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가 땅에 엎드러진 이유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이 전하지 않는 이야기를 많이 전합니다. 같은 장면을 전할 때도 현저히 다른 분위기를 보여 줄 때가 있습니다. 18장에서는 자신을 잡으러 온 무리이ㅔ게 예수님이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라고 물으시고 그들이 "나사렛 예수"라 하자, "내로라"(I am)라고 대답하십니다(5절). 개역한글 성경은 그다음 반응을 이렇게 옮깁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내로라' 하실 때에 저희가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6절). 개역개정 성경은 "내로라"를 "내가 그니라"로 옮겼는데 원어로는 "내로라"에 가깝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분을 나타낼 때 사용하신 장엄한 표현입니다.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진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말 표현으로는 장풍 같은 바람에 압도되어 밀려가 땅에 쓰러진 모습을 상상할 수 있으나 '뒷걸음쳐서 엎드려 절했다'라는 정도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사극에서 나올 법한 장면을 한번 상상해 봅시다. 어둠 속에서 누구를 만났는데, 알고 보니 임금님입니다. 깜짝 놀라 뒤로 몇 걸음 물러나 땅에 엎드려 조아리는 모습!
"내로라" 하신 예수님 말씀에 능력이 있었습니다. 이는 사람을 쓰러뜨리는 물리적 능력이라기보다 그 말과 태도에 담긴 신비로운 권위, 곧 하나님의 나타나심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위엄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전설에 모세가 하나님 이름을 말하자 바로가 땅에 엎드러졌다는 일화가 있는데, 이런 유대인의 사고가 본문 이해의 배경이 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체포되시는 사건에 대해 요한이 다른 복음서들과 달리 전하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요한복음에는 그 유명한 가룟 유다의 입맞춤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5절)라는 말로 가룟 유다가 가까이 있었음을 묘사할 뿐입니다. 요한은 다른 복음서들보다 예수님의 신적 영광과 권위에 맞추어 복음서를 기록했습니다. 같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같은 장면을 묘사하면서도 예수님의 신적 영광과 권위를 두드러지게 드러냅니다.
우리는 예수님 사건의 직접 목격자인 요한의 기록을 통해, 체포 순간에 더욱 영광스럽게 드러난 예수님의 신적 본질을 접합니다. 요한이 가룟 유다의 입맞춤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신분을 밝히시는 모습을 전하는 또 다른 의도는 십자가를 택하신 예수님의 자발적 순종을 강조하는 데 있습니다. "내가 내 모습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10:17,18)라는 말씀 역시 요한만이 전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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