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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 교회의 부흥

예림의집 2021. 6. 26. 20:30

안디옥 교회의 부흥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사도행전 11:19-26).

 

베드로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기 전에 예루살렘 교회는 이미 이방인들의 회심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성도들은 그 소문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이방인이 자신들과 같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민이 아니었다는 말입니까? 이방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그들이 유대 성도들과 같은 대우를 받는단 말인가요? 이방인의 회심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은 사람들은 베드로가 율법을 어겼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식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루살렘의 교회 공동체 앞에서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도록 요청받았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가이사랴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욥바에 있을 때 모든 부정한 동물들이 들어있는 보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환상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사람들에게 그때 들었던 하나님의 음성도 이야기했습니다. 9절,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베드로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머물던 시몬의 집에 세 이방인이 나타나 그들의 주인이 환상을 보고 자신을 초청하러 왔다는 이야기도 해 주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과 함께 가라는 주님의 명령을 따라 다른 여섯 명의 성도들과 함께 가이사랴에 갔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베드로가 이방인의 집에 도착하자 고넬료는 자신에게 천사가 나타나 베드로를 초청하라고 말한 환상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그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자 성령이 이방인들에게 임했는데, 그 모습이 오순절의 사건과 비슷했다고 전했습니다. 욥바에서 베드로와 함께 온 다른 성도들도 그날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이 역사하셨다는 사실을 증언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일들에 함께하셨음을 믿지 않으면 그날 벌어진 일들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비난하는 자들에게 주께서 유대인 성도들처럼 이방인들도 받아들이셨다고 강조했습니다. 주님이 받아들이시고, 유대인 성도들이 받았던 성령을 똑같이 부어주시는데, 어떻게 베드로가 그 사람들을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속한 증거는 그들이 성령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삶에 함께 하시는 성령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임재는 사람들이 죄 용서를 받고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질 때 가능합니다. 베드로와 욥바의 성도들은 이방인의 삶에 성령이 임재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본 증인들이기 때문에 17절, 이방인의 구원을 반대하는 것은 곧 하나님 자신을 반대하는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 성도들은 이 모든 일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그들은 하나님이 할례받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성령을 부어 주셨음을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들과 교제 나누기를 거부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사역을 거부하는 일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거부감은 베드로의 설명을 통해 해소되었으며, 하나님이 회개와 구원의 선물을 이방인들에게도 주셨다는 사실에 그들의 마음은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구원이 유대인에게만 주어진다는 생각은 예루살렘에 사는 성도들뿐 아니라 스데반 이후 박해로 인해 흩어진 유대인 성도들도 갖고 있었습니다. 흩어진 성도들은 베니게와 구브로, 그리고 소아시아의 안디옥까지 여행했습니다. 베니게는 팔레스틴의 북동쪽에 근접해 있었지만, 안디옥은 예루살렘 북쪽 500킬로미터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구브로는 지중해에 있는 섬으로써 예루살렘에서 40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박해로 인해 흩어진 성도들은 이 지역에서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을 19절, 그들은 여전히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던 차에, 구브로와 구레네(북아프리카)로부터 온 몇 사람이 안디옥에 가서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첫 선교 사역에서 그들은 많은 회심자들을 얻었습니다. 이는 교회가 영향력을 갖게 되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복음은 다시 안디옥의 교회 공동체로부터 헬라 전 지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당시 가장 위대한 선교사들이 사역자로 부름을 받은 공이 바로 안디옥이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를 시작한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것이 매우 흥미롭지 않습니까? 그러나 안디옥에서 처엄 사역을 시작한 사람들은 초대교회의 선교 운동에서 중요한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 성도들의 비판을 감수하면서 이방인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과 구원의 소식을 듣도록 수고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유대인들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의 자리를 허락하셨음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비록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크게 발휘되고 있습니다. 22절, 안디옥에서의 사역이 매우 성공적이라는 소식을 예루살렘 교회에서 듣게 되었습니다. 사도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냈습니다. 안디옥에 도착한 바나바는 성령이 역사하시는 분명한 모습을 확인한 후,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의 삶에 용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바나바가 안디옥에 있으면서 행한 이 같은 사역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왔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함을 즉시 깨닫게 된 바나바는 200킬로미터 떨어진 다소에 있던 사울을 마음에 떠올리고는 그를 안디옥으로 데려오기 위해 다소로 갔습니다. 그래서 둘은 안디옥에서 일 년을 함께 사역했습니다. 그동안 회심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고, 교회는 그들의 사역을 통해 양적으로, 또한 영적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26절, 성도들은 이때 처음으로 "그리스도인(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당시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온 여러 예언자들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아가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로마 제국에 심한 흉년이 들것을 예언했는데, 실제로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 로마 제국에는 극심한 흉년이 들었습니다. 이 예언을 들은 안디옥의 성도들은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곤궁에 처한 형제, 자매들을 위해 자신들의 것을 내놓았습니다. 그들은 모인 헌금을 사도들을 통해 유대에 있는 장로들에게 전달하도록 했습니다. 이는 이방인 성도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 형제, 자매들은 인정하고 섬겼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성령이 안디옥 교회 안에서 역사했음을 보았습니다.

