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 한 명이..
아이들도 대부분 나의 의견을 잘 따라와 주었고, 예배를 섬기는 데 있어서 큰 문제없이 다들 즐겁게 찬양사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도 잘 나오지 않고 학교생활도 성실하지 못한 여학생 한 명이 찾아와 찬양팀 멤버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소위 말하는 문제 학생이었습니다. 교사의 관점으로서 연약한 영혼을 품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이견이 없습니다.
학교나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킨다고 그것이 은혜를 받는 조건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역은 달랐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최고의 것을 드려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고 그렇게 팀을 운영하고 지도해왔으며, 특별히 여러 사람들 앞에 서는 사역이라면 더더욱 스스로 겸비하여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이 생각은 변함없지만 그 당시 이 만음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는 솔직히 미숙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난 그 여학생의 제의를 거절했고 이유에 대해서도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굳이 깊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가볍게 생각한 것이 큰 실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아이는 그날 이후 교회를 나오지 않았고 들리는 말로는 학교도 그만두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팀 내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멤버가 있다면 깊은 기도와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어쨌든 난 그날 나의 실수를 절실히 통감하고 회개했습니다. 예배사역, 팀워크, 규정과 방침 등 이 모든 것을 떠나 분명한 한 가지는, 그날의 나의 판단과 결정에는 한 영혼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마음"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독생자를, 뻔히 죽을 줄 알면서도 우리에게 보내실 수박에 없었던 "하나님의 사랑"은 그 당시 나에겐 문자적 가치에 불과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주일학교 교사 13년 사역 중에 가장 가슴 아픈 일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사건입니다. 선택이란 것은 항상 어렵습니다. 개인의 선택이 공동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만약 당신이라면 그 술 취한 남자와 여학생의 사례에서 어떤 결정을 할 수 있겠습니까? 무조건 긍휼의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입니까? 아니면 나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할 것입니까?
굳이 찬양 리더가 아니라도 교회 공동체의 리더들은 항상 이와 같은 고민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사실 교회가 아닌 일반적인 공동체라면 이 사안을 고민할 이유가 없습니다. 조직의 정체성과 가치에 맞지 않는다면 규정과 방침에 의해 일을 처리하면 됩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회사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구성원 하나보다 전체적인 조직의 가치를 더 크게 볼 수박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다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과 가치가 바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우리에게 율법을 초월하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역에 '사랑'이 빠져 있다면 우리는 그저 한낱 꽹과리에 불과합니다. 예배 찬양을 인도하는 찬양팀에 이 사랑의 원칙이 없다면 대체 우리는 무슨 근거로 사역을 한단 말입니까? 우리는 대중 가수도 아니고 우리의 예배는 콘서트도 아닙니다. 우리 시역의 근거는 오직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사랑'입니다.
오래 전 목사이자 유명한 찬양인도자가 한 말이 기억납니다. "예배 인도자는 중매쟁이다. 하나님과 회중들을 연결해 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중매쟁이다." 난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하나님을 이해 찬양한다고 하면서 사람들에 대한 긍휼한 마음이 없다면,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하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시선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아는 것이 모든 사역의 출발점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감각은 그분의 사랑하시는, 온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자신의 독생자를 기꺼이 희생시키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한 영혼에게 집중되어 있음을 결코 잊지 맙시다. 당신에게 천하보다 귀한 영혼은 과연 누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