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주의..③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교회 안에 만연된 교권주의는 단순한 고정관념 이상의 영향력과 파괴력을 갖고 있습니다. 교권주의에 사로잡힌 그리스도인은 사실 교회의 참된 정체성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필요를 위해 교권주의라는 울타리 안에 머물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은 교회에 대한 책임이라는 두려움에서 피할 안식처와 함께 자신의 신앙을 의존할 어떤 대상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목회자를 떠받들어야 하는 불편쯤은 기꺼이 감수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목회자가 자신이 무엇을 믿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일일이 말해주기를 기대합니다. '교권주의'라는 교리는 이 같은 자신의 신앙생활과 행동을 정당화시켜주는 방패인 것입니다.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그리고 말씀을 스스로 공부하고,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선택하여 책임지기를 거리는 사람은 이러한 교권주의 교리를 찾습니다.
목회자도 교권주의 확산에 기여한 면이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중요한 사람, 그리고 꼭 필요한 인물이 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목회자 역시 사람이므로 사역을 하면서 이러한 욕망을 채우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어쩌면 목회자가 사역을 하면서 '나의 교회, 나의 신자들, 나의 사역'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착각은 목회자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책임지는 동시에 모든 성도들이 자신을 의존하도록 만듭니다. 사실 어떤 목회자들은 경쟁하듯 자립적인 신앙을 가진 성도보다 자신의 어떤 지침이나 지시를 기다리며 자신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성도들을 모으는 데 열심입니다. 그래서 그 같은 성도들의 수와 의존도로 사역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도 합니다.
목회자에게 교권주의가 위험한 또 다른 이유는 목회자가 점점 더 다른 사람의 제안이나 비판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태로 변해간다는 점입니다. 교권주의 아래서 목회자는 '대답하는 사람'이지 '질문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인간사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항상 옳은 판단을 대신해 줘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교권주의는 목회자와 성도가 합작해서 만들어 낸 하나의 병적 증상이며, 이러한 교권주의로 인해 오늘날 많은 교회가 그 생동감과 능력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타나길 기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교권주의의 밑바탕에는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권주의는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하며, 얼마나 성령이 나를 통해 역사하는 것을 두려워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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