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선교여행① 여행의 시작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사도행전 15장 36-41절).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 한동안 머물렀습니다. 그러다 바울은 첫 번째 선교 여행에서 세운 교회들이 어떻게 됐는지 확인하고 싶어졌습니다. 바울이 쓴 신약성경 서신서들을 보면 그가 각 지역의 회심자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끊임없이 염려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편지를 쓰곤 했습니다. 어떤 사도도 바울만큼 많은 편지를 회심자들에게 쓰지 못했습니다. 여러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바울은 자신의 마음속에 각 교회의 성도들이 항상 자리 잡고 있음을 밝혔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어떻게 신앙적으로 성장하고 있는지 보고 싶었고, 혹시 주님으로부터 멀어졌거나 거짓 교사들을 따라가지는 않나 늘 걱정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자신이 세운 교회의 성도들의 영적인 상황들을 아버지의 입장에서 염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나바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바울의 조력자였으며, 9장 27절, 예루살렘에서 다른 사람들이 바울(사울)의 회심을 믿지 않았을 때 사울을 도와준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는 또한 바울은 사도들에게 소개했으며 그가 어떻게 주님을 믿게 되었는지 설명해 주었고, 11장 25절에서는 다소에 가서 바울을 데려다가 안디옥 교회에서 함께 사역하기도 했습니다. 바나바는 첫 번째 여행에서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도 13장 14절, 바울의 곁을 신실하게 지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공의회 앞에서도 자신들의 사역을 변호하며 바울과 함께했었습니다. 이처럼 처음부터 공의회에 참석했던 바울과 바나바는 가장 완벽한 선교 팀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자신들을 통해 세워진 교회를 다시금 돌아보고자 하는 바울의 의견에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이전과 같이 이번 여행에도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려가길 원했습니다. 이 요한은 첫 번째 선교 여행을 함께했지만 13장 13절, 중도에서 포기하고 떠났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요한을 두 번째 여행에 데려가야 하는지에 대해 바울과 바나바는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요한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고 싶어 했으나, 바울은 지난번 여행에서 보여준 그의 태도 때문에 그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 일로 39절 서로 심히 다투기까지 되었습니다. 그들은 결국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습니다. 바나바는 원래대로 요한을 데리고 가기로 했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가기로 했습니다.
누가 옳았는가에 대한 의견은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옳고 그름을 따질 일이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러한 문제에 부딪혔다고 원래의 계획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신앙생활에서 주어진 문제에는 오직 한 가지 답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모든 주제에 항상 의견의 일치를 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어떤 사람은 옳고 다른 사람은 틀리다고 속단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비록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일어난 갈등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이 일은 두 선교사들의 서로 다른 관점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바나바는 남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조력자입니다. 그는 이 젊은 사역자 요한이 겪었던 일에 대해 늘 부담감을 갖고 있었을 듯합니다. 요한은 첫 번째 여행에서 이탈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선교사의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주님 앞에 용서를 구하고 두 번째 여행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지난번 여행에서 그는 자신이 예상치도 못한 일을 경험하면서 힘들었을 것입니다.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이 훌륭한 동반자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이번의 두 번째 여행을 통해 그의 자신감을 회복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그가 이번 기회를 얻지 못한다면 그는 일생 동안 좌절감에 시달리며 살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바나바는 이번 여행이야말로 마가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는데 꼭 필요하다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편 바울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 앞에 펼쳐질 여행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첫 선교 여행에서 그는 돌에 맞아 죽을 줄 알고 루스드라 성 밖에 버려졌었습니다. 그와 바나바가 가는 곳마다 박해가 잇달았습니다. 바울의 의도는 자신이 세운 교회들을 다시 방문하려는 것이었으며 그곳의 교회 사람들도 바울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어떻든 이번 여행도 생명의 위협을 감수해야 할 상황이었으므로 지난번에 고난 앞에서 사역을 떠난 요한은 이번 사역에는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요한이 주님을 섬기는 데 부족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여행이 그에게 맞지 않는다고 여겼을 뿐입니다. 그에게는 분명히 해야 할 다른 사역이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다음에는 그와 함께할 사역의 기회가 있겠지만 이번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요한은 성숙의 시간을 더 가져야 했습니다. 따라서 두 번째 사역에서 또 실패한다면 그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절망이 찾아오리라는 것, 그것이 바울의 생각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갈등에서 어느 의견을 따르겠습니까? 바울과 바나바의 갈등은 올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은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를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제가 그들의 멘토가 되어 이 문제의 해결에 대한 답을 묻는다면, 두 사람이 갈라져 서로 다른 사역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면할 듯싶습니다. 왜냐하면 마가 요한의 마음도 살펴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을 향한 그의 생각과 자신에 대한 바울의 단호한 태도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그리스도의 동역자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된 그 둘 사이에 어떤 벽이 쌓여 있었을까요? 또 바나바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바나바는 그동안 바울과 늘 함께 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 일에 대해서만은 바울과 같은 생각을 가질 수 없었을까요? 또한, 바울은 이 상황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그는 바나바의 의견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을까요? 이 시점에서 바울과 바나바의 관계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이런 질문들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입니다. 결국 두 번째 선교여행은 이처럼 나눔, 헤어짐이란 불편한 마음 상태에서 시작될 수박에 없었습니다.
