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286번째 이야기
고난주간: 수요일-음모의 날 오늘은 음모의 날입니다. 비록 예수님의 행적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밤에는 베다니로 물러가셔서 쉬셨지만,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일을 하셨을 것이며, 가룟 유다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한 음모를 꾸밉니다. 마태복음 26장 14-16절, 마가복음 14장 10,11절, 누가복음 19장 47,48절, 22장 3-5절을 읽고 묵상하시며, 우리도 주님처럼 조용히 내일을 준비하는 하루의 나머지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 |
마태복음 27장 1절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산헤드린 공회는 새벽에 모여 예수님 죽일 방도를 논의합니다. 사형 권한이 없던 그들이 안식일 전에 예수님을 사형하려면 총독 빌라도의 허락을 받아야 했기에 최대한 서두른 것입니다. 예수님의 불법성을 고발하려는 자들이 오히려 가장 간교하고 악랄한 불법의 무리였습니다. 예수님은 불의한 공회의 졸속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셨습니다. 의로우신 예수님이 모든 불법과 불의, 마땅히 형벌받을 백성의 허물 때문에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 |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당신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남의 기준에 맞춘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십니까? 상처가 많은 당신에게는 해당 안 되는 말이라고요? 글쎄요. 저는 사실 3년 반 동안이나 자살 충동에 시달렸던 대인기피증 환자였습니다. 사춘기 이후 거의 20년간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분노를 품고서 살아왔습니다. 아내와 자녀, 다른 사람과의 관계 또한 아픔과 상처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던 제가 이제는 "내가 나인 것이 그냥 좋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나에게 나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저에게도 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야단치며 자학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제 이야기를 그냥 들어주신 선생님 한 분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의 강의를 듣고자 개별 면담을 신청했습니다. 선생님과 면담하던 날, 그 교수님은 의외의 질문을 하셨습니다. “자네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가슴 아팠던 일이 뭔지 들려줄 수 있겠나?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자네를 힘들게 한, 그런 밑바닥 경험 말일세.” 저는 개척교회 목회를 하던 당시, 한 교인에게서 오해를 받아 억울하게 멱살을 붙잡힌, 초라하고 비참했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입니다. 연이어 닥친 가정적인 불화를 떠올리며 이야기하다가 저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한참 정신없이 울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교수님의 눈이 벌겋게 물들어있고 그 얼굴엔 온통 눈물범벅이었습니다. 교수님은 “참 힘든 시간을 보냈구려! 그래,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나? 하지만, 그 엄청난 고난을 경험한 자네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루실 놀라운 일이 정말 기대가 되네.”하고 말씀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함께 울어주면서 제 이야기를 들어주신 그분의 말씀을 통하여 고통은 곧 치유와 성장의 자리라는 것을 배웠습니다.(오제은 박사) 그렇습니다. 오제은 박사님은 하버드와 토론토에서 공부한 이미지 부부 치료 전문가입니다. 말하자면, 심리치료사입니다. 글 속에서도 밝혔듯이, 오 교수는 대인기피증과 우울증, 극도의 자기혐오로 자살까지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오 교수는 그 누구보다 우울증 환자의 깊은 슬픔을 이해할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던지는 질문은 “당신은 자신을 사랑하고 있습니까?”입니다. 저도 여러분에게 똑같은 질문을 해봅니다. "당신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여러분의 가치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모든 것을 쏟아부으실 정도로 귀한 것임을 잊지 마세요! ![]() |
주님의 살과 피 동일한 시공 속에 살아가도 다른 세계를 살아갑니다. 무교절이 되었습니다. 무교절은 애굽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마지막 장자의 재앙을 내릴 때 어린양을 잡고 누룩 없는 떡을 만든 것을 기념해 만든 것입니다. 무교절은 7일 동안 진행되고, 유월절은 무교절 첫날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음식을 먹는 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을 기점으로 새로운 날과 구원이 시작된 것으로 봅니다. 예수님은 친히 흠 없는 어린양이 되셔서 피를 흘리심으로 모든 죄를 사하시고 택하신 백성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남겨진 마지막 시간을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열두 제자와 함께 음식을 나누면서 주님은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근심했고 "나는 아니지요?"라며 확인하려 했습니다. 주님은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도 다른 제자들처럼 "나는 아니지요"라고 묻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용감한 것인지 간교한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후에 가룟 유다가 양심의 가책을 받아 받은 돈을 되돌려 주고 목매어 죽은 것을 볼 때 그를 악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입니다. 어쩌면 유다는 예수님을 팔 생각이 없었을 것입니다. 요한은 요한복음 22장 3절에서 유월절을 준비하는 시간 동안 가룟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다고 설명합니다. 이때가 언제입니까? 주님께서 마지막 남은 몇 시간을 제자들에게 쏟아부을 때입니다. 마지막까지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그들과 함께 할 때입니다. 가장 감사해야 할 때, 가장 겸손해야 할 때, 가장 눈물 흘리며 회개해야 할 때, 가룟 유다는 악한 마음에 사로잡혔고 사단의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신을 영혼을 사단에게 팔아 버렸습니다. 주님은 마지막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합니다. 주님은 만찬을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는 존재입니다. 