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 선교 사역
본문: 사도행전 16장 11-40절(읽기: 27-34절)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사도행전 16장 27-34절)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바울과 동역자들은 배를 타고 드로아에서 95킬로미터 떨어진 사모드라게 섬으로 항해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115킬로미터 떨어진 네압볼리로 간 후, 다시 근접한 도시인 빌립보에 도착했습니다. 12절은 빌립보가 로마의 식민지였고, 마게도냐 지역의 중심도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 번화하고 영향력 있는 도시를 위한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안식일에 바울과 동역자들은 기도하기 위해 도시 밖에 있는 강가로 나아갔습니다. 이 말은 빌립보에 있는 유대인 공동체가 회당을 운영할 정도로 크지 못했음을 의미했습니다. 지역의 작은 유대인 공동체는 강가에 조용한 기도처를 만들어 놓고 그곳에서 거룩한 날에 모이곤 했습니다. 그 장소에 대해 소문을 들은 바울 일행은 그곳으로 찾아가 기도하기 위해 모인 여인들을 만났습니다. 그중에는 루디아라는 여인도 있었는데, 그녀는 자색 옷감으로 유명한 두아디라에서 옷감을 팔기 위해 빌립보로 오곤 했습니다. 14절은 그녀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리스도인은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설교를 하지 하나님이 그녀의 마음을 열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열어주시는 분은 주님이시며, 잃어버린 죄인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영적인 장애인에게는 영을 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고, 영적으로 죽은 자에게는 새 생명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기적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 우리를 부르셨지만, 이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이 필요하실 때 사용하실 수 있도록 하나님 앞에 준비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십니다. 그래서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과 나눌 때,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셨습니다.
15절은 루디아와 그녀의 가족이 모두 세계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 다른 가족들과 함께 복음을 나누었단 말인가요? 그럴 가능성이 많습니다. 40절에서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를 떠나기 전에, 루디아의 집에 있는 "형제들"을 만났습니다. 여기서 "형제들"이란, 사도행전에서의 사용법을 볼 때, 주님을 영접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 말은 루디아의 증언과 바울의 설교가 루디아의 가족들에게 영향을 끼쳤음을 의미합니다. 루디아의 가족들이 세례 받고 그리스도인이 됨으로 그녀의 가정은 빌립보에서 바울이 사역할 수 있는 거점이 되었습니다.
그런 중 어느 날 바울이 도시 밖에 있는 기도처를 찾아갔을 때, 거기서 귀신 들려 미래를 예언하는 한 여종을 만나게 됩니다. 그녀의 주인은 이 여종의 능력을 이용해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바울과 동역자들을 따라다니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17절을 읽겠습니다.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그러면서 그녀는 사도의 설교를 들으라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여러 날 계속되자 바울이 그녀 안에 있는 귀신을 꾸짖었습니다. 이 말은 그녀가 그의 뜻이 아니라 사탄의 조종을 받아 말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가르침을 얻습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을 되새겨 봅시다.
마태복음 7장 22, 23절을 읽어 들이겠습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사람이 예언을 하고 귀신을 쫓으며 기적을 행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은 아닙니다. 예언은 주님의 이름으로 행할 때 참된 가치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귀신 들린 여종이 말한 내용은 사실이었지만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현상에 속지 말기 바랍니다. 사탄은 주님을 모르는 자들을 교회에 침투시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합니다. 그래서 일단 교회에 들어오면 사탄은 그들을 통해 할 수 있는 모든 해악을 교회에 끼치게 만듭니다.
바울은 모든 것을 보이는 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서 귀신이 여종으로부터 도망치자 그녀의 주인은 바울이 행한 일이 달갑지 않았습니다. 수익을 올려주던 여종의 능력이 사라지자 그들은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의 관리들에게 끌고 가서, 그들이 도시를 소란케 했으며 로마 시민들에게 불법적인 관습을 소개했다고 고소했습니다. 이때 군중들도 그 고소에 가담하자 관리들은 바울과 실라의 옷을 찢어 벗기고 때렸습니다. 많은 매를 맞고 그들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감옥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주목해야 합니다.
그들은 한밤중까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주님을 예배하는 동안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이 진동했습니다. 문들이 열리고 묶고 있던 줄들이 풀렸습니다. 이 모습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바울과 실라는 이 상황에서 패배감에 모든 것을 포기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감옥에 갇혔고 그들의 미래는 암울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의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온전하신 계획과 목적을 깨닫고 기뻐하면서, 찬양으로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위대하심을 고백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적의 압제를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혹시 지금 좌절하고 있습니까? 삶이 여러분을 속이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바울과 실라가 그날 밤에 경험했던 교훈을 다시 배워야 합니다. 고난이 닥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의심하지 않았습니까? 그 고난을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여기지 않음으로 패배감 속에서 좌절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지금이 바로 고난 중에 주님을 찬양하는 법을 배워야 할 때일지 모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항상 최선의 선택입니다. 지금의 상황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우리는 너무 자주 자신의 태도에 얽매인 존재로 살아갑니다.
