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 고든/가정

이상화(理想化)

예림의집 2021. 4. 26. 20:08

이상화(理想化)

 

새해 첫날 아침 우리는 켄터키 남부 지역에 있는 어느 언덕길을 산책하는 중이었습니다. 저 멀리 하늘을 보니 동쪽 언덕 위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저 멀리 하늘을 보니 동쪽 언덕 위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하늘은 연녹색 빛을 띠었는데 어느 화가의 그림에서도 볼 수 없는 신비로운 빛깔이었습니다. 하늘에는 점점 황금빛이 감돌더니 햇빛이 길고 가느다란 두 팔을 쭉 뻗어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감싸 안으려는 듯 보였습니다. 마치 온 세상을 따뜻한 품 안에 두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늘은 점점 밝아지고, 해는 지평선 위로 얼굴을 내밀며 강한 빛을 내뿜었습니다. 눈이 부셔 제대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태양이 뿜는 광채가 강하다 보니 우리는 무심결에 눈을 반쯤 감고 고개를 돌려버렸습니다. 그 순간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이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그 빛의 공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사도행전 22:11) 그 빛의 광채가 바울의 얼굴에 비치자 그의 마음을 움켜쥐고 있던 야망은 눈 녹듯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아름답고 찬란한 영광이 바울의 눈과 마음에 빛을 비추자 자기 뜻을 이루려는 야욕이 점점 희미해지다가 나중에는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입니다. 악한 욕정의 열기는 사라지고 사람을 꾀어 흔드는 유혹도 힘을 잃고 말았습니다. 새해에, 그리고 남은 인생 가운데 햇빛과는 비교도 안 될 영화로운 주님의 광채가 우리 눈에도 비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태양이 언덕 위로 떠올라 큰 밤나무와 삼나무 수프 사이로 햇빛이 눈부시게 반짝거리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그 언덕에 올라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오래전에 만들어진 듯한 가족묘를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무덤 주인의 인생 스토리를 새겨 넣은 묘비들도 서 있었지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묘지 주변은 거의 폐허나 다름없었습니다. 어떤 묘비는 넘어질까 불안한 노인처럼 기울어져 있었고, 어떤 것은 아예 바닥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한때 이 묘지를 정성스럽게 관리하던 사람들도 어느새 저세상으로 떠나 이렇게 방치된 것이 분명했습니다. 오래된 묘지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영영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밝은 햇빛이 비치는 저 언덕에도 언젠가는 어둠이 내릴 거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광의 빛이 비추자 언덕과 나무들은 모두 새로워 보였습니다. 떠오른 태양이 방치된 언덕을 "이상화(理想化)"한 것입니다. 새해 아침 이제 막 밝아오는 햇빛에 비친 언덕은 말로 표현할 수없이 아름다운 풍경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망가진 울타리와 버려진 무덤 위에 햇빛이 비치니 흉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마치 저 언덕에 그리고 묘지에도 새 생명이 피어나게 될 거라는 기쁜 소식이 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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