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본문: 사도행전 13:13-52
읽기: 사도행전 13:44-52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바울과 바나바와 마가라 하는 요한은 구브로 섬을 가로질러 여행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비록 사탄의 방해가 있었지만 주님의 사역은 계속 진행되었습니다. 이때 로마 제국의 관리인 서기오 바울이 주님을 영접했는데 이것 하나만으로도 그들의 선교 여행은 가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보로부터 약 280킬로미터 북쪽에 위치한 밤빌리아의 버가로 배를 타고 여행했습니다. 버가에 도착하자마자 마가라 하는 요한은 그들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사도행전 15장에 의하면 바울에게는 요한이 떠난 것에 대한 아픔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두 번째 선교 여행을 떠나려 할 때, 바울이 마가 요한을 데려가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지금 그가 선교 여행을 중단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은 요한이 떠난 이야기 외에는 버가에서의 사역에 대해 다른 기록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버가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다시 북쪽의 비시디아 지역에 있는 안디옥으로 여행했습니다. 이 도시는 바울과 바나바가 처음으로 사역하던 시리아의 안디옥과는 다른 곳입니다. 그들이 안식일에 한 회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구약의 종교가 매우 형식을 중요시한다고 생각하지만, 본문에 의하면 그 회당은 형식에 치우치지 않은 자유로움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율법과 예언서를 읽고 난 후, 회당장은 바울과 바나바에게 함께 나누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고 기회를 주었습니다. 바울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다음은 바울이 그날 회당에서 전한 말씀을 간추린 내용입니다.
바울은 유대민족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회중들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그는 어떻게 그들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 되었는지를 상기시켰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구출하실 때까지 그 땅에서 번성케 하셨으며 모세를 통해 위대한 출애굽의 역사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40여 년간 광야에서 방황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을 참으시면서 여호수아를 통해 가나안 지역의 일곱 민족을 물리치시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땅을 분배해 주셨습니다. 바울에 의하면 이 사건들은 450여 년에 걸쳐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자 사사들이 사무엘 시대까지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렸는데, 사무엘 시대에 이르러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자 하나님은 그들에게 사울이라는 왕을 주셨고, 그는 40년 동안 통치를 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은 사울을 폐하시고 자신의 마음에 드는 다윗을 왕으로 세우십니다. 다윗은 사울과 달리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이 같은 이스라엘의 간략한 역사를 이야기한 바울은 다윗의 족보에 대해 말했습니다. 바울은 그 위대한 왕으로부터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구원자 예수를 보내시리라고 약속하셨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이 이 구원자 앞에 와서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하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요한은 약속된 구원자는 아니었지만 구원자의 오심을 알려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요한은 앞으로 오실 분에 대해 설명하면서 자신은 그분의 신발 끝도 매어 드릴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예수님을 구원자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으셨지만 예루살렘 사람들과 지도자들은 빌라도를 시켜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무덤에 넣고 봉했지만 예수님은 무덤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죽음에서 살아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나신 예수님을 여러 날 동안 목격했으며, 그 목격자들이 지금 예수가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유대인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후, 바울은 주님의 말씀을 이해시키기 위해 세 애의 구약 성경 구절을 인용했는데, 첫째로 그는 말씀을 청중들에게 일러주었습니다. 33절을 함께 읽습니다.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이는 시편 2편 27절의 말씀입니다. 물론 이 말씀과 바울이 그때 청중에게 한 말의 관계성을 찾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한 말에 비추어 보면 본문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가 로마서 1장 2-4절을 읽겠습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바울에 이 말은, 예수님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며, 하나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예수를 다시 살아나게 하심으로 아들과의 관계성을 분명히 선포하셨습니다. 죽음은 주님을 붙잡아둘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죄를 정복하신, 죽음을 정복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주님의 사역에 대한 하나님의 확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가 자신의 본성을 따르는 순종적이고 신실한 아들임을 자랑스럽게 선언하신 것입니다. 비록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아버지의 인정과 이 땅에서 주님이 성취하신 승리에 대해 말하고 싶어 했습니다.
