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에 의한 움직임
주님의 사역에 대한 이 짧은 이야기에서 그분에 대해 그리고 그분 자신에 의해 9번씩이나 쓰였던 단어가 하나 있는데, 바로 "연민(compassion)"이라는 단어입니다. 나병환자나 귀신들린 사람의 모습이 그분을 움직였습니다. 목자 없는 양 떼처럼 가엾게, 또 간절한 마음으로 그분을 뒤쫓던 큰 무리의 사람들이 늘 그분을 깊이 동요시켰던 것입니다. 주님은 죽은 아들의 시신을 뒤따르며 뒤따르며 눈으로 피를 흘리듯 자신의 마음을 내비치던 외로운 여인을 외면하지 못하셨습니다.
마음이 움직일 때면, 주님은 늘 무언가를 하셨습니다. 주님은 자기 주변의 사람들에게 너무 깊이 열중하느라 자신의 육체적 피로를 깨끗하게 잊으셨습니다. 그래서 즉각 치유의 손길을 내미셨고, 귀신 들린 사람을 그를 묶고 있는 사슬로부터 해방시켜 주셨으며, 굶주림에 허덕이며 먹을 것을 찾는 군중에게 떡을 먹여 주셨습니다.
고통스러운 광경은 늘 그분을 움직였습니다. 특히 고통당하는 군중의 존재는 늘 그분을 자극하고 분발하게 했습니다. 주님은 고통당하는 사람들이나 지도자 없이 무력하게 헤매는 군중을 보면서도 조금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당신의 도시 문화 같은 것에 대해서는 결코 배운 적이 없었습니다. 그분과 관련해 사용된 "연민"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깊고 부드럽습니다. 실제로 영어에서는 그 단어가 흔히 "감정의 자리"라고 불리는 창자나 심장이 크게 동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편 그와 유사한 단어인 "동정(sympathy)"은 마음이 무언가를 갈망하는 것, 문자적으로 말해 동일한 괴로움을 겪는 것, 다시 말해서, 누군가의 고통이나 고난을 보고 마음이 움직여 그와 동일한 고통을 자신 안에서 겪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영어 단어인 "공감(fellow feeling)도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고통을 목격하면서 마음을 깊이 움직이면 그 사람에게서 보는 것과 동일한 고통이 당신 안에서도 일어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주님이 자주 사용하셨던 이 단어의 의미입니다.
지금까지 살았던 사람들 중 예수님만큼 사람들에 대해 깊은 열정을 지닌 이도 없었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을 그들의 고통스럽고, 죄로 가득 차 있는 곤궁한 삶으로부터 새로운 차원의 삶으로 이끌어가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얻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처럼 그분의 마지막 행위는 사람들을 얻기 위해 죽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의 마지막 말씀은 "가서 사람들을 얻으라"였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세상과의 접촉으로 인해 온갖 상처를 입고 고향으로 돌아가신 후에 행하신 첫 번째 일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동안 자신을 움직였던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이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주님과 동일한 열정을 갖고 사람들을 얻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나는 주님의 마지막 행위가 사람들을 얻기 위해 죽는 것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주님이 죽는 과정에서도 육체의 날카로운 고통과 그보다 훨씬 더 날카로운 영혼의 고통을 잊은 채 옆으로 머리를 돌려 자기 곁에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에게 천국에 대해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분명히 그것은 사람들을 얻고자 하는 그분의 압도적인 열정, 즉 죽는 순간에도 강력하게 표출되었고, 그 죽음을 통해 더 강력해졌던 열정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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