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 고든/요한복음

예수님과 제자들

예림의집 2019. 12. 13. 22:13

예수님과 제자들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요한복음 1:35-51).


우리는 지난주에 예수님에 대해 깊이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 사역 초기의 제자들을 부르시는 모습에서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하고, 또 어떻게 예수님을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소개해야 하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이튿날, 세례 요한이 그를 따르는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을 전하던 중, 그곳을 지나가시는 예수를 목격하자 사람들에게 외칩니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세례 요한이 외치는 소리를 들은 두 제자가 그를 떠나 예수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여기서 질문 하나 합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이 자기를 떠나 예수님의 뒤를 쫓았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그때도 그것이 궁금했었나 봅니다. 나중에 요한복음 3:26절에 보면,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 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세례 요한의 대답을 보십시오. 3:30절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세례 요한은 조금도 자신의 제자들을 잃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향해 주목하도록 권고했으며 자신을 떠나 예수님의 뒤를 쫓는 모습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그는 예수님만이 사역의 중심이 되시고 관심의 대상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세례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라가 주님이 어디에 사시는지를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만나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자 그들은 많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밤을 함께 보내시면 그들의 물음에 친절하게 대답해 주십니다. 그들 중에 40절, 안드레라는 제자가 자신의 친형제인 시몬을 찾아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알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전도 장면입니다! 여기서 다시 질문입니다. 안드레와 시몬은 어떤 관계일까요? 네, 가족입니다. 최초의 전도가 자족 전도입니다. 우리도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부터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안드레가 그의 형제(아마도 형)인 시몬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주목합시다. 4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하고(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그의 말에는 확신이 차 있었습니다. “우리가 만난 분이 메시아인 것 같아”라거나, ‘형, 이 분을 좀 만나보겠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시몬을 예수님께 데리고 옵니다.


자 이제, 시선을 시몬에게 돌려 봅시다. 그가 예수님을 뵈러 갔을 때 주님은 그 자리에서 이름을 고쳐주셨습니다. 주님은 시몬에게 더 이상 시몬이라고 하지 말고 아람어(모국어)로 “게바” 혹은 그리스어(헬라어)로 “베드로”라는 이름을 사용하라고 하십니다. 게바와 베드로는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그 당시에 사람의 이름은 그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베드로는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을 만난 그날부터 그는 반석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베드로의 이름이 주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견뎌내야 할 중대한 임무 때문입니다. 이 베드로란 이름은 시몬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후에 이 베드로라는 의미의 믿음의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의 믿음의 반석 위에 교회가 서는 것입니다. 우리 각각이 교회이고 또한 그 각각의 교회들이 모인 공동체가 바로 교회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베드로 즉, 반석 같은 믿음 위에 든든한 복음전함 교회를 세워가야 합니다.


이제 또 다른 제자들을 만나 봅시다. 그다음 날 예수님은 갈릴리로 가시려다가 빌립을 만나 “나를 따르라!”라고 초대하십니다. 자 그런데 빌립도 안드레와 같은 반응을 보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확신한 순간 어떻게 했습니까? 바로 친구인 나다나엘에게 달려간 것입니다. 안드레가 시몬 베드로에게 달려갔던 것처럼 말이지요.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에게는 이와 같이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어떠한 힘이 생깁니다. 세례 요한이, 안드레가, 빌립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사렛 출신이라는 사실을 듣게 된 나다나엘은 빌립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나사렛이란 동네는 편견을 가지고 볼 수밖에 없던 초라한 촌 동네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반문합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때에 가장 많이 만나는 사람들의 반응이 이렇습니다. 여러분의 말을 무시하는 것이지요. “너나 믿어라!”또는 “예수를 믿느니 내 주먹을 믿겠소!”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빌립처럼 하면 됩니다. 빌립이 뭐라 그랬을까요? 45절 끝에 보십시오. “와서 보라!”빌립은 나다나엘과 논쟁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의 모든 의문에 답을 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빌립 도한 예수님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것이 최선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단숨에 제압해 버렸습니다.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말입니다. 주님은 그가 제일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셨습니다. 47절,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그 한마디면 끝이었습니다. 그를 만나기도 전에 그를 이미 아시는 예수님이면 된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에 다섯 명의 인물을 만났습니다. 주인공이신 예수님, 예수님을 제자들에게 소개하고 그들을 떠나보내는 세례 요한, 확신을 가지고 형 시몬에게 전도한 빌립, 반석이라는 뜻의 게바라는 새 이름을 받게 된 베드로, 변론을 피하고 예수님을 만나게 한 빌립, 선입견을 가졌지만 예수님께 한방에 반해버린 나다나엘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또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여러분이 만난 그 예수님을 그들도 만나게 합시다!


깊이 생각하기

①누군가를 예수님께 인도할 때 그가 가진 의문들에 대한 해답을 모두 알려 줄 책임이 우리에게 있을까요? 복음을 전하는 자의 태도에 대해 본문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은 무엇입니까?

②주변에 있는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은 강한 열망이 일어납니까?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무엇이 복음을 나누고자 하는 열망을 막고 있습니까?


기도하기

①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려는 우리의 열망을 막는 장애물이 있다면 그것의 정체를 알려주시도록.

②지금 현재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친구나 사랑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 잠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집시다. 그들에게 주께서 자신을 직접 계시해주시도록 간구합시다.

③혹시 당신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사람 가운데, 그리스도 안에서 얻게 된 참 소망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도록 간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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