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285번째 이야기
고난주간: 변론의 날 오늘은 고난주간 화요일 변론의 날입니다.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질문이 있었고, 이에 대해 예수님의 "두 아들, 악한 농부, 혼인 잔치 비유"의 세 가지 경고로 답하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경고를 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경고를 듣고도 돌이키지 않는 이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거역하며 불순종하는 것은 없는지 살펴보는 하루가 됩시다. ![]() |
갈 길을 제대로 가려면.. 매일 다니는 통근길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는 상황보다 저에게 더 큰 문제로 다가오는 것은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시각장애인들이 길을 다닐 때 쓰는 흰 지팡이, 즉 ‘케인’을 저도 사용합니다. 그리고 들고 다니는 가방 속에는 늘 여분의 케인 하나가 더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곳 뉴욕에서 사용하던 케인을 세 번이나 부러뜨린 적이 있어서, 언제부턴가 여분의 케인을 꼭 하나 더 갖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 다 뛰어가던 사람들 때문에 케인이 부러졌는데, 그들은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제 갈 길을 가곤 했습니다. 우습기도 하고 어처구니없는 이런 날에는 "마음 준비운동"이 저에게는 산소와도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달갑지 않은 일에서도 그 의미를 찾고 긍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마음 준비운동"이란,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하는 것인데, 먼저 정해놓은 성경을 몇 장 읽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새벽 기도회나 큐티가 이에 해당되겠지요. 저를 회사까지 책임지고 데려가 줄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갈 길을 제대로 가기 위해서는 항상 ‘지금 나의 위치’를 알아야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길을 잃어버려도 괜찮고, 케인을 잃어버려도 괜찮습니다. 현재 내 위치만 알고 있으면, 아무리 혼잡한 가운데서도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제가 ‘삶에서 길을 잃지 않는 비결’입니다. 이번 주 고난주간 동안 나의 위치를 찾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신앙 상태는 어느 정도인가를 살펴봅시다.(신순규) 그렇습니다.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 곳으로 등산할 경우, 하산하다가 길을 잃어버릴 염려가 많습니다. 그럴 땐 다시 정상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무슨 물건을 잃어버려도 마찬가지입니다. 왔던 길을 되짚어가야 합니다. 요컨대, 초심(初心)이 중요합니다. 일이 복잡하게 엉킬 경우,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처음 믿음을 찾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 구주이신 주님을 처음 만나 그때를 묵상하는 하루 됩시다. ![]() |
갈 길을 제대로 가려면.. 매일 다니는 통근길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는 상황보다 저에게 더 큰 문제로 다가오는 것은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시각장애인들이 길을 다닐 때 쓰는 흰 지팡이, 즉 ‘케인’을 저도 사용합니다. 그리고 들고 다니는 가방 속에는 늘 여분의 케인 하나가 더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곳 뉴욕에서 사용하던 케인을 세 번이나 부러뜨린 적이 있어서, 언제부턴가 여분의 케인을 꼭 하나 더 갖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 다 뛰어가던 사람들 때문에 케인이 부러졌는데, 그들은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제 갈 길을 가곤 했습니다. 우습기도 하고 어처구니없는 이런 날에는 "마음 준비운동"이 저에게는 산소와도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달갑지 않은 일에서도 그 의미를 찾고 긍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마음 준비운동"이란,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하는 것인데, 먼저 정해놓은 성경을 몇 장 읽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새벽 기도회나 큐티가 이에 해당되겠지요. 저를 회사까지 책임지고 데려가 줄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갈 길을 제대로 가기 위해서는 항상 ‘지금 나의 위치’를 알아야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길을 잃어버려도 괜찮고, 케인을 잃어버려도 괜찮습니다. 현재 내 위치만 알고 있으면, 아무리 혼잡한 가운데서도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제가 ‘삶에서 길을 잃지 않는 비결’입니다. 이번 주 고난주간 동안 나의 위치를 찾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신앙 상태는 어느 정도인가를 살펴봅시다.(신순규) 그렇습니다.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 곳으로 등산할 경우, 하산하다가 길을 잃어버릴 염려가 많습니다. 그럴 땐 다시 정상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무슨 물건을 잃어버려도 마찬가지입니다. 왔던 길을 되짚어가야 합니다. 요컨대, 초심(初心)이 중요합니다. 일이 복잡하게 엉킬 경우,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처음 믿음을 찾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 구주이신 주님을 처음 만나 그때를 묵상하는 하루 됩시다. ![]() |
무화과나무 이야기.. 또 하루가 지나 화요일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마지막 남겨진 시간을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생명을 아까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은 어제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다음 베다니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마 나사로의 집으로 가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날이 밝자 이름 아침 다시 성으로 향하십니다. 베다니를 지나 벳바게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벳바게를 무화과나무의 마을이란 뜻입니다. 시장하신 주님은 무화과나무를 보았고, 혹여나 무화과가 있을까 찾았습니다. 주님은 시장하셨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마태복음을 수도 없이 읽고 묵상했지만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에 초점을 맞추었지 단 한 번도 주님께서 시장하시다는 표현에는 주목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을 읽다 시장하신 주님을 발견합니다. 나사로의 집이 가난해서 아침을 드리지 못했을까요? 아니면 폐를 끼치기 싫어 일찍 나와 아침을 드시지 못한 걸까요? 