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죽음에이르는7가지죄

현대 문명의 에피큐리아니즘

예림의집 2020. 4. 18. 15:56

현대 문명의 에피큐리아니즘


정욕은 서구 사회에서 특별히 말하지 않아도 가장 치명적인 죄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도로시 세이어즈가 일곱 가지 대죄에 관한 글을 쓰면서 "다른 여섯 가지 대죄"라는 제목을 단 이유도, 당시에 이미 정욕은 기본적으로 치명적인 대죄라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입니다. 정욕은 기독교 문화가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쳐 온 서구 사회에 '부도덕'의 대명사처럼 취급되어 왔고, 따라서 사람들은 이 욕망을 매우 은밀하고 음성적으로 추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언제 그런 시대가 있었냐는 듯, 성이 거리와 광장에서 당당히 활보라고 있으며 성애가 공공연한 볼거리이자 대중적 즐길 거리가 된 상황입니다. 사람들은 아침에 눈뜨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성에 관련된 온갖 정보와 영상과 뉴스를 접하며 지냅니다. 이런 상황은 정욕이 자본과 결탁하면서 더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피터 크리프트는 "만약 성이 현대 사회에서 제거된다면 우리 사회는 경제 공황에 빠질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청바지와 자동차, 가전제품, 아파트 광고에 이르기까지 성적 흥미를 주는 요소가 빠진 상업 광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성은 이미 우리 삶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게다가 사회에 피해가 되지 않는 한 개인의 성욕과 성적 권리를 국가가 통제하고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자유주의적 사고와, 영상 사업과 인터넷 기술의 발달 역시 정욕의 문화가 만연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오늘의 젊은 세대는 로고스적인 이성보다 에로스적인 감성을 더 중시하며, '너 자신을 알라'는 고대 스토아주의보다는 '너 자신을 즐기라'라는 에피큐리아니즘에 훨씬 큰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세대 가운데 몸은 제재 받지 않는 당당한 주체로서 감각의 해방과 욕망의 자유를 거침없이 구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아의 몸이 타자의 몸을 욕망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몸이 쾌락의 주체인 동시에 객체가 되는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발트라우스 포슈(Waltraud Posch)는, 몸에 갈수록 집착하여 성적으로 매력적인 몸을 만드는 일에 엄청난 과심을 쏟는 현대인의 몸 집착 현상이 거의 종교적 광기와 같다고 진단한 바 있습니다. 타자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몸을 가지고 싶다는 이러한 욕구는, 사회가 만든 미의 기준에 미달되지 않기 위해 여성들이 몸매 만들기와 성형 수술에 내몰리면서 국가적으로 매해 수조 원이 뿌려지고 있는 현실과 사회 분위기를 통해 단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가히 성과 정욕에 중독된 사회에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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