 불가능할지라도 필요한 행동이 있어야 할 때는 용기를 보일 수 있게 하시옵소서. 의롭고 선한 일에는 뒷걸음질 치지 말게 하시고, 주님의 뜻을 나타내는 일에는 늘 선봉에 설 수 있는 믿음으로 살 수 있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삶이 항상 바른 결단력을 보일 수 있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영혼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옵소서. 모든 일에 있어서 충분히 숙고하고 기도하며 결단력 있게 행동으로 옮기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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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 29)”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선교 후원 단체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요 14:23)”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내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요! 그것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를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2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다음 커뮤니티 공식 파워 블로거로 활동 중이며, 현재 78만여 건이 넘는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개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3만 9천여 편의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2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많이 친추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많이 오셔서 좋아요/구독/홍보를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5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0명의 선교사님과 17개의 개척교회를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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