주님은 영혼의 양식이며,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주님을 먹고 마심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삶을 유지하는 비결은 복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공로를 믿음으로 받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주님만이 참된 구원자이시며, 구속자 되심을 믿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깨끗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를 평안을 줍니다. 주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고난의 길을 걸었습니다. 주님께서 당하신 온갖 고초로 인하여 우리가 구원을 받습니다. 주님은 포도주를 나누시며 "언약의 피"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피는 새로운 언약 관계 속으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은 성막의 제사를 통해 제물의 피가 죄를 속함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짐승의 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피입니다. 그것들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13:20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해 주십니다. 아들의 피가 없었다면 구약의 제물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제의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마지막 때에 아들을 통해 구원을 이루실 것을.. 주님의 피는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이 담긴 ‘언약의 피’입니다. 그 피를 마시는 자들은 이제 새 언약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짐승의 피가 아닌 참된 아들의 피가 우리를 깨끗하게 할 것입니다. 모든 죄가 정결하게 될 것입니다. 죽음의 천사가 문설주에 바른 어린양의 피를 보고 넘어갔듯 주님의 피는 하나님의 모든 진노와 저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며 안전하게 보호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남겨진 시간을 제자들에게 모두 쏟아부었습니다. 자신의 몸을 찢기시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오직 죄 많은 우리를 위해서 말입니다. 그 은혜가 얼마나 큰지요. 인간의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 |
빌라도의 무책임한 결정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더니 그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 앎이더라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 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마태복음 27:11-26). 예수님의 종교적 재판을 마친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이제 예수님에게 공식적으로 사형을 언도시킬 목적으로 당시 로마의 총독이었던 빌라도에게로 데리고 갑니다. 예수님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묻는 빌라도에게 그 말이 옳다 하시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고발에는 침묵하십니다. 빌라도가 명절에 죄수 한 명을 놓아주는 전례대로 사면할 죄수를 묻자, 무리는 바나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합니다. 빌라도는 민란이 날까 두려워 예수님을 넘겨주는 무책임한 결정을 합니다. 바라바냐 예수냐(11-19절).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왕이신 그분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는 분명히 시인하시지만, 불의한 고발과 심문에는 침묵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침묵하시는데, 빌라도는 이를 놀랍게 여깁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재판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시기 때문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의 아내 또한 19절,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라고 말하며 예수님을 옳은 사람. 즉, 죄가 없는 분임을 말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석방하고자 명절에 바라바와 예수님 중 누구를 석방할지 무리에게 묻습니다. 바라바는 마가복음 15장 7절,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 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입니다. 왕이신 예수님이 우리 죄악을 사하시려 극악한 살인자가 당해야 할 그 십자가의 자리까지 낮아지신 것입니다. 왕이신 예수님이 고발과 심문에 침묵하신 이유는 무엇일지 생각해 봅시다. 수많은 고발에도 예수님이 침묵하신 사실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지 주님께서 깨닫게 해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를 죽이기 위한 열심(20-26절).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데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주요한 역할을 합니다. 첫째, 진리에 눈 감은 총독 빌라도입니다. 둘째, 무리를 선동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입니다. 셋째, 무지한 무리입니다. 무리의 요구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겨준 빌라도는 자신에게 책임이 없다는 표시로 손을 씻습니다. 하지만 그는 요한복음 19장 10절, 예수님을 놓을 권한도,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었기에, 불의한 판결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무책임한 빌리도, 악한 종교 지도자들, 선동당한 무리의 절묘한 조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그 이면에는 하나님의 아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사탄의 충동질이 있었습니다. 성도는 사람들의 시선과 의견에 휩쓸려 죄의 길을 선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배반하면 어떠한 변명이나 행동에 상관없이 지옥행 열차를 탄 것입니다. 우리는 다수의 소리에 흔들려 하나님 뜻에 반하는 선택을 하지 않도록 평소에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무장하는 귀한 성도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어 모진 모욕과 고통을 당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조롱당하고 핍박받을지라도 진리 편에 설 수 있는 판단력과 굳센 용기를 주시옵소서. 주님께 속하지 않는 것은 멀리하고 주님으로부터 온 것을 즐거워하는 감각을 주옵소서. 결정적인 순간에 물러서지 않고 주님의 길을 선택하도록 우리를 주장하여 주옵소서. 언제나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복할 수 있도록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무장하게 하옵소서.