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후원 사역†/새벽 종소리

부모님의 위로, 다르면서도 같았습니다!

예림의집 2020. 7. 2. 08:40

부모님의 위로, 다르면서도 같았습니다!

 

샬롬! 2020년도 후반기 이틀째인 오늘 하루도 내내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세계 4대 성인(聖人) 중의 한 분으로 일컬어지는 소크라테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음이 선(善)이라고 희망할 수 있는 이유는, 곧 죽음이 무(無)의 상태이고, 극한의 무의식 상태이며, 이 세상에서 저세상으로의 ‘영혼 이동’을 뜻하기 때문이다”라고.

 

졸업과 동시에 병원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사회생활은 생각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의 열정은 어디로 갔는지, 일과 사람에 지쳐 모든 게 무서웠습니다. 결국 본가에 내려가 부모님께 ‘다른 일을 찾아보겠노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버지는 버럭 소리치셨습니다. “나는 30년간 쉬지 않고 일했다. 그동안 그만두고 싶은 적이 없었을 것 같으냐? 돈 버는 일이 그리 쉬운 줄 아니?”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가뜩이나 힘든 애한테 왜 화를 내고 그래요?”하고 말리셨습니다. 그날 저녁, 누군가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저는 얼른 눈을 감고 자는 척했습니다.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곤 얼굴을 쓰다듬었습니다. 잘 덮고 있는 이불도 매만져 주었습니다. 다음 날, 아버지가 기차역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가는 동안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봉투를 쥐어주셨습니다. 뭐냐고 묻자, “잃어버리지 말고 잘 챙겨 가!”라고만 하셨습니다. 기차에서 봉투를 열어보니, 현금과 쪽지가 들어있었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일하는 네가 대견하고 안쓰러웠단다. 어제는 마음이 좋지 않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시 일을 쉬고, 좋아하는 여행을 다니면서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듯하구나. 사랑한다.” 부모님의 위로, 다르면서도 같았습니다.(출처; 좋은생각, 김다영)

 

시대에 따라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시대에는 엄한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나 강렬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도 글쓴이의 아버지 정도였다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요즘은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나 부드러웠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히브리서 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