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들의 유익을 위해서..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빌립보서 1:22-25).
바울은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 자신에게 훨씬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하고는 싶지만, 자신이 세상에 살아 있는 것이 성도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에 더 유익되기에 그들과 함께 머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시대의 비극은 생존에 급급해 자기만 위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을 돕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도구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를 위한 자리를 찾고, 나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고, 나의 행복에 다른 모든 것을 끼워 맞추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구촌 곳곳에서는 힘없는 사람들이 탐욕스러운 사업가의 이익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이해 어린아이들을 테러리스트로 키우는 IS(무슬림 무장 단체)처럼 끔찍한 악도 자행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결혼할 사람도 물건을 고르듯이, 나만을 위한 맞춤형을 찾습니다 이기적인 마음이 지배하는 시대입니다.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고, 다르게 살아가는 일이 절실한 시대입니다. 나만 위하는 이기적인 동기는 상처와 어둠이 가득한 사회를 만들어 갑니다. 예수님이 사신 이유와 목적은 오직 다른 이들을 위해서였습니다.
바울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단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을 도울까?'가 둘의 공통적인 관심사요, 인생의 목적이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예수님의 제자들이자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동일한 사명일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 때문에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책임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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