둘째, 바울은 이사야의 말씀을 통해 부활에 대한 가르침을 설명했습니다. 제가 이사야서 53장 3절을 읽겠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이 말씀은 다윗에게 주어진 신실한 사랑의 언약이었습니다. 신실한 사랑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어떻게 드러났습니까? 인용된 본문의 상황으로 보면, 이사야는 죄의 용서와 기쁨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들을 다윗과 그의 자손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같은 약속이 어떻게 우리에게 성취되는지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그 약속들은 다윗의 자손이 주님이 행하시는 사역에 의해 성취됩니다. 다윗에게 주어진 모든 언약들은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셋째, 바울은 다시 시편 말씀을 인용하면서 거룩한 분은 무덤에 버려지지 않으며 부패하지도 않는다고 말합니다. 시편 16편 10절을 제가 읽습니다.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무덤으로 가는 메시아(거룩한 분)의 개념은 평범한 유대인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었습니다. 시편 저자는 거룩한 분은 무덤에서 머무르지 않으신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그분은 무덤에 가지 않으신다는 의미로도 들립니다. 오직 죽은 자만이 무덤에 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시편의 본문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이 말은 부활이 있음과 예수 그리스도가 거룩한 분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은 자가 부패하지 않고 다시 살아날 가능성은 일반 사람에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41절에서 바울의 기도는 하박국 1장 5절의 예언이 그들의 삶에서 실현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의 생전에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할 것이라 누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하박국의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자들에 대해 주어졌는데, 그것은 "하나님은 사람들이 듣고도 결코 믿지 않을 일을 사람들 속에서 행하실 것"이라는 예언이었습니다. 하박국의 예언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바벨론을 보내 백성들을 심판하실 것임을 알게 됩니다. 적들은 독수리가 먹이에게 달려들 듯이 이스라엘 백성을 공격할 것이고 견고한 성들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불신앙으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은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만약 지금 말씀을 듣는 청중들도 영원한 다윗 자손의 왕이시며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임을 알려주었습니다.
청중들에게 본문의 설교는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42절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떠날 때 다음 안식일에 다시 와서 그 말씀을 더 전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말을 듣고 예수님에 대해 더 알기 위해 바울을 뒤따랐습니다. 주중에 그들은 바울의 설교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었으며, 44절은 다음 안식일에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바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였다고 증거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그 도시에서 분명하게 일하고 계셨습니다. 사도행전을 통해 우리는 주님이 일을 하실 때 사탄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아왔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탄은 자신의 일을 대신해 줄 도구들을 찾습니다. 구브로에서 사탄은 마술사를 이용했고, 여기서는 유대교 지도자들을 이용했습니다.
바울의 말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자 유대교 지도자들은 질투심을 드러내면서, 바울과 바울이 전한 메시지에 대해 반감을 나타냈습니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바울이 봉변당하는 모습을 보여주므로 사람들이 그의 말을 거부하게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 지도자들과의 논쟁을 피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그 말씀이 이방인들에게 주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기도 했습니다. 46절을 함께 읽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이는 이사야서 49장 6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그때 모인 많은 이방인들이 이 기쁜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복음을 믿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48절,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사람들을 믿었다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 중에는 아무도 자신의 뜻으로 주님께 나온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나오기 전에 이미 성령님이 우리의 삶 속에서 일하셨으며,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본문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예정된 영혼들에게 말씀을 주셨고, 그들을 하나님께로 부르셨으며, 그들은 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응답하였습니다. 유대인의 방해에도 구원의 소식은 그 지역에 퍼져 나갔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나라가 계속 확장되자, 또다시 유대교 지도자들의 마음속에 질투심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높은 지위에 있는 경건한 부인들과 유력자들을 부추겨 바울과 바나바를 내쫓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경건한 부인들"이란 복음을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들의 종교에 헌신적인 사람들을 뜻합니다. 경건한 부인들과 지역의 유력자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해서 도시에서 쫓아냈습니다. 이 사건은 두 사람이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할 때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곳 비시디아 안디옥에 성령으로 충만하고 구원의 기쁨을 얻은 성도들을 남겨두는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곳에 사도들을 방해하는 무리들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사도들을 통해 원래 계획하셨던 모든 것을 다 이루셨습니다. 사탄은 영원한 생명을 약속받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번에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렇듯 사탄은 끊임없이 복음 전파를 방해합니다. 우리의 삶과 교회 공동에의 성장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어떻게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다사 말하지만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해 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평소에 단단히 무장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무장하고, 기도로 무장하고, 찬양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사탄의 온갖 방해에도 우리의 교회에서 주님의 사역이 승리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영적 무장을 단단히 하고 우리에게 맡겨주신 주님의 일을 감당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헌신을 통하여 복음이 증거 되길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사탄의 방해에도 주님의 사역이 미리 앞서 행해지고 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도 사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용기와 힘을 주시옵소서. 또한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있는 교회와 선교사님을 충분히 도울 수 있도록 끊임없는 중보 기도와 후원을 할 수 있는 힘과 재원들을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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