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찬송: 220장(통 278장) "사랑하는 주님 앞에"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고린도전서 9:19-23).
구약의 율법에 '안식년'이란 게 있습니다. 7년째 되는 해에 땅을 쉬게 하는 법입니다. 쉼을 통한 회복이 목적입니다. 땅도 그런데 사람은요? 같은 유대인인데, 불가피한 사정으로 종이 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종으로 지내는 기간을 제한했습니다. 역시 7년째 되는 해, 본인의 의지에 따라 자유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고 종으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가 의미 있습니다.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출애굽기 21:5). 사랑이 종의 위치를 스스로 유지할 수 있게 합니다.
바울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상전과 처자를 사랑하여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고 종이 된 사람입니다. 바울에게 상전이란 누구며, 처자란 또 누구였을까요? 은혜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상전이시고, 은혜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이 처자 아니었을까요?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린도전서 9:19). 본래 사랑이 이런 겁니다. 사랑에는 이 같은 '역설'이 일어납니다. 사랑은 '모순'을 용납합니다.
무엇이 바울을 이런 사랑의 사람으로 만들었을까요? 두말하면 잔소리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바울의 사랑을 만들었습니다. 그럼 예수님의 사랑은 어떠했을까요? 사도 바울 저리 가라입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립보서 2:8). 종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사형수까지 낮아지셨습니다!
"주님, 자기의 필요만 채우는 믿음에서 주님을 닮아가는 믿음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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