성경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무슨 이유이든 주님은 시장하셨고, 뭔가를 드셔야겠다는 생각을 하신 것입니다. 문득 고난주간 주님의 행보를 묵상하면서 주님의 고달픔과 고독이 어떠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주님은 언제나 피곤했습니다. 잠도 거의 자지 못했고, 먹을 것도 거의 먹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길을 잃은 무리들을 보시고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긍휼이란 헬라어 단어는 "창자가 뒤틀리다"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즉 창자가 뒤틀리는 듯한 마음의 아픔을 느끼셨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종종 주님을 생각할 때 하나님이시고, 기적이 많으신 능력자라고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 아닌 곳에서는 단 한 번도 기적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배고프셨고, 죽음의 십자가를 지고서도 어느 누구에게서도 이해받지 못했습니다. 가나안의 무화과는 두 번 열립니다. 3월쯤에 처음 열매가 열리는데 그것을 "파게"라고 합니다. 파게는 작고 보잘것없이 농장 주인은 종들을 시켜 그것을 따서 버리게 합니다. 그래야 5-6월에 열리는 무화과가 크고 달기 때문입니다. 파게는 지나는 아무 사람이나 먹도록 내버려 둡니다. 주님은 파게가 있을 것을 기대하며 갔지만 열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는 아무런 쓸모없는 존재입니다. 주인은 열매를 기대하며 무화과나무를 심습니다. 그러나 무화과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기대를 저버린 무화과나무가 존재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린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민족입니다. 아브라함이란 믿음의 조상이 있고, 모세를 통해 어느 나라와 민족도 받지 못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것뿐 아니라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성전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끝내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고, 분주하고 다양한 종교적 행사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잎은 무성했고,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하는 무화과나무라고 자화자찬했지만 배고픔을 채워줄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주님은 분명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저주하셨는데, 제자들은 무화과나무가 마른 것에 관심을 보입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이한 질문과 대답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성전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전은 기도의 집입니다. 그런데 기도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온갖 화려한 제사가 있고, 제사를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강구되지만 진작 주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척 하지만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믿음의 핵심이자 본질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자 신뢰입니다. 본질로 돌아간다는 말은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주님을 신뢰하며, 그분께 우리의 약함을 가지고 나아가고 있는가입니다.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우리는 진정 주님을 신뢰하고 있는지, 아니면 포장만 종교적이지 않는지 살펴봅시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며 연약한 자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시는 분입니다. 많은 성경 지식이나 신학이 아니라 단 몇 분이라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 진정한 주님의 사람입니다. ![]() |
회개에 이르지 못한 후회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 그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이르되 이것은 핏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나니 일렀으되 그들이 그 가격 매겨진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가격 매긴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마태복음 27:1-10). 오늘은 고난주간의 화요일로 변론의 날입니다. 2절의 빌라도는 로마 황제 디베료가 유대 지방의 5대 총독으로 임명한 사람입니다. 주후 26년부터 약 10년간 재임했습니다.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장로가 예수님을 죽이려 의논하고 빌라도에게 넘깁니다. 유다는 예수님이 정죄됨을 보고 뉘우쳐 은 30을 성소에 던져 넣고 죽습니다. 대제사장들은 핏값을 성전에 두는 것이 옳지 않다며, 그 돈으로 밭을 사 나그네의 묘지를 삼습니다. 이는 선지자의 예언대로 된 것입니다. 유다의 잘못된 선택(1-5절).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은 회개의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회개가 아닙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불법 재판 후 예수님이 로마 총독 빌라도의 법정에 서십니다. 가룟 유다는 그제야 양심의 가책을 느껴 스스로 뉘우칩니다. 그는 은 30을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돌려주며 말합니다.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했다." 배신자 유다까지 예수님의 무죄를 증언함에도 종교 지도자들은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라며 일축합니다. 양심에 화인 맞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잡은 것으로 만족합니다. 유다는 은을 성소에 던지고 스스로 목매어 죽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어떻게 반응하느냐입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데 머물면 안 되고 진정한 회개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후회할만한 일은 없었습니까? 특히나 하나님께 회개하고 용서를 구해야 할 일은 없었는지요. 후회에만 머물지 않고 진정으로 회개로까지 나아가면,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면 모든 것은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은 30과 토기장이의 밭(6-10절). 가룟 유다의 배신과 죽음, 그 이후 일어난 일은 성경의 예언을 이룬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성소에 던진 은 30을 두고 대제사장들은 고민에 빠집니다. 사람을 죽이려고 주었던 가증한 돈을 성전고에 두는 것이 옳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의논 끝에 은 30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들을 위한 묘지로 삼습니다. 