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식탁에 초대하기
마지막으로, 이와 같은 나눔을 일상에서 더욱 풍성히 살아내는 실제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이웃을 식탁에 초대하는 일입니다. 그런 삶이 몸에 익으면, 음식은 더 이상 자기만족의 도구가 아니라 이웃과 연결되고 사랑을 나누는 거룩한 매개체가 됩니다. 사실상 가정이 점점 개인의 사생활을 위한 폐쇄적 공간이 되어 가는 요즘, 이웃을 집으로 초대해 음식을 나누는 일도 점점 기대하기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문화 속에서 우리는 사랑과 우정과 생명을 나누는 모판으로서의 식탁의 의미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능할 때 폐쇄적인 자기 욕망과 자기 배만을 섬기는 삶에서 하나님 안에서 이웃을 섬기는 열린 환대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식탁의 의미가 잘 나타나 있는데, 예수님은 오천 명의 무리가 허기로 실족할 것을 마음 아파하시며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그들을 먹이심으로써 깊은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기 직전에도 제자들과 식사하심으로써 그들과의 관계를 굳건히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뒤에는 갈릴리 호숫가에서 제자들과 함께 물고기를 구워 드시며 그들을 안심시키기도 하셨습니다. 또한 흥왕했던 초대교회는 모일 때마다 떡을 떼고 애찬을 나누며 친교에 힘썼습니다(사도행전 2:46,47).
사람들이 한 식탁에서 먹는다는 것은 한 갖고임을 의미하며, 따라서 성도들이 한 식탁에서 빵을 나눈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임을 드러내는 일종의 종교 의식을 수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에 초대교회는 말씀 공동체였을 뿐 아니라 밥상 공동체이기도 했습니다. 초기 고린도 교회에서 여유 있는 신자들이 먹을 것을 많이 가져와 가난한 성도들과 함께 나눠 먹는 일에 힘썼던 것도 바로 이런 의미에서였습니다.
또한 신자들은 특히 먹을 것이 부족하고 사랑이 필요한 이웃들을 식탁으로 초대하고 나누는 일에 더욱 가치를 부여하고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음식을 만들어 먹기 어려운 이웃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준다면, 그 음식은 사랑과 온기를 전달해 그 사람을 친구로 만드는 우정의 접시가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것은 부지중에 그리스도 혹은 천사를 대접하는 일이 됩니다(마태복음 25:40; 히브리서 13:2), 교부 히에로니무스가 말했듯이, 우리 식탁에 가난한 살마과 나그네들이 앉아 있는 모습이 익숙해지면 그들과 함께 그리스도께서도 손님으로 우리를 찾아오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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