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 고든/섬김

참된 섬김

예림의집 2021. 1. 15. 22:05

 

참된 섬김

 

사실 제자 삼는 사역이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은 아니지 않을까요? 그것 외에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매우 많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사역에는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는 면에서 볼 때, 다른 것들은 세부사항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에게는 세 가지 삶이 있다는 점에 다시 한번 주목해봅니다. 그것은 하나인 동시에 셋인 삶으로써, 은밀한 기도의 삶, 공개적인 순결의 삶, 그리고 적극적인 섬김의 삶입니다. 어느 하나님 있어도 안 되고 세 가지 삶 모두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상적인 완성된 삶이며, 섬김의 참된 모습을 보여주는 삶입니다. 섬김의 삶의 뿌리는 기도와 순결함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이유로 많은 섬김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삶의 균형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죄로 인한 상처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거대한 벽 뒤로 숨어들어, 기도하는 데 필요한 고요함을 찾으려 했습니다. 즉 그들의 순결을 위해 조용한 외부 환경을 찾았지만, 정작 자기들 안에 죄가 있음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상황은 정반대입니다. 요즘은 모든 것이 적극적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언가를 행하려 합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뛰어다니고, 수많은 활동들이 흙먼지와 뒤섞인 채 범벅이 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과의 은밀한 접촉에 근거하지 않은 이런 일들이 한동안은 매우 활력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이내 사그라지고 맙니다. 사람들은 오늘날을 효용성의 시대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옳은 것이고 또한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효율만을 강조하다 보면 섬김 그 자체가 뿌연 흙먼지 속에 묻혀 버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같은 차이는 과거와 현재의 신학적 가르침 속에서도 발견됩니다. 과거의 신앙은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에 집중되었고, 그 이외의 것은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 양상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보다는 눈에 보이는 형제와 동료를 돕는 것이 신앙생활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습니다. 마치 오늘날에는 상황을 바르게 보지 못하도록 만드는 일종의 난시(亂視) 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어느 시대나 상황을 바르게 보고 참되게 살았던 자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참된 만남은 언제나 순결한 삶에 대한 갈망과 함께 이웃에 대한 사랑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그는 자신이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같은 말이지만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돕고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새롭고 놀라운 눈을 뜨게 됩니다. 즉 하나님을 향해 "위로오름"은 이웃을 향해 "밖으로 나감"을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끌어가는 줄이 사람들 사이를 통과하고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참된 삶은 위로는 하나님을 향하고, 안으로는 자신을 향하고, 그리고 밖으로는 세상을 향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보다 잘 알면 알수록, 우리 안에서는 오직 그분과만 깊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갈망이 점점 더 커지고, 순결하고자 하는 갈망, 그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다른 이들을 돕고 싶어 하는 열정이 점점 더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S.D. 고든 > 섬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래 전에 오신 주님②  (0) 2021.01.16
오래 전에 오신 주님  (0) 2021.01.16
적극적인 섬김의 삶②  (0) 2021.01.15
적극적인 섬김의 삶  (0) 2021.01.15
공개적인 순결의 삶③  (0) 2021.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