겉으로는 나그네들을 위한 선한 일인 듯하지만, 그들의 간악한 외식은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 땅은 피 값으로 산 땅이기 때문에 피밭이라 불립니다. 이는 스가랴 11장 23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 개를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라는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입니다. 완악한 대제사장들이 알지 못하고 한 행동조차 하나님은 그분 계획을 완성하는 기회로 삼으십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감시 하나님 앞에 두지 못할 추악하고 더러운 것은 없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알지 못하고 한 행동조차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볼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지 깊이 묵상합시다. "우리의 모든 것을 통해 그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 우리가 죄로 인해 넘어졌을 때 후회에 그치지 않고 돌이켜 십자가로 향하게 하옵소서. 주님을 저버린 우리를 여전히 기다리시는 그 사랑 앞에 눈물로 엎드립니다. 보혈로 죄를 씻어 주시고, 우리를 다시 일으켜 주옵소서. 죄책감의 올무에서 벗어나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사소하게 생각하던 모든 일들을 주님께서 사용하신다는 것을 믿고 순간순간 믿음으로 죄선을 다하게 하옵소서.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늘 준비하게 하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
고난주간 기도문②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 고난주간을 경건하게 지내게 해 주시고 모든 성도가 한마음으로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에 사랑 속에 지낸 지난 일생 동안에 남을 비판하고 시기했던 시간들을 고백하오니 주님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하며, 나누기 위해 힘쓰는 주의 종들을 축복하시어 항상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하시고 영육에 강건함을 허락하셔서 나누는 모든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기쁨이 있게 하옵소서. 심령이 메마른 자에게 은혜의 단비가 내리게 하옵소서. 사랑의 아버지! 귀한 성도들을 기억하시고 함께 하시사 맡겨진 사명을 감당케 하시고 날마다 주님 말씀을 의지하며 찬양하며 기도할 수 있게 하옵소서. 전도와 구제와 선교가 끝없이 넓혀지고 더 강하고 담대한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약하여 넘어진 성도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크신 사랑 베풀어주시사 긍휼과 은혜가 충만하여 다시금 주님께 돌아오게 하옵소서. 뜨거운 풀무불속에서 다니엘의 친구들과 함께 하신 하나님, 사자굴속에서도 다니엘과 함께 하신 우리 하나님, 우리가 어렵고 힘들지만 오직 주님만을 붙들며 살게 하옵소서. 모세의 입술을 대신한 아론처럼, 기드온의 삼백 용사들처럼 크고 강한 용사들로 세워주시고 채워주시옵소서. 서로 돕고 서로 이해하며 주님에 안에서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며 은혜가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밤낮으로 눈물로 부르짖는 간구도, 남을 위해 기도하는 모든 중보기도도 우리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믿노라 하면서도 게을러지고 주춤주춤하는 믿음 생활을 주님 온전히 성령으로 덧입혀 주셔서 무엇을 하든지 무엇을 먹든지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게 하옵소서. 세계를 향하여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선교사들을 축복하시옵소서. 언제나 동행하셔서 질병과 사고와 공포와 어려움을 피해 가게 하시옵고. 전하는 모든 나라 모든 사람이 주님에 품으로 돌아오는 역사가 있게 하옵소서. 이 나라 모든 경제와 정치를 주장하셔서 맡은 위정자들이 성실히 행하게 하시고, 힘과 권력으로 지배하려 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로 국민을 이끌게 하옵소서. 코로나19가 속히 극복되게 하시고, 둘로 갈라진 남과 북이 선하신 하나님의 축복 속에 믿음으로 통일이 되는 역사가 속히 오게 하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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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의집”을 소개합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 29)”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말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선교후원 단체입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2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다음 커뮤니티 공식 파워 블로거로 활동 중이며, 현재 76만여 건이 넘는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개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3만 2천여 편의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주시고 팔로우 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2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많이 친추 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전파와 영적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가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매일: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설교, 성경공부 등 복음전파와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많이 오셔서 좋아요/구독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주신 후원자 15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후원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0명의 선교사님과 17개의 개척교회를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후원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양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할 계획입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잇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010-9442-6928, yerim21@hanmail.net).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려고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 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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