예루살렘의 초대 유대인 성도들처럼 이방인 성도들도 궁핍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평안함을 희생하고 동역자들을 구제하는데 힘썼습니다. 본문은 그들의 결정이 결코 억지가 아니었음을 말해줍니다. 29절,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안디옥의 제자들은 하나 된 마음으로 그 일을 행했습니다. 이때까지 사울과 바나바가 그들을 위해 일해 왔지만 잊는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일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안디옥의 성도들은 기쁨으로 다른 동역자들을 구제했는데, 이는 성숙한 교회의 표징이었습니다.

안디옥의 성도들은 바나바와 사울의 사역을 통해 자신들이 부름받은 것은 믿음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궁핍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것임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자신의 사명을 깨달은 교회였습니다. 교회의 제자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기 위해 사용되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비록 흉년으로 인해 자신들도 힘겨웠지만, 그들은 다른 곳에 있는 형제, 자매들에게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교회 밖을 향한 비번은 안디옥 교회에 생명력을 더해 주었습니다. 교회의 벽을 넘어 밖을 바라보지 못하는 교회는 틀림없이 생명력을 잃을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에 관해 이야기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점은 안디옥 교회에서는 유대인과 헬라인의 사역이 조화롭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자매 된 모든 제자들은 서로를 받아줌으로써 교회 안의 벽을 허물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그 교회 안에서 활동하신 것입니다. 이는 안디옥의 성도들이 자신들이 가졌던 편견을 모두 제거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무수한 교단과 교리적 장애물들로 인해 성도들이 서로 분리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교회 밖에 있는 있는 형제, 자매들의 어려움을 인식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우리가 교회의 벽을 넘어 다른 성도들이 기억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특징을 인정하고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이후에 안디옥 교회는 선교사들을 파송하는 데 있어서도 점점 더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오늘날의 교회들도 안디옥 교회를 닮아가도록 인도하시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원하시는 온전한 사역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의 사명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를 말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피 값으로 세우신 목적이 있는 모임입니다. 그 목적은 바로 생명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담을 넘어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세상과 접촉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필요를 채워주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 예림 교회는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고 있습니까?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세상과의 소통을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이라고 움츠러들어 아무것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지금 방송을 통하여 어떻게든지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노력에 모든 성도들이 힘껏 동참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방송을 함께 시청해 주시고, 많은 조언도 아끼지 마셔서 좋은 방송이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경공부도 열심히, 예수 동행 운동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예림교회 사역의 기초가 될 것이기에 여러분이 코로나19 예방 주사를 맞는다는 심정으로 미리 열심히 하고, 노하우를 쌓고, 수정 보안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코로나19 팬데믹도 끝나고 교회 사역이 본격화될 때를 대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예림교회에 심어주신 비전을 갈고닦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또한 훈련해야 할 것은 지금부터 교회를 분열시키는 장애물들에 대한 대처 훈련도 해야 합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교회를 공격해 오기 때문에, 또한 우리는 병든 자요, 연약한 자들이기 때문에 분열의 장애물은 언제든지 자라날 수 있습니다. 적은 인원이 모였을 때부터 갈등을 잘 해결하는 훈련을 미리 해 두지 않으면 나중에 교회에 큰 문제가 생겼을 때 우왕좌왕하며 교회의 분열을 막을 수 없게 됩니다. 작은 일에서부터 나누고, 토의하고, 결정하는 일에 하나님의 뜻대로, 사랑으로 하는 훈련을 철저히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예림교회가 이 시대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모범 교회가 되기를 바라고 기대하고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늘 소망을 주셔서 격려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원인들을 제거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자신만을 바라보던 눌을 돌려 주위에 있는 궁핍한 사람들을 바라보게 하시옵소서. 우리 교회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교회로 성장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부터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무장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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