아마도 사탄은 이런 분열을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런 상황을 주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하나님은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해 계속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목적을 달성하시기 위해서라면 인간의 죄도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어떠한 결론적인 일이 벌어졌는지 주목하기 바랍니다. 즉, 세 사람이 한 팀을 이루지 않고 두 팀으로 나뉜 채 선교를 떠난 결과, 더 많은 지역과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교회가 든든히 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주목해야 할 점은 하나님께서는 이미 마가라 하는 요한과 바울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감을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마가 요한은 용기를 얻고 믿음의 성장을 이뤄야 하는 반면 바울은 그가 두 번째 사역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마가에게는 바나바와 함께 사역을 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비록 우리는 바나바와 그가 어떤 사역을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후에 바울이 마가라 하는 요한에 대해 다른 평가를 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골로새서 4장 10절에서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마가라 하는 요한을 환대하라고 권고했습니다. 또한 디모데후서 4:11절에서도 바울은 자신이 외로움에 처했을 때, 마가라 하는 요한이 목회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불러옵니다. 이처럼 바나바는 새로 시작한 교회에서 마가가 훌륭한 사역을 하도록 큰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아마 우리도 비슷한 상황을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어쩌면 가끔 우리는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이 여러분에게 소망을 줄 것입니다. 마가라 하는 요한이 인내하고 상황을 이겨내면서 다시 일어나 초대교회에서 중요한 사역자로 활동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마가 요한의 삶을 모범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주변에 좌절한 사람들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바나바와 같이 그 사람들에게 보내셔서 그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기 바라고 계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이 상황을 아시고 다른 사람을 사역자로 보내주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실라는 바울과 함께 두 번째 선교 여행을 떠났으며, 마가 요한처럼 시간이 지난 후 성숙한 사역자로 변신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손에 쓰임 받는 유용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함께 훌륭한 사역을 감당했지만 이제는 서로 나뉘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상황을 이용하셔서 선교의 비전을 두 배로 늘이셨으며, 교회의 선교 비전도 확장시켜 주셨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바울과 바나바의 갈등을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 사역에서도 그와 같이 일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함께하는 시간은 한정적입니다. 여기 권사님은 고작 주일 예배를 포함해서 길어야 다섯 시간, 여기 사모님은 주말부부로써 애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합니다. 솔직히 제가 여러분의 일상을 다 일지 못하고, 고민과 사역을 다 일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겪고 있는 모든 고난과 시험을 주관하시리라 굳게 믿습니다. 하나님은 고난과 시험을 통해 선한 일들을 이루십니다. 때로는 시간만이 고난을 통해 일하시고 선한 결과를 만들어 내시는 하나님을 정확히 설명해 줍니다. 제가 2주간 휴가를 받아 나름대로 재충전을 한 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요, 은혜입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을 신뢰합시다. 주님은 우리를 잘 아시기 때문에 여러 모양으로 인도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들 가운데는 어떠한 의견 차이나 다툼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 차이들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어떻게 사용하실까요? 우리가 살면서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형제, 자매들에 대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본문을 통해 잘 배우셨기를 바랍니다. 더욱 사랑하고, 용납하며, 그분을 위해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또한 서로 틀렸다고 탓하지 말고, 우리의 삶에서 선한 일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과 시험을 은혜롭게 통과하게 해달라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시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의 고난마저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비록 우리와 의견과 다를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자매들의 합당한 결정들을 인정하게 하시옵소서. 그리고 의견이 다른 교회 공동체의 형제, 자매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의 비전과 증언들이 확장되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 가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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