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게 하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고난주간 기도문③ 온 인류를 위해 갈보리에서 고통의 십자가를 지신 주님, 오늘 우리는 고난주간을 맞아 주님의 그 고난의 순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밤을 안식의 밤으로 또 환락의 밤으로 지새울 동안, 우리 주님께서는 감람산 겟세마네 동산에 가시어 핏방울을 흘려 기도하시는 결단의 밤을 맞았습니다. 인류 역사에 새로운 정점을 이룩한 그 큰 사건을 앞두고 행하신 고통의 독백은 2천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우리의 기억에 생생하기만 합니다.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그 어둠 속에서부터 전개된 죽음을 향한 고통의 시간들, 죽음을 아시고도 그 죽음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신 주님의 크신 사랑, 죄인 된 우리는 오직 감사한 것뿐입니다. 흠 없으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으로부터 문초를 받으시고 채찍을 맞으셨습니다. 야유와 침 뱉음 속에서 무거운 형틀인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까지 걸어가신 주님. 이 시간 우리는 주께서 당하신 고난의 큰 잔이 어떤 것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들임을 고백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몇 날 며칠을 금식함으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철저한 절제나 금욕생활을 한다고 해서 그 크신 고통을 체험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고통당하심은 이 세상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크신 섭리이시기에 그 사랑과 은총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랑하는 주님, 고난절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진실로 고난의 의미를 깨우쳐 주옵소서. 주의 자녀로서 빛이 되고 소금이 되게 하시어 그리스도인이 행할 적극적인 삶을 살아 나가며 주님의 고난을 저버리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마가의 다락방에서 모여 기도하고 예루살렘 거리로 흩어져 나간 그리스도의 증인들처럼 우리도 그러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슬픔에 젖어 낙심한 채 군중 속에 뒤섞여 눈치를 보며 따라가는 비겁한 제자가 되기보다는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따라간 구레네 사람 시몬이 될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사랑의 주님, 고난의 현장인 갈보리에서 마침내 부활의 아침을 맞으신 주님, 이 땅을 보시옵소서. 우리의 이웃에는 아직도 많은 형제들이 병 때문에, 가난 때문에 고통의 멍에를 지고 살고 있습니다. 이 시대가 안고 있는 깊은 고난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하는 형제, 자매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기도함으로써 초조와 불안을 물리치게 하옵소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이 시대를 사는 능력과 지혜를 배우게 하소서. 우리는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고통과 죽음의 골짜기 골고다 저 너머에는 빛나는 부활의 아침이 있기 때문에 그 아침이 올 때까지 우리는 우리의 걸음과 기도를 멈출 수가 없습니다. 의연하고 떳떳한 삶을 삶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복된 소리를 전하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바라옵기는 고난이 있는 곳을 찾아가서 함께 아파하고 기도하며 싸매어 주는 행동하는 삶의 실천자가 되도록 주께서 힘을 주옵소서. 실의와 낭패로 한숨짓는 고난절이 되기보다는 부활을 기다리는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참 고난의 의미와 진통이 없이 결코 영광된 부활의 소망을 품을 수 없음을 가르쳐 주옵소서.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고난 받으시는 주님 앞에 합당한 것이 되도록 주님께서 도와주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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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의집”을 소개합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 29)”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말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선교후원 단체입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2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다음 커뮤니티 공식 파워 블로거로 활동 중이며, 현재 76만여 건이 넘는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개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3만 2천여 편의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주시고 팔로우 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2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많이 친추 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전파와 영적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가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매일: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설교, 성경공부 등 복음전파와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많이 오셔서 좋아요/구독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주신 후원자 15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후원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0명의 선교사님과 17개의 개척교회를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후원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양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할 계획입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잇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010-9442-6928, yerim21@hanmail.net).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려고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 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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