제가 어느 날 유튜브를 통해 한 시각장애인이 인도하는 예배에 참여했던 적이 있는데, 나는 그가 예배를 인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느끼는 행복과 기쁨을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시각 장애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훨씬 경미한 고통 속에서도 세상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시각장애인 인도자는 고난 중에서도 주님을 찬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는 비록 육체적으로 제한적인 상태에 있었지만 영적으로는 분노와 억울함과 울분으로부터 해방된 존재입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신뢰하고 예배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예배와 분노는 공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 분노하든가 아니면 주님을 믿고 예배하든가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그 결단에 따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함을 얻거나 아니면 잘못된 태도에 얽매여 살아가게 됩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간수는 열려있는 감옥의 문들을 보고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로마법에 따르면 죄수가 탈옥을 한 경우, 간수는 사형에 처하게 되어 있었으므로 간수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죄수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 간수가 자살하기 직전 바울이 그를 부르자, 그가 감옥 안으로 뛰어들어왔습니다. 모든 죄수들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본 그는 두려움에 떨며 바울 앞에 엎드려 자신이 구원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아직 회심하지 않은 이 간수가 왜 이런 질문을 했을까요? 이는 아마도 귀신 들린 여종이 매일 밖에서 17절,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라고 외쳤던 것과 상관이 있을 것입니다.
간수도 틀림없이 이 귀신 들린 여종이 외치는 소리를 들어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이 빌미가 되어 지금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혀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간수는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보면서 귀신 들린 여종이 외치는 소리가 진실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귀신 들린 여종은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본 사람이었습니다. 간수의 마음이 복음을 향해 열렸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을 찬양할 때 이 간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 찬양이 간수에게 감동을 주었을까요? 찬양사역자이기도 한 제가 볼 때, 분명히 그들이 고난 가운데 불렀던 찬양이 그의 마음을 열리게 했음이 틀림없습니다. 죄수들이 탈출하지 않는 것이 빌립보의 간수에게는 마지막 희망이었습니다.
이는 마치 하나님이 직접 그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간수는 자기 목숨을 버릴 참이었으나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그를 부르셨습니다. 절망에 빠졌던 간수가 제자들에게 마음을 열자 하나님은 그를 만나주셨습니다. 간수는 두려움으로 자신이 지켰던 죄수들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들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는 이 사역자들이 구원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들임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 여종이 외친 소리는 사실이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의 간수에게 구원을 얻기 원한다면 주 예수를 믿으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간 이유는 바로 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간수는 빌립보에서 주님을 믿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제자들의 모습에서 주님을 믿는 일이 그만한 가치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성령님이 간수의 마음 안에서 일하신다는 증거였습니다. 바울은 구원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으며 또한 그 구원이 간수 한 사람만이 아닌 그와 온 가족들에게 임할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32절은 바울이 간수의 가족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그리고 34절에 의하면, 바울의 설교를 통해 간수의 가족들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실라를 데려다가 상처를 치료해 주었고 모두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빌립보의 간수는 모든 가족들이 하나님을 믿게 됨으로써 그날 밤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
아침이 되어 상관들이 간수에게 바울과 실라를 풀어주라고 명령했지만, 바울은 감옥을 떠나길 거부했습니다. 그는 관리들에게 자신이 로마 시민임을 밝히고, 자신에 대한 처벌이 부당함을 알렸습니다. 그러면서 상관이 와서 직접 자신들을 풀어주라고 말했습니다. 왜 바울은 감옥을 그냥 나가지 않았을까요? 왜 그는 상관의 사과와 호위를 받기 원했을까요? 우리는 바울의 동기를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인데, 아마도 바울은 당시 온 도시가 자신의 선교활동으로 혼란에 빠진 상태임을 감안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바울과 실라과 관리의 호위 없이 길거리에 나타난다면 사람들이 그들에게 위해를 가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관리들의 호위를 받으며 루디아의 집으로 가길 원했을 것입니다.
군중들이 로마 군인의 호위를 받는 바울과 실라를 보면 적대감을 직접 표현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동역자들과 함께 로마 군인들의 호위를 받았지만, 그것은 임시 조치였을 뿐 그들은 바울 일행이 그 도시를 떠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루디아의 집으로 돌아와 새로 회심한 성도들에게 용기를 준 바울 일행은 빌립보를 떠나 다른 선교 여정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루디아의 집에 작은 신앙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아마도 그 공동체는 지금 예림 교회처럼 이렇게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공부하며 은혜를 나누고 교제의 만찬을 하는 가정교회였을 것입니다.
후에 바울이 그 교회에 편지를 썼는데 그것이 바로 빌립보서입니다. 빌립보에 보낸 편지에서 바울은 빌립보서 1장 27-30절, 그들이 고난을 잘 견디고 있음을 인정했는가 하면, 빌립보서 2장 1-4절과 4장 1절,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분열되는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서 3장 2-4절, 그들은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직면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어려움에도 빌립보 교회는 신실함을 유지했습니다. 그들은 빌립보서 4장 14-15절, 바울의 초기 선교 여행에 필요한 여비를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어려움과 미약한 시작에도 빌립보 교회는 성숙하게 성장했으며 복음을 위해 세상에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본문에 귀신 들린 여종처럼 불신자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언과 기적을 행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진짜 종인지 구별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할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왜 하나님을 찬양했을까요? 그들은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는 고난도 감사하고, 감옥도 천국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찬양은 우리를 삶의 감옥에서 해방시켜 줍니다. 우리도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찬양과 예배를 하나님께 오려드리길 바랍니다. 빌립보에서 놀라운 생명을 구원하는 놀라운 일을 행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시련과 옥살이를 어떻게 사용하셨는지 주목하시고, 이 사건이 우리의 문제와 갈등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주는지 묵상합시다. 마지막으로 주님께서 우리가 감당할 사역을 위해 우리를 인도하시고 앞서 가심에 감사합시다! 기도합니다.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우리를 사용하시는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본문에서 우리는 찬양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무슨 일을 행하셨는지 묵상하면서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기 위해 모든 일들을 행하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우리가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주님을 신뢰하고 헌신하게 하시옵소서. 어떻게 주님께서 바울과 동역자들을 사용하셨는지 살펴보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사역할 때 우리 앞에서 먼저 일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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