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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의 기근을 극복하자

예림의집 2019. 1. 27. 07:31

심령의 기근을 극복하자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열왕기상 17:7-16).


기원전 8세기 여로보암 2세 때 활동하였던 유대의 예언자 아모스는 장차 올 종말에 대해서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암 8:11-13에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이것이 바로 심령의 기근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니까 기근이 있었습니다. 하늘은 비를 그치고 땅은 이슬을 그쳤습니다. 그러기를 무려 3년 6개월, 그 상태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개울도 마르고 강도 마르고 샘조차 말랐습니다. 그렇게 되면 인심조차 마릅니다. 그렇게 되면 누구나 살아갈 수 없습니다. 옛날 우리나라도 양식이 없어 보릿고개라 하여 얼마나 고통을 당했습니까?

그 원인은 아합과 이세벨로 인해 하나님을 멀리하고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긴 죄 때문이었습니다. 이때 저 이방 땅 베니게 서해안의 시돈 남방 13km 지점의 산 위에 있는 사르밧이라는 마을에 한 과부가 있었습니다. 사르밧 과부 역시 혹독한 기근을 당해 아들과 함께 마지막 남은 가루와 기름으로 떡을 해먹고 죽음을 기다리기 위해 울면서 땔감을 줍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르밧 과부가 여호와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찾아온 엘리야를 대접함으로 기근이 다 가도록 통에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이런 기적을 주셨을까요? 이 말씀은 이 황량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에게 심령의 기근을 극복하는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심령의 기근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심령의 위기를 깨달아야 합니다.

12절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사르밧 과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위기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한 끼를 먹고 죽기 위해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며 나뭇가지를 주었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사랑하는 아들을 먹이지 못해 죽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심령의 기근이 되면 나도 죽고 내 심령도 죽습니다. 나만 죽는 것이 아니라 내 가족도 죽고 교회도 죽고 내가 은혜받지 못한 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습니다. 이 문제가 심령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회복되지 않으면 육신도 환경도 피해를 입힙니다.

이스라엘의 아합 왕과 왕후 이세벨이 잘못하니까 그 땅에 3년 6개월 동안 기근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만 온 것이 아닙니다. 남쪽 유다에도 기근이 오고, 또 여기 사르밧 과부가 살던 시돈까지 흉년이 왔습니다. 두로와 시돈이라고 했듯이 지중해의 해변가에 있는 이방인 지역까지 흉년이 왔습니다.

영육 간의 여러 어려운 일들이 우리 믿음의 부족에서 말미암은 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떠날 때 침략을 당하고 기근을 당하고 질병이 퍼져 고통받았습니다.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답이 없습니다. 2004년 인도네시아에 22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쓰나미가 있었을 때 그 일을 어떻게 알았는지 해안에 살던 쥐라든지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줄지어 언덕으로 대피하는 모습이 목격됐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그것을 알지 못한 체 물놀이에만 여념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빈곤하고 만족하지 못한 가운데 있어도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합니다. 이 나라의 평안도 우리들의 믿음에 달렸습니다. 그동안 우리 선조들의 믿음 덕택에 잘 먹고 잘 살았는데 이 자유와 행복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더 큰 문제는 계 3:17처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 3:17) 이런 착각입니다. 가장 무서운 병은 몸이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병입니다. 감각을 느끼지 못하니 상처 나고 데이고 터져도 대처하지 못합니다. 알고 보면 몸의 고통도 은혜입니다. 고통이 있다면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희망조차도 없다면 그때는 아픔조차 느끼지 못합니다.

이것을 깨달은 오순절에 예루살렘 사람들은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행 2:37) 부르짖었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나라를 위해 기도하던 이사야 역시 자신의 영적 위기를 깨닫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 탄식했습니다.


2. 심령 회복을 위해서는 드릴 몫을 드려야 합니다.

13-14절에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말씀을 자세히 보세요. 엘리야가 다 달란 것이 아닙니다.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고 했어요. 여기 작은 떡이라 했고 또 그중의 일부만 먼저 달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몫은 큰 몫이 아니라 작은 몫입니다.

심령의 문제도 24시간 엎드려 기도하고 성경 보고 전도하고 가진 것 모두 드려야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개념상으로는 다 바쳐 하나님의 것으로 살아야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가혹한 분이 아니십니다. 대신 모든 것을 다 드린다는 의미로 그중 일부만을 받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교인들의 믿음을 테스트해 보기 위해서 이상한 실험을 했습니다. 여러분의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니 가진 문서 다 바칠 수 있느냐? 그런데 교인들이 다 바치더랍니다. 그래서 교인들의 믿음을 칭찬하고 축복하면서 다시 돌려주었다고 합니다.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처음부터 반발할 텐데 정말 대단한 교인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다면 모르지만 우리에게 관리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봉사하고 나도 감사하며 쓰라고 주신 것이지 다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하도록 강요한다면 그는 거짓 선지자 사이비이단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취할 기본적인 생각은 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면 다 드려도 된다는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에게 돌릴 작은 몫만 먼저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우리가 성령 충만 받는데 하루 24시간 엎드려야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루의 십분의 일만 엎드려도 넘치고 넘치는 영적 충만이 있습니다. 더 줄여서 하루 24분의 1만이라도 제대로 드리기만 해도 심령의 가난은 없습니다.

우리 심령에 빈곤이 있다면 하루 한 시간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보내세요. 반 시간이라도 드리지 않기 때문에 빈곤한 것입니다. 물질 문제가 있습니까? 물질의 십분의 일, 시간의 십분의 일만 확실히 드려보세요. 십일조 생활 철저히 하되 시간을 드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십일조는 드리는데 기도가 부족하거나 기도는 하되 드림이 부족하면 안 됩니다. 잠 16:3에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했습니다. 축복을 심고 기도해야 싹이 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기업에 하나님께서 아이디어를 주시고 섭리하셔서 여러분의 삶에 놀라운 기적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에게 달라 할 때 '원~ 세상에 벼룩에게 간을 빼달라고 하지, 이 상황에서 달라 하느냐.'면서 배척했다면 그는 기근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르밧 과부는 순종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드릴 작은 몫의 시간과 물질을 드려 그 풍성함을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3. 계속하여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15-16절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여기 여러 날 먹었다는 것은 기근이 끝나는 날까지를 의미합니다. 8-9절의 말씀도 그렇고, 15-16절에도 기근이 끝나도록 엘리야를 공궤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처럼 계속하여 변함없이 말씀대로 하나님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자만해서도 안 됩니다. 교만해서도 안 됩니다. 기만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이 복 주시면 더 잘해야 합니다. 선교도 담당해야 합니다. 미자립 교역자나 은퇴 교역자도 도와야 합니다.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선교도 해야 합니다. 이 단문제 사역자들을 도와야 이단도 막을 수 있습니다.

조립품을 생산하는 어느 중소기업인데 그 사장이신 집사님은 은퇴 교역자 30명을 수년간 지원해 왔고 올해도 지원하고 있으며 홀사모와 은퇴 교역자들을 위한 또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질이 문제가 아니라 그분의 생각과 믿음이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습니까? 그런 생각만 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사르밧 과부가 이제는 살겠다고 엘리야를 소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기적은 바로 그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황금에 눈이 어두워 황금의 알을 낳는 닭을 잡았더니 황금이 없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보다도 풍족하기를 원하십니다. 심령의 기근, 이것은 모든 것의 기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자신의 심령의 위기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할 뿐 아니라 반드시 드릴 시간의 몫을 온전히 계속하여 드려서 더욱더 영적으로 풍성하고 아름다운 심령의 복을 누리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