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회심

경건한 슬픔은 대단한 슬픔이다

예림의집 2019. 8. 29. 15:41

경건한 슬픔은 대단한 슬픔이다


경건한 슬픔은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의 탄식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정도의 슬픔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더 많은 슬픔을 느끼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아기가 새로 태어날 때 모든 사람이 다 같은 공통을 겪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일들은 다른 이들보다 더 심한 고통을 겪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선천적으로 사나운 성향에다 도도한 기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쉽사리 굽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마치 매듭투성이의 목재에 더 큰 쐐기를 박아 넣어야 되는 것처럼 더 큰 굴욕을 당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더 흉악한 범죄자들이므로 그들은 죄에 걸맞은 슬픔을 경험합니다. 그런가 하면 바늘로 종기를 따내고, 수술 칼로 도려내는 것처럼 극악무도한 죄인들은 율법의 망치로 멍들도록 맞아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더 고귀한 봉사를 위해 하나님께 탁월하게 쓰임 받도록 예정되어 있으므로 남보다 더 많은 굴욕도 감수하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교회의 기둥으로 삼고자 작정하신 아들에게는 더 많은 연단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이름을 이방인들과 왕들 앞에 전할 하나님의 기수가 될 사람으로서 자신의 마음을 회개의 칼로 더 깊이 도려내어야 했었습니다.

그렇다면 죄에 대한 슬픔은 얼마나 커야 할까요? 한마디로 그 어떤 세상적인 손실에 대한 것 못지않게 커야 합니다. 슬피 울게 되면 눈이 부어오릅니다.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하여"(스가랴 12:10)라는 말씀처럼 죄에 대한 슬픔은 세상적인 슬픔을 능가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소중한 가족을 잃었을 때보다도 하나님께 거역할 때 더 많은 비탄에 잠겨야 합니다.

"그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하사 통곡하며 애곡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굻은 베를 따라 하셨거늘"(이사야 22:12). 이 말씀의 원인은 죄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죽은 자의 장례식 때 눈물을 금하셨는데, 이는 죄로 인한 슬픔이 장지의 슬픔을 능가해야 함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당연함은 죽은 자의 장례에서 떠나가는 자는 오직 친구들뿐이지만 죄에서는 하나님이 떠나가시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한 슬픔은 다른 모든 슬픔을 삼켜버릴 정도로 크다고 보아야 하는데, 이는 결석병이 고통과 통풍의 고통이 마주칠 때 결석병의 고통이 통풍의 고통을 삼켜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죄를 지으면서 맛보았던 달콤함과 같은 정도의 쓰라림을 죄로 인해 울면서 맛보아야 합니다. 분명 다윗은 전에 밧세바에게서 누렸던 위로보다 더 많은 쓰라림을 회개할 때 맛보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죄로 인해 얻게 되는 슬픔은 최대한의 이윤 취득이나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던 그 모든 죄들을 다 버리는 정도라야 합니다. 약은 우리의 병이 깨끗이 나았을 때 그 효력을 충분히 증명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한 사랑이 깨끗이 사라질 때 슬픔의 불량이 충분한 것임을 나타내게 됩니다. 


'독서..▥ > 회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건한 슬픔은 영속적이다  (0) 2019.09.11
경건한 슬픔은 배상을 전제로 한다  (0) 2019.09.05
경건한 슬픔은 솔직하다  (0) 2019.07.18
정결한 슬픔은 내면적이다  (0) 2019.07.11
죄의 슬픔   